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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수의 지금 여기] 1부두 도서관 ‘꼼수 행정’ 뭘 노리나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다는 말이 딱 맞다. 일본의 원전 오염수 본격 방류에 이어 최근에는 역사 논쟁, 이념 공방으로 온 세상이 떠들썩하다. 이 나라 국정에 어이없는 일들이 자꾸 벌어지고 있는데, 많은 국민이 여기서 ‘독단’과 ‘편견’의 냄새를 맡는다.
지역으로 눈을 돌려도 다르지 않다. 최근 부산시가 부산항 1부두에 한 재력가의 이름을 단 도서관 건립을 추진한다는 보도가 일파만파다. 1부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피란수도 부산 유산’의 핵심 장소다. 부산의 역사성과 한국 근현대의 상징성을 인정받아 현재 문화재 등록이 추진 중인 곳이다.
여기에 한 재력가가 도서관을 기부하겠다고 한다. 그는 올해 4월 미국 경제매체 포브스 발표 기준으로 개인 자산이 국내 50대 부호 중 1위를 차지한 자산가다. 200억 원을 줄 테니 1부두에 건물을 짓고 자신의 이름을 달아 달라는 게 기부 조건이다. 사적 장소가 아닌 공적 공간에 이름을 세운다는 것은 대단히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버스정류장 이름 하나, 도로 명칭 하나 정하는 데에도 숱한 의견수렴 절차를 거친다. 그렇게 힘을 모아도 최종 합의에 도달하기 힘든 것이 공공장소의 명칭이다. 아무리 위대한 공인이라도 그 이름을 공적 장소에 쓸 때는 철저한 검증 과정이 필요하다. 이름을 돈으로 살 수는 없는 법. 이게 인류 역사의 오랜 가르침이다.
1부두 내 기부 도서관 건립안은 석연찮은 구석이 한둘이 아니다. 지자체의 기부금품 접수 여부에 대해서는 기부심사위원회의 심의를 받도록 돼 있다.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 제5조가 그 근거다. 그런데 이번 기부 금액 200억 원에 대한 기부심사 결과는 전혀 공개돼 있지 않다. 부산시가 기부자 측과 기부금 약정식을 체결하기로 계획한 시기는 9월 10일께로 알려졌다. 약정식이 바로 코앞인데 기부심사조차 없었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 사실이라면 명백한 절차상의 하자다.
그런데 기부심사위원회는 6월에 열려 이미 가결이 이뤄진 상태라고 한다. 기부심사에 관련된 이들의 전언에 따르면, 기부자가 제출한 지정기탁서 양식에는 애초 도서관 위치가 ‘1부두’가 아니라 ‘북항’으로만 기재돼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심의가 통과됐다면 이는 한참 더 심각한 문제다. 부산시가 이를 숨기고 모두를 속인 것이기 때문이다. 시가 1부두를 포함한 도서관 건립 후보지 3곳을 추려 기부자 측에 제안한 때가 올해 3월이었고, 기부자 측이 1부두를 최종 낙점한 것은 5월이었다. 만약 기부심사 때 도서관 위치가 ‘1부두’ 아닌 ‘북항’으로 하는 내용으로 가결된 것이라면, 이는 반대 여론을 의식한 ‘꼼수 행정’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부산시는 이와 관련된 사실 여부를 명확하게 밝혀야 할 것이다.
부산시의회의 역할에도 아쉬운 데가 없지 않다. 기부 도서관이라고 하지만 건물 짓는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건립비용 말고도 이후의 도서관 운영비는 누가 부담하는가. 부산시 조례에 따르면, 시장은 업무협약 체결 때 시의회에 보고해야 하는데 시의 재정적 부담이 발생할 경우엔 특히 시의회의 사전 의결을 받도록 돼 있다. 기부금 200억 원을 도서관 건립비용으로 본다면 향후 운영비는 부산시 재정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사전 의결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부산시의회는 시민의 의사를 대표하면서 부산시정을 견제하는 기관이다. 적법한 절차 이행 없이 협약 체결이 가시화되고 있는데 손을 놓고 있는 이유를 모르겠다. 시의회를 거치지 않는 시의 독단적 행정에 대해서는 제동을 걸고 잘못된 행정을 바로잡아야 한다.
무엇보다 납득하기 힘든 건 부산시의 조급함이다. 애초 부산시·부산항만공사(BPA)·해양수산부가 합의했던 것처럼 ‘1부두 보존’이라는 원칙대로 가는 게 순리다. 한때 복합문화공간을 만들자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지만 이는 북항의 다른 곳에 짓는 것으로 결론이 난 상태다. 1부두를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진 대상으로 삼고 그 일대를 등록문화재로 보존하기로 결정하면서다. 이는 2021년 12월 체결된 ‘부산항 북항 1단계 재개발사업 업무협약서’에 다 나와 있다. 부산시가 소유권자인 BPA를 설득한 것도, 소유·관리권을 이양받기로 한 것도 이런 조건에서다.
기부심사 때 제출된 도서관 위치가 1부두가 아닌 북항이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도서관이 필요하면 북항의 1부두가 아닌 적당한 곳에 지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세계유산 훼손 논란이 불거질 하등의 이유가 없다. 이제 와서 부산시가 약속을 어기는 것은 결국 부산시장과 시정 업무 수장들의 일방적, 독단적 행태로 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무리를 하면서까지 얻고자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2023-09-05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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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수의 지금 여기] 치수(治水)의 지혜를 다하라
요순시절 중국은 7년 가뭄이 들고 9년 홍수가 지는 땅이었다. 황하를 막고 있는 허난성(河南省) 용문산(龍門山)을 도끼로 갈라 물길을 낸 이가 우(禹)다. 홍수를 다스린 공으로 나라(夏)를 물려받았다. 지금으로부터 4000여 년 전, 신화의 시대라고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사람들 뭇 목숨이 걸린 ‘치수(治水)’보다 중요한 건 없으니, 그 상징으로 부족함이 없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우 임금이 요순을 잇는 성군으로 추앙받는 것도 그런 이유다.
