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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정당 현수막, 먼저 철거해야 국민 지지 받아
바야흐로 정당 현수막이 길거리마다 홍수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내용을 보고 있노라면 조롱과 비방이 난무하면서 때로는 보기 민망해 아이들이 볼까 염려될 때도 있다. 정당 현수막은 정당으로서는 제작 비용이 비교적 저렴하고 정책이나 정치적 현안을 단순하고 명료하게 국민에게 전달할 수 있는 홍보 수단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무분별하게 난립하는 것은 정당을 오히려 외면하게 하고 불신을 키울 수 있다.
주로 정당 현수막은 선거철에 등장하는 것으로 국민들은 알고 있는데, 지난해 말 선거철이 아닌데도 갑작스럽게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곳이면 어디서나 정당 현수막이 나붙기 시작해 국민 모두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이것은 지난해 말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옥외광고물법)이 개정·시행되면서 정당은 신고·허가 필요 없이, 수량·장소 제한 없이 현수막을 걸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이로써 정당들이 앞다투어 교차로 등 잘 보이는 곳이라면 어디든 정당 현수막을 붙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전에는 정당은 정당법에 따라 ‘자당의 정책이나 정치적 현안에 대한 입장을 인쇄물·시설물·광고 등을 이용하여’ 홍보할 수 있고, 다만 시설물을 설치할 때는 옥외광고물법에 따라 자치단체장의 허가를 받은 뒤 지정된 게시대에 설치해야 하는 등 일정한 제한이 있었다. 하지만, 정당 활동의 자유와 정책 홍보의 적시성을 보장하자는 취지에서 옥외광고물법이 위와 같이 개정되었다. 그러나 당초의 그 명분과 달리 정당의 일방적 주장이나 특정 대상에 대한 비난·조롱, 개인 홍보 등을 담은 형형색색의 현수막들이 길거리마다 난립하기 시작하면서, 도시의 풍경은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이처럼 정당 현수막이 난립하게 되면서 그 내용이 조롱이나 비방 등으로 아이들에게 부끄러울 정도로 저열한 것을 차치하더라도, 보행자의 안전은 말할 것도 없고, 주변 차량의 움직임을 볼 수 없게 가로막는 등 차량 통행의 안전을 위협하기도 한다. 또 도시 미관을 크게 해쳐 수많은 민원과 언론의 질책을 받으면서, 주무 부처인 행정안전부는 올해 5월 ‘정당 현수막 설치·관리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국회에서도 최근까지 ‘옥외광고물법’의 개정을 위한 입법 발의가 되기도 했다.
행정안전부 가이드라인의 주요 내용은 △어린이·노인·장애인 보호구역 내 설치 금지 △보행자가 통행하거나 차량 운전자의 시야를 방해할 우려가 있는 곳은 끈의 가장 낮은 부분이 2m 이상이 되도록 설치 △표시 방법이나 설치를 위반한 경우 해당 지방자치단체에서 철거 가능 등이다.
그런데 주무 부처인 행정안전부와 국회의 위와 같은 노력에도 현재까지 별다른 성과 없이 오늘도 어제와 마찬가지로 정당 현수막은 도시 곳곳에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곳이면 어디든지 볼썽사납게 나부끼고 있다. 행정안전부에서 제시한 ‘가이드라인’이라는 것은 원래 설치나 관리에 한정되는 것이라서 현재의 정당 현수막 난립으로 인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한계가 있음이 분명하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국민들이 정당 현수막으로 인하여 겪고 있는 고통을 모를 리 없고 정치권이 마음만 먹으면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임에도 ‘옥외광고물법’의 개정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모두의 책임은 어느 누구의 책임이 아니다’라는 글귀처럼, 여당과 야당 모두의 책임, 즉 정치권 전체의 책임 때문이 아닐까.
여당과 야당에 동시에 제안해 본다. 먼저 ‘우리 당은 지금 이 순간부터 정당 현수막을 걸지 않겠습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건 다음, 지금 길거리마다 걸려있는 현수막을 앞장서서 철거해 보라. 그러면 곧바로 그 정당은 여당이든 야당이든 국민의 열렬한 지지를 받을 것이다.
2023-09-26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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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농촌 의료 현실, ‘시장 원리’만으론 한계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라고 헌법 제36조에는 이른바 국민보건권이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농촌 주민들에게 이 조항은 단순히 단어의 나열에 불과하다. 내 건강을 관리해 줄 의료시설이나 ‘의사 선생님’을 농촌 현장에서 만나기란 사실상 쉽지 않기 때문이다.
농촌 지역의 의료 공백 심화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거주지에서 가까운 곳에 응급의료센터는 아예 찾아보기가 힘들기 때문에 갑자기 아프거나 사고를 당해서도 안된다. 병·의원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최근 전국 612개 면(面) 지역을 분석해 보니 2020년 기준 병원이 한 곳도 없는 지역이 538곳(87.9%)이나 됐다. 교통마저 크게 불편해 아픈 몸을 이끌고 읍내까지 나가야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설령 병원이 있다 하더라도 큰 병은 치료가 불가능해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 서울 등 대도시 병원까지 가야 하는 형편이다. 실제 국민건강보험공단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21년 거주지 외 다른 지역 큰 병원을 찾아가 치료를 받은 원정 진료비는 무려 21조 8559억 원으로 전체 진료비의 21%에 달한다.
더 큰 문제는 의료 환경이 열악한 농촌 지역에 공보의마저 충분히 공급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공보의 배출 인원이 해마다 줄어 공급 여력이 없다는 어려움도 있지만, 그렇다고 이러한 이유를 내세워 농촌 기초 의료 체계의 보완을 미룬다면 ‘실패한 정부의 의료정책’이라는 비난을 받을 것이다.
최근 정부는 부족한 의료 인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과대학 신설보다 기존 의대 정원 확대로 방향을 잡으면서 공공 의대와 지역 의대 설립 추진에 빨간불이 켜졌다. 의료 공백이 심각한 농촌이나 지방 소도시에선 의대가 없는 지역에 의대를 신설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단순히 정원만 늘려서는 이들이 필수·지역 의료에 종사한다는 보장이 없는 만큼, 지역 의대에서 장학금으로 양성한 의사는 일정 기간 지역에서 일하게 하는 체계를 만들자는 것이다.
농촌이 대도시에 비해 의료·복지 서비스가 열악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돈이 되는 곳에 사람과 투자가 몰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료 서비스는 의사와 환자 간 의료 정보의 비대칭성과 누가 언제 어떻게 환자가 될지 모르는 의료 수요의 불확실성, 의사만이 의료 시술 행위를 할 수 있는 의료 공급의 독점성 때문에 시장에 완전히 맡겨놓을 수는 없다. 그래서 공공의 규제가 필요한 부분이다. 특히 농촌 의료 공백 문제를 시장의 수요·공급 원리로만 풀려고 하면 의료 공백을 넘어 ‘의료 진공’ 상태로 악화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사람이 돌아오는 농촌’을 만들기 위해서는 의료·복지·교육·교통 등의 인프라가 갖춰져야 한다. 무엇보다 열악한 농촌 의료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공공 의대와 지역 의대 설립을 긍정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정부와 정치권, 의료계, 유관 기관들이 머리를 맞대고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농촌의 의료 공백 해소를 위해 고민해야 한다.
