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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백민의 기후 인사이트] 지구를 덥힐 수 있는 권리, 탄소배출권
지구를 덥힐 수 있는 권리라니! 기후위기로 온 인류가 신음하는 요즘 무슨 해괴망측한 말인가 싶겠지만, 진짜로 우리에게는 돈을 내고 지구를 덥힐 수 있는 권리가 있다. 바로 탄소배출권 이야기다. 어느 강연에서 기후위기 해법과 관련해 탄소배출권을 설명하게 되었다. 청중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 종량제 쓰레기 봉투에 빗대어 탄소배출권을 설명했는데, 그제야 이해하겠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쓰레기 종량제는 결국은 쓰레기를 버릴 수 있는 권리를 값을 지불하고 갖게 하는 제도다. 각 가정이나 사업장은 미리 구입한 봉투에 쓰레기를 담아야 하고, 그 봉투가 다 차면 더 이상 쓰레기를 버릴 수 없다. 더 버리고 싶다면 추가로 봉투를 구입해야 된다. 탄소배출권이 작동하는 원리도 이와 동일하다. 공장이나 자동차에서 온실가스를 많이 뿜어 내면 지구가 뜨거워지고 결국 심각한 기후위기를 초래하기에 이를 제한하기 위해 ‘지구를 덥힐 수 있는 권리’에 비용을 부과하자는 개념이 탄소배출권인 것이다.
EU, 2026년 탄소국경조정제 시행
부산·경남 기업 피해 특히 클 전망
온실가스 배출량 줄이는 해법 절실
청정 전기 생산에 국가 역량 쏟아야
이 제도는 2015년 우리나라에 도입되어 제한적으로 시도되고 있다. 지금은 잘 정착된 쓰레기 종량제와의 큰 차이는, 그 대상이 아직은 대기업들이고, 또 기업 보호 차원에서 정부가 상당량의 탄소배출권을 기업들에게 무상으로 나누어 주고 있다는 점이다. 만약 기업이 제공받은 한도 이상으로 온실가스를 배출하게 되면 그만큼 탄소배출권을 돈을 주고 구입해야 한다.
도입된 지 8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 탄소배출권 시장은 잘 정착되고 있을까. 우선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 시행 초기부터 지금까지 정부가 무상으로 제공하는 탄소배출권이 너무 많다. 기업들이 남아도는 탄소배출권을 시장에 팔아 수천 억 원의 수익을 내는 지경이다. 실로 황당한 일이다. 종량제 쓰레기 봉투를 10원에 사서 100원에 판 격이니 말이다.
탄소배출권 가격이 다른 나라에 비해 너무 싼 것도 문제이다. 현재 우리나라 탄소배출권 가격은 온실가스 1톤당 약 1만 원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유럽의 탄소배출권은 약 15만 원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우리나라 가격의 15배에 육박한다. 유럽 기업들은 탄소 배출에 상당한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지만, 우리는 탄소배출권이 워낙 싸니 기업들이 온실가스 감축보다는 탄소배출권 구입에 더 주목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아니나 다를까 EU(유럽연합)는 올해 4월 탄소국경조정제도를 2026년부터 본격 시행할 것임을 선언했다. 유럽 외 기업들이 제품을 유럽으로 수출하는 경우 탄소배출권 가격 차이만큼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심각한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제조업과 중화학 공업이 산업의 중심인 부산·경남 기업들이 특히 심대한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앞으로 우리 정부도 무상 할당량을 최대한 줄여 나가는 방향으로 탄소배출권 제도를 손질하고 있어 시간이 지나면 탄소배출권 가격은 조금씩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인류가 탄소중독에서 벗어나는 데 탄소배출권 제도가 얼마나 큰 역할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필자는 의문을 갖고 있다. 쓰레기 종량제가 쓰레기 문제를 일부 완화시키긴 했지만 근본적으로 인류가 쏟아 내는 엄청난 양의 쓰레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데는 역부족이듯이 말이다.
탄소배출권 가격을 높이는 간접적인 방법 말고 온실가스 배출량 자체를 줄이는 본질적인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우리가 전기를 화석연료에 의존하지 않고 생산해 낼 수만 있다면 지구를 덥힐 수 있는 권리를 돈으로 사고팔 필요가 없어진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가장 노력해야 할 일은 태양광, 풍력, 원자력 가릴 것 없이 온실가스를 내뿜지 않는 무탄소 에너지원으로 깨끗한 전기를 생산하는 것이다.
유럽의 탄소국경조정제도,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 탄소 배출을 많이 하는 제조업 기반의 우리 기업들에게 매우 불리한 법안들이 속속 만들어지고 있다. 문제는 우리 기업들이 쓰려고 해도 쓸 수 있는 청정 전기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결국 정부의 역할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빨리 국가의 모든 역량을 에너지 전환에 쏟아부어 우리 기업들이 깨끗한 전기를 사용해서 물건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탄소배출권 같은 지엽적인 사안에 얽매일 때가 아니다. 본질을 꿰뚫는 안목과 정책이 필요하고, 그 핵심은 에너지 전환에 있다.
2023-09-26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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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승현의 남북 MZ] 고향길에 함께 듣는 ‘고향무정’
‘구름도 울고 넘는 울고 넘는 저 산 아래/ 그 옛날 내가 살던 고향이 있었건만/ 지금은 어느 누가 살고 있는지/ 지금은 어느 누가 살고 있는지/ 산골짝엔 물이 마르고/ 기름진 문전옥답 잡초에 묻혀 있네’(김운하 작사·서영은 작곡 ‘고향무정’ 중에서)
최근 젊은 트로트 가수 임영웅이 리메이크해 부른 노래 ‘고향무정’은 MZ세대가 리메이크곡에 관심을 두는 추세를 고려해도 아무래도 생뚱맞다. 하지만 노래가 탄생한 상황과 고향을 숙고하면 부모 세대의 삶과 우리의 삶을 고향을 공통분모로 대입해 볼 수 있지 않을까. 1960년대를 대표하는 이 히트곡은 산업화와 도시화로 재편되던 한국의 당시 상황과 맞물려 이런저런 이유로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의 심금을 울릴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상황 속에 탄생했다. 전쟁과 빈곤의 폐허 속에서 시작된 근대화는 삶의 방식을 포함한 혁명적인 이동을 뜻했으며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출향인들에게 노래 ‘고향무정’은 정감 어린 대중가요로 거듭났다.
그 후 60년 사이에 대한민국은 풍요롭고 자유로우며 민주적인 나라가 됐다. 그 시절 고향을 떠난 이에게 그리던 옛 고향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게 변한 지 오래다. 노래 가사처럼 물이 마른 산골짝과 시골집은 폐허가 됐거나 다른 모습으로 변형됐을 터이다. 그래도 고향은 영혼의 옹달샘 같은 것이어서 나그네의 부평초 같은 삶을 향수로 자극하고 눈물샘을 건들기도 한다. 고향이라는 말에는 자기가 태어나 자란 곳이라는 사전적 의미가 있지만, 죽더라고 고향 땅에 묻히고 싶어 하는 감정의 의미가 더해진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다. 오래전 노래이지만 한가위나 고향 특집에서 빠지지 않고 젊은 인기 가수 임영웅도 열창하는 것을 보면 시대와 경계를 불문하고 팍팍한 현재를 위로하는 호소가 있는 것이 틀림없다.
우리 모두는 참으로 바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 국내외적으로 한국은 경쟁을 피할 수 없는 곳이 되었기에 우리는 지난 몇십 년 빠른 속도로 뛰어왔고 계속하여 뛰어가는 중이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으며, 왜 그곳으로 가고 있는지를 분명히 알고 뛰는 것일까. 현재 우리가 뛰고 있는 방향이 조금이라도 어긋난다면 결국 목적지의 방향은 크게 틀어질 것이며 그로 인해 큰 후회나 재앙에 직면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개인이건 국가이건 건강한 생존을 위해서는 여유를 가지고 출발한 지점을 통해 가려는 방향을 점검하는 것이 필수 요건인지도 모른다.
어디로 갈 것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어디에서 뛰어왔는지를 되짚어 봐야 한다. 우리 민족의 근래의 집단적 경험을 되돌아보면 전쟁과 분단이라는 워낙 거센 역사의 파도와 우여곡절을 겪어 왔기에 모두에 좋은 기억만 주는 시간은 아닐 것이다. 다행히 오늘의 우리 형편이 과거보다도 여유롭고 되돌아볼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게 한다. 며칠 후면 민족 최대 명절인 추석이다. 동산 위로 둥그렇게 떠오르는 보름달처럼 모두의 마음을 조금은 풍성하게 채울 수 있는 시간이다. 바라건대, 민족 대명절의 여유 속에서라도 한민족이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는 것은 어두운 분단에 밝은 미래를 열어 가는 국민적 힘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모두의 추석에도 고향으로 갈 수 없는 이들이 한반도에 존재한다. 바로 실향민들이다. 사실 노래 ‘고향무정’은 전쟁과 분단으로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는 남북한 이산가족들의 아픈 사연을 토대로 만들어진 망향의 노래이다. 이 노래의 작사가 김운하(金雲河·1914~1978)는 함경북도 웅기가 고향인 월남 실향민이다. 노래가 탄생한 1966년 어느 날, 김운하는 이북 오도민 망향제를 올리고 있는 임진강을 찾아 고향 하늘을 바라보다 주마등처럼 스치는 고향의 모습을 생각하며 노랫말을 썼다고 한다.