중국만 그런 게 아니다. 우리나라 임금들도 물을 다스리는 데 지성을 다했다. 물은 너무 많아도, 너무 적어도 문제다. 고대로부터 가뭄과 홍수는 하늘의 경고로 여겨졌다. 이로부터 백성을 지키는 것이 곧 치세(治世)의 핵심이었다.
과학기술과 문명이 발달한 현대라고 해서 다른가. 그렇지 않다. 자연재해는 여전히 불가항력이고, 지금도 물난리는 계속되고 있으며, 사람은 속절없이 죽어 나가는 중이다. 참담한 재난 앞에서 인간은 미미하고 무력한 존재임을 깨닫는 요즘이다.
눈에 보이는 수해만 물난리가 아니다.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는 더 큰 물난리의 씨앗을 품고 있다는 점에서 항시 주시해야 할 대상이다. 전자가 ‘수면 위’로 드러난 물난리라면, 후자는 ‘수면 아래’의 물 문제랄까. 오염수 문제는 눈에 보이지 않다 보니 ‘과학’이냐 아니냐, 갑론을박과 설왕설래가 만발한다.
과학은 흔히 인간의 인식과 정신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실재하는 사실이나 진리를 얻어 내는 학문으로 정의된다. 다른 시각도 있다. 과학의 목표는 진리를 얻는 게 아니라 그저 실험과 관찰의 결과를 통해 현 단계에서의 유용한 지식을 취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과학계 내부의 이런 철학적 견해 차이는 어쩌면 과학이 추구하는 가치중립 자체가 불가능한 일임을 방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가치중립을 표방한 연구라 하더라도 그 결과물이 향후 어떤 용도로 쓰이느냐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여기에서 자유로울 학문은 없는 것이다.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 역시 순수한 과학의 영역이 될 수 없다는 점은 명백하다. 참과 거짓을 검증할 만한 축적된 실험 자료 없이, 취사 선택된 몇몇 데이터에만 의존하고 있어서다. 과학적 엄밀성을 뒷받침할 근거가 없다는 얘기다. 원전 폭발로 발생한 오염수의 해양 투기는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하는 일이다. 여기서 과학이 취해야 할 자세는 자만이 아니라 겸손이다.
오염수 문제가 ‘과학’일 수 없다는 것은 이미 과거 사례에서 잘 드러난다. 2021년 6월 야당이었던 국민의힘은 국회에서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 결정을 규탄하면서 오염수 안전성 확보를 위한 정부 대책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국민의힘은 여당이 되면서 지금 정반대 입장으로 바뀐 것이다. 당시 문재인 정부를 옹호하려는 게 아니다. 문 정부 역시 일본의 오염수 방류를 암묵적으로 동조했기 때문에 비판받아 마땅하다. 어쨌든 오염수 문제는 처음부터 과학이 아니라 정치였던 셈이다.
그럼에도 현 정부와 여당이 더 큰 지탄을 받는 건 당연하다. 당장 국정과 민생을 책임지고 있는 집권 세력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국민의 안위와 생명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의 행보는 국민 80% 이상이 오염수 방류를 반대하는 민심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듯하다. 윤 대통령은 12일 리투아니아에서 가진 한일 정상회담에서 일본의 오염수 방류 계획을 사실상 승인했다.
지금 정부는 왜 이렇게 일본 정부에 선의를 베푸는 것도 모자라 날개까지 달아 주려 애쓰는 걸까. 짐작되는 바가 없지 않다. 총선 승리와 집권 연장이라는 장대한 목표가 먼저 떠오른다. 한미일을 묶어 외교·안보 협력의 견고한 울타리를 치고 대신 중국·러시아는 대립의 대상으로 떠미는 이른바 ‘신냉전’ 구도에 올라타는 것이 보수층을 결집하고 표를 얻는 데 유리하다고 보는 모양이다. 그러려면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서둘러 매조지는 게 급선무다.
정치세력이 집권을 꿈꾸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목표로 결코 비판할 일이 아니다. 문제는 주객의 전도다. 정치는 국민을 위한 것이고 국정 운영은 국민을 위해 일하는 데 그 의미가 있다. 국정을 맡은 세력이 이를 망각하고 민생은 외면한 채 눈앞의 사사로운 이익에만 매몰돼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국민이 스스로를 구제해야 하는 각자도생의 원시적 사회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눈에 보이는 물난리(수해)이든 눈에 보이지 않는 물난리(오염수 방류)이든 이를 바라보는 국정 책임자의 눈은 철저히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맞춰져야 한다. 치수는 예나 지금이나 중요한 지도자의 덕목이다. 진정한 권력은 거기서 나온다.
2023-07-18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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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수의 지금 여기] 아바나와 부산
쿠바의 수도 아바나를 생각한다. 중앙아메리카 카리브해에서 가장 큰 항구 도시. 아름다움 뒤에 사무친 역사가 서린 곳이다. 원래는 원주민의 땅이었다. 그 흔적이 이름에 남아 있다. ‘아바구아넥스’라는 추장 이름에서 따온 것이 아바나다. 타이노족이 살던 이 땅에 1492년 탐험가 콜럼버스가 도착했다. 그는 외쳤다고 한다. “이제까지 본 곳 중 가장 아름다운 땅.” 곧이어 스페인이 이 지역을 점령한 건 세계사에 알려진 대로다. 아바나의 굴곡진 역사는 그렇게 시작됐다.
아바나는 신대륙 진출의 전진기지였다. 아메리카와 유럽을 잇고 아프리카를 연결했다. 아메리카 안에선 식민지 항구 사이의 거점이었다. 북대서양 해류를 낀 환경적 요인도 컸다. 대륙을 왕복하는 시간이 짧아 수많은 선박이 모이고 흩어졌다. 요컨대 ‘전략적 요충지’였던 것.