2023-09-19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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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가업승계 제도 개선으로 경제 활력을
독일은 장수기업이 많기로 유명하다. 100년 기업은 1만 개가 넘고, 200년 된 기업도 1500개가 넘는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100년 기업은 14개에 불과하다. 짧은 산업화의 역사 탓도 있겠지만, 가업승계 지원 제도를 살펴보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가업승계 전후로 각종 까다로운 요건을 요구하는 탓에 기업들은 제대로 제도를 활용하기 어렵다. 혁신과 성장을 위한 업종 변경과 자산 처분도 제한되고, 회사가 어려워지더라도 고용은 똑같이 유지해야 하는 요건들이 있다. 그 때문에 특별한 제한 없이 가업승계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독일의 연간 제도 활용 건수가 1만 건이 넘는 동안 우리나라는 100건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정부는 중소기업인들의 현장 목소리를 대폭 반영한 ‘2023년 세제개편안’을 발표했다. 중소기업계는 즉각 환영 의사를 보냈다. 이번 세재개편안이 중소기업의 원활한 승계 지원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가업승계 증여세 과세특례 저율과세(10%) 구간을 60억에서 300억 원으로 상향조정해 세 부담을 줄였고, 조세의 일부를 장기간에 걸쳐 나눠 납부할 수 있는 연부연납도 가업상속공제와 동일하게 20년으로 확대해서 적용하기로 했다. 또 승계기업이 기업 환경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업종 변경의 범위를 중분류 내에서 대분류로 범위를 확대해 사후관리 요건을 완화했다. 이번 제도 개선을 통해 가업승계를 계획한 중소기업들은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서 조금이나마 숨통을 틔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과제는 남아있다. 산업 트렌드 변화와 생산인구 감소 등 급변하는 경영 환경 속에서 중소기업이 투자를 늘리고 혁신 동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업종 변경 제한 요건을 완전히 폐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행 제도는 투자가 잘 돼 업종이 바뀌면 요건을 위반한 게 돼 투자도 자유롭게 할 수 없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업승계가 활성화된 독일과 일본의 경우 업종 변경의 제한이 없고, 오히려 일본은 사업 전환을 위해 보조금까지 지원하고 있다. 산업이 다양해지고, 변화의 속도도 빨라지는 만큼 업종 변경을 제한하는 것은 시대에 맞지 않다.
그간 가업승계 지원 제도 개선이 미진했던 이유는 2008년 가업승계 지원 제도 도입 이후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던 ‘부자 감세’라는 편견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가업승계로 인해 주주가 피해를 본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이는 중소기업계의 현실과 괴리가 크고, 적기에 세대 교체가 이뤄져야 스케일업 할 수 있는 가업승계의 중요성을 외면한 주장이다.
중소기업의 경영 환경이 열악하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전문경영인을 초빙할 수도 없고, 자녀들도 부모 세대가 힘들게 기업을 경영한 것을 봐왔고, 자신들도 기업을 물려받으면 부모와 같이 힘든 길을 걸어야 할 것을 알기에 승계를 쉽게 결정할 수 없다. 현재 한국은 고령화가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으며, 70세 이상 중소기업 CEO도 2만 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승계가 원활하지 않으면 폐업이나 매각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 승계를 고민하는 기업들은 중소기업 가운데에서도 경쟁력이 있는 기업들이다. 그렇지 않아도 빨간불이 들어온 경제 상황에서 경쟁력 있는 기업들이 적기에 승계를 못해 문을 닫는다면 경제 둔화와 세수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이렇게 승계는 개별 기업의 문제를 넘어 국가 경제에도 영향을 미친다. 또한 근로자의 생계와 그 기업과 함께하는 협력사들의 운명이 달린 사회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을 개인의 자산이 아닌 사회의 자산이라 보고, 우리 사회의 자산이 소실되지 않도록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한 것이다.
이제는 가업승계를 ‘기업의 지속적 성장, 일자리 창출과 유지, 무형의 사회‧경제적 자산의 전수’라는 관점으로 인식 전환을 하고, 안정적인 가업승계 지원을 통해 위기에서도 견딜 수 있는 장수기업 육성이 필요한 때이다. 우리 경제의 활력이 꺼지지 않도록 현실에 맞는 확실한 제도 개선이 하루빨리 이뤄지길 기대해 본다.
2023-09-14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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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묻지마 범죄’ 재발 막으려면
최근 불특정인을 대상으로 한 칼부림 등 ‘묻지마 범죄’가 잇달아 발생하면서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 제3자가 볼 때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범죄지만 범인인 당사자에게는 이유가 분명히 있긴 할 것이다. 오랜 기간 마음 내면에 누적돼 있던 무언가가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표출되면서 이러한 끔찍한 범죄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범죄를 저지른 이들에게는 엄중한 책임과 처벌이 내려져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이들이 정부의 교정시설을 거쳐 사회로 나갈 때 다시는 이러한 범죄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지금부터라도 이러한 ‘묻지마 범죄’를 저지른 이들에 대한 체계적인 교화 시스템과 프로그램 마련이 시작돼야 한다. 물론 지금도 부산구치소를 비롯한 전국의 모든 교정시설에서는 수용자들의 재범 발생을 막기 위해 정서적 순화에 힘쓰고 가족·타인과의 교류와 사회적 조화의 중요성을 심어주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가족과 소통이 부족한 수용자들의 가족 관계 개선을 위해 일반 가정집 같은 공간에서 가족과 밀착해서 소통하고 정을 나눌 수 있도록 하는 ‘가족 만남의 날’을 운영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가족과 집을 그리워하는 수용자들을 위해 3박 4일 정도 교도관 동행 없이 집에 보내주는 ‘귀휴’ 제도와 장례, 결혼 등 가족의 중대사 때 참석을 허용해 오랫동안 끊어진 가족 관계를 복원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제도도 있다.
부모님이나 가족들에게 전화를 통해 수분 간 통화할 수 있도록 하는 ‘전화 연결 제도’ 역시 가족의 중요성을 수용자들에게 일깨워줘 사회로 돌아갈 때 건강한 사회인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해주는 프로그램 중 하나다. 이밖에 종교인이나 심리치료사, 웃음 치료사 등 외부 강사를 초빙해 힘들어 하는 수용자들의 정서적 안정과 마음의 순화를 돕는 맞춤형 방문 집회도 수시로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프로그램을 통해 가족과 사회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타인을 먼저 배려할 수 있도록 할 뿐 아니라 본인 역시 사회로부터 소외감을 갖지 않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책임감과 성취감을 심어주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교정 시스템은 보다 발전하고 현대화돼야 하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의 교정 시스템 하에서는 시설에서 출소자가 석방되어 나오면 곧바로 사회로 던져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의 사례를 보면 출소한 이들을 위한 중간처우시설이 활성화돼 있다. 보호감호 처분을 받은 이들이 주거형 혹은 반주거형으로 운영되는 중간처우시설에서 사회생활 정착을 위한 각종 심리 프로그램을 제공받게 된다. 이러한 시설에서는 4~10개월간 사회 적응 문제 요인을 심층 분석해 그 해결책을 제시하며 출소자들의 사회 복귀를 돕고 있다. 특히 최근 횡행하는 ‘묻지마 범죄’는 살인, 상해, 폭행 같은 강력 범죄가 대부분이라 중간처우시설의 필요성은 더욱 높아진다. 전문가에 따르면 위험 정도가 높은 범죄의 재발을 막는 데 이러한 중간처우시설이 매우 효과적이다.
이러한 중간처우시설은 국내에서는 2009년에 도입됐으나 현재까지 전국 54개 교정시설 중 5곳에서만 운영 중이다. 결국 우리나라는 교도소에서 수용자의 교화 업무를 전부 다 담당해야 하며 이는 심각한 과밀 현상을 초래하고 있다. 실제 지난해 기준 전국 교정시설의 수용률은 104.36%로 정원을 넘어서고 있다.
수용자를 위한 교정시설의 인력 상황도 열악하다. 법무부에 따르면 전국 교정시설 중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의사는 진주교도소에 배치된 1명뿐이다. 정신질환 등으로 범죄를 저질러 치료감호가 선고된 수용자를 담당하는 기관 역시 국립법무병원이 유일하다. 나머지 치료를 요하는 수용자는 민간 파견 인력이나 화상 시스템 진료로 대처해야 하는 실정이다.