한국전쟁 정전협정 70주년이 된 올해에도 전쟁과 그 불안의 그림자는 여전히 한반도에 드리워져 있고 고착된 남북 분단 상황은 상실의 아픔으로 남아 있다. 해방과 6·25를 겪으며 북녘에 고향을 둔 1000만 실향민도 이제는 4대로 이어 가고 있으며 그들의 애절한 향수는 사실 모두의 아픔이며 아쉬움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의 가족이자 우리의 동포인 북한의 2495만 주민들의 운명은 어찌할 것인가. 인간의 자유를 생각하면 답답함이 더해진다. 8000만 한민족이 다 함께 잘살 수 있는 통일된 한반도는 우리 민족이 이룰 수 없는 설움과 향수로 남겨 둘 것인가. 아니면 전쟁과 빈곤의 폐허 속에서 풍요롭고 민주적인 나라를 이룬 것처럼 민족의 도약과 웅비를 향한 통일 백년대계를 계속 꿈꿀 것인가. 젊은 가수 임영웅이 리메이크한 ‘고향무정’을 들으며 기성세대와 MZ세대 모두가 이러한 생각을 한 번쯤은 해 보는, 먹먹하지만 풍성한 고향길이 되길 바란다.
2023-09-19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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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철의 어바웃 시티] 기후변화와 도시계획
거짓말처럼 어느새 ‘서늘한 바람’이 분다. ‘살았다’라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수년째 반복되는 패턴이지만 올해는 유독 심했다. 지독히 더웠던 여름의 절정기, “과연 이렇게 계속 살 수 있을까”라고 많은 사람이 한 번쯤 생각하지 않았을까. 최근 떠들썩한 해병대원 채 상병 사망 사건도 예상을 벗어난 폭우가 낳은 비극이다. 사실 우리나라 어느 다른 지역에 발생했더라도 비슷한 피해가 났을 것이다. 기후변화를 고려해 국토 개발을 재정비해야 하는 이유다. 변화되는 기후를 고려해서 기존 개발 지역에 대한 안전 강도를 높이거나, 위험하다고 예상되는 지역에 대한 추가 개발을 제한하는 등 국가적 기후변화 대응이 시급하다.
우리나라가 올여름 불볕더위와 수해를 겪을 때, 위로 아닌 위로가 되었던 건 세계의 거의 모든 지역이 이런 기후위기를 겪고 있다는 것이었다. ‘지상 낙원’이라 불리던 하와이 마우이섬을 잿더미로 만든 대규모 산불, 84년 만에 미국 캘리포니아 남부 로스앤젤레스(LA)에 불어 닥친 여름 폭풍과 폭우, 일 년 강우량이 불과 반나절 만에 내린 그리스 등 남부 유럽, 60만 명의 대규모 이재민을 발생시킨 중국 북경 일대를 강타한 140년 만의 최대 폭우 등 올여름의 기후 재난은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더욱 심각한 건 이러한 현상이 일회성으로 끝날 것 같지 않다는 점이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미국은 이런 극단적 기후 현상이 일상화됐다고 한다. 미국 동북부는 매년 역대급의 물난리를 겪고 있고, 남부 지역은 40도를 넘어 50도에 이르는 극단적 폭염이 일상화하고 있다. 올여름 기록적인 폭염은 경제활동마저 급격히 위축시켜 막대한 규모의 생산성 손실이 발생했다. 이제 우리는 바야흐로 기후변화로 인한 극단적인 날씨가 점차 일상이 되는 ‘뉴노멀(New normal)’ 시대에 살고 있다. 과학자들 사이에선 이러한 뉴노멀 시대에 “현대 문명이 계속 번영할 수 있을까”라는 근본적인 의심이 늘고 있다.
기후학자들이 말하는 중요한 수치가 있다. ‘1.5’도를 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인데, 이것은 산업혁명 이후 인간의 탄소 배출 활동으로 인한 지구 온도 상승 수치다. 이미 1.1도를 넘어가고 있다는 것이 공식 보고 사항인데, 전 세계는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및 국제협약을 통해 각국의 자발적인 탄소 배출 감축을 독려하고 있다. 대부분의 국가가 2050년에 탄소 배출 제로(넷제로)를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잡고 있고,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이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이를 되돌리기에는 이미 늦었고 2030년에 1.5도를 넘어설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다. 심지어 “올해 이미 1.15도에 이르렀다”라는 주장도 있다. 현재와 같은 탄소 배출이 지속되면 2100년에는 3.2도가 상승할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경고한다. 이렇게 된다면 우리는 영화 ‘인터스텔라’의 내용처럼 새 행성을 찾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부산을 방문한 덴마크 코펜하겐시 관계자들은 내년쯤엔 코펜하겐이 넷제로를 달성할 것으로 예상했다. 코펜하겐은 20년 전부터 저탄소 친환경 도시계획을 통해 탄소 배출을 급격히 줄여 왔다고 한다. 도시 곳곳의 녹지자원을 보존하고, 무엇보다 불필요한 자동차 통행량을 줄였다고 한다. 이를 통해 자전거 중심의 걷고 싶은 압축적 혼합 용도의 도시 형태가 구현되었다.
최근에는 이에 덧붙여 전기 차량의 대규모 공급과 태양광, 풍력 등 친환경 재생에너지를 도입해 에너지 자급자족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노력에도 코펜하겐 또한 세계적인 기후변화의 영향을 피해 갈 수는 없다. 코펜하겐도 매년 폭우로 인한 홍수 피해가 빈번해지고 있다.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 홍수지도를 중심으로 개발 계획을 규제·관리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인구와 산업활동이 급격히 줄고 있는 부산은 이와 반대로 탄소 배출량이 크게 늘고 있다. 두 가지 주요 요인이 있다. 첫째는 낡은 건물의 에너지 과다 사용이고, 둘째는 외곽 확산 개발로 인한 자동차 통행량 증가다.
부산시도 2050년 넷제로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친환경 건축물의 확산과 자동차 통행량의 획기적 축소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압축적 도시공간이 구현돼야 한다. 지금도 활발한 재개발과 재건축을 친환경 건축물로 유도하는 정책이 필요하며, 압축도시 구현을 위한 15분 도시 만들기도 구호에 그치지 말아야 한다. 또 풍력과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생산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재생에너지 생산의 자족성이 미래 도시에 가장 중요한 지속가능성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 인생이라고 하지만 미래 기후 현실도 마찬가지다. 적절한 대응에 우리의 생존이 달렸다.
2023-09-12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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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권의 핵인싸] 과학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다
과학은 데이터를 객관적으로 검증·분석하고 어떤 결론에 대한 확률적 가능성을 예측한다. 그래서 어느 경우에도 100% 확실하다고 말하는 것은 ‘과학’이 아니다. 과학이야말로 확실한 답을 줄 것이라는 일반인들의 기대는 그래서 사실 잘못된 것이다. 최근 널리 회자되는 양자역학이야말로 모든 현상을 확률적 가능성으로만 설명하는데, 그나마 이 가능성조차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 범위에 국한된다. 그래서 후쿠시마에서 희석시켜 방류하고 있는 방사선 오염수의 수치는 국제적 허용치보다 훨씬 낮으며 이를 근거로 지금 당장 우리 인간에게 치명적일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은 추론할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러니 어업 종사자들과 소비자들은 크게 걱정하지 마시기를 바란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몸담고 있는 이 지구 생태계에 미칠 연쇄적인 가능성은 어느 누구도 예측할 수가 없다. 말 그대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한계가 명백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방사선 방재는 ‘알라라(ALARA: As Low As Reasonably Achievable,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적게)’를 원칙으로 한다. 즉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 국제적으로 공인된 방사선 허용치는, 그 이상은 인체와 자연계에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계치라는 뜻이지, 이 허용치보다 낮으면 ‘괜찮다’는 뜻은 아니다.
엄청난 양의 물로 희석시켜 규제를 무력화한 꼼수와는 상관없이, 이번 후쿠시마 방사선 오염수의 방류에서 과학적으로 확실한 사실은 어마어마한 양의 새로운 인공 방사선 원소들이 가장 광범위한 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한 바다를 통해서 이 한정된 지구 행성의 곳곳으로 널리 널리 퍼져 가고 있다는 것이다. 짧게는 수만 년 길게는 수억 년 동안 각종 어패류와 해삼·멍게 같은 연체동물, 각종 해초류와 눈에 보이지도 않는 플랑크톤, 다양한 생물 및 무기물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미처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모든 환경적 요소를 통해 아주 복잡하고 다양한 축적과 변화의 형태로 끊임없이 연쇄적으로 이어질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그것이 지구 생태계에 어떤 치명적인 변화를 가져올지 우리는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 원전사고 지역인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지역의 생태는 그 자체로 대량의 방사선 유출이 자연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의 단서가 될 아주 귀한 연구 대상이다. 최근 캐나다에서는 ‘일본 없이는 살 수 있지만, 바다 없이는 살 수 없다’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고 한다. 이 지구 생태계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이렇게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할 엄청난 범지구적 영향을 끼치는 이 일이 무려 30년 동안이나 계속될 예정이다.
최근 100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유감스럽게도 핵폭탄을 비롯한 크고 작은 원전사고를 통한 국소적인 방사능 유출이 있어 왔고, 그때마다 우리는 아직 경험해 보지도 못한 재앙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접근 금지구역을 설정하고 일체의 생태적 확산을 막아 온 일들이 있었다. 사실 일본도 그래야 했고 그럴 수도 있었다. 단지 가장 싸고 손쉬운 방법을 택했을 뿐이다. 이렇게 국소적 원전재난을 거의 온 지구의 가장 광범위한 영역에 방사시켜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전 지구적 문제로 만든 예는 역사상 일찍이 없었다. 심지어 국제사회의 방조와 우리나라의 양해 하에 만천하에 드러내 놓고 당당하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우리 모두는 바로 그 돌이킬 수 없는 이 행성 전체에 대한 방사선 오염을 방조하고 정당화시켜 준 것이다. 모르긴 해도 앞으로 발생하게 될 방사선 폐기물도 누구나 비슷한 방식으로 정당하게(?) 처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셈이다.