스페인의 지배를 받던 쿠바는 1898년 독립한다. 아바나가 쿠바공화국 수도가 된 건 바로 그때였다. 미국 기업과 관광객이 몰려들었고 술과 향락이 스며들었다. 그런데 1959년 사회주의 혁명으로 쿠바는 또 다른 변곡점을 맞는다. 이후 아바나의 물질적 성장은 제동이 걸렸다.
아바나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는 소식은 6년 전부터 들리기 시작했다. 관광업의 부활이었다. 옛 시가지와 요새 등 오래된 유적지가 남아 있어 가능했다. 번성의 계기는 1982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지정. 그 이후 전 세계 관광객이 몰리는 ‘핫 플레이스’로 떴다. 그 일대가 이른바 ‘올드 아바나’다.
쿠바인은 자존심 있는 사람들이었다. 미국의 압박 앞에서도 혁명의 기품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 물론 지금의 아바나는 과거의 명성에 기대고 있으니 아이러니하다. 그렇다 해도 문화유산을 그대로 간직하고자 했던 노력은 인정해야 한다. 그렇게 아픔의 역사는 삶이 되고 문화가 되었다. 쿠바 특유의 낙천성, 모든 걸 품고 섞는 융합의 지혜가 힘을 보탰다. 그 대가가 관광 수입으로 이어졌을 뿐이다.
아바나를 떠올릴 때 부산을 겹쳐서 본다면 너무 엉뚱한가? 100여 년 전 부산은 일제 대륙 침탈의 출발점이었다. 이후에는 한국전쟁 시기 피란수도로, 산업화 시기 수출입 물류 거점으로 기능했다. 우리나라 바닷길의 관문 ‘1부두’가 한국 근현대사의 살아 있는 증거다. 숱한 눈물, 피와 땀이 밴 곡절의 역사를 품은 장소가 피란수도 유산 9곳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진은 부산의 정신적, 문화적 자긍심을 상징한다.
이런 와중에 최근 의미 있는 소식이 더해졌다. 우리나라 가야 고분군이 최근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심사 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로부터 ‘등재 권고’ 판단을 받은 것이다. 그동안의 관례로 볼 때 사실상 등재 결정과 다를 바 없는 쾌거로 받아들여진다.
가야 고분군이 가치를 인정받은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현존하거나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유일한 또는 적어도 독보적인 증거’라는 세계유산 등재 기준 중 하나를 충족하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것은 대표적인 가야 고분군으로 꼽히는 부산의 복천동 고분군이 제외된 점이다. 개발과 방치에 따른 부정적 영향 탓에 신청 단계에서부터 빠지고 말았다. 이 대목을 우리는 깊이 곱씹어 볼 필요가 있겠다.
세계인들이 아바나에 가는 것은 매혹적인 노래나 춤 때문만은 아니다. 파도 위로 흩어지는 부신 햇살과 강렬한 석양도 다는 아니다. 그런 건 황홀감을 선사하지만 이내 증발한다. 아바나는 마음을 흔드는 정신적 경험을 제공한다. “아픔 없는 사랑은 없다는 것. 그런 깨달음이 없다면 아바나의 기행도 헛된 동경일 뿐이다.” 오늘날 쿠바의 문학 현실이 이런 고백담을 담고 있더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 있다.
폐허의 끝자락에서 마침내 일어선 피란수도 부산의 저력과 에너지도 이와 유사하다고 본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은 물질의 영역을 넘어 인간의 정신세계까지 포괄한다. 피란수도 부산의 유산이 보편적 의미를 지니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피란수도 부산 유산은 국내 최초의 근대 유산, 도심에 입지한 유산이라는 점에서 특별하고 고유한 가치를 지닌다.
세계유산이 지역 활성화에 방해가 된다는 오해가 있다. 그렇지 않다. 오히려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는 세계의 수많은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이제는 더 이상의 훼손이나 파괴가 없도록 유산의 가치를 지켜나가는 게 중요하다. 그러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찾는 데 지역사회의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 올바른 길이다. 관광의 목적은 단순한 상업적 행위에 있지 않다. 관광객들은 한국을, 부산을 알고 싶어서 방문한다. 국제 관광도시로의 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부산이라면 미래를 볼 줄 알아야 한다. 세계 문화유산에 대한 진정한 이해와 자부심이 그 출발점이다.
2023-05-18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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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수의 지금 여기] 부산 월드엑스포와 유네스코 세계유산
부산항 북항은 그 자체가 부산의 상징이다. 미래 비전을 보여 주는 부산월드엑스포의 심장인 동시에 오늘의 부산을 만들어 낸 역사적, 상징적 공간이다. 북항의 근원은 제1부두다. 일제강점기 한반도 수탈의 입구, 한국전쟁 때 유엔군 투입과 유엔 원조의 통로, 갈 곳 없었던 피란민들의 삶터, 광복 후엔 전쟁과 가난을 극복하고 산업화의 길을 연 수출길의 출발점. 대한민국의 아픔과 희망이 녹아 있는 근현대사의 묵직한 현장이 1부두다. 지금은 북항재개발을 통해 원도심 부활을 꿈꾸는 거점이다.
일부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1부두는 문화재청으로부터 이미 그 의미와 가치를 인정받은 바 있다. 지난해 12월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 등재 결정이 그것이다. 잠정목록에는 ‘한국전쟁기 피란수도 부산의 유산’ 9점이 포함돼 있는데 그중 핵심이 1부두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최종 등재는 사실 엑스포 유치에 비견될 만한 업적이다.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서는 1부두의 문화재 등록이 선행돼야 하는데 현재 소유권자인 부산항만공사(BPA)가 여기 동의한 상태다. 소재지 관할 구청인 중구에 ‘1부두 등록문화재 신청 건’에 대한 검토 의견 제출을 요청한 게 지난해 10월이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몇 달째 일의 진척이 없다. 알고 보니 중구청은 1부두의 문화재 등록을 반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일부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핵심적인 이유다. 중구의 입장은 지난달 17일 지역방송에서도 명확하게 확인됐다. 중구청장이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은 이렇다. “유네스코 등재가 중구 발전을 담보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문화회관이나 구민 체육시설 건립 같은 중구 발전에 도움이 되는 답을 부산시가 내줄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십분 이해할 수 있다. 원도심 침체가 워낙 심각하고 경기 활성화가 미룰 수 없는 과제임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문화재 등록이 지역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시각은 너무 일면적이다. 세계유산 등재는 향후 이 지역에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다. 어쩌면 중구 번영의 일등 공신이 될지도 모른다. 존재하지도 않는 1부두 일대의 상권을 미리 상정해 경기침체 우려를 말했는데 논리의 비약이다. 특정 지역에 도움이 될지 안 될지 그것만 보는 근시안적 관점은 ‘지역 이기주의’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좀 더 멀리 내다보는 장기적 안목이 필요하다. 주민을 위한 시설이 필수 불가결한 요소라면 다른 장소를 물색하는 방법도 있다.