교정업무를 담당하는 시설에서는 수용자의 재범 방지를 위한 맞춤형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운영하는 등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묻지마 범죄’의 유행 등 새로운 형태의 범죄 발생에 발맞춘 체계적이고 선도적인 교정 시스템의 확보와 기존 시설 체계의 개선 노력이 절실한 실정이다.
2023-09-13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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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공동주택 소방시설 세대 점검
소방청 통계자료인 ‘2022년 발화 장소별 화재 통계’를 보면 부산 지역 공동주택 화재 건수는 총 470건이며 인명 피해는 사망 12명, 부상 51명, 재산 피해는 8억 2960여 만 원이다. 발화 요인의 대부분은 부주의가 297건(약 70.2%)으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했다. 소방청의 올해 발화 장소별 화재 통계를 살펴보면, 전체 화재 발생 건수는 3만 6267건이고 주택 화재 건수(9650건) 대비 공동주택 화재는 4399건으로 집계됐다. 그 중 아파트 화재가 2666건(약 60.6%)으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했다.
다양한 주거 형태 중 아파트는 많은 인원이 밀집된 특성이 있어 화재 발생 시 대형 인명 피해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며, 사상자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가장 큰 원인으로는 소방시설의 미작동이라 볼 수 있는데, 평소 소방시설의 오작동으로 관리자가 소방시설을 임의로 정지해 두거나 또는 세대 내 감지기 고장 등 점검 불량인 경우가 종종 있다. 화재경보기 미작동은 아파트 입주민의 신속한 대피를 방해하며, 자동으로 초기 화재를 진압해 주는 스프링클러 설비 등 소방시설의 불능으로 막대한 인명과 재산 피해를 초래한다.
2022년 12월 1일 ‘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 제·개정됨에 따라 소방시설 자체 점검 내용이 일부 변경되었다. 공동주택(아파트)의 경우 세대별 점검 방법 규정 신설로 관리자(관리소장, 소방안전관리자, 소방안전관리보조자 등)와 입주민(세대 거주자)은 2년 이내 모든 세대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소방시설을 점검을 해야 한다.
첫째, 아날로그 감지기 등 특수 감지기가 설치되어 있는 경우에는 수신기에서 원격 점검할 수 있으며, 점검할 때마다 모든 세대를 점검해야 한다. 둘째, 수신기에서 원격 점검이 불가능한 경우 매년 작동 점검만 실시하는 공동주택은 1회 점검 시 마다 전체 세대 수의 50% 이상, 종합 점검을 실시하는 공동주택은 1회 점검 시 마다 전체 세대 수의 30% 이상 점검하도록 자체 점검 계획을 수립, 시행해야 한다.
셋째, 입주민은 점검 서식에 따라 스스로 점검하거나 관리자 또는 관리업자로 하여금 대신 점검하게 할 수 있다. 넷째, 관리자는 세대별 점검 현황을 작성하여 자체 점검이 끝난 날부터 2년간 자체 보관해야 한다.
다섯째, 점검 결과 보고서 제출 변경이다. 관계인은 점검이 완료된 날로부터 15일 이내 점검 결과를 관할 소방서에 제출해야 하며, 만일 불량 사항이 있을 시 이행 계획서를 첨부해 소방서에 제출해야 한다. 불량 사항은 이행 계획서에 따라 이행하고 이행 완료 보고서를 만료일 10일 이내 소방서로 제출해야 한다. 또한, 자체 점검 결과 중대위반사항(소화펌프, 제어반과 수신기 고장, 방화문·자동방화셔터 훼손 등)이 발견된 경우 지체없이 수리 등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
기타 개정 사항으로는 자체 점검 결과 보고를 마친 관계인은 보고한 날로부터 10일 이내에 소방시설 등 자체 점검 기록표(시행규칙 별표5)를 작성하여 특정소방대상물의 출입자가 쉽게 볼 수 있는 장소에 30일 이상 게시하여야 한다. 공동주택 세대 점검은 소방시설을 자체적으로 점검하는 것으로 상시 작동 가능한 상태로 유지하기 위한 관계인의 의무 사항이다. 기존 공동주택 관리사무소(소방안전관리자) 주도의 소방안전관리에서 공동주택의 입주민 모두가 소방안전 관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체 점검 결과 세대 내 소방시설의 임의 변경과 철거가 있다면 원상 복구와 불량 사항 발생 시 수리 교체를 하여야 한다. 공동주택 세대 점검에 관련된 법 조항이 신설되면서 기존 관리사무소(소방안전관리자) 뿐만 아니라 입주민 모두가 주변의 소방시설에 관심을 가지고 우리 집을 화재로 인한 피해로부터 예방하기 바란다.
2023-09-12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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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해양경찰 창설 70주년 맞이하여
9월 10일은 해양경찰의 날이다. 올해로 창설 70주년을 맞는다. 1953년 12월 23일 해군으로부터 180톤급 경비정 6척을 인수하여 ‘부산시 중구 중앙로 4가 17-9번지’에서 해양경찰대를 창설하였다. 창설될 당시만 해도 임무는 단순하였다. 평화선을 침범하는 외국 어선을 단속하고, 어족 자원을 보호하는 경비 임무였다. 한국전쟁 직후 혼란기를 틈타 일본 어선이 빈번하게 우리 해역에 넘어와 불법 어로를 자행하는 등 해양 주권을 침해하였고, 이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창설 70주년이 된 해양경찰은 1만 4000여 명의 직원과 350여 척의 함정을 가진 종합 행정기관으로 성장하였다. 바다에서 치안, 소방, 안보, 국경 관리, 구조 안전, 환경 등 다양한 임무를 수행한다. 실로 ‘떠다니는 바다 위의 정부’라 하겠다. 이렇게 발전하기까지는 여러 좌절과 아픔도 있었다. 1953년 내무부 소속으로 창설된 이후, 상공부 산하로, 다시 내무부로, 경찰청으로 소속이 변경되었다가, 1996년 해양수산부가 설립되면서 그 아래 외청으로 독립하였다. 2014년에는 세월호 참사로 해체되는 아픔을 겪기도 하였다. 863함, 72정 침몰 사건이나, 고 박경조, 고 이청호 순직 등 희생자들도 많았다. 하지만 국민의 기대와 걱정 속에서도 꾸준히 발전을 거듭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해양경찰의 존재 이유는 예나 지금이나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 해양 주권을 수호하는 것이다. 해양경찰 작용을 역사 속에서 찾기는 어렵지 않다. 장보고 대사의 ‘청해진’(淸海鎭)은 성격상 해양 치안 기관이었다. 828년 창설된 청해진은 외적을 물리치는 군사적 임무보다는 해상 질서를 어지럽히는 해적을 퇴치하는 해양 치안 임무를 수행하였다. 청해진이라는 명칭은 ‘널리 바다를 깨끗하게 한다’라는 의미이다. 즉, 해적을 깨끗이 소탕하여 무역로를 보호하고, 안정된 해상 치안 질서를 유지하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해양경찰청의 미션인 ‘깨끗하고 안전한 희망의 바다’와도 같은 의미이다. 이렇게 청해진에서 했던 일은 오늘날 해양경찰이 수행하는 임무와 같았다. 그러고 보면 청해진은 해양경찰의 원조였고, 장보고 대사는 초대 해양경찰청장이었다고 할 만하다.
