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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의 금융포커스] '코스피 5000'의 꿈
‘바이 코리아’(Buy Korea) 열풍 속에 한국 증시가 연일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오랜 기간 ‘박스피’(박스권 코스피) 오명을 썼던 코스피 지수가 최근 가파른 상승세로 반전의 서막을 열고 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정치적 안정과 자본시장 선진화 방안이 본격화되면서 투자자들이 한국 증시를 주목하고 나선 것이다.
지난 한 달간 주요 20개국(G20) 증시 가운데 가장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 시장은 바로 한국의 코스피다. 코스피 지수는 종가 기준으로 2607.33에서 2894.62까지 무려 11.02% 상승해, G20 주요 지수 중 유일하게 두 자릿수 상승률을 달성했다.
특히 대선을 전후한 7거래일 동안 코스피는 연속 상승세를 이어가며 이른바 ‘허니문 랠리’를 연출했다. 이 기간 상승률만 해도 8.24%에 달하며, 약 3년 5개월 만에 2900선을 회복했다. 한때 “국장 탈출은 지능순”이라 외치던 개인 투자자들도 최근에는 “국장 복귀가 지능순”이라며 빠르게 돌아서고 있다.
가파른 상승 흐름에 주요 증권사은 올해 코스피 전망치를 잇달아 상향 조정하고 있다. 한국 증시의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인한 할인율이 30~40%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코스피가 최대 3100~3500선까지 오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 역시 증시 활성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한국거래소를 찾아 “코스피 5000 달성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밝히며 시장에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수사에 그치지 않고 실제 정책 드라이브로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상법 개정과 세제 개편을 통해 주주 가치를 제고하고, 배당 확대와 경영진 견제 장치 마련 등을 통해 외국인 투자자의 신뢰 회복에 나설 방침이다. 궁극적으로는 주식 시장을 부동산에 버금가는 유력한 투자처로 육성하겠다는 청사진이다.
물론 과거 ‘동학개미 운동’ 당시 코스피가 기록한 사상 최고치가 3300선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단지 자본시장의 정책적 지원만으로 ‘코스피 5000’ 시대가 쉽게 열리리라 기대하긴 어렵다. 하지만 실질적인 기업 성장과 산업 경쟁력의 뒷받침이 이뤄진다면 이번 반등은 일시적 흐름이 아닌 구조적 상승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 특히 산업 활성화를 위한 규제 완화 등 구조적 개혁이 병행된다면 그 효과는 배가될 것이다.
결국 이재명 정부의 자본시장 및 산업 육성 전략이 얼마나 실질적인 실효성과 지속 가능성을 가질 수 있느냐에 한국 증시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올해 하반기에는 침체된 경기가 반등하고, 코스피가 연일 신고가를 경신하는 희망적인 뉴스가 가득하길 기대해 본다.
2025-06-15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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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성의 타임 아웃] 헤드퍼스트 슬라이딩
프로야구를 보면 선수들이 헤드퍼스트 슬라이딩(Headfirst slide) 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야구에서 타자나 주자가 손과 머리를 먼저 누상에 터치하기 위한 슬라이딩 중에 하나인데요.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은 긴박하거나 접전상황이 벌어질 때 선수들이 종종 구사하는 기술로 한때 ‘투혼’의 대명사처럼 인식되기도 했습니다.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은 팬서비스로도 그만입니다. 경기가 우천으로 취소될 경우 선수들은 그라운드를 보호하기 위해 덮어 놓은 방수포 위를 미끄러지듯이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하며 관중들을 즐겁게 합니다.
하지만 현대 야구에서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특히 1루에서의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이 그렇습니다.
롯데 자이언츠의 ‘마황’ 황성빈은 지난달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SSG 랜더스와의 경기에서 타격을 한 뒤 1루에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시도했다가 베이스에 손가락이 걸려 다쳤습니다. 정밀 검진 결과 왼쪽 4번째 손가락 골절 소견이 나왔고, 복귀까지 8~10주 정도 걸릴 것이란 진단을 받았습니다. 황성빈은 지난해 무려 51개의 도루를 성공시키며 이 부문 3위를 차지했고, 올해도 부상 당하기 전까지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황성빈의 부상은 롯데로서는 정말 악재인 셈입니다.