방사선 수치를 측정하고 그 수치가 허용치를 초과하는지 비교하는 일은 ‘과학’이 아니라 전문가도 필요 없는 ‘기계’의 일이다. 과학은 측정한 데이터에 기초하여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상상하거나 알아낼 수 없는 모든 가능성을 논리적으로 추론하고 발전시켜 새로운 미지의 영역을 개척해 가는 것이다. 그래서 과학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의심’과 ‘탐구’의 대상이다. 의심이나 반론의 여지를 말살하고 과학이란 이름으로 믿으라고 강변하는 것이야말로 비(非)과학을 넘어 반(反)과학적인 처사다. 말할 수 있는 데까지만 말하는 게 과학이다. 모르는 데까지 확신을 갖는 일은 과학의 대척점에 있는 무서운 일이다.
최근 들어 부쩍 인간을 짐승과 구별되게 하는 네 가지, 즉 불쌍히 여길 줄 아는 마음,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 과분함을 아는 마음, 분별할 줄 아는 마음이 있다는 옛 성현의 말씀이 유난히 많이 생각난다. 네 가지는커녕 한 가지라도 가질 수 있으면 좋으련만, 우리 자신들이 방사선보다도 더 무서워지는 시대다.
2023-09-05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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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래의 메타경제] 가치동맹과 가치사슬
동아시아 국가들의 이례적으로 빠른 경제성장에 대해 세계은행이 ‘동아시아의 기적’이라고 명명한 때가 1993년이었다. 물론 1970년대부터 한국을 비롯한 몇몇 나라들의 고성장은 세계의 주목을 받았는데, 한국과 대만, 홍콩과 싱가포르를 묶어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부른 것이 그것이다. 네 마리 용의 성장은 당시로서는 정말로 괄목할 만한 것이었다.
일례로 1990년 아시아 네 마리 용의 제조업 수출액은 개발도상국 전체의 61.5%를 차지하는 압도적인 비중을 보였다. 이에 따라 수출주도적 공업화가 저개발국의 성장 모델로 제시되면서 많은 후발국이 네 마리 용을 뒤따라 경제개발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개발도상국 제조업 수출점유율 61.5%라는 압도적인 숫자가 시사하듯이, 수출주도적 공업화는 모든 나라가 따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아주 특별한 조건 아래에서 가능했던 예외적인 성취에 가까운 것이었다.
네 마리 용의 고성장은 이들 나라와 일본 그리고 미국을 연결하는 3각 순환의 틀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들 국가는 일본에서 부품과 기술을 도입해 국내의 노동력과 결합하여 물건을 만들어 미국 시장에 판매하는 상품 순환의 틀 속에서 성장하였다. 3각 순환이 가능하였던 것은 냉전의 최전선이었던 동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지원과 관대한 시장 개방 그리고 식민지 시기에 형성되어 있었던 일본경제에 대한 밀접한 의존이었다.
미국과 소련 간의 체제 대립을 핵심으로 하는 냉전의 틀 속에서 성장하였던 네 마리 용은 1990년대 초에 성장의 절정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 무렵 냉전 체제가 무너지고 미국 주도의 일극 중심이 강화되면서 세계화의 사조가 급속히 기존의 질서를 대체하였다. 이 세계화의 우산 속에서 새롭게 성장의 엔진을 마련한 나라가 중국이었고, 중국의 고도성장은 냉전 와해 이후 흔들리는 3각 순환으로 고전하던 동아시아의 신흥 공업국에 중요한 탈출구가 되었다.
1992년 중국과 수교를 하였던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중국의 고도성장이 아니었다면 외환위기를 조기에 극복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중국과의 무역액은 미국과 일본을 합한 것보다 훨씬 많아졌는데, 이것은 한미일 3각 순환이 한중 순환으로 대체되었음을 의미한다. 한국의 자본재와 중간재가 중국으로 들어가고, 중국의 소비재와 중간재가 한국으로 들어오는 상품 순환이 만들어졌다. 지난 몇 년 동안 미국과 중국의 마찰이 심화하는 상황 속에서도 우리나라가 중국과의 관계에서 일정 정도 유연성을 보이고자 하였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오랫동안 미국과 일본의 교역 규모를 크게 앞질렀던 중국과의 교역 규모가 올 들어 변곡점을 그리고 있다. 수입에서는 여전히 미국과 일본을 합한 규모를 앞지르고 있지만, 수출에서는 근소하지만 미국과 일본의 합계가 중국보다 많아지고 있다. 중국과의 총 교역 규모와 미국과 일본을 합한 총 교역 규모가 거의 같아지는 전환기에 들어선 것이다.
이러한 시기에 지난 18일 미국 대통령의 별장에서 한미일 정상회담이 열렸다. 여기서 미국이 오랫동안 추구해 온 한미일이 동시적으로 참여하는 안보 블록과 경제협력 틀을 구축하기로 합의하였다. 그동안 윤석열 대통령이 자주 언급하였던 이른바 가치동맹을 구축하기로 한 것으로, 이로써 향후 동북아에서는 이념에 따른 편 가르기가 더욱 명확해지는 것이 불가피해졌다.
그런데 가치동맹이 지속성을 갖고 탄력을 받으려면 그에 상응하는 가치사슬이 수반되어야 한다. 상품 공급망의 연계를 의미하는 가치사슬이야말로 국가 간 관계를 가장 공고하게 그리고 효율적으로 묶어 주는 힘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사실은 안보동맹이 핵심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협력에 대한 설명이 더 많이 나열되었던 것도 그러한 인식에 대한 대응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가치동맹을 뒷받침할 가치사슬이 실제 어느 정도 뒷받침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중국과의 대립과 코로나를 겪으면서 제조업 공동화의 한계를 절감한 미국은 반도체와 배터리 그리고 전기자동차까지 미국 내에 두려는 의도를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런데 반도체와 배터리는 한국이 비교우위를 갖는 상품이다. 미국은 지식서비스와 플랫폼경제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의 소재와 부품의 경쟁력은 여전히 강력하다.
이러한 각국의 우위 상품들을 훼손하거나 한 나라가 독점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각 나라의 영역을 인정하는 3국 간 협력적 순환이 만들어질 때 가치동맹도 완성될 수 있다. 냉전 시대의 3각 순환에서 그랬던 것처럼 동북아 신냉전의 최전선에 놓이게 된 국가의 가치사슬에는 더 관대해야 한다.
2023-08-29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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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소영의 법의 창] 정당 현수막 무법지대 이대로 두어야 하나
무더위와 사회 불안의 상황이 우리를 어렵게 하는 여름이다. 그런데 한숨 돌리려 나선 산책길에도 불편함이 있다. 보려 해서 보이는 경우보다 그 존재 자체로 보게 될 수밖에 없는, 바로 정당 현수막들이다. 바야흐로 전국이 현수막 무법지대라 할 만하다.
난립이라 할 만큼의 개수도 문제지만, 독설을 넘어선 막말·비방과 혐오·가짜 뉴스에 편승하거나 인신공격성 문구 등의 수준 낮은 표현들이 더 문제다. 내년 총선을 8개월여 앞둔 시점에도 이렇다면, 총선 정국이 다가올수록 정치선전용 현수막 문제는 더 악화될 것임이 자명하다.
막말·비방 등 수준 낮은 문구 홍수
교통안전과 도시 미관 저해 심각
정치인과 정당의 자성과 고민 필요
현수막은 공중에게 항상 또는 일정 기간 계속 노출되어 공중이 자유로이 통행하는 장소에서 볼 수 있는 옥외광고물의 일종이다. 대부분의 옥외광고물들은 옥외광고물법상의 표시·설치에 관한 허가·신고 및 금지·제한의 적용 대상이다. 예를 들어, 아름다운 경관과 미풍양속을 보존하고 공중에 대한 위해를 방지하며 건강하고 쾌적한 생활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목적의 표시·설치 금지가 그러하다.
다만 옥외광고물법에서도 현수막 표시·설치에 대한 허가나 신고, 금지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 예외가 있다. 관혼상제, 학교행사, 종교의식, 시설물의 보호·관리, 안전사고 예방, 교통 안내, 긴급 사고 안내, 미아 찾기, 교통사고 목격자 찾기를 위하여 표시·설치하는 경우 등.
하지만 정치인의 정치적 현안이나 정당 정책에 대한 현수막, 소위 ‘정당 현수막’의 표시·설치가 자유롭게 된 건 최근의 일이다. 2022년 6월 개정된 옥외광고물법이 정당법상 통상적인 정당 활동으로 보장되는 정당의 정책이나 정치적 현안에 대하여 표시·설치하는 현수막은 15일 이내에서라면 개수·문구 제한 없이 설치할 수 있도록 허용했기 때문이다.
옛 옥외광고물법이 정당 활동의 일환인 현수막 게시 등에 대하여 허가·신고 또는 금지·제한 규정의 적용을 배제하지 않음으로써, 정당법상 보장된 정당의 정치 활동의 자유를 제한하는 결과를 발생하게 한다는 점을 감안한 개정이었다. 정당법은 정당이 특정 정당이나 공직 선거의 후보자를 지지·추천하거나 반대함이 없이 자당의 정책이나 정치적 현안에 대한 입장을 인쇄물·시설물·광고 등을 이용하여 홍보하거나 당원을 모집하기 위한 활동을 통상적 정당 활동으로 보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당 현수막의 현실은 입법 취지와 다른 것 같다. 수적으로도 이미 ‘현수막 홍수’이고, 표현 내용상의 부적절함으로 인한 실제 피해는 오롯이 시민들의 몫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개정법 시행 이후 정당 현수막 관련 민원 2배 이상 증가, 정당 현수막으로 인한 사고 8건 발생이라는 행정안전부 자료도 정당 현수막이 국민 생활에 불편을 끼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런데도 이런 정당 현수막의 폐해를 제재할 근거나 수단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적어도 우리 국회의 입법적 조치는 없다. 정당 현수막 난립에 따른 보행자와 차량 통행의 안전 위험, 도시 미관 저해, 일반 시민과의 형평성 문제 등의 이유로 일선 지방자치단체에 민원이 쏟아지는 상황임에도 그렇다.
