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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앞당겨진 종말시계
호모 사피엔스, 즉 현생 인류는 지구를 지배하고 있다. 하지만 인류가 영원히 지구 생태계 최상위 생명체의 지위를 이어갈 것이라고 보는 낙관적 관측은 드물다. 핵전쟁, 기후 위기 등 다양한 원인들이 인류 멸망 우려를 높이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핵전쟁 가능성은 지구 종말과 인류 멸망을 초래할 가장 큰 위협으로 간주된다. 실제로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는 2025년 기준 미국과 중국 등 9개 핵보유국이 1만 2241개의 핵탄두를 보유한 것으로 추산했다. 핵무장은 지금 이 순간에도 가속화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4년째인 데다 미중 주도권 경쟁마저 한층 노골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원자력과학자회보(BAS)는 최근 지구종말시계를 자정 85초 전으로 조정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지난해 자정 89초 전보다 4초 앞당겨진 것으로 1947년 시계가 처음 도입된 이후 가장 자정에 근접한 것이다. 지구종말시계의 자정은 지구에 생명체가 살 수 없는 파국을 의미한다. 초침이 자정에 가까워질수록 인류가 자초한 재앙 위험이 커진다는 뜻이다. 지구종말시계는 1947년 처음 도입 당시엔 자정까지 7분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소련이 첫 핵실험을 한 이후인 1949년엔 자정 3분 전으로 앞당겨졌다. 인류가 멸망에서 가장 멀었던 시점은 미국과 소련이 핵무기 감축에 합의한 1991년으로 당시 종말시계는 자정 17분 전을 가리켰다.
BAS는 핵무기 사용 위험의 증가와 함께 기후변화 대응 실패, 규제되지 않은 인공지능(AI)의 급속한 확산을 올해 조정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했다. 특히 미국과 중국, 러시아 등 강대국들이 갈수록 공격적인 군사 행보를 보인다고 지적했다. 핵무기 운반 체계 현대화가 진행되면서 군비 경쟁을 본격화했다는 분석도 내놨다. 기후 위기 극복 의지 부족과 전력 수요 증가에 따른 주요국 재생에너지 정책 후퇴도 주된 원인으로 꼽혔다.
특히 권위주의 확산과 다자주의 붕괴 등으로 국제 협력이 약화된 것도 원인으로 거론됐다. 이런 상황에서 허위 정보를 확산시키는 AI가 각국의 군사·안보 분야에 빠르게 도입되고 있는 것에도 BAS는 우려를 표명했다. AI 통제력이 약해질 경우 자칫 불가역적인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으로 받아들여진다. 가장 큰 문제는 BAS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강대국들이 제국주의 시대를 재현하려는 듯 국가 이기주의에 매달린다는 것이다. 종말시계를 늦추기 위한 인류의 공동 노력이 너무나 절실하다.
2026-02-09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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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김? 金!
1640년대 경남 하동장에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해산물이 등장했다. 시커먼 종이 같은 모습으로 말린 그 해산물은 인간이 그동안 먹어온 것들과 다른 색깔로 인해 낯설게 느껴졌지만 이어진 장사꾼의 말이 장보러 온 이들의 발길을 붙든다. “이게 이렇게 보여도 태인도의 명문가인 김가(金家)가 직접 기른 것이오. 맛도 좋지만 양분도 아주 좋다오.”
그렇게 판매가 시작된 것이 바로 우리가 익히 아는 김이다. 태인도의 김가가 기른 것이라 하여 김이라 불렀다는 얘기의 시작이다. 그 김가는 바로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이끌고 활약했던 의병장 김여익이다. 김여익은 인조가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낙향한 뒤 오랑캐의 치세 아래 고향에서 살 수 없다며 유민처럼 살다 전남의 태인도까지 흘러 들어갔다.
섬에서 우울한 나날을 보내던 김여익은 1642년 겨울 어느 날 섬진강 하구 배알도 해안에서 표류하는 밤나무 가지에 붙은 해조류를 발견했다. 먹을 것이 귀한 섬 지역이라 혹시나 먹을 수 있을까 하여 먹어본 결과 생각보다 맛이 좋았기에 이듬해부터 밤나무와 대나무 등을 이용해 직접 기르기 시작했다. 광양현감 허심이 쓴 김여익의 묘표 기록으로 남아 있는 김 양식의 유래다.