이미 1부두는 원형을 보존해 일대를 역사공원으로 조성하기로 돼 있다. 부산항 북항 1단계 재개발 10차 사업 계획 내용이 그렇다. 이에 따라 1부두의 소유·관리권은 올 상반기 중 BPA에서 부산시로 넘어간다. BPA는 최근 “이른 시일 안에 부산시에 재산권 이관 신청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보존을 목적으로 하는 역사공원은 문화유산의 현상 유지 및 보호가 가장 중요하다. 도시공원·녹지 세부기준 지침을 담은 국토교통부 훈령에 엄연히 명시돼 있다.
그런데도 체육회관 건립 등을 요구하는 중구청장 발언의 배경은 무엇일까. 결국 부산시가 1부두 보존에 대한 입장을 바꾼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검토 의견 제출이라는 간단한 후속 절차가 몇 달째 제자리걸음인 이유를 찾기 힘들다. 역사공원이 예정된 대로 조성되지 않는다면 세계유산 등재는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취지에 안 맞는 시설물이 1부두에 들어서면 아예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 부산시가 피란수도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 오랫동안 기울인 노력을 스스로를 부정하는 꼴이다.
유네스코는 전쟁이나 난개발 등으로 보편적 가치가 손상될 경우 이미 등재된 세계유산도 해제한다. 영국 해양도시 리버풀이 대표적 사례다. 항만 시설과 건축물의 보존을 인정받아 세계유산에 등재됐지만 이후 축구장 건설 등 재개발이 경관을 크게 훼손했다는 판단을 받아 등재가 해제됐다. 하물며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 중인 부산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1부두 역사공원은 부산의 정체성을 보여 주는 열린 공간으로 두는 게 올바른 방향이다.
지속 가능한 부산의 성장을 떠받치는 두 개의 축이 있다. 그 하나가 월드엑스포 유치라면 또 다른 하나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다. 엑스포의 무대인 북항 일대가 인류의 비전을 비추는 미래 개척의 공간이라면, 역사성과 장소성을 상징하는 1부두는 인류 공동의 유산으로서 최소한 남겨둬야 할 보존의 공간이다. 엑스포 유치와 동일한 수준의 힘을 세계유산 등재에 쏟아야 하는 이유다. 국제도시 부산의 역량은 명실상부 월드엑스포를 유치할 수준이다. 세계에 부끄럽지 않은 문화적 안목과 배포도 함께 갖춰야 한다.
2023-04-06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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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수의 지금 여기] 한·미·일 안보, ‘과거사’ 제물 삼나
“일본은 과거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그리고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가 됐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의 역사를 새로 썼다. 한·일 관계의 정상화라는 취지와 미래 지향성을 강조하다 일본군 위안부·강제동원 피해자 관련 내용은 뺀 것이다. 국민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보수 성향의 사람들도 놀란 것 같다. “3·1절에 할 소리는 아니다.” “안보 믿음 있어서 뽑았는데 국가관이 이러면 어쩌나.” 메시지를 내놓은 시기·방법 모두 부적절하다는 비판이었다.
윤 정부는 왜 이렇게 무리수를 두는 걸까. 이런 생각을 해 볼 틈도 없이 또 다른 보도가 잇따랐다. “매우 지지한다.” 윤 대통령의 기념사에 대한 미국의 환영 메시지다. 이례적일 정도로 즉각적이다. 그동안 윤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한·미·일 3국의 안보 협력을 강조했다. 올해 초에는 일본의 군사 대국화 움직임을 옹호하는 발언으로 논란을 빚기도 했다.
짐작되는 바가 없지 않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의 재무장을 용인하고 한·일 간 화해를 종용해 왔다. 최종 목표는 ‘한·미·일 군사동맹’이다. 그 전제가 한·일 두 나라의 관계 개선에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려면 발목을 잡아 온 과거사 문제가 먼저 해소돼야 한다. 넓게 보면 이 모두가 미국의 큰 그림 안에 있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정부는 6일 일제 강제동원 피해 배상 해법을 급히 발표했다. 2018년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은 피해자들에게 국내 재단이 대신 배상금을 지급한다는 게 골자다. 예상했던 대로 일본 피고 기업들의 배상 기금 참여와 사과 방안은 거기에 없었다. 당연히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양국이 동등한 협상 파트너로서 논의한 결과물인지, 아니면 국가 위신과 자존심을 저버린 우리 정부의 일방적 굴욕인지. 한·미·일 안보 협력 체제 구축을 위해 과거사 문제를 희생시킨 건 아닌지. 물론 일본과의 협력이 한반도 평화에 중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역시 하나의 관점일 뿐이다. 우리로서는 최종적으로 한·미·일 군사동맹에 올라타는 일이 과연 국익을 위한 최선인지, 한반도 정세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면밀히 살펴야 한다.
우선 지금의 국제정세는 예년과 사뭇 다르다. 일단 세계 패권국으로서 미국의 위상이 이전 같지 않다. 중국과 러시아는 이미 경제·군사·외교 통제권 밖에 있고, 동맹국들과 친미 국가들도 이탈 조짐이 뚜렷하다. 유럽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피해로 아우성이 커지고 있는데, 특히 독일이 지난해 11월 총리의 중국 방문을 기점으로 양국 간 경제협력에 시동을 거는 모양새다. 전통적 친미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중국·러시아와 손잡은 것도 이변이다.