이에 지난 3월 부산광역시 등은 정당 현수막의 수량과 설치 장소 제한 등을 담은 옥외광고물법 개정 의견을 행정안전부에 건의했다. 행정안전부도 5월 8일부터 ‘정당 현수막 설치·관리 가이드라인’을 제정하여 시행하고 있으나, 현수막 표시나 설치 방법·장소에 관한 것으로 문구 제한 규정은 없다. 선관위나 지자체가 사안별로 관여해 보지만, 근거 규정이 없다는 문제점은 그대로다.
올해 6월부터 인천광역시는 정당 현수막 내용에 대한 기준을 자체적으로 마련, 시행하고 있다. ‘인천광역시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조례’에 “현수막에 혐오·비방의 내용이 없어야 함”을 규정한 것이다. 하지만 법령의 범위 안에서 자치 규정을 제정해야 하는 입법적 한계 때문에, 상위법에 없는 내용을 제정, 적용할 수 있는 것인지가 문제 된다.
현재 국회에도 옥외광고물법 개정안 7건이 발의되어 상임위원회에 계류 중이지만, 이들 개정안은 정당 현수막에 대해 표시 방법·기간·장소·개수에 대한 제한 등을 추가하여 정당 현수막 난립을 해소하려는 것에 그칠 뿐이다. 현행법상 다른 광고물의 경우 “미풍양속을 해칠 우려 또는 청소년의 보호·선도를 방해할 우려나 인권침해의 우려가 있는 내용”은 광고물에 표시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당 현수막의 표시 내용은 또 예외여야 하는가. 정치인과 정당의 자성과 고민이 필요하다.
2023-08-22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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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백민의 기후 인사이트] 위기의 인류, 너무 늦은 걸까
“지구온난화(global warming) 시대는 끝났다. ‘끓는 지구’(global boiling)의 시대가 시작됐다.”(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올여름 길게 이어진 장마와 폭우, 태풍 소식에 우리가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동안 유럽과 미국을 비롯한 지구촌 곳곳의 기온이 연일 40도를 넘어서면서 많은 사람들이 전례 없는 폭염과 산불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뜨거웠던 해로 기록될 것이 확실해지고 있는 올해, 가장 충격적인 건 기록을 깨고 솟구치고 있는 전 지구 평균온도 그래프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의 절규에 가까운 외침이 이해될 정도다. 지구의 전반적인 온도 수준을 대표하는 전 지구 평균온도는 7월 초순에 17.2도를 기록하며 2016년 기록인 16.9도를 훌쩍 뛰어넘었다. 기상 관측 사상 압도적 1위임은 물론이고 최근 10만 년 고기후 기록을 살펴봐도 전례 없는 수준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수년 내로 2015년 파리에서 각국 정상들이 약속한 지구 온도 최후 저지선인 1.5도보다 상승해 15.3도를 훌쩍 뛰어넘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유엔 산하 세계기상기구(WMO) 역시 “향후 5년 이내 연평균 기온이 일시적으로 산업화 이전보다 1.5도를 초과할 가능성이 50%로 증가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왜 이렇게 지구가 뜨거워진 걸까. 이 모든 게 다 우리 인간 탓일까. 필자도 상당 부분 동의하지만 올해는 모든 것을 인간 탓으로 돌리기엔 조금 과한 듯하다. 자세히 살펴보니, 적어도 올해의 극단적 온도 상승은 자연과 인간의 합작품이라고 평가하는 게 적절해 보인다.
근래 태평양에 무려 3년간이나 지속되는 라니냐가 발생했다. 라니냐가 발생하면 서태평양을 제외한 적도 태평양 전체가 전반적으로 차가워지면서 대기의 남아도는 열이 차가운 바다로 축적된다. 이 축적된 열은 이어지는 엘니뇨 때 다시 대기로 방출된다. 엘니뇨 시기에 지구상에 이상기후 현상이 특별히 심각해지는 이유가 바로 바다로부터 공급된 이 열기 때문이다. 올해 초부터 엘니뇨가 시작되면서 축적돼 있던 열이 한꺼번에 빠져나오게 되었고, 이로 인해 극단적인 고온현상이 도처에서 일어났다.
또 하나 올해 지구 가열의 중요 요인으로는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태양 활동의 증가를 꼽을 수 있다. 한마디로 태양의 세기가 급격히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올해 초 급격히 늘어나는 태양 흑점의 개수로 확인된다. 태양빛이 강해지니 당연히 지구 온도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
사실 엘니뇨나 태양 활동 같은 것이 얼마나 지구 온도를 상승하게 했는지 정확하게 아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중요한 건 이 요인들은 지구온난화와는 무관한 자연적인 현상이란 점이다. 따라서 이러한 자연적인 요인들을 고려해 볼 때 올해 우리가 겪고 있는 이 극단적인 날씨의 원인을 무턱대고 모두 우리 탓으로 돌리기엔 과한 측면이 있는 셈이다. 조금은 다행스럽다고 할 수 있겠는데, 다만 분명한 것은 지금의 지구 상태가 자연이 조금만 심술을 부려도 인류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는 극한 날씨들을 언제든지 만들어 낼 수 있는 상태이며, 그런 현상이 점점 더 확실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압도적인 열기는 북미 서부, 남유럽, 아프리카 북부, 남중국, 일본 수도권 인근, 중동을 휩쓸며 이전 폭염 기록들을 모조리 갈아 치우고 있다. 언론에서는 “이대로 가다가는 지구가 곧 멸망할 것”이라는 자극적인 기사들을 생산해 내느라 바쁘다. 멸망론이 무서운 것은 사람들을 회의감에 빠져들게 만들고, 그로 인한 무기력과 자괴감에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골든 타임에 아무런 대응조차 못 하게 만드는 데 있다.
이것만은 분명히 해 두자. 전인미답의 수준까지 지구 온도가 치솟은 상황은 누가 봐도 심각하지만 아직 우리의 미래에 확정된 건 아무것도 없다. 오늘날의 기후과학은 이대로 살아가다가는 위험이 더 심화할 것임을 분명히 경고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 앞에 지구 멸망, 인류 멸종이 기다리고 있다고 확정적으로 얘기한 적은 없다. 아직 우리가 하기에 달렸고, 골든 타임은 남아 있다.
지구 온도 최후 저지선인 1.5도에도 너무 얽매일 필요 없다. 수년 내로 1.5도를 넘기는 건 이제 기정사실에 가까워졌지만, 이는 정치적 의사 결정으로부터 도출된 숫자일 뿐, 이를 넘긴다고 해도 하루아침에 세상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날씨는 늘 인간에게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었다. 지구가 달아오르기 전인 수백 혹은 수천 년 전에도 말이다. 극단적인 날씨에 너무 겁먹지 말고, 점점 더 실체가 드러나고 있는 기후위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차분히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2023-08-15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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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희의 위드 디자인] 디자인과 기업가정신
얼마 전 한동대학교 디자인과에서 특강이 끝나자, 한 학생이 “언젠가 창업하고 싶은데요.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라는 질문을 했다. 순간 말문이 막혔다. 나이 50에 디자인 창업을 했으나, 원래 내 인생 계획에 창업은 없었다. 관심도 없었으니 당연히 창업 준비를 해 본 적이 없었다. 당황스러웠으나 지난 30여 년의 디자인 커리어가 머릿속을 스쳐 갔다.
“교수를 그만두고 미얀마에 갔던 경험이 없었다면 창업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고 답을 했다. 다양한 종류의 창업이 있겠지만, 디자인 창업은 이제까지 축적된 전문 분야의 지식이 창업의 기초가 되었다. 그렇다고 해도 ‘월급 받는 것이 편한’ 나 같은 사람이 창업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나의 기업가정신은 어디서 온 것일까?
결국 나의 창업 준비는 ‘밑바닥에서 새로 시작해 보는 경험’이었다. 미얀마의 NGO에 들어갔지만, 조직이 없었다. 프로젝트팀원이 있었지만 모두 가르치면서 이끌어야 했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일을 나 스스로 했다. 직접 데이터를 엑셀에 입력하고, 분석하고, 아이디어 내고, 최종 PPT 발표 자료까지 혼자서 만들면서 허탈함으로 웃은 적이 있다. “어째 내 인생은 거꾸로 흐르고 있네?” 대기업에 있을 때는 큰 목표만 세우면 업체들이 실행을 해서 결과를 가지고 왔다. 대학에서 산학 과제를 진행할 때는, 물론 갑과 을이 바뀌어 결과를 만들어 가야 하긴 했지만, 대학원생들이 자료를 만들어 오면, 나는 말로 정리만 해 주면 되었다. 그런데 미얀마에서는 모든 결과를 직접 내가 만들어 내고 있었다. 투덜댔지만, 이렇게 모든 것을 처음부터 새롭게 해 보는 경험은 나를 초심으로 돌아가게 하고, 창업의 근육을 만들어 내었다. 조직 떼고, 명함 떼고, 포지션 떼고 다시 시작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또 다른 창업 준비라고 한다면 디자인 씽킹을 직접 나의 커리어에 적용해 본 것이다. 한국에 다시 들어와서 2년 정도 쉬면서 무얼 할지 고민했다. 문득, 전문 분야인 디자인 씽킹으로 다른 조직의 문제점들은 발견하고 해결해 주면서, 나의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디자인 씽킹을 나의 인생 설계에 적용해 보았다. 공감, 문제 정의, 아이디어 도출, 프로토타입, 테스트를 거치는 프로세스대로 새롭게 커리어를 디자인했다. 대략 3개 정도의 커리어 프로토타입이 나왔는데 하나씩 테스트하며 다듬어 나갔다. 그중 하나가 디자인 창업이었다. 물론 창업은 최하위 순위였지만, 결국 삶은 나를 창업으로 이끌었다.