조선 영조 30년(1754)에는 백령도 황당선 사건이 있었다. 황당선은 낯선 이국 선박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이 배들은 서해 5도와 황해도에 자주 출몰하여 불법 어로를 하였다. 관헌이 황당선으로부터 중국인을 추포하자, 인근 배의 중국인이 떼를 지어 몰려와 겁박한 사건이었다. 이에 조선 정부는 황당선의 약탈 행위를 막거나 이국 선박이 연안에 접근하는 것 자체를 봉쇄하는 추포무사(追捕武士)와 추포군(追捕軍)을 운용하였다. 오늘날 서해 5도에서 중국 어선을 단속하는 서해 5도 특별경비단과 흡사한 조직이었다.
해양경찰은 먼 바다에서 험난한 파도와 싸우며 일한다. 국민의 눈길이 가까이에는 없지만, 해양경찰은 바다에서 불법 어선을 잡고, 불을 끄고, 조난자를 구한다. 우리 해역을 순찰하며, 해양 환경을 지킨다. 국민 생명 보호와 해양 주권 수호를 위하여 광역적이고 통합적이며, 자연 제약적이고 국제적인 임무를 수행한다. 기꺼이 일정다역(1艇多役)의 노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9월 10일은 그런 해양경찰이 칠순을 맞는 날이다. 해양경찰은 사기를 먹고 산다. 해양경찰이라는 배는 국민의 격려와 칭찬 없이는 항해할 수 없다. 오늘만큼은 해양경찰의 손을 잡고 어깨를 다독이며 칭찬해 주자. 바다로 나아갈 에너지를 주고 마음의 연료를 넣어주자. 그러면 그것이 우리 바다를 지키는 원천이 될 것이다. 우리 바다를 지키다가 순직한 고 이청호 경사의 결기처럼 해양 주권 수호의 굳은 의지로 변할 것이다. “저 수평선을 넘어오는 외국 어선을 보면 피가 끓습니다. 이 바다가 누구의 바다인데….”(인천 해경 함정 부두에 적혀진 고 이청호 경사 흉상의 글귀 중에서).
고명석 부경대 해양경찰학과 교수
2023-09-05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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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교권 회복으로 공교육 정상화하길 바라며
2015년 교육청 생활지도 담당 과장 때 일이다. 수업 방해 학생에 대한 구체적인 지도 방안에 대해 장학사들과 깊이 논의를 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교실 뒤편이나 복도에 서 있게 하고, 반성문을 쓰거나 운동장을 걷게 하는 것 등의 모든 행위가 아동복지법 상 ‘정서적 학대 행위’에 해당하기 때문이었다.
요즘 아침 신문을 대할 때마다 교육 현장의 어두운 소식에 마음이 무겁다. 서울 서이초등학교 선생님의 안타까운 일로 인해 교육계는 물론 정치권까지 교권과 학생 인권에 관한 관심이 높다. 교권 추락의 원인 규명 요구도 뜨겁다. 교육부에서는 교권 침해 학생에 대한 성찰 글쓰기, 분리 조치, 단계별 지도 방법, 학부모 민원 대응 등이 포함된 ‘교원의 학생 생활지도에 관한 고시안’을 마련하고, 교권 회복 4법을 포함한 교권 회복 종합 대책도 속도감 있게 추진할 계획이다. 교육부가 교사의 정상적인 교육 활동에 대한 침해 사안과 교권 보호를 위해 적극 대응한다는 것은 긍정적이다. 다만 이를 근거로 학칙을 개정할 때 교권과 학생 인권이 대립이 아닌 상호 존중을 전제로 추진되어야 한다.
캐나다의 초등학교에서 일하는 제자를 통해 교권 침해 사안에 대한 학교 시스템을 들었다. 교사와 학생, 학부모 간에 각자 지켜야 할 법적 가이드라인이 있어 서로 존중하는 교육 문화가 정착돼 있다고 한다. 우리도 정당한 학생 지도에 대해 교원의 지도권이 부여되고, 학생이나 학부모가 교사의 권한을 인정하고 따르는 교육 문화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
교권 침해 대응책도 학교급별 특성에 맞게 수립해야 한다. 유·초등학교는 학부모 민원 대응에 중점을 두고, 중학교는 발달 단계를 고려해 수업 방해와 지도 불응 학생에 대한 지도 인력을 배치할 필요가 있다. 고등학교는 학업 성적, 진로 등에 대한 미래 불안감이 주로 표출되는 만큼 직업교육과 다양한 대안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게 좋다.
지난해 대한민국의 합계 출산율은 0.78명으로 OECD 회원국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육아 부담, 취업 문제, 경쟁 교육, 과다한 사교육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특히 교육에 대한 과열은 학교 폭력, 교권 침해, 학업 중단, 생명 경시 풍조 같은 문제도 낳는다. 이에 따라 매우 전문적 수준의 치료와 상담이 요구되는데 이를 교사가 홀로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교사가 수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분야별 위기 학생 대응 전문 인력을 별도 배치하고, 지역 사회 전문가 그룹과 연계한 지원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나아가 학생들의 건전한 성장을 위해 문화예술, 스포츠 활동 등을 활성화하고 토론, 협업, 학생 참여 중심 등의 수업을 활발히 진행해 학생 간, 학생과 교사 간 소통과 신뢰를 두텁게 하는 학교 문화가 조성돼야 한다.
학생 대부분은 교사의 합리적인 지도에 잘 따르고, 교사는 학생을 인격적으로 대하며 애정과 열정을 쏟는다. 학교를 운영하는 3주체는 교원, 학생, 학부모이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처럼 교육 정상화를 위해 모두의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공감과 존중을 기반으로 깊이 생각하고 판단하며 서로 소통하고 책임지는 학교 문화가 조성된다면 갈등과 오해는 사라질 것이라고 믿는다. 무덥던 지난여름 내내 ‘교육의 공공성을 회복하고 안전한 교육 환경을 만들어 달라’는 선생님들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애절한 함성이 헛된 메아리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2023-09-07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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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부산 미래 반짝이는 낙동강 하굿둑으로 가자!
‘매직 텐’이란 개념이 있다. 도시에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적인 열 가지 장소를 뜻한다. 광장이나 거리, 동네 시장이 될 수 있고 미술관이나 박물관도 포함된다. 성공적 도시는 사람들이 가고 싶은 곳이 열 곳 이상 있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부산은 매력적인 도시다. 광안대교, 해운대는 세계인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부산은 매직 텐이 있는 도시인가? 쉽게 답할 수 없다. 파리와 뉴욕, 런던처럼 세계적 수준의 공원이나 도서관, 거리가 상대적으로 충분하지 않은 탓이다. 매직 텐의 도시로 도약하려면 공공 디자인의 관점이 요구된다. 기능과 효율 중심이었던 부산의 인프라를 사람이 찾고 싶은 경험의 공간으로 재편해 도시 곳곳을 매력이 넘치는 장소로 변화시켜야 한다.
최근 낙동강 하굿둑이 새롭게 태어나 부산이 매직 텐 도시로 향하는 길이 열렸다. 공공 디자인이 적용되면서 1987년 준공된 지 36년 만에 기능 중심의 시설에서 사회적 교감이 일어나는 경험의 공간으로 재편된 것이다. 그동안 한국수자원공사가 관리하는 하굿둑은 지역 사회의 번영을 위해 다양한 기능을 수행해 왔다. 바닷물의 역류를 막아 먹는 물을 생산하고, 부산과 경남을 잇는 도로 역할도 담당해 왔다. 이제는 한발 더 나아가 부산을 세계적 도시로 만들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에 부응해 사람들이 찾아오는 공간으로 그 의미를 넓혔다.
먼저, 바뀐 외관은 ‘삼도귀범(三島歸帆)’을 모티브로 한 범선 모양을 적용했다. 삼도귀범은 낙동강 하구 삼도(쥐섬, 솔섬, 오리섬)에서 낙조를 뒤로하고 돌아오는 범선의 모습을 뜻한다. 글로벌 허브 도시 부산의 위상에 걸맞게 낙동강 하구의 낙조와 범선의 이미지를 녹여낸 것이다. 종전 투박한 육각형의 상단 구조물은 철거돼 만날 수 없다. 대신 유리 패널이 붙은 종이배 모양의 세련된 디자인을 감상할 수 있다.