미국이 그나마 기대는 곳이 한국·일본·대만 같은 동북아 동맹국들이다. 이 지역에서의 영향력 붕괴만은 막아야 하는 처지다. 미국이 한미연합훈련과 전략무기 투입의 중단 같은 북한의 요구에 응하지 못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판단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작금의 한반도 정세는 ‘전쟁 불사론’까지 횡행할 정도로 위중하다. 지난해 북한은 70여 차례의 미사일 시험발사를 했다. 올해는 7차 핵실험까지 감행할지 모른다. 남북·미 정부의 거친 발언, 최고조에 달한 군사 행동과 강경 조치들, 장기간 교착 상태에 빠진 대화와 협상 등 악조건이 이미 겹겹이 누적된 상황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그 위기가 정점에 닿을지 모를 올해를 매우 중대한 시기로 전망한다.
이럴 때일수록 국제정세를 올바르게 읽는 판단력과 한쪽에 휩쓸리지 않는 객관적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윤 대통령의 행보는 아쉽다. 대통령 당선 뒤 국군보다 주한미군 기지를 먼저 찾은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일국의 대통령으로서 나라의 핵심 이익에 대한 면밀한 손익계산이 있다면 나올 수 없는 행동이다. 다극 체제로 가는 국제관계의 현실 앞에서 특정 방향으로 안보 체제를 구축하는 건 대단히 위험하다. 장기적 국익을 고려할 때 무역의존도가 높은 중국과의 관계 설정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가장 큰 문제는 현 정부의 대북 정책 등 대외 정책에 국민이 믿고 따를 만한 원칙과 구체적 지향이 없다는 데 있다. 대체로 ‘힘에 의한 국가 안보’만 강조되고 한반도 평화 전략은 잘 안 보인다는 게 중론이다. 정부의 이번 과거사 해법이 한반도 위기 속에서 어떤 방향으로 작용하게 될지 걱정되는 이유다. 결국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평화와 공존의 대원칙’이다. 상대를 적으로 보지 않고 상호 존중과 상생의 대상으로 삼는 자세를 가다듬어야 할 때이다.
2023-03-07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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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수의 지금 여기] 부산을 살릴 도시 브랜드 슬로건
늘 그렇듯 아쉬운 설 연휴가 끝나면 비로소 새해가 왔다는 느낌이 든다. 이즈음은 개인과 더불어 도시라는 공동체 역시 새 출발의 의지를 다지는 시간이다. 그래서 생각해 본다. 시간의 출발점에 선 한 도시의 정체성을 대변하고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그건 바로, 도시의 가치를 간결한 문구와 이미지에 담아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게 하는 ‘도시 브랜드 슬로건’이 아닐까 한다.
부산시는 13일 도시브랜드위원회를 열고 ‘부산 이즈 굿(Busan is Good)’을 새 슬로건으로 결정했다. 세 개의 최종 후보안 가운데 가장 많은 표를 가려낸 선호도 조사 결과에 따른 것이다. 공교롭게도 서울시도 최근 새 슬로건을 만드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기존 슬로건 ‘아이.서울.유(I.SEOUL.YOU)’의 의미가 모호하다는 지적이 그동안 끊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4개 후보안을 놓고 시민 선호도 조사가 이달 말까지 실시되고 있다.
‘잘 만든 슬로건 하나가 도시 전체를 살려 낸다.’ 도시 브랜드 슬로건의 중요성을 이만큼 잘 설명하는 말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이의 눈과 귀에 쏙 들어오는 슬로건을 만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지역의 정체성을 담으면서도 보편적인 감동을 끌어내는 문구가 흔할 리가 없다. 그래서 만들었다가 버리고 다시 새로운 슬로건을 찾는 일도 빈번하다. 부산에는 2003년 선포된 ‘다이내믹 부산’이라는 슬로건이 있다. 역동성에 초점을 맞춘 이 슬로건은 도시 부산을 알리는 자신의 몫을 톡톡히 해냈다.
그 역사가 20년에 이른 이즈음, 부산시는 슬로건 교체를 추진 중이다. 시가 밝힌 개편의 명분은 이렇다. ‘부산의 가치와 역사성, 미래 지향성을 담기 위해 새로운 슬로건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도시 경쟁력을 더 높이고 새로운 미래를 열겠다.’ 좋은 말이긴 한데 막연한 수사로 느껴진다는 사람들이 많다. 왜 그럴까.
슬로건 교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왜 바꾸어야 하는지’ 그리고 ‘어째서 지금이어야 하는지’다. 이에 대한 근거가 명쾌하지 않아서다. 부산시가 내놓은 설명을 보자. ‘기존 슬로건이 세월이 흐르는 사이 글로벌 도시로 성장한 부산의 위상과 품격을 충분히 담아내기 어렵다는 인식이 높았다.’ 이런 인식이 어디서 나왔고 시민적 공감대는 어떻게 형성된 것인지 많은 이들이 궁금해한다.
물론 부산시는 사전 적정성 조사를 벌인 바 있다. 지난해 11월, 응답자 70%가 ‘새로운 슬로건이 필요하다’고 답했다는 결과가 발표됐다. 이 적정성 조사의 정확한 문구는 무엇이었을까. 조사 문항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의심하려는 게 아니다. 설문을 비롯한 각종 조사는 문구의 미묘한 내용에 따라 상반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상식을 상기하고 싶을 뿐이다. 또 일각에서는 조사 대상으로 삼은 시민들에 대한 대표성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실제로 새 슬로건 ‘부산 이즈 굿’에 대한 평가는 팽팽하게 엇갈린다. 단순하고 기억하기 쉽다는 호평이 있는 반면, 모호하고 전달력이 약하다는 반응도 나온다. 후자의 경우 ‘부산이라는 특색이 없어 밋밋하다’거나 ‘다른 도시 슬로건과 비슷하다’는 지적으로 이어진다.