창업은 이제 흔한 일이 되었다. 2021년 글로벌 기업가정신 연구협회(GERA)의 발표에서 우리나라 기업가정신지수가 50개국 중 6위라고 한다. 변화가 놀랍다. 90년대 ‘W 이론’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면우 교수님은, 10여 년 전에 유니스트 디자인 및 인간공학부 석좌교수로 계시면서 학생들에게 ‘창업’을 강조했다. 대기업 출신으로 기업가정신이 별로 없었던 나는 그 당시 경험이 없는 청년들의 창업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반신반의하며 지켜보았다. 그 당시 상담 왔던 팀 중의 하나가 ‘클래스101’이다. 지금은 유니스트의 대표 학생 창업 회사이다. 그런데 10여 년이 지난 지금, ‘청년이라면 한 번쯤은 창업을 시도해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하는 마음으로 바뀐 나를 발견한다.
최근 들어, 대기업, 안정된 직장들, 커리어의 정점을 달리던 지인들의 퇴직 소식이 많이 들려온다. 40대 말에서 50대 초다. 기존의 조직에서는 성공한 사람들이지만 대부분 새로운 시작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는 않아 당황스러움과 두려움을 갖는 것을 보며 기업가정신을 생각했다. 또한 지난달에는 회사 초기 멤버 2명이 창업을 했다. “더 늦기 전에 하고 싶던 일을 하고 싶다”는 청년들이다. 이들을 보면서 조직을 떠나서, 자기 주도적으로, 실패의 두려움을 벗어나서 기업가정신을 가지고 혁신과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자신이 있는 곳을 무궁무진한 기회가 있는 곳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더 많이 생기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피터 드러커는 기업가정신을 ‘불확실성과 위험을 감수하고 유망한 기회를 사업으로 만들 수 있는 도전 정신’이라고 정의한다. 끊임없는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 스스로의 시스템을 만들어 내고,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는데, 디자이너의 사고법을 조금만 활용해 보자. 기업가정신 교육에 디자인 씽킹이 접목되고 있는 이유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사용자들을 공감하고, 문제를 찾아내고, 정의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함께 해결책을 찾아내기에 좋은 전략이다. 기업가정신에 디자인 씽킹이라는 날개를 달자. 물론 아직 초보 창업가인 나는 또한 ‘기회를 사업으로 바꾸는’ 기업가정신을 더욱 함양할 때이기도 하다.
2023-08-08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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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권의 핵인싸] 나만 살 수는 없다
무더운 여름 한가운데를 무탈히 지나기도 만만한 일은 아니다. 이제까지 상상도 못 했던 엄청난 폭우와 가슴 아픈 사고들도 그렇지만, 새삼 세상이 갈수록 점점 더 험해진다는 느낌은 나이 탓만은 아닌 것 같다. 엄청난 자연의 위력 앞에서 보잘것없는 우리네 인간들의 무력함과 속수무책은, 그 자체로 과연 우리가 자연에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자책감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실종된 이들을 찾다가 초래된 어이없는 죽음, 또 새내기 선생님의 황망한 극단적 선택은 우리를 망연자실하게 한다.
결국 진심과 열심을 다한 사람들이 피해와 상처를 고스란히 받아 내야 하는 이 사회에서 우린 또 어떤 뻔뻔함과 억울함을 마주해야 할지 착잡하다. 그 착잡함은 또 어떤 힘없는 이들의 죽음을 마주하게 될지 모르는 절망감이기도 하다. 생때같은 우리 아이들을 온 국민이 보는 앞에서 수장한 지 불과 10년도 안 된 세월 동안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결국 미안해하기도 전에, 진심이어서는 손해만 보는, 나만이라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괴물 같은 시대를 만들어 낸 것 같다.
수십억 년 동안 지구의 평균 온도 자체는 섭씨 10도에서 30도에 이르는 구간을 널뛰기하듯 변해 왔다. 30억 년이라는 영겁의 시간 동안 지구가 지질학적 천문학적 요인에 의해 온도가 변해 온 것이야말로 자연의 섭리에 속하겠지만, 지구를 대변혁의 소용돌이에 맞닥뜨리게 했던 것은 온도 변화의 속도다. 이제까지의 어떠한 작은 온도 변화도 수만~수십만 년에 걸쳐서 일어났음에 반해 현재 지구의 온도 상승(섭씨 1도)은 불과 수십 년 동안에 일어나고 있다.
특히 현재 인류의 역사는 2차 세계대전 이후인 1950년부터 새로운 기록을 경신하고 있는데, 에너지 사용, 인구, 총생산, 물과 비료의 소비, 댐 건설, 교통수단의 급격한 증가라는 인간의 활동과 정확히 겹친다. 그 결과로 나타난 지구 생태계의 주요 지표들, 즉 이산화탄소·질산·메탄의 증가, 성층권의 오존층 파괴, 해양의 산성화, 열대림 손실의 그래프가 또한 정확히 같다.
어디 이뿐이랴. 미세 플라스틱으로 배가 가득 차 죽어 간 물고기와, 핵전쟁과 원전사고를 직접 겪고서도 방사능 오염수의 해양 방류를 묵인하는 우리는 어느 날 그것이 바로 내 이야기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는다. 이 행성에서 우리가 이루어 낸 역사는 지구 생태계에서 볼 때 아무리 길게 잡아도 수십만 년, 이 행성의 시간과 비교할 때 1만 분의 1도 안 되지만, 우리 인간이 특히 현대 인류가 이 행성에 남겨 놓은 상처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지대하다. 그것은 앞으로 우리 인류는 물론 이 행성의 존망을 위협할 정도다. 불과 10년 뒤의 우리의 모습조차도 현재로서는 예단하기가 힘들다. 수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뜨겁게 논란이 됐던 탄소중립의 치열한 논쟁과 노력에도 아랑곳없이 우리 지구의 평균온도는 5년 내에 온도 상승의 마지노선인 1.5도가 깨질 확률이 66%에 달한다고 한다.
인간의 욕망이 빚어낸 이윤창출의 극대화는 자연을 개발하고 이 행성을 개조시킨 ‘인류세’를 만들어 냈지만, 우리는 그나마 정작 인류세의 유일한 의미라고 할 수도 있는 우리 인간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들고 있지도 못하다. 결국 30억 년 전 뜨거웠던 이 행성이 식어 가면서 탄생한 이 아름답고 푸른 지구의 생태계를 우리 인류의 생존조차 위협하는 뜨거운 행성으로 스스로 만들고 있는 지금 우리는 과연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오늘을 보내고 있는 것일까.
이 모든 일들은 침몰해 가는 배에 타고 있는 우리 모두의 내부에서 나만이라도 잘 살아보겠다는 아비규환의 전조로 보인다. 아니, 각자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에 따라 체감되는 정도는 다르겠지만 이미 아비규환은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힘과 돈만 있으면 나와 내 아이들만은 예외가 될 거라고 믿고 있다. 파국의 시한은 어느 누구에게도 예외 없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는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우리는 저마다의 욕망을 찾겠다며 인간다움을 잃어 가고 있다.
이대로는 절멸할 것이라는 명백한 미래를 우리 모두가 인지한다면 정말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가질 터이다. 다 같이 죽어도 좋다는 심정으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서로를 그리고 우리의 미래를 살릴 진심 어린 궁리를 할 수는 없는 것일까. 비록 미래는 결코 녹록지 않은 상황이지만 어쩌면 이런 공동의 노력이 우리를 다른 차원의 공동 인격체로 비약시킬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되지는 않을까.
어느 지인이 보내온, 생전 처음 보는 것인데, 무더운 여름에 빨갛게 익은 동백 열매 사진이 새삼 감동이다. 동백은 기름을 짤 것도 쓸 곳도 없어서 그냥 마당에 떨어지지만, 그렇게 해서 또 한 그루의 동백으로 시작한다고 한다. 죽어야 새로운 것이 태어나는 법이다.
2023-07-25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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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래의 메타경제] 지역경제론의 배신
통계를 이용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일반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 방법은 ‘평균’을 구하는 것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개념이다. 반면 경제학적 분석에서는 ‘한계’라는 개념을 더 자주 사용한다. 어떤 수치가 증가하는가 아니면 감소하는가에 주목하는 것인데, 한계의 관점에서 보면 변화의 추이를 좀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이에 더하여 ‘한계’라는 개념이 경제학에서 더 주목되어 온 것은 당장은 불균형 상태에 있더라도 장기적으로는 균형으로 수렴하게 하는 원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지역 경제로 시야를 좁혀 보자. 기업들은 이익을 더 많이 낼 수 있는 유리한 곳부터 투자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투자가 한 지역에서 계속 이루어지다 보면 초반의 유리함은 자꾸 없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 결과 어느 시점에는 이제까지 투자에서 소외되어 있었던 다른 지역에 투자하는 것과 효율에서 큰 차이가 없게 되고, 결국 기업들은 낙후 지역에도 투자를 생각하게 된다. 이처럼 장기적으로는 어느 지역에서나 궁극적으로 투자의 효율이 같아지는 경향이 나타나면서, 전국적으로 투자가 확산한다는 것이 지역경제론의 시사이다.
물론 한계의 시각에서 효율이 같아지기까지 이미 만들어진 기존 투자액의 격차는 감수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후 지역도 언젠가는 투자 기회가 오게 되어 있다는 지역경제학적 결론은 낙후 지역에도 일말의 희망을 갖게 하는 논거로 인용된다. 그러나 이러한 희망의 시사도 우리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가속적으로 진전되어 온 수도권 집중에서 보듯이 모든 투자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경향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분명 수도권으로의 집중으로 인해 수도권에서는 투자효율이 계속 낮아져 왔을 터인데도 불구하고 기업들은 여전히 수도권으로만 더 몰려들고 있다.