두 번째, 높이 50m 위에 강과 바다를 한 눈에 담을 수 있는 전망대가 만들어졌다. 시민들은 지금까지 하굿둑 상부로는 갈 수 없었다. 이제는 전망대 실내에서 체험형 미디어아트 작품 감상을, 옥상에서는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바깥 경치를 즐기고 포토존에서 사진도 찍을 수 있다. 셋째, 야간에 경관용 조명이 불을 밝힌다. 하굿둑 550m에 설치된 2200개 램프가 날씨와 바람, 철새 등 6개 장면을 하루 3시간 동안 연출한다. 미세먼지 농도에 따라 색깔이 변하고, 날씨 정보를 제공하며, 새가 날아가는 장면까지 빛으로 표현된다. 아직 시범 운영 중인데도 인스타그램 등 SNS에 사진이 올라올 정도로 관심이 뜨겁다. 향후 하굿둑은 서부산을 대표하는 새로운 랜드마크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 부산의 균형발전이라는 점에서 하굿둑의 재발견은 큰 의미를 지닌다. 부산 서쪽 낙동강은 동부산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 하굿둑 경관 리모델링으로 낙동강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됐다. 낙동강은 다대포의 낙조를 비롯해 을숙도의 생태, 을숙도문화회관과 부산현대미술관의 문화 예술, 부산에코델타시티의 스마트빌리지에 이르기까지 뛰어난 문화·생태·관광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새롭게 태어난 낙동강 하굿둑은 이러한 자원을 하나의 관광 코스로 연결하는 고리이자, 부산을 매직 텐의 도시로 이끄는 마중물이 될 것이다.
10월 초 낙동강 하굿둑 경관 조명 점등식과 함께 2030부산세계박람회 유치를 기원하는 음악회가 진행된다. 매직 텐 도시를 향한 부산의 새 출발이자 지역 발전을 고대하는 시민들의 염원이 모이는 순간이다. 자, 이제 낙동강 하굿둑으로 가자. 둑을 따라 걷고 높은 곳에 올라 낙동강과 바다, 그리고 철새의 비상을 함께 즐겨보자. 멋진 야간 조명은 사진으로 담자. 빛으로 반짝이는 만큼 부산의 미래가 밝아지길 희망하며.
손민석 한국수자원공사 부산권지사 관리부장
2023-09-05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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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조선통신사 체험선을 띄우자!
태풍 전야의 8월 초, 부산항이 씨끌벅적했다. 212년 만에 조선통신사 사절단이 제13차 항해를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가대 해신제를 시작으로 조선통신사 항해에 한껏 들뜬 시민들의 긴장과 흥분은 한여름 더위보다 더 뜨거웠다. 마침내 부산항을 떠난 ‘복원선’은 대마도 북단 히타카츠항에 도착했고, 이튿날 대마도 남쪽 이즈하라항에서 열린 ‘이즈하라 마츠리’에 참여도 했다.
정유재란 직후인 1607년부터 약 200여 년간 진행됐던 조선통신사 사절단의 일본 항해는 1811년을 끝으로 중단됐다. 1811년 제12차 사절단은 대마도에서 귀환해야 했었다. 일본이 사절단의 규모와 행사도 대폭 축소하고, 대마도까지만 오도록 했기 때문이다. 일본이 굳이 조선이 아니라도 충분히 서구 선진 문물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였다.
그후, 메이지유신 성공으로 현대화 일로를 달리던 일본은 마침내 한반도를 강제 침탈하기에 이르렀다. 1945년 해방 이후 1965년 국교 정상화까지 한일 외교 협력은 중단되었다. 그후로도 오래도록 질시와 반목, 불통이 지속되었고,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의 ‘일본 대중문화 개방’ 정책이 발효되고 나서야 비로소 문화 교류가 정상화되었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일제강점기에 발생했던 성노예 사죄, 강제 동원 배상, 화이트리스트 배제와 지소미아 중단, 핵오염수 방류 등 긴장과 갈등은 줄을 이었다.
‘일의대수(一衣帶水)’라는 말이 있다. ‘물만 건너면 닿는 아주 가까운 이웃’이란 말이다. 이웃을 잘 만나는 것도 복 중의 복이다. 그런데, 어찌하랴! 한반도의 운명에 일본열도는 늘 불을 지고 풀섶을 지나는 형국이니 말이다. 그럴수록 어르고 달래야 한다. 조선통신사의 철학이 ‘성신교린(誠信交隣)’ 즉, ‘정성과 믿음으로 이웃과 벗하다’인 것은 전쟁이 아니라 평화와 희망을 위해 친하게 지내자는 얘기다. 그런 측면에서 212년 만의 사행길 복원은 한일 문화 교류에 있어 매우 의미있고 중요한 행사였음에 틀림없다. 정치 상황이 긴장과 갈등으로 치달을수록 민간이 더 튼튼한 교류 협력을 지속해야 한다. 특히 부산은 역사 이래 지금까지 대일 교류의 교두보였고, 대일 항로는 ‘부산의 뱃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국제 노선이자 소통 창구였다.
그런 차원에서 조선통신사는 매우 중요한 한일 민간 교류의 상징이다. 이것이 ‘부산형 조선통신사 체험선박’의 건조가 시급한 이유다. 평소에는 조선통신사와 관련된 유물을 전시하고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선상박물관’으로 사용하다 주말에는 항만 투어를 통해 시민들에게 좀 더 친밀한 해양 체험과 교육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3~6개월에 한 번씩 통신사 사절단 형식의 국제 이벤트도 진행할 수 있다. 한일 청년 100여 명이 동승해 부산에서 시모노세키를 거쳐 세토나이카이를 경유하는 동안 한일 관계의 미래가 서서히 희망과 평화로 전환되지 않겠는가?
이를 위해서는 옛 통신사 선박을 그대로 재현하는 데 그치지 말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체험선’을 짓는 것이 절실하다. 12번의 통신사 사절단 사행에 당대 최고의 조선 기술을 적용한 최첨단 선박을 타고 갔던 것처럼, 오늘날 세계 최고 조선기술을 유감없이 구현한 최신 체험선으로 새로운 사절단을 운영하자는 얘기다. 통신사 사행길의 기종점인 부산 행사에, 매번 목포에 있는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의 재현선을 빌려올 수는 없지 않은가? 이 재현선은 2018년 돛 대신 엔진을 장착해 건조한 학술용 목선이다.
국립해양박물관은 ‘조선통신사 체험선박 건조를 통한 해양역사문화 체험’을 실현하고자 준비하고 있다. 타당성 용역도 끝났고 작년에 이어 올해도 기재부의 예산 편성을 요청 중이다. 체험선 건조 실현을 위해 시민사회는 물론 부산시와 부산문화재단, 지역 정치권과 언론의 역할이 절실하다. 조선통신사 체험선이야말로 다가오는 새로운 한일 교류의 새 장을 펼치는 소중한 발판이 되기 때문이다.
2023-08-31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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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고독사 예방 개정법’ 이대론 안 된다
2005년 고독사 현장을 처음 본 후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형사인 내 손으로 ‘고독사’라는 괴물을 없애 버리겠다는 각오로 이 문제를 파고들고 있다. 지난 2월 <고독사는 사회적 타살입니다>를 출간한 뒤 사람들은 나를 ‘대한민국 1호 고독사 경찰관’으로 불러준다. 고마운 일이지만 고독사 문제를 생각하면 힘에 겨울 때가 많다.