국내 굴지의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고 시민 참여도를 높이기 위해 부산시가 기울인 노력을 모르지 않는다. 다만 후보 3안이 나왔을 때, 혹은 최종안이 결정된 뒤에라도 기존 슬로건을 포함한 선호도 조사를 할 수는 없었을까. 그렇다면 지금 같은 논란을 불식시킬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아쉬움이 있다.
과거 서울시의 슬로건 ‘아이.서울.유(I.SEOUL.YOU)’가 만들어질 때도 논란이 많았다. 그때 영국 신문 〈가디언〉은 작위성을 꿰뚫어 보고 이런 지적을 남겼다. ‘조급함, 객관성 부족, 지루한 전략, 잘못된 리더십, 선전의 힘에 대한 순진한 믿음, 지름길에 대한 열망.’ 이는 부산시 역시 명심해야 할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미리 짜놓은 각본이나 혹은 전문가의 명망과 이벤트의 힘에 기대려고 한다면 곤란하다는 얘기다.
물론 하나의 슬로건이 도시의 모든 구성원을 만족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처음엔 어색했으나 이후의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사랑받게 된 경우도 있다. 부산의 새 슬로건은 어떤 길을 걷게 될까. 몇 해를 넘기지 못하고 시민들로부터 잊히기보다는 미래에 길이 남을 명작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려면 부산의 도시 슬로건은 한 시대를 대표할 만큼 내구력을 갖춘 슬로건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예산 낭비라는 안팎의 비판도 피할 수 있다.
3월 말 최종 결정 시기까지 아직 시간은 남아 있다. 최선의 보완과 마무리 작업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우리는 제대로 만든 최고의 도시 슬로건을 누릴 자격이 있는 부산 시민이다.
2023-01-26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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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수의 지금 여기] 원도심 되살릴 유산들
최근 뜻깊은 소식이 하나 전해졌다. ‘한국전쟁기 피란수도 부산 유산’의 문화재청 세계유산 잠정목록 등재가 최종 결정됐다는 뉴스가 그것이다. 그동안의 ‘조건부’ 꼬리표를 털어 내고 5년 만에 확정지은 것이라 의미가 크다. 한국전쟁은 20세기 냉전 시대 최초의 전쟁으로, 세계사의 중대한 변곡점이었다. 당시 ‘천일 수도’였던 부산은 지금도 살아 있는 역사의 증거물이라는 사실. 이번 등재 결정은 이를 웅변하는 소중한 성과다.
이번에 결정된 피란 유산은 경무대·임시 중앙청·아미동 비석 피란 주거지(서구), 국립중앙관상대·미국대사관 겸 미국공보원·부산항 제1부두(중구), 하야리아 기지(부산진구), 유엔묘지·우암동 소막 피란 주거지(남구) 등 9곳이다. 긴급한 정부 유지와 국가 운영의 기능을 담당한 건축물, 전국의 피란민들을 받아들인 포용의 장소, 정부와 유엔 등의 국제 협력이 이뤄진 공조의 현장이 두루 걸쳐 있다. 한국전쟁 관련 유산이 국내에 적지 않지만 피란수도 부산은 단 한 번의 폭격도 받지 않은 유일한 도시라는 점까지 더하면 세계유산으로서 전혀 손색없다.
피란수도 부산은 이로써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에 한 발짝 더 다가섰다. 특별한 것은 도심지 안에 있는 유산을 대상으로 한 첫 사례라는 점, 그것도 근대유산은 처음이라는 점이다. 향후 국내의 근대유산 보존에도 좋은 선례가 될 것으로 기대감을 높인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멀다. 문화재청의 우선 등재목록 선정, 등재신청 후보 및 등재신청 대상 선정, 그리고 유네스코의 예비심사와 자문기구 평가 등 국내외 절차를 거쳐야 한다.
피란수도 유산 중에서도 핵심적인 장소가 바로 부산항 제1부두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다행히 근대유산의 원형을 품고 있는 까닭에 그 가치가 높다. 그동안 1부두 일대의 문화재 지정에 주저하던 부산항만공사(BPA)가 인식을 바꿔 근대유산 보존에 전향적인 자세를 보인 건 고무적인 일이다. 현재 1부두 소유자인 BPA는 1부두의 문화재 등록 신청을 낸 상태다. 소재지 관할 관청인 중구청이 이를 검토하느라 두 달가량을 흘려보내고 있는데 더딘 발걸음이 아쉽다. 문화재 등록이 원도심 발전에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인구소멸을 겪고 있는 부산 원도심의 처지는 지금 열악하기 이를 데 없다. 11월 기준으로, 중구의 인구는 전국 광역시 기초지자체 중 처음으로 4만 명 선이 무너졌다. 인구 감소세는 부산 전체와 비교해도 3배나 빠른 속도다. 침체를 벗어나 새로운 활력소를 찾는 것은 이 지역 절체절명의 과제임이 분명하다. 얼마 전 일부 상업지역의 건축물 최고 높이 제한을 완화해 도심 개발 촉진에 나선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어떻게든 경쟁력을 확보해 지역을 되살리려는 노력과 소망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다만 원도심 부활이 반드시 경제적 성과와 생산성 위주의 개발로만 가능한 것인지는 따져볼 일이다. 도심 안의 역사와 문화, 근대적 유산들을 잘 활용하는 것도 원도심을 살리는 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스페인 항구도시 빌바오, 프랑스 문화도시 낭트와 같은 유럽의 도시들이 그렇게 변신에 성공했다. 부산 원도심도 그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본다. 지역의 유산들을 잘 보존한다면 도시의 쇠락을 막는 건 물론이고 관광 자원으로, 그리고 미래 먹거리로 삼을 수 있다. 인구소멸을 겪는 지역이 되레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문화유산의 거점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단순히 ‘정주 인구’를 늘리는 게 아니라 ‘체류 인구’를 다양하게 관리하고 확대해 나가는 방식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무엇보다 부산시가 큰 그림을 그릴 필요가 있다. 역사와 문화유산, 문학적 스토리, 음악과 미술, 축제 등 다양한 방식의 지역발전 비전이 정책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기초지자체는 지자체대로 지역 정체성을 잘 파악해 자신만의 매력적인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방향으로 개발 방식을 찾는 노력이 요구된다. 개별 건축물의 사업성 향상에만 치중하는 경제 논리로는 되레 지역 이기주의에 발목 잡힐 위험성이 높다. 장기적으로 볼 때 이는 원도심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중구와 함께 3개의 세계유산을 보유한 서구의 행보는 그런 점에서 주목된다. 아미동 비석마을을 보존·관리하기 위한 지구단위계획 용역을 수립 중인 서구청은 서구 지역 전체를 피란 생활 박물관으로 바라보는 관점과 의지가 남다르다. 부산은 역사의 흔적과 기억을 생생하게 증거하는 근대 유산을 품고 있다. 그것은 전쟁의 아픔을 딛고 평화의 시대를 여는 보편적 상징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다면 보다 많은 국내외 방문객의 발길을 붙잡을 수 있을 것이다. 부산 원도심의 미래는 여기에 있지 않을까.