지역경제학의 소극적인 희망조차 제대로 나타나지 못했던 것은 투자효율이 낮아지는 시그널이 나타나면 바로 정부가 강력하게 개입하여 효율을 반등시켜 왔기 때문이었다. 수도권 광역전철과 고속도로 그리고 수많은 신도시 건설이 그러한 낮아진 효율에 대한 대표적인 대응책이었다. 돌이켜 보자. 수도권으로 투자가 집중되면서 수도권의 땅값과 집값이 얼마나 올랐는가.
또 공장과 사람의 집중으로 교통이 복잡해지고 치안과 공해 등의 해결을 위한 공공 수요도 엄청나게 증가하였다. 이런 것들은 모두 당연히 수도권에서의 투자효율을 떨어뜨리게 되는데 그러면 정부는 끊임없이 특별 정책 수단을 가동하여 낮아지는 효율을 높이려고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대응해 왔다.
지역발전의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각종 균형발전 시책과 지방분권 과제를 추진할 지방시대위원회가 10일 공식 출범했다. 출범에 1년을 소모한 지방시대위원회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공공기관의 2차 이전을 주된 의제로 다룰 것을 예고한 점에서 적어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이전 정부들의 균형발전위원회보다는 나아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균형발전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균형발전에 대한 최소한의 접근 기준을 어디에 둘지와 같은 근본적인 문제를 고민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지역마다 이미 출발이 다르고 또 도달한 상태가 다르기 때문에 각 지역의 요구를 어떻게 수용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인지 판단하기는 매우 어렵다. 또 이미 너무 비대화된 수도권에 투입되던 재원을 지역으로 돌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균형발전에 접근하는 명확한 기준을 세우는 것이다. 투자의 효율이 떨어지면 시장은 시그널을 보낸다. 그럴 때 지역에서 오는 시그널에 우선순위를 두고 좀 더 집중을 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수도권에서의 시그널에 우선하여 정책을 펴는 바람에 항상 지역은 수도권에 비해 투자의 효율이 낮은 상태로 유지되어 왔다. 바로 이것을 이제부터라도 뒤집어야 한다.
다시 지역경제론으로 돌아가 보자. 이론은 현실이 가는 방향을 나타내지만, 시장 밖에서 다른 힘이 지속적으로 개입하면 이론이 가리키는 방향과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지역경제론의 결론과 배치되는 우리의 경험은 이론의 배신이라기보다는 지속적인 수도권 중심의 정책을 펴 온 정부의 배신에서 기인한 것이라 할 것이다.
힘들게 새로 출범한 지방시대위원회가 균형발전을 추구하는 새로운 기준을 명확히 세우고 나아갔으면 좋겠다. 과거 정권들에서 방향 없이 표류하였던 균형발전위원회의 무기력함을 새롭게 출범한 지방시대위원회가 더 이상 되풀이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2023-07-18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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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소영의 법의 창] K-정보공개제도는 이랬으면 좋겠다!
2022년도 유엔 전자정부 평가에서 193개 회원국 중 3위를 차지한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2010년부터 7회 연속으로 3위 이내의 순위를 기록한 국가가 되었다. 전자정부란 정보기술을 활용하여 행정기관 및 공공기관의 업무를 전자화함으로써 행정기관 등 상호 간의 행정 업무 및 국민에 대한 행정 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정부를 말한다.
전자정부 평가가 중요한 이유는 국민의 정보공개청구권 보장을 위한 기본적 구조 구축의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즉 전자정부 발전도는 국민의 정보공개청구권 보장의 효율성과 편의성 제고의 정도를 보여 주는 척도다.
정보공개제도는 공공기관이 업무 수행 중 생산·접수하여 보유·관리하는 정보를 국민에게 공개함으로써,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고 더 많은 정보를 바탕으로 국정 운영에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제도다. 정보공개를 통해 획득한 정보는 국민의 의사 형성 자료가 되고, 민주사회의 건설적 여론 형성에 기여할 수 있게 될 뿐만 아니라 국정에 대한 견제 역할 수행의 바탕이 된다.
최초의 정보공개법 제정은 스웨덴에서였다. 우리나라도 1996년 정보공개법을 제정하여 1998년부터 시행해 왔다. 우리의 정보공개법 제정의 시작점은 청주시의 한 조례였다. 1991년 청주시의회가 제정했던 ‘청주시 행정정보공개조례’는 대법원의 합법 판단에 이르기까지 소송 과정을 거쳐야 했지만, 법률을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 대한민국을 바꾼 지방자치로 평가된다.
뒤이어 국회가 1996년 정보공개법을 제정하면서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13번째, 아시아에서 첫 번째로 정보공개법을 가진 나라가 됐다. 그리고 2023년 현재, 178개의 지방단체에서 정보공개조례를 시행·운영하고 있고, 각 중앙행정 부처도 정보공개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그간 15번의 법 개정이 있었고, 정보공개 의무를 부담하는 정보공개 대상 기관의 범위를 확대해 왔고, 공공기관이 각 기관의 업무 성격을 고려하여 비공개 대상 정보 범위에 관한 세부 기준을 수립·공개하도록 하여 공공기관이 정보공개의 범위를 자의적으로 해석 또는 축소하지 않도록 했다.
하지만 정보공개법상의 비공개 정보 범위의 광범위성에 대한 비판은 계속되고 있다. 정보공개가 원칙이고 비공개가 예외인 구조여야 한다는 점에서 본다면, 여전히 비공개 정보의 범위가 넓기 때문이다. 물론 정보의 자유가 보장된다고 해서 국가기관 등의 모든 정보공개를 허용할 수는 없다.
정보의 자유가 갖는 의미와 기능을 염두에 둔다 하더라도, 국가안전보장을 해할 우려가 있는 정보, 개인의 사생활 정보, 재판 관련 정보, 법인의 경영상·영업상 비밀에 관한 사항처럼 정보공개가 제한되어야 하는 불가피한 사유가 있다. 그러나 비공개 대상 정보의 범위는 중단 없이 시대를 반영하여 검토되어야 하고 구분 가능성도 늘 고민해야 한다.
작년 8월 행정안전부가 발행한 ‘2022년 정보공개 연차 보고서’를 보면, 우리 행정기관의 정보공개율은 95% 수준을 계속해서 유지하고 있다. 전자정부발전지수도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정보공개 의지와 실행력을 보여 준다. 그러나 여전히 정보 비공개 사례들의 운영 개선이 필요하다. 비공개 판단 기준의 불명확성이나 기관별 기준의 일관성 확보 문제, 사전 공표된 정보의 질적 제고 문제 등 더 다듬어져야 할 사항들이 있기 때문이다.
한편 정보공개 청구 오·남용 문제의 해결 방안도 구조화해야 한다. 해당 정보를 취득 또는 활용할 의사가 전혀 없거나 정보공개제도를 이용하여 사회 통념상 허용될 수 없는 부당한 이익을 얻으려 하거나 오로지 담당 공무원을 괴롭힐 목적으로 청구하는 경우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행태로 인해 선량한 민원인의 알권리가 제약되거나 고질·반복 민원 등에 따른 행정력 낭비가 발생한다. 따라서 고질·반복 민원 등에 대한 자체 종결권 부여, 정보공개 수수료 부과, 일시적 정보공개청구권 제한 등 합리적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그러나 정보공개제도 개선의 핵심적 방향성은 수요자 중심의 편리성 강화, 그리고 정보공개 서비스의 신뢰성과 안정성 확보여야 한다. 세계는 정보의 시대로 들어서 있고, 우리는 그 중심에 위치한 국가와 국민이다. 직지심체요절이나 세계 최초의 시한폭탄인 비격진천뢰 등 선조들의 문화유산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전자정부의 선도적 발전과 그 중요 부분으로서의 정보공개제도의 실질적 발전을 우리가 실현해 낼 수 있음을 믿어 본다.
2023-07-11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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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백민의 기후 인사이트] 슈퍼 엘니뇨, 정말로 위험한가
엘니뇨는 적도 지역 태평양 한가운데에서부터 동태평양까지 바닷물이 수개월 이상 비정상적으로 따뜻해지는 현상을 일컫는다. 따뜻해진 바닷물은 축적된 열기를 품고 있는데, 이 열이 대기 중으로 방출되면서 전체 지구의 대기순환이 크게 요동치게 된다. 그러면 지구촌 곳곳에 가뭄과 홍수, 폭설 등 불규칙한 기상이변과 자연재해가 속출한다. 엘니뇨는 대개 2~7년마다 한 번씩 발생하는데 특별히 더 강력하게 발생하여 적도 바다를 들끓게 만드는 녀석이 있다. 바로 슈퍼 엘니뇨이다.
올해 초부터 적도 바다가 따뜻해지는 경향이 생기더니 5월부터 공식적으로 엘니뇨가 발생하였다. 아직 좀 더 추이를 지켜봐야 하지만 일부 과학자들은 이번 엘니뇨가 슈퍼 엘니뇨로 발전할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때문에 올 한 해 발생할 수 있는 기상재해에 대한 우려로 전 세계 언론이 떠들썩하다. 우리나라도 주요 언론들이 슈퍼 엘니뇨를 부각하며 올여름 우리나라에 극단적인 폭우가 내릴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는 우려를 쏟아내고 있다.
정말 슈퍼 엘니뇨는 우리에게 위험한 현상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데이터를 토대로 살펴보면 그렇다. 사실 엘니뇨가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서는 기상학자들 사이에서 많은 이견이 있어 왔다. 필자도 궁금해져 과거 슈퍼 엘니뇨 사례들을 중심으로 우리나라에 끼친 영향을 조금 살펴보았다.