지난 6월 13일 자로 ‘고독사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 일부 개정되어 가장 중요한 대목인 고독사의 정의가 개정됐다. ‘가족 친척 등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채 홀로 사는 사람’에서 ‘가족 친척 등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채 사회적 고립 상태로 생활하던 사람’으로 바뀐 것이다. 법 개정의 취지는 고독사 예방법을 더 넓게 해석해 많은 사람에게 혜택을 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런 좋은 뜻이 그대로 반영되지는 않을 것 같다. 고독사 예방 개정법의 ‘사회적 고립 상태로 생활하다 임종을 맞았다’라는 부분을 어떻게 확인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아서이다.
고독사 예방법 제4조 2항에 따르면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고독사 현황 파악, 고독사 예방 및 대응 등 각 단계에 필요한 정책을 수립·시행하여야 한다’라고 분명하게 되어 있다. 그 지역에 맞는 맞춤형 고독사 예방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현황 파악이 우선이다. 현황 파악을 하지 않고 정책을 집행하는 것은 보여주기식 정책일 뿐이다. 그래서 고독사 예방은 통계 작성부터 시작해야 한다.
또 고독사의 정의를 확립하는 것도 급선무다. 고독사 정의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사망 후 며칠이 지난 후에 발견되는 죽음을 고독사로 보느냐이다. 중앙 부서와 전문가들이 모여서 사망 후 며칠이 지난 후에 발견되는 죽음이 우리나라 정서와 사회 변화에 맞는지 판단해 고독사의 정의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일본은 아직 고독사에 대한 정의가 없어서 기관마다 서로 며칠이 지난 죽음을 고독사로 할지 다투고 있는데,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일본에는 전국 수준의 자료가 존재하지 않고, 일선 행정 기관에서만 관리하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사회적 고립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다. 고독사로 추정되는 사체를 대상으로 나이, 학력, 혼인, 취업 상태, 거주 상태, 생활 여건, 건강 상태, 가족과 이웃 간의 교류 상태 등을 확인하면 된다. 하지만 법과 조례 등에 아무리 ‘고독사 현황 파악’을 명시해도 보건복지부, 광역지자체, 구청, 동사무소 어느 곳에서도 현장에 나오지 않는다. 사회적 고립 상태를 확인하지 않으면 ‘고독사 제로’ 부산이 된다. 언젠가 부산시 한 관계자는 “부산은 노인이 너무 많아 어떠한 고독사 예방책을 내놓아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라고 했다. 내 생각은 다르다. 노인이 많으면 그만큼 경험과 지식이 풍부한 인력이 많은 것이다. 고독사 예방에 필요한 것은 로봇 도우미와 같은 기술력이 아니라 인력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부산만큼 고독사 예방하기 좋은 도시는 없다. 노인을 고독사의 대상자로만 생각하지 말고 고독사의 관리자로 생각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대개 경제적 빈곤이 노인 고독사의 원인이라고 하지만 나는 가족의 붕괴로 인한 외로움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지자체는 ‘고독사 현장 실사팀’을 만들어 지속해서 사회적 고립 상태 여부를 파악해야 한다. 공무원들이 나가서 고독사 예비군인 65세 이상 홀로 거주자, 1인 가구, 무연고자들의 목소리를 들을 필요가 있다. 그렇게 나온 자료를 중앙 부서와 공유하여 그 지역에 맞는 맞춤형 고독사 예방책을 만들어야 한다. 국가는 국민이 마지막까지 편안하게 살다가 죽을 수 있게 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고독사 예방을 위한 1단계는 무조건 ‘현장’이다.
권종호 부산 영도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 경위
2023-08-29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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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바다의 황금! 우리 수산물, 변함없는 애정을
마크 쿨란스키의 명저 ‘대구(cod)’에서는 바이킹이 유럽을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말린 대구를 식량으로 하여 먼 거리까지 항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선사시대부터 수산물은 생계에 필수적인 자원이었다. 세계적인 과학 저널 네이처지에서는 수산물을 영양이 우수하고, 생산 과정에서 육류 등에 비하여 온실가스를 적게 배출하여 미래 기후 위기와 식량 부족을 해결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식량 자원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처럼 수산물은 인류에게 소중한 식량 자원이고, 수산물 안전은 인류의 생존과 관련한 문제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1인당 수산물 소비가 높아 수산물 안전에 관한 관심이 높다. 특히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는 전 국민적 관심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우리나라, 중국, 미국, 러시아 등 11개국의 전문가로 TF(태스크포스)를 구성하여 지난 2년간 일본의 방류 계획이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지 평가했다. 지난 7월에 공개한 최종보고서는 방류가 계획에 따라 진행될 경우, 인간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할 것으로 분석했다. 또한 우리나라와 중국 등 연구기관의 시뮬레이션 결과에 따르면 처리 후 방류된 오염수는 해류를 타고 태평양을 돌아 4~5년 뒤에 우리 해역에 유입될 것으로 예상되며, 이때의 방사능 농도는 우리 해역 평균의 100만분의 1 수준으로 자연 상태보다 낮을 것으로 분석됐다. 정부는 국민의 안전과 건강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으며, 과학적 분석 결과를 기반으로 국민 여러분께 “우리 수산물을 마음껏 드셔도 된다”고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다. 해양수산부는 수산물 안전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 역시 경청하며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수준의 수산물 안전 기준을 마련하고, 관리 체계를 강화해 나가고 있다.
먼저 수산물 유통 전 검사를 강화하기 위해 검사 건수를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확대한 8000여 건으로 설정하고, 추가로 민관 기관을 활용하여 위판 물량이 많은 위판장과 양식장에서 9000여 건의 방사능 검사를 시행하여 전년 대비 1만 3000여 건 이상 검사 건수를 확대할 계획이다. 또한 수산물이 유통된 이후에도 모든 일본산 취급 업체를 포함한 유통업체에 대해 원산지 단속 특별점검을 시행하고 있다. 정부는 2013년 9월부터 후쿠시마 주변 8개 현에서 생산된 일본산 수산물의 수입 금지 조치를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이후에도 견고하게 유지할 것이며, 실제 방류가 조금이라도 계획과 다르게 진행된다면, 이는 우리 국민의 안전과 건강을 위협하는 것으로 판단해 일본 측에 즉각 방류 중단을 요청할 것이다.
올해 6월부터는 일본 해상 8개 정점 조사를 통해 방사능 오염수가 우리 해역에 유입되기 전 선제적으로 우리 해역 바깥에서 자체 방사능 검사를 실시하고 있으며, 내년에는 해류의 흐름을 고려하여 태평양 도서국 인근 10개 정점을 추가한 18개 소로 확대할 것이다. 또한, 해양수산부는 국민 먹거리 안전에 대한 빈틈없는 안전망 구축에 힘쓰는 한편 수산물 소비 활성화를 위하여 소비 캠페인, 할인 행사, 기업체 단체 급식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종전에는 명절 등에 전통시장에서 구매한 수산물 금액을 온누리상품권으로 환급해 왔으나, 이를 상시 행사로 추진할 계획이다. 예를 들어 부산 자갈치시장 등에서 당일 구매한 수산물 금액의 최대 30%까지 환급받을 수 있다. 기업 단체 급식에도 국산 수산물 공급을 확대하고 기념품 등에 수산물이 활용될 수 있도록 기업 대표들과 논의하는 등 기업과 수산업계가 상생하는 방안 역시 모색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내년에는 온오프라인 매장과 전통시장에 대한 수산물 할인 행사 지원도 예산을 배 이상 투입하여 확대할 계획이며, 수산물 소비 위축을 막고 우리 어민과 수산업 종사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역대 최대 규모인 7380억 원 규모의 예산을 편성해 놓았다. 해수부의 노력도 국민의 지지와 응원이 없으면 빛을 발하기 어렵다. 국민 여러분께서도 정부를 믿고 우리 수산물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을 보여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
2023-08-30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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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세계어촌대회, 어촌 르네상스 위한 첫 발걸음
인류는 공동체를 형성하면서부터 강가와 바닷가의 어촌에서 수산물을 포획, 채취했다. 최근에는 스마트 양식 기술이 어촌의 모습을 변화시키고 있다. AI(인공지능)을 활용해 낙지 숨구멍(부럿)으로 정확한 자원량을 추정하거나, 어류의 움직임을 인식해 자동으로 먹이를 공급하고 건강을 체크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나라 어업 인구는 90%가량 감소했고, 현재 어업 인구의 고령화 비율은 44%에 달한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어촌 사회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위축되고 있는 공동체이다. 우리 정부도 어촌의 활력을 회복하기 위한 대규모 정책 사업을 추진 중이다.
