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막다 법정 서는 교사… 교육청은 뒷짐만
부산 4년차 교사 커뮤니티에 호소
“학생 피해 파악해 학교 측에 보고
신고 절차 이후 학부모 재판받자
증인 출석 요구로 일상 생활 붕괴
변호사 선임 등 교육청 보호 전무”
부산 한 초등학교 교사가 아동학대가 의심되는 학생을 돕기 위해 나섰다가 재판 증인으로 채택됐지만 교육 당국으로부터 복잡한 법적 절차를 밟는 데 드는 비용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교사 커뮤니티에 올려 파장이 일고 있다. 부산시교육청이 도입하고 있는 현행 교원 법률 지원 제도가 교원이 직접 피해를 입는 경우에만 한정돼 있어 증인 등 다른 법적 절차에는 지원이 어렵게 돼 있는 탓이다.
초등교사 커뮤니티 인디스쿨에는 지난 12일 부산시교육청이 교사를 보호해야 하는 의무를 경시한다는 한 초등학교 교사의 글이 올라왔다. 〈부산일보〉가 해당 교사를 수소문해 접촉한 결과, 자신을 4년 차 교사라고 밝힌 A 씨는 “검찰이 아동학대 재판과 관련해 저를 증인으로 채택했다”며 “법정에서 B 씨(학부모)를 마주해 증언한다는 상상만해도 보복이 두려워 하루하루가 괴롭다”고 호소했다.
A 씨는 지난해 담임을 맡은 학급의 한 학생이 가정폭력 피해를 입은 것을 인지해 학교 측에 보고했다고 한다. 학교 측은 학부모 B 씨를 아동학대 등이 의심된다며 신고했고, 현재 B 씨는 재판을 받게 됐다. A 씨는 이 일로 검찰 측 증인으로 채택, 최근 법원으로부터 출석 요구를 받았고 그후 일상생활이 어려워졌다고 했다.
A 씨는 학부모와 직접 대면하지 않고 증언을 하기를 원했고, 법원에 따로 관련 절차를 신청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법원 관련 절차는 법에 생소한 일반인에게는 낯선 것이었고 변호사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 시교육청 교원힐링센터(교권보호법률지원단)를 찾아 변호사 선임비 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교육청 측에서는 “증인 출석 관련으로는 지원해준 선례가 없어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지원 근거와 규정에 맞지 않아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시교육청은 현재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 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에 따라 변호사 선임이나 대리 고소·고발 조치 등 보호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다만 이 경우에도 학생이나 학생의 보호자 등이 교육활동 중인 교원에 대해 폭행, 명예훼손, 모욕 등으로 피해를 입힌 경우에만 한정하고 있다. A 씨의 경우처럼 증인 출석 관련 지원은 규정이 마련돼 있지 않았다. 시교육청 곽강표 교권보호법률지원단장은 “법률 상담을 연결해줄 수는 있지만, 증인 보호신청 관련 행정 처리와 증언 활동 도움 등 A 씨가 요구하는 정도의 법적 절차에 대해선 도움을 줄 수 있는 근거 규정이 없다”고 해명했다.
A 씨는 “피해를 입었을 때 가장 먼저 교육청을 찾았는데, 지원이 불가능하다는 얘기만 들어 매우 속상했다”며 “교육활동 중에 일어난 일인데 교사 개인이 모든 부담을 감내해야 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토로했다.
교육 당국이 교사 지위 향상을 위한 여러 제도를 도입하고 있지만 교육 현장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례에 대응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교사들도 교육청 등 교육 당국보다는 교사노조 등에 가입해 도움을 받는 길을 택하는 경우도 많다. A 씨 사연이 알려지면서 교사들 사이에는 자력 구제를 위한 협회를 만들자는 제안도 나온다. 부산 사하구에서 근무하는 한 30대 초등교사는 “교육청은 규정을 내세우며 최소한만을 보장하는 쪽으로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며 “스스로 건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는 교사도 많아지고 있고, 자칫 아동학대를 보고도 외면하는 일이 벌어질까 걱정도 된다”고 말했다.
손희문 기자 moonsl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