그 결과, 슈퍼 엘니뇨로 인해 전 지구 기상이변이 급증하는 것은 사실이나 그 영향은 지역별로 차이가 컸다. 또 우리나라의 경우 슈퍼 엘니뇨가 특별히 더 강력하고 극심한 기상현상을 초래하고 있다고 결론 내리기는 어려웠다. 재난에 대한 대비는 철저할수록 좋겠지만 도가 넘는 걱정으로 우울해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과거 자료를 살펴보자. 지난 반세기 동안 슈퍼 엘니뇨가 발생했던 해는 1982년, 1997년, 2015년 딱 세 번뿐이었다. 대략 15년에 한 번꼴로 슈퍼 엘니뇨가 발생했던 것인데 이때 우리나라에는 어떤 피해가 있었을까.
놀랍게도 기록을 깰 만큼 큰 피해는 없었으며 다소 무난한 한 해 한 해였다. 해마다 경향성도 달랐다. 1982년 겨울은 평년보다 조금 춥고 강수량도 적었는데 반해 1997년의 경우 전반적으로 평년에 비해 따뜻하고 강수량도 조금 많은 수준이었다. 2015년 사례도 특별한 것 없이 평범했다. 강렬한 폭염도 기록적인 집중호우도 없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폭염은 2018년 여름철에 발생했으며 이때 강원도 홍천이 40도가 넘는 온도를 기록했다. 그다음 폭염 기록은 1994년이 보유하고 있는데 이 역시 슈퍼 엘니뇨와는 관련이 없다. 장마의 경우, 역대 최장 장마는 중부지방 기준으로 54일간 비를 쏟아낸 2020년이었다.
사실 필자도 우리나라 주요 극한 기상 기록들이 모두 슈퍼 엘니뇨를 비켜 가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 놀랍다. 엘니뇨 해에 지구촌 여러 지역에서 극한 기상 현상들이 증가한다는 논문들이 많이 출판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점은 오히려 슈퍼 엘니뇨가 발생한 이듬해였다.
자료를 살펴보니 이듬해에 예외 없이 우리나라 기온이 매우 따뜻했음을 알 수 있었다. 슈퍼 엘니뇨와 관련된 잘 알려진 사실 중 하나는 슈퍼 엘니뇨가 발생한 이듬해에 전 지구 평균온도가 급격히 상승한다는 것인데, 아마도 올해 슈퍼 엘니뇨가 찾아온다면 내년은 기록적인 지구 온도 상승의 한 해가 될 가능성이 높고, 이 경향성을 우리나라도 피해 갈 수는 없을 듯하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만약 슈퍼 엘니뇨가 올해 발생한다면 우리는 얼마만큼의 피해에 대비해야 하는 것일까. 적어도 과거 데이터로 살펴보았을 때는 국가적으로 슈퍼 엘니뇨가 온다고 해서 맞춤형으로 특별한 대비를 해야 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 사실이 기상재해에 대한 재난관리와 조기경보의 중요성을 희석시키지는 못한다. 기후변화로 지난 50년 동안 전 세계 재해 발생 수는 4~5배 증가한 반면 조기경보와 진보된 재난관리로 인해 재해로 인한 사망자 수는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신문을 보면 역대급 자연 재난을 강조하는 기사들로 넘쳐난다. 이번 슈퍼 엘니뇨와 관련된 다소 과장된 보도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물론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찾아보면 원인과 결과가 어땠는지 확인할 수 있는 것들조차 제대로 찾아보지 않은 언론의 부주의함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이를 비난의 시각으로 바라보기보다는 가속화하고 있는 기후위기에 대한 언론의 조기경보로 받아들이는 게 좋을 듯하다. 조심해서 나쁠 것 없으니 말이다.
2023-07-04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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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희의 위드 디자인] 디자이너는 왜 글을 쓰는가?
사람마다 글을 쓰는 수많은 이유가 있다. 조지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라는 책에서 글쓰기의 4가지 동기를 이야기하고 있다. 첫째는 순전한 이기심, 똑똑해 보이고 싶고, 기억되고 싶어서, 둘째는 미학적인 열정, 아름다움에 대한 열정으로, 셋째는 역사적 충동, 사물의 진실을 알아내고 그것을 후세에 전하려는 욕구로, 넷째는 정치적 목적, 타인의 생각을 바꾸려는 욕구라고 정리했다.
나는 왜 글을 쓰는 것일까? 벌써 13번째 칼럼을 쓰고 있지만, 데드라인이 다가올 때마다 매번 “다음에는 그만둔다고 해야지”라는 생각을 한다. 엄청난 압박과 스트레스다. 그런데도 이번 칼럼에서는 다시 한번 글쓰기의 중요성을 기억하며 초심으로 돌아가 보고자 한다.
나는 늘 글 쓰는 사람을 부러워했다. 어릴 적 내가 좋아하는 책들의 여자 주인공들은 모두 글을 썼다. 〈작은 아씨들〉의 조이는 글을 쓰면서 당당하고 독립적인 삶을 살았다. 〈키다리 아저씨〉의 주디도 글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사랑을 얻었다. 〈빨강머리 앤〉은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을 잃지 않는 엄청난 상상력의 힘을 가진 문학소녀였다. 또한 주체적인 여성을 표현하는 작가들은 자신의 시대의 편견에 저항하며 글을 쓰는 여성들이기도 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빨려 들 듯 읽었던 〈제인 에어〉의 작가 샬롯 브론테, 〈오만과 편견〉의 제인 오스틴, 〈피터 래빗〉을 쓴 베아트리체 포터까지. 이들을 보며 당당하고 주체적인 여성으로 사는 가장 좋은 방법이 글을 쓰는 것이라는 생각을 막연히 했다.
그러나 학력고사 시절을 보낸 나는 글쓰기를 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게다가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게 되면서 글보다는 시각적으로 개념을 보여 주고 소통하는 것에 익숙해져 버렸다. “글로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디자인이 좋은 디자인이야”라는 생각으로 더욱 글쓰기를 무시했다.
디자이너로 일을 하면서 말로 설득하고 발표하는 일이 많았다. 글보다는 말, MS 워드나 훈민정음보다는 파워포인트로 작성하고 발표했다. 말로 설득하는 일은 재밌었고 언제나 시각적인 자료와 함께하는 말에 사람들은 잘 설득당해 주었다. 말은 쉬웠지만 글은 어려웠다. “나는 한국 주입식 교육의 산물이야”라며 글을 써야 할 일이 생길 때마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했지만, 그때그때 넘기며 살았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점점 ‘경험과 지식을 어떻게 하나의 자산으로 전달하고 남길 것인가’라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파워포인트로 결과물을 발표하며 프로젝트를 완성하지만, 지식이 제대로 쌓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표를 듣는 사람들 외에는 그 내용이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다 충격을 받은 사건이 있었다. 40대 중반, 교수를 그만두고 미얀마 양곤에서 사회적기업인 프락시미티 디자인(Proximity Designs)에서 서비스디자이너로 일하게 되었다. 디자인 훈련을 받은 적이 없는 미얀마 직원들과 함께 미얀마 농부들을 위한 스마트폰을 활용한 농업 자문 서비스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베스트셀러 작가이며 국제적인 디자인 전략 컨설팅 회사인 프로그(Frog) 출신 디자인 연구가인 얀 칩체이스(Yan Chipchase)가 미국에서 다국적 디자이너 팀을 데리고 와서 과제를 진행했다. 시티뱅크의 펀딩을 받은 그의 과제는 회사 내 최정예 디자이너 팀과 함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진행되었기에, 부럽기도 한 마음에 그가 어떻게 프로젝트를 진행하는지 지켜보았다. 몇 달 후 비슷한 시기에 결과 발표회를 했다. 그의 결과와 비교해서 미얀마 현지인들로 구성된 우리 팀의 결과물이 어느 것 하나 뒤지지 않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 팀원들과 함께 보람 있고 기분 좋은 뿌듯함과 기쁨을 함께 나누었다.
그런데 몇 달 후 나는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그의 결과물이 책으로 출판되었다. 모든 프로젝트의 과정과 결과를 상세히 설명해 놓은 책이었다. 미얀마는 놀라울 정도로 축적된 지식이 없는 나라이기에, 책으로 남는 연구 결과는 그 사회에 훌륭한 지식으로 남을 수 있음을 알았기에 더욱 놀라웠고, 그들의 성과에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몇 년이 지난 지금, 그의 결과물은 어느 곳이나 전달될 수 있는 지식으로 남아 있고, 나의 100장이 넘는 연구 결과물은 회사 내 자료로 남았다. 발표 자료는 있지만, 그 과제를 제대로 설명할 사람은 이제 그곳에 없다.
세상에 필요한 지식과 경험을 전달할 수 있는 힘은 글쓰기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글로 쓴 것, 기록한 것만이 남는다. 이제는 글을 쓸 때이다.
2023-06-27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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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철의 어바웃 시티] 인구 감소와 혁신적 도시계획
인구 감소에 따른 지방소멸의 공포가 커지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 제2의 도시 부산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최근 30년 동안 감소 폭이 전국에서 가장 크다. 1990년대 중반 400만 명을 넘봤던 부산 인구는 이제 330만 명 붕괴를 눈앞에 두고 있다. 2021년 행정안전부가 지정한 인구감소지역 89곳에도 부산 원도심인 동구, 서구, 영도구가 포함됐다. 얼마 전 지방소멸 문제를 다룬 한 방송에 서울 생활을 하는 20대 부산 청년의 인터뷰가 나왔다. 부산에서 대학을 나온 그는 “그 좋은 도시, 부산을 떠나 여기서 왜 이렇게 생활해야 하는지…”라고 말했다. ‘그 좋은 도시 부산’이란 말에 그만 가슴이 먹먹해졌다. 도대체 이 좋은 도시 부산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몇 년 전 한 토론회에서 전통적으로 진행된 외곽 확산(urban sprawl)에 기반한 부산의 도시개발 방향성을 비판한 적이 있다. 1960~80년대 도시계획을 주도했던 한 원로학자도 마침 그 자리에 있었는데, 그는 여기에 반론을 폈다. “1960년대 이래 부산은 10년 단위로 100만 명씩 인구가 증가하던 시기여서, 주택과 도로 건설 등 개발지향적 도시계획은 불가피했다”는 것이었다. 당시 상황에 비춰 볼 때 충분히 공감되는 내용이었다. 지금도 노후 주택을 새로 짓거나 교통 투자가 필요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문제는 그러한 시기가 이젠 지났다는 데 있다.