글로벌 어촌 사회가 공동으로 직면한 도전 과제에 대한 공동 해법을 찾기 위한 노력도 함께 요구되고 있다. 기후 위기와 자연재해 취약성, 공동체 이완과 해체, 수산 생태계 변동, 해양 플라스틱 오염 등의 문제를 해결 위한 노력이 대표적이다. 지금까지 국가 차원에서는 개별 국가와 제한된 국제 협력을 통해 고군분투했지만 지구촌 차원에서 전환의 계기를 마련하지는 못하고 있다. 오는 9월 19일부터 21일까지 3일간 부산 부산항국제전시컨벤션센터에서 사상 처음으로 개최되는 2023세계어촌대회(2023ICFC)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023세계어촌대회는 세계적인 해양도시이자 우리나라의 해양 수도 부산에서 첫발을 내딛는 창설 대회이다. ‘어촌’을 매개로 하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앞으로도 국가와 지역을 순회하면서 지속적인 논의를 이어간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유엔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위원회(ESCAP), 세계은행(WB) 등의 국제기구 관계자와 아시아, 아프리카, 태평양 도서국, 카리브해, 유럽 등 20개국 내외 장관급 인사가 참여하는 글로벌 플랫폼으로서 논의의 장을 갖추게 되었다.
2023세계어촌대회의 핵심 키워드는 생산 중심의 어촌이 미래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어가기 위한 '전환(Transformation)'이다. 국제기구는 물론 관련 분야 석학을 초청해 '소규모 공동체의 청색 경제' '청색 전환' '어촌 관광' 등 어촌의 미래 방향성을 살펴보고, 문제 해결에 필요한 사람, 환경, 기술의 새로운 가치를 고민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특히, 창설 기념 대담회를 통해 참가국 장관들과 국내외 전문가들이 함께 전 세계 어촌의 비전을 모색하고, 공동의 과제에 대한 이행 방안 등 혜안을 찾는 첫 발걸음을 내딛게 될 것이다.
학술 콘퍼런스에 국한하지 않고 언어와 문화, 국가와 지역의 장벽을 넘어서는 다양한 부대 행사도 함께 열린다. 전 세계 어촌의 다양한 어업사, 어촌 문화와 유산, 우수 사례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30개 이상의 홍보 전시관을 조성한다. 특히, 세계 어업인이 현장에서 체감하는 어촌의 위기와 해결 과제를 나누고, 세계어촌대회 창설을 축하하는 메시지와 기대도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나라 국민이 직접 카메라를 들고 전 세계 어업인과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제작돼 국민과 함께 어촌의 가치와 중요성을 탐색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인류 어업사의 시작은 수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류의 공동체를 시작한 작은 어촌 마을은 각각 세계 굴지의 항만 도시, 관광, 문화의 중심지로 발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 전 세계 많은 어촌은 소멸 위기와 공동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에 직면해 있다. 2023세계어촌대회가 그 해법을 찾고 ‘어촌 르네상스’로 향하는 새로운 출발점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2023-08-27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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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비과학적 주장은 안 돼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로 인한 국민적 논란이 뜨겁다. 오염수가 실질적으로 인체에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는 주장이 있는 반면 무해할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필자는 무해할 것이라는 주장에 찬성하는 사람이다. 특히 ‘방사성 핵종의 해양 투기는 국제법 위반이다’ ‘삼중수소가 어류의 몸속에 축적된다’ 등의 주장은 과학적 근거를 무시한 괴담이라고 생각한다.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 이후 2년간 태평양으로 흘러 들어간 방사성 핵종의 총량은 현재 후쿠시마 오염수에 들어 있는 양보다 1000배 이상 많았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또한 원전 사고 당시 바다 유출 방사능 가운데 가장 위험한 세슘137 총량은 현재 후쿠시마 보관 탱크에 저장된 방사능 양의 2만~3만 배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하지만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약 7만 6000여 건의 국내 수산물에 대해 방사능 검사를 실시했으나, 단 1건도 기준치 이상 검출되지 않았다. 우리 바다, 우리 수산물이 ‘과학적으로 안전하다’는 것이 수많은 조사와 분석을 통해 증명된 것이다.
후쿠시마 방류수는 태평양을 한 바퀴 돌아 4~5년 뒤에야 한국 해역에 도착한다. 그때쯤 되면 한국 바닷물의 삼중수소 농도는 기존 농도에서 17만분의 1 정도 추가될 뿐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만일 바닷물이 방류수로 인해 의미 있는 수준으로 오염된다면 후쿠시마를 거친 해류가 한국보다 먼저 도달하는 캐나다, 미국 등이 먼저 반대하고 나서야 한다. 미국의 경우 환경보호청(EPA)과 해양대기청(NOAA)은 일본에서 비롯되는 방사성 핵종은 공중보건상 우려할 만한 위해 수준에 훨씬 못 미친다고 발표했다. 그래서 미국 본토와 하와이·괌·사이판 등 미국령 태평양에 대해 아무런 보호 조치가 필요없다고 설명했다. 미국식품의약국(FDA)은 이미 2014년 3월 공중보건상 문제가 될 만한 후쿠시마발 방사성 핵종이 미국 식료품 공급망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한 바 있다. 캐나다도 2015년에 후쿠시마 원전 사고 영향에 대한 정부 보고서를 통해 인지 가능한 수준의 방사선 수치 변화가 없고, 캐나다 국민의 건강에 우려가 될 만한 것이 없다고 발표했다.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정부도 국민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무시할 만한 수준이라는 입장이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가 국민 건강에 위협이 된다며 과학적 근거가 없는 괴담을 퍼뜨려 우리 수산물에 대한 불신을 가중시켰고, 수산물 소비가 크게 위축돼 수요 급감을 불렀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한 어업인 단체의 회장은 한 일간지 인터뷰에서 “후쿠시마 오염수에 대한 정치인들 간 싸움에 어업인들만 죽어나고 있다”며 “오염수 방류를 놓고 정치권을 중심으로 쏟아진 가짜 뉴스와 괴담으로 이미 어업인들 생계는 존폐 위기”라고 호소했다.
정부는 오염수 방류로 횟집 등 수산업 자영업자들이 피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생산·유통·소비 단계에서 수산물에 대한 방사능 검사를 확대해 국민을 안심시킬 필요가 있다. 다행히 정부는 이와 관련, 2015년부터 실시해온 해양수산부와 원자력안전위원회의 해양 방사능 모니터링 지점을 92곳에서 200곳으로 대폭 늘린다고 발표했다. 우리 정부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정부는 IAEA의 감시와 검증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국민 안심에도 힘을 써야 한다. 이미 구축해 놓은 수산물 방사능 감시 체계를 활용해 결과를 국민에게 보다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 수협 등 어업인 단체도 괴담과 가짜 뉴스 유포자를 찾아내 근거를 확인하고 그 책임을 묻고 여론화하는 게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된다. 과학적 근거가 없는 잘못된 주장으로 우리나라 수산업이 피해를 보는 일만큼은 꼭 막아야 한다.
