[밀물썰물] 슬픈 캐시미어
5월 한낮이 한여름처럼 느껴진다. 서늘한 냉기가 몸속을 파고드는 겨울, 비단만큼 부드러우면서도, 거위털만큼이나 가볍고 따뜻한 캐시미어 머플러나 코트는 멋쟁이들의 필수 아이템이다.
인도 북부 고원인 카슈미르를 비롯해 티베트, 몽골, 이란 등의 고산지대에 사는 산양들은 추워지기 시작하면 거친 털 사이에 가늘고 보드라운 털이 자라고, 봄이 되면 빠진다. 이 털을 모아 직조한 것이 캐시미어라고 한다. 생산량에 한계가 있어 ‘섬유의 보석’으로도 불린다. 캐시미어의 고향이 카슈미르라는 사실이 최근 새삼 주목받는다.
아무나 접근할 수 없는 신성한 세계의 지붕, 설산과 호수 주변을 노닐던 산양들의 평화로운 모습과는 정반대로 이슬람과 힌두라는 다른 종교적 신념과 정치적 이해가 맞물리면서 테러에 이은 국지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영국의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분리 독립한 이후 양국은 카슈미르도 6:4로 분할해 서로의 영유권을 주장하며 최근까지도 크고 작은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달 22일(현지시간) 인도령 카슈미르에서 무장 테러 단체의 총기 난사로 인도 여행객 등 28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이번 사태가 빚어졌다. 확전을 거듭하며 양국 전투기 125대가 뜨고 미사일, 무인 폭격기까지 동원된 국지전이 벌어졌다. 공중 전투 규모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라는 평가도 있다.
사상자 수백 명이 나오고, 양국이 보유한 무기의 실제 전투 능력이 드러나고 있다. 파키스탄이 보유한 F16급 전투기인 중국산 J-10C가 인도의 프랑스산 최신예 라팔 전투기를 격추했다는 뉴스에 세계 방산업계와 군사 전문가들은 그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중국 방위·항공 산업 능력에 놀라고 있다. 미국 중국 러시아 등의 중재로 휴전 합의가 있었지만 총성이 완전히 그치지 않았고, 언제 다시 불붙을지 알 수가 없다.
이념이든 종교든, 지향이 다른 사람들과 별 문제 없이 공존하던 사회가 어떤 때는 갈가리 찢긴다. 분열과 갈등의 씨앗은 오래전부터 존재했지만 제국주의 패권 국가든, 공동체 내부의 모순을 외부의 적을 통해 눈가림하려는 부패한 지도자든, 불씨를 댕기는 세력들로 인해 지금도 혐오와 전쟁은 그칠 줄 모른다. 우리도 분단과 동족 상잔의 비극을 80년 가까이 안고 있다. 산양이 여유롭게 풀 뜯는 카슈미르, 남북이 자유롭게 오가는 비무장지대, 그날은 언제쯤 가능할까.
이호진 선임기자 jiny@busan.com
이호진 기자 jiny@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