우리나라는 1949년 인구 총조사를 시작한 이후 72년 만인 2021년부터 인구 감소의 시대를 맞고 있다. 또한 도시화율도 세계 평균인 50%보다 월등히 높은 90%에 달한다. 여기에 수도권 집중 현상으로 특히 부산과 같은 지방도시 인구는 앞으로 증가를 기대하기가 더욱 어렵다. 인구 증가에 기반해 도시 외곽을 계속 개발하거나, 주택, 도로 위주의 전통적인 도시계획 행태는 결코 현실적이고 적절한 도시의 미래 방향을 제시하지 못한다.
미국 텍사스주에서의 유학 시절을 돌이켜보면, 그 지역 출신의 학생들은 현재의 부산 지역 경향과 달리 미국 내 동부나 서부로 떠나지 않았다. 지역 내 산업 기반이 탄탄해 청년들은 가능하면 떠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유출보다 유입 인구가 더 많았다.
그렇다면 우리 부산은 어떤가. 아직도 인구 증가 대비 주택 공급, 도로망 확충을 중시하는 기조가 여전하다. 실제 부산 원도심의 한 기초지자체는 지역 내 아파트 건설 허가의 당위성으로 향후 인구 증가 예상을 제시했다. 이런 접근 방식으론 당장의 인구 감소 추세를 바꾸기에 역부족이다.
이제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먼저, 인구 감소의 근본적 원인 파악과 적절한 대응이 중요하다. 부산 인구 감소의 출발점으로 지역경제의 산업구조 전환이 늦었다는 점이 계속 꼽힌다. 동시에 해운대신시가지 등 주택 공급 중심의 신도시 개발에도 인구 감소는 가속됐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지금은 이에 걸맞은 혁신적 도시계획이 나와야 할 때다. 도시계획의 범위를 현재의 주택, 도로를 넘어 지역경제, 환경, 복지, 안전, 해양, 갈등관리 등으로 확대해야 한다. 총괄 계획기능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하고, 시 정부 조직도 이에 따라 개편돼야 한다.
둘째는 인구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꿔야 한다. 현실적으로 어려운 인구 증가만이 좋은 것이 아니라 인구 감소가 지역에 미칠 긍정적 영향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일인당 소득 3만 달러 시대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며, 우리는 이제 그럴 때가 됐다.
미래 세대와 다른 지역사회와 협력을 통한 기술 혁신도 절실하다. 최근 인구감소지역으로 선정된 영도구는 인구정책위원회를 구성해 지역 내에서 인구 감소 대응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혁신적인 대응책을 찾는다는 점에서 반가운 소식이다. 향후 영도구 전체를 아우르는 종합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도시계획과의 연계성을 계속 강화해야 한다.
인구 감소 시기라고 해도 우리나라 도시는 절대 소멸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쇠퇴하는 도시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인구 감소 시기는 기존의 건설 위주 도시계획을 삶의 질 향상을 위한 혁신적 도시계획으로 전환할 좋은 기회다. 새로운 모습으로 도시가 변화하지 않으면 우리 주변의 청년과 청소년, 어린이들은 계속 지역을 떠날 것이다.
최근 부산 내 공공기관 추가 이전, 신공항 건설, 엑스포 유치 등 굵직굵직한 사업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해당 사업의 구상과 실행 과정에서 지역의 경제, 교육, 행정, 문화가 어우러져 부산에서 미래 세대가 성장할 수 있도록 도시계획이 이뤄져야 한다. ‘그 좋은 도시 부산’에 활력을 계속 불어넣을 수 있는 제도적 혁신이 이어져야 할 것이다. 인구 감소 시기 혁신적 도시계획이 필요한 이유다.
2023-06-20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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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권의 핵인싸] 우물에 독을 얼마나 풀면 해롭지 않은가
2011년 3월 일본 동북부(도호쿠) 태평양 연안에서 진도 9.1의 지진이 발생했다. 지진을 감지한 원자로는 자동적으로 멈췄으나, 건물 지하에 있던 변전 설비가 침수되면서 원자로의 노심 냉각장치가 마비됐다. 노심이 녹아내리고, 연료봉이 산화하면서 발생한 수소와 수증기의 압력을 견디지 못한 격납고가 폭발로 이어져 태평양을 포함한 인근 지역이 방사능으로 오염됐다. 결국 체르노빌 원전사고를 능가하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원전사고로 기록됐다.
대재앙에 가까운 자연재해는 인력으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침수가 예상되는 지하에 변전소를 설치한 부분과 고비용의 원자로 보존을 위해 해수 투입의 적기를 놓쳐 버린 점에서 도쿄전력회사의 결정적인 인재로 평가된다. 참고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는 석관을 만들어 원자로가 완전히 봉인된 상태지만, 후쿠시마는 원자로의 노심이 완전히 식지 않아 봉인도 못한 채 아직까지도 소량의 방사성 낙진이 뿜어져 나오고 있으며, 원전의 핵반응이 완전히 정지하기까지는 아직도 20년 정도가 더 걸릴 것으로 예견되고 있다. 사고 후 10년이 지난 2021년부터 본격적인 폐로 작업이 시작됐으며,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2041년에서 2051년까지는 완료될 것이라 한다.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류 결정
日 정부 밝힌 이유는 ‘저렴한 비용’
감시·제어해야 할 IAEA마저 허용
핵물리학자로서 개탄 금할 수 없어
2016년 일본 정부는 전문가 회의를 통하여 원자로의 과열로 녹아내린 핵연료를 냉각시키기 위해 투입된 냉각수와 유입된 지하수가 합쳐진 오염수를 다핵종제거설비(ALPS)로 62종의 주요 방사성 핵종을 제거한 후, (1) 해양에 방류할지 (2) 수증기로 증발시킬지 (3) 전기분해를 통해 수소와 산소로 방출시킬지 (4) 지층에 주입할지 (5) 땅에 파묻을지 등 5가지 해법 중 해양에 방류하는 것이 ‘최단 기간에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시행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마침내 2021년 4월 일본 정부는 오염수의 해양 방류를 결정한다. ALPS 처리 후 남아 있는 삼중수소 등 일부 방사성 핵종이 포함된 오염수를 안전기준 이하로 희석시켜서 2051년까지 약 30년에 걸쳐 바다로 방류하겠다는 것이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사고 당시 일본은 중의원과 참의원이 만장일치로 소련 정부에 신속하고 투명한 정보공개 요청을 결의하며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거의 매일 전투기를 출격시켜 대기 중 방사능을 채집했고, 여객과 수화물까지 방사능 검사를 하고, 유럽에서 들여오던 수입 농수산식품에 대한 안전기준을 강화해 체르노빌 인근 동유럽은 물론이고 서유럽까지 총 12개국의 식품 수입을 금지시켰다. 심지어 1993년 러시아가 핵폐기물을 일본 근해에 버리고 있다는 사실이 공개되자 “바다는 방사능 쓰레기장이 아니다”라면서 러시아에 강력 항의하고 “당장 핵폐기물 투기를 중지하라”고 요구했다.
방사능으로 오염된 대상으로부터 방사능을 최대한 제거하는 것을 제염작업이라 한다. 제염작업은 일반적으로 사방에 흩어져 있는 방사선원을 찾고 모아서 밀봉하여, 심층 지하와 같이 접근이 불가하고 더 이상 흩어지지 않을 안정적인 장소에 처분하는 작업을 뜻한다. 이는 지구상에 이제까지 존재하지도 않았던 인공 방사성 핵종들이 흩어져서 지구 생태계에 어떤 예기치 못한 교란을 가져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방사성 오염수의 해양 방류는 정확히 이에 반하는 것으로, 한 곳에 모아 처분해야 할 방사성폐기물을 인위적으로 흩뜨려 인류 공동의 유일한 터전인 지구 전체를 오염시키는 행위다. 이러한 범인류적 방사능 오염을 감시하고 제어해야 할 국제원자력기구(IAEA)까지 나서서 연간 허용치 이하라며 30년 방류를 허용한다니, 핵물리학자로서 할 말을 잃었다. 도저히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될 것 같은 생각에서, 후쿠시마 오염수의 해양 방류 및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국제적 공모에 대해 네이처 등 과학 잡지를 통한 고발을 생각했다.
하지만 공분을 기대했던 동료 외국 학자들의 반응은 사실 무척 싸늘한 것이었다. 한국 사람들은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는 민감하면서도 동해안에 즐비한 한국의 원전들에서도 방사성 오염수가 방류될 수 있다는 걱정은 안 한다니 참으로 의아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만에 하나 현재 양산 단층 인근에 집중적으로 건설돼 있는 고리(신고리), 월성(신월성) 원전 총 16개의 원자로 중 하나라도 잘못되는 경우엔, 그것은 일본열도에 막혀서 멀리 퍼지지도 못하고 동해안에서만 지속적으로 축적될 것이라는 무서운 얘기였다.
작년부터 방류 전 삼중수소 농도를 측정하는 저장소와 해저터널 등 후쿠시마 방사성 오염수 해양 방류 시설이 차곡차곡 완공되고 있는 가운데, 오늘도 후쿠시마 원전 항만에서 잡힌 물고기들에서는 기준치의 수백 배를 초과하는 방사성 핵종이 검출되고 있다.
2023-06-13 [1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