2023-08-23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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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가뭄과 홍수, 양극단 기후 변화 대비해야
기상청은 ‘2022년 이상기후 보고서’를 발간하면서 2022년을 ‘중부지방 집중호우, 남부지방 최장 가뭄’으로 예측했다. 그 결과 지난해 서울 도심 한복판에 시간당 116mm가 넘는 물폭탄이 쏟아졌으며, 남부지방은 1974년 이후 가장 많은 227.3일의 가뭄 일수를 기록하는 등 폭우와 가뭄의 양극단 이상기후가 동시에 발생한 한 해였다.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국가가뭄정보포털에 따르면 최근 1년간 전국 누적 강수량은 1100.7mm이며, 이는 평년 대비 82.6% 수준으로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물론 6월까지 강수량이 평년과 비슷해 남부지방 가뭄은 점차 완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농업 용수와 공업 용수 부족으로 산업계에 심각한 피해를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현재 전 세계가 이상기후와 식량난에 시달리고 있으며 그 원인으로 해수면 온도 상승에 따른 ‘엘니뇨’를 지적했다. 이로 인해 아시아 전역에는 때이른 폭염이 시작됐으며 최근 태국의 체감 온도는 섭씨 54도에 달하기도 했다. 또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은 최근 보고서를 내놓으면서 “북미와 남미의 경우는 올해 5월이 기상관측 174년 이내 세 번째로 무더웠던 5월로 기록됐다”고 설명했다. 지구 온난화로 세계 곳곳에서 이상기후가 나타나고 있다. 무엇보다 올해는 2016년의 ‘슈퍼 엘니뇨’에 맞먹는 기상 현상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돼 전 세계가 긴장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올여름 폭염은 물론, 많은 수증기 유입으로 인해 강수량이 급격히 증가해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극단적인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이처럼 예측하기 어려운 양극단의 기후 변화에 대비하기 위해 소위 ‘녹색댐’이라고 불리는 숲의 기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여름 집중호우로 홍수가 발생하고 나머지 계절에는 물 부족으로 가뭄에 시달리는 것을 반복하는 기후 특성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숲은 토양과 토양 입자 사이의 스펀지와 같아서 비가 많이 내리는 계절에 물을 크게 흡수하며, 비가 내리지 않는 계절에는 물을 천천히 흘려보내 강을 마르지 않게 한다.
그러나 숲이 조성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은 수십 년이지만 전국의 동시다발적인 산불 뉴스가 끊이지 않는 것과 같이 파괴되는 것은 한순간이다. 산림청에 따르면 지난 10년 평균 연간 산불 건수는 537건, 피해 면적은 3560ha인 반면, 올해 4월까지 발생한 산불 건수는 469건으로 이미 10년 평균의 87.4%에 달했으며 피해 면적은 4578ha로 10년 평균치를 훌쩍 넘어섰다.
‘치산치수(治山治水)’라는 말처럼 예로부터 산과 물을 잘 다스린 나라는 부강하고 그렇지 못한 나라는 국토가 황폐해져 국민들은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다. 따라서 국가를 다스리는 정치인과 행정가들은 치산치수를 통치의 근간으로 여겨왔으며 이는 예측이 어렵고 변동성이 큰 양극단의 기후 변화에 노출된 우리의 현 상황에도 역시 유효할 것이다. 과학적 분석과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수자원과 산림자원의 관리 역량을 강화하고, 가뭄과 홍수를 예방하고 피해를 줄일 수 있도록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2023-08-22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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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인공지능과 교육의 공존
도서관에 가면 맡게 되는 오래된 책의 쾨쾨한 종이 냄새를 유별나게 좋아한다. 중고 서점에서 절판된 보물 같은 책을 발견할 때 느끼는 그런 희열 같은 냄새는 요즘같이 비가 와 습기가 많은 중앙도서관의 한적한 인문학과 철학책 칸에서 만날 수 있는 감동과도 비슷하다. 세련된 디자인의 잉크 냄새가 물씬한 신간 코너를 지나 시간과 세월이 켜켜이 쌓인 곳에서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마키아벨리처럼 통찰하고 뉴턴처럼 상상하기’라는 르네상스 시대 인문주의 예술과 과학에 대한 인문학책이었다.
책 제목처럼 ‘통찰하고 상상하기’는 고대와 중세 철학의 중요한 행위였다. 이는 또한 21세기 교육의 목표이며 핵심 역량이기도 하다. 작년부터 철학과 인문학 부분을 수업 시간에 좀 더 비중있게 다루어야 하겠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던 차에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난 마키아밸리와 뉴턴의 통찰과 상상은 나에게 많은 고민을 던졌다. 최근 대학들은 재정과 충원률 같은 현실적 문제에 당면해 철학과 인문학 분야의 기초학문을 교양과목으로 빼거나 관련 학과를 없애고 있다. 이는 전국적인 현상이다. 또한, 코로나를 경험한 MZ세대들은 컴퓨터로 다양한 미디어 전자책, 웹툰, 영화, 게임 등 원하는 모든 정보와 즐거움을 바로 만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굳이 그들에게 진득하게 앉아 통찰하고 상상하면서 새로운 자기만의 지식을 만들어 나가라고 하면 ‘고지식한 교수’라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때는 바야흐르 ‘인공지능 시대’이다. 인공지능의 미래를 가장 정확하게 예측하고 있는 미래학자 레이커즈 와일은 ‘수확 가속의 법칙’을 인공지능 기술 발달에 대입시켰다. 수확 가속의 법칙은 기술의 진화 과정이 가속적이며, 그 산물 또한 획기적으로 증가하는 현실을 말하는 기술 진화 이론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2029년 인간의 지능을 초월한 인공지능이 나오고 2045년 인류 전체의 지능을 초월한 인공지능이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말인즉슨, 인공지능은 좋은 도구의 역할을 2028년 정도까지는 충실히 하다가 2040년이 넘어서면 인류를 초월하기 시작하는 지점에 도달하게 된다고 한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지식, 정보, 기술 분야에서 인류를 압도하지만, 공감과 창의적 상상력, 통찰력을 가진 사람들은 인공지능에 대체되지 않고 인간 고유의 존엄성을 가지고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갈 수 있을 거라 한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인공지능의 시대에 통찰과 상상, 공감과 사고의 영역이 어느 때보다도 더 요구된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가장 잘하는 것은 지식과 기술을 쌓아가는 일이다. 그런 측면에서 코딩은 인공지능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이다. 한창 대세인 코딩교육을 무조건 하는 것이 아니라 공감과 상상력, 통찰력을 갖추면서 공부해야 한다. 인공지능은 공감을 통해 기존의 것을 새로 만들어 내거나, 혁신을 일으키는 창의적 상상력을 발휘할 수는 없다. 공감과 상상력, 창의성도 머지않아 인공지능 안에서 다 가능할 것이라 호언장담하는 주변의 공대 교수님들이 많지만, 현 시점에서는 가능한 부분이 아니라 버티고 외면해 본다.
진짜 자아, 진짜 나로 살기 위해서 인공지능 시대가 오더라도 대체되지 않는 자아를 준비하는 것이란 곧 철학적 사고로 공감력과 창의적 상상력을 발휘하는 자아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다. 고유한 개개인의 기질과 성격을 보전하면서 사색하는 힘이 인공지능 시대에 대체 불가능한 자신의 존엄성을 가지고 고유한 개인으로 살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대학의 많은 교과목도 인공지능 시대 안에서 철학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시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다음 학기 수업부터는 학생들과 통찰하고 상상하는 철학적 시간을 가질 것이다. 내 수업을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아 고민이다. 늘 가르친다는 것은 ‘어떻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2023-08-16 [1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