2022-12-20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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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수의 지금 여기] 언로 제한, 삼류국가로 가는 길
‘자유’는 윤석열 대통령의 통치관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다. 취임식에서, 8·15 경축사에서, 그리고 유엔 연설에서도 수도 없이 외친 단어다. 그중 언론자유는 대선 후보 시절부터 강조하고 다짐한 영역이다. 윤 대통령은 줄곧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은 표현의 자유에 있다”고 말하곤 했다. 당선 이후에도 초유의 출근길 문답을 통해 언론과의 소통 의지를 다졌다.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의 언급도 기억할 만하다. “민심을 가장 정확하게 읽는 언론 가까이에서 제언도, 쓴소리도 잘 경청하겠습니다”.
이랬던 대통령의 태도가 취임 6개월 만에 사뭇 달라진 느낌이다. 기존의 입장과는 다른 언행들이 속속 나와서다. 물론 그런 조짐이 없진 않았다. 이를테면, 지난 3월 언론노조를 두고 “허위 보도를 일삼고” “갖은 못된 짓 다한다”며 강하게 질타한 사례가 있다. 지난달에는 만화공모전 수상작인 고등학생의 풍자 카툰을 문제 삼아 문체부를 통해 엄중 경고를 날리기도 했다. 청소년의 자유로운 예술 창작까지 간섭할 일인지 비판이 쏟아진 게 그때다.
시간이 흐를수록 궁금증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이 말하는 자유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지. 결국 이번 동남아시아 순방을 앞두고 불편한 속내가 확연히 드러났다. 대통령실은 출발 직전 갑자기 MBC 기자들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을 막더니 그 이유로 ‘왜곡·편파 보도’를 들었다. “비속어 자막 조작, 우방국과의 갈등 조장 시도, 김건희 여사의 대역을 고지하지 않은 방송” 등이 그 사례로 지목됐다.
과연 그럴 일인가. 비속어 논란은 대통령 본인이 자초한 면이 있는 데다 다른 언론사도 함께 보도했다는 점에서 명분이 군색하다. 외교 문제와 무관한 논문 표절 의혹 제기를 ‘중요한 국익’과 연결한 것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전용기 탑승에서 배제한 것이지 MBC의 취재를 제한한 적 없다”는 대통령실 주장 역시 억지에 가깝다. 순방 기간 전용기는 기자간담회 등이 열리는 공적인 취재 공간이다. 탑승 배제는 취재 제한으로 이어지고 결국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 특정 언론의 보도 태도를 빌미로 삼은 점은 더욱 심각한 문제다.
대통령실은 13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한·미, 한·일 정상회담 현장도 공동취재단에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대통령실 ‘전속 취재’로 내용을 편집해 추후에 기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했을 뿐이다. 대통령실은 “양국 협의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지만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북한의 7차 핵실험 위협 속에 한반도 정세와 역내 안보 등 주요 현안이 논의되는 중대한 회담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윤 대통령이 친분 있는 특정 기자들만 전용기 안의 전용 공간에 따로 불러 접촉한 사실까지 드러났다. 대통령직과 공적 권력의 사유화 논란을 부를 수 있는, 대단히 부적절한 행위다. 윤 대통령이 말하는 언론자유가 구미에 맞는 자유, 우호적인 언론을 가리키는 건 아닌지 의구심을 부른다. 밉든 곱든, 공무에 개인적 감정과 사적 관계를 개입시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조선은 군주제 국가지만 사간원·사헌부·홍문관이라는 언론 삼사를 두었다. 이중 핵심은 국왕에 대한 간언, 관리에 대한 탄핵, 주요 정치 현안에 대한 충고 등을 맡은 사간원이다. 왕조 초기 임금과 사간원은 사사건건 충돌하지만 점차 사간원의 역할이 정착되면서 임금도 사심 없는 비판을 중요하게 받아들인다.
이런 역사 속에서 유독 돌출된 군주가 있었으니 바로 연산군이다. 연산군은 간언 자체를 유난히 싫어했다고 전해진다. 거슬리는 간관들을 옥에 가두고 유배를 보내는 것도 모자라 마침내 사간원과 홍문관을 없애버렸다. 그러나 왕위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중종반정으로 폐위되자마자 사간원과 홍문관은 다시 설치됐으니, 이게 역사의 도도한 흐름이다.
"간하는 것을 들어 흥하지 않은 적이 없고, 간하는 것을 듣지 않고 망하지 않은 적이 없다." 예로부터 사간원 간관들이 해 온 말이다. 임금은 진실한 마음으로 간언을 구해야 한다는 뜻이겠다. 간관들이 목에 칼이 들어와도 바른말을 하는 것은 국가와 백성을 위한 일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간언을 거부하는 임금은 어두운 임금’이라 했다. 언관들의 태도도 중요하다. “임금의 잘못을 공격하고 백성들의 숨은 고통을 알리되, 지극히 공정한 마음(至公之心)으로 해야 한다.”(정약용)
역사를 돌아보는 일은 반성적 성찰의 기회를 얻기 위한 것이다. 오늘날의 언론 현실이 왕조 시대보다 낫다 할 수 있을까.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언론 통제는 정치권력의 몰락을 앞당길 뿐이라는 사실. 더 두려운 건 그것이 나라까지 위태롭게 한다는 데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한 진리다.