이처럼 국산 김 양식의 기원이 생생한 기록으로 남아있는 것과는 달리 이웃나라 일본과 중국은 김에 대한 기록이 부실하다. 일본은 김의 일본말인 ‘노리(のり·海苔)’의 국제어화를 시도하면서 김의 기원이 겐로쿠 시대인 1700년 전후라 주장하고 있으나 우리처럼 명확한 기록은 찾기 힘들다. 그 주장에 따르더라도 국산 김 양식 기원보다 수십 년 이상 늦다. 중국도 김 양식이 자국에서 시작된 문화라 주장하느라 분주하다. 지린성 등 동북 3성에서 조선족 문화의 일환으로 해조류 가공 등을 자국 문화유산으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나 기록으로 증명하진 못한다. 기록 면에서 국산 김의 역사가 당당히 앞서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처럼 역사에 빛나는 국산 김이 최근엔 가격으로 새 역사를 썼다. 김 한 장 가격이 150원을 넘어 역대 최고가가 된 것이다. 2년 전 100원 수준과 비교하면 50%나 급등했다. 김을 김이 아니라 金(금)이라 불러야 할 지경이다. 김 가격 급등이 해외 수출 급증 때문이라고 하니 기뻐해야 할 소식이지만 ‘국민 반찬’이라 불리던 김까지 물가 상승을 부추기니 서민의 지갑은 더 빠듯해지는 느낌이다.
이상윤 논설위원 nurumi@
2026-02-08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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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영혼없는 도시 혁신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의 마스다르는 2016년 무렵 거대한 ‘스마트 시티’의 실험장이었다.
풍부한 오일 머니를 바탕으로 인류 문명의 고질병을 단번에 치유하는 유토피아를 청사진으로 제시했다. 도시의 모든 건물, 가로등, 도로, 심지어는 휴지통에 촘촘히 박힌 센서가 도시의 혈류와 호흡을 실시간으로 감지했다. 인공지능(AI)이 이를 분석해 교통 흐름을 최적화하고 에너지 낭비를 줄였다. 미세먼지나 소음을 적절히 통제하고자 했고, 범죄를 예방·추적하는 등 인간 문명의 혁명이 실현되는 듯 했다.
완벽한 기술적 시스템이 갖춰지면 인간 사회의 모든 골치 아픈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강력한 믿음이 바탕이었다. 최첨단 센서는 잘 작동했고, 안정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전달된 각종 데이터와 신호를 차곡차곡 서버에 쌓아갔다. 하지만 시스템과 기술에 대한 신뢰가 사실은 기초가 부실한 모래 위에 세워져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수백만 건의 데이터가 매일 축적됐지만 데이터의 홍수 속에서 진짜 의미있는 정보를 찾아내 신속하게 대응하고 정책 결정에 활용할 전문적인 조직과 의사결정 체계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예를 들어 도심 교차로에서 미세먼지 농도가 높아지면 즉시 관제센터로 전파됐다. 그러나 이를 활용해 버스 배차 간격은 어떻게 조정해야 하는지, 학교에 있는 학생들에게는 어떤 행동을 취하라고 권고해야 하는지 정리되지 않았다. 최종적으로 누가 어떤 절차와 권한으로 결정을 내려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운영 절차가 부재했던 것이다.
아부다비의 국가적 자부심과 화려한 기술이 무력화되면서 거기에 투입된 예산 220억 달러(한화 약 32조 원)는 허공에 날아갔다. 마스다르에는 당초 예상했던 인구 9만 명의 1/6인 수준인 1만 5000여 명만이 지금 살고 있다. 세계의 도시 전문가들은 마스다르의 사례를 “사람이 실제로 살아갈 ‘집’을 짓기 보다 세계에 홍보하고 투자자를 모으기 위한 ‘조감도’를 그리다가 실패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명확한 인간적 목표와 민주적 운영이라는 ‘영혼’이 빠진 채 화려한 기술에만 매몰될 경우 도시가 어떻게 추락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도시를 최첨단으로 경영하겠다는 수많은 지방자치단체장 후보들이 나서고 있다. 값비싼 조감도를 들고 나오기 전에 다시 한번 고민해 봐야 할 대목이다.
2026-02-05 [1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