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뽀빠이' 그를 보내며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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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걱턱에 닻 모양 문신을 한 우람한 팔뚝, 입에 문 파이프, 세일러복 차림의 그는 시금치만 먹으면 힘이 솟고 근육이 불끈불끈 커졌다. 만화 속에 살았지만 아이들에게는 누구보다 현실감 있는 영웅이었다. 미국 만화 캐릭터 ‘뽀빠이’(Popeye) 이야기다.

뽀빠이는 1929년 1월 미국의 한 신문에 연재된 한 줄짜리 만화 ‘팀블극장’을 통해 비중 없는 조연으로 처음 등장했다. “도와줘요, 뽀빠이!” 위기에 처한 올리브의 외침에 뽀빠이는 시금치를 먹고 나타나 악당 브루터스를 물리쳤다. 이렇게 시금치만 먹으면 엄청난 힘이 솟아 악당을 물리치는 뽀빠이는 등장 2년 만에 주인공으로 승격한다. 만화 속에서 그는 연인 올리브를 지켜내며 인기를 끌었고, 자주 내뱉던 “나는 나야, 그게 나의 전부야”라는 대사는 당시 참는 데 익숙했던 전 세계 소시민들의 억눌린 감정을 대변했다.

1933년에는 뽀빠이의 높은 인기에 힘입어 만화영화 ‘뱃사람 뽀빠이’가 제작돼 세계 각국의 TV를 통해 어린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1980년에는 배우 로빈 윌리엄스가 뽀빠이를 연기한 뮤지컬 영화로도 제작돼 큰 인기를 끌었다. 국내에서는 뽀빠이 하면 추억의 과자를 떠올리는 이들도 많다. 1972년 2월 첫선을 보인 삼양식품의 ‘별뽀빠이’다. 당시로서는 꽤 낯선 형태의 과자로 라면은 끓여 먹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달콤하고 고소한 과자로 재탄생했으며, 별사탕이 함께 들어 있어 골라 먹는 재미도 더했다.

이 만화 속 영웅은 시간이 흐른 뒤 한국에서 또 하나의 이름을 얻는다. 바로 뽀빠이 이상용이다. 그는 1975년부터 9년간 KBS 어린이 노래 프로그램 ‘모이자 노래하자’의 진행을 맡으며, 당시 만화 캐릭터 뽀빠이의 인기에 힘입어 뽀빠이 아저씨라는 별칭을 얻는다. 단신임에도 굵은 팔뚝과 당당한 체격으로 아이들 앞에 선 그는 세일러복에 수병 모자를 쓰고 한 팔로 아이 몇 명을 번쩍 들어 올리는 모습으로 TV 앞의 어린이들에게 경외의 대상이 됐다. 그의 별명처럼 그는 진짜 뽀빠이였다. 특히 1980년대부터는 심장병을 앓는 어린이 수백 명에게 수술비를 지원하며 실질적인 도움의 손길을 건네기도 했다. 그 시절 뽀빠이 이상용은 아이들을 지켜주는 세상에서 가장 힘센 어른이자 든든한 수호자였다. 그가 최근 세상을 떠났다. 비록 우리 곁을 떠났지만, 어릴 적 과자봉지 속에서 골라 먹던 별사탕처럼, 그의 존재는 소중한 추억이 되어 우리의 마음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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