2022-11-15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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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수의 지금 여기] 국가 리더십의 위기
윤석열 정부에 대한 국회의 첫 국정감사가 시작부터 난장판이다. 4일부터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우는 여야의 충돌은 말 그대로 ‘사생결단’의 결기로 서슬 퍼렇다. 사태의 발단은 대통령의 해외 순방 중 불거진 비속어 논란. 이 사안만 놓고 보면 단순 해프닝 수준인데 어쩌다 이렇게 커져 버린 걸까.
이쯤에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과연 리더란 무엇이며 리더의 역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리더는 조직 혹은 사회 안에서 일정한 ‘성과’를 위해 발탁된 사람이다. 발탁이라는 말에는 주체성이 결여돼 있으니 사회와 조직을 ‘이끈다’는 표현이 적절하겠다. 아무튼 조직의 목표를 위해 성과를 내는 사람이 리더다. 하지만 성과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으니, 그 반대편의 ‘책임’이다. 권한에 상응하는 책임. 자신의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지지 못하면 리더의 자격이 없다. 우리가 익히 아는 바다.
그렇다면 리더의 말과 행동은 왜 중요한가. 조직문화 전문가인 존 칠드러스의 말을 빌린다. “조직은 그 리더의 그림자다.”(〈컬처 레버리지〉) 리더의 리더십에 따라 조직과 그 구성원이 함께 움직이므로 너무나 당연한 말 같다. 하지만 여기 숨은 의미망은 결코 작지 않다. 조직원은 리더의 언행을 보고 리더가 원하는 것, 좋아하는 것, 우선시하는 것, 중요하게 여기는 것 등을 판단한다. 거기에 자신을 맞추려 노력하고 조직 안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 나간다.
문제는 리더의 말과 행동이 일관성을 잃을 때다. 구성원들은 혼란에 빠지고 조직의 앞날도 위태로워진다. 실제로 기업에서 직원들이 이직을 결심하는 가장 큰 이유로 두 가지가 있는데 상사의 ‘떠넘기기’와 ‘가로채기’라고 한다. 이중 떠넘기기는 책임지지 않는 리더십의 전형이다. 말과 행동이 어긋나고 겉과 속이 다른 리더들의 특징이다. 책임지지 않는 리더십의 결말은 조직 건강성의 심각한 훼손이다.
물론 이런 질문이 있을 수 있다. 혹시 조직 구성원의 문제는 없는가. 리더에 대해 반항하고 거부하는 사람, 혹은 조직의 부패와 잘못을 숨기는 사람 같은. 중국 춘추전국시대 사상가 한비자의 지혜를 경청할 만하다. “군주는 때때로 어떤 일에 미혹되거나 언론에 귀가 가려질 수 있다. 이를 조심해야 한다.” 고전 〈한비자〉 ‘남면’ 편, 곧 군주가 나라를 다스릴 때 범하기 쉬운 허물을 이야기한 대목이다. 말인즉슨, 아무런 근거 없이 무책임한 의견을 내는 신하들, 반대로 일신의 안녕을 도모해 어떤 진언도 하지 않는 신하들을 경계하라는 것. 구체적인 방법도 제시된다. “신하가 의견을 올릴 때 진언한 사실과 성과가 부합하는지 살펴 칭찬과 비판을 아끼지 않고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신하들에게도 말과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운다는 점. 더불어 중책에 있으면서 의견을 말하지 않는 경우에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 한비자는 그래야 군주가 신하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사탕발림에도 넘어가지 않는다고 했다. 이는 군주가 독자적인 판단력과 결정권을 갖추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 결국 리더는 자신의 언행에 책임져야 함은 물론 아랫사람들도 본인의 말과 행동에 책임지도록 견인하는 사람이다. 모든 게 리더의 책임이요, 리더십의 몫이라는 뜻이겠다.
리더의 역할이 이토록 엄중할진대 한 나라의 통치권자인 대통령 자리는 더 말해 무엇하랴. 윤 대통령은 당선 이전부터 이미 크고 작은 리더의 소임을 경험한 바 있다. 비속어 논란 이후 눈덩이처럼 커진 이번 사태 앞에서 먼저 지적돼야 할 것은 대통령의 대응 방식이다. 진상을 가장 잘 알고 있을 당사자가 “진상이 철저하게 규명돼야 한다”는 유체이탈 화법을 썼다. 대통령이 알면서도 모른 체한 것일까? 그렇다면 떠넘기기다. 대통령실과 여당은 그걸 받아 다시 특정 언론에 떠넘겼다. 국가 리더십이 품어야 할 책임감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모습이다.
물론 대통령의 미숙함이 정치 논리나 진영 대립에 의해 과도하게 부각된 측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대통령으로서 인정할 건 인정하고 책임질 건 책임지는 통 큰 리더십이 필요하다. 대의를 위해 싸울 때는 싸우더라도 솔직해야 할 때는 솔직해야 한다. 국민들이 보고 싶은 것은 리더로서의 진정성이다.
지금 윤 대통령에 대한 낮은 지지율, 그 정체 상태가 심상치 않다. 어쩌면 대통령실 안에 올바름을 간하는 사람이 없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것을 막는 세력이 너무 강하든가. 대통령이 자신을 엄정히 되돌아보고 마음가짐을 다시금 가다듬어야 할 시점이다. 또 무책임한 말만 쏟아 내는 사람은 없는지, 침묵으로 책임을 회피하는 사람은 없는지 주변도 면밀히 살펴야 한다. 나라가 총체적 위기 속에 처해 있다. 리더십의 기본을 되찾지 않는 한 국난 극복의 길은 요원하다.
2022-10-06 [18: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