1루에서의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이 유독 부상이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1루 베이스는 2·3루, 홈플레이트와는 달리 베이스를 지나가도 터치만 하면 되기 때문에 더 과감한 슬라이딩을 합니다. 상당수 선수들은 슬라이딩을 넘어 아예 다이빙을 하는 것 같습니다.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이 1루 안착에 도움된다고 생각하는 선수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주루 스피드를 살려 1루를 밟고 지나가는 게 더 빠르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아무튼 1루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의 부상 위험성을 고려해 한국야구위원회(KBO)는 1루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어길 경우 50만 원의 벌금이 부과됩니다. 2024년부터는 유소년 선수들의 헤드퍼스트 슬리이딩을 금지했습니다. 유소년은 1루와 함께 홈에서도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할 수 없습니다.
1루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두고 ‘팀을 위해 희생하는 투혼이다’, ‘부상이 유발되는 무모한 행동이다’ 등 팬과 선수들 사이에 다양한 말들이 있습니다. 물론 경기에 몰입하다 보면 선수들이 몸을 날리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팬들도 박진감 넘치는 경기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선수들의 부상은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선수 개인은 물론, 팬들도 선수들의 멋진 활약을 보기 위해 환호하는 것이지 선수들의 부상을 보고 싶은 마음은 없을 것입니다.
2025-06-08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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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금아의 그림책방] 나의 도시
아침부터 밤까지 달리고, 도시 곳곳을 누비는 버스.
이예슬 작가 <안녕! 버스365>(느림보)의 주인공은 ‘꼬맹이’라 불린다. 운행 첫날 만난 운전사 아저씨에게 신참 버스가 받은 별명이다. 이른 새벽 꼬맹이는 아저씨와 길을 나선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오르막길을 지나니 신나는 내리막길이 나오고, 시커먼 터널을 지나니 가슴 탁 트이는 바다가 보인다. 활기찬 시장도 보고 여유로운 해변도 본다. 늦은 밤 언덕 위 차고지로 돌아온 꼬맹이는 아저씨와 같이 반짝이는 도시를 내려다본다. ‘가슴 속에서 따스한 물결이 찰랑찰랑 흔들리는 것 같아요.’ 꼬맹이의 진짜 이름은 ‘부 365’. 동래, 부산진, 광안리, 충무동, 부산항… 버스 노선에서 부산이 보인다. 작가가 아버지 고향인 부산을 다니며 좋아하게 된 곳들로 만들어낸 노선이다. 처음에는 장소가 보이지만 점점 버스 안팎의 승객에 시선이 간다. 사람이 있어 도시의 이야기가 더 풍부해진다.
꼬맹이 버스 승객에 자갈치 위판장에서 일하는 막두 할매도 포함된다. 정희선 작가 <막두>(이야기꽃)의 주인공이다. “내 육십 년 가까이 장사한 사람이요. 거짓말 안 하요!” 버럭 화를 낼 때도 있지만 형편 딱한 이에게는 큰 생선을 덤으로 주는 사람. 막두 할매는 한국전쟁 때 가족과 헤어졌다. ‘부산 영도다리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위해 막두 할매는 다리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가족과 만나지 못했지만 늘 씩씩하게 살아온 그는 영도다리 도개가 재개되던 날 거대한 다리를 보며 말했다. “오마니, 아바이… 막두도 저만치로 대단하게 살았심더.”
이경아 작가 <아빠, 나의 바다>(창비) 속 마도로스 아빠도 부산 사람이다. 딸이 아빠를 생각하는 집에서 부산타워가 보인다. 딸은 아빠를 그리워하고, 아빠가 일하는 바다를 상상한다. 그리고 바다 너머 다른 세상을 꿈꾼다. 가족사진 속에 아빠가 바다에서 보낸 시간과 딸이 성장한 시간이 함께한다. 한 개인과 가족의 사진첩에 도시의 역사도 함께함을 알 수 있다.
수많은 시민의 삶이 모여 도시를 이룬다. ‘나의 도시’ 부산은 나와 다른 이들의 과거·현재·미래가 켜켜이 쌓이며 만들어진다. ‘우리의 도시’ 부산이 더 많은 사람의 이야기로 채워지기를 바란다. 북적북적 열심히, 모두 즐겁게 살아가는 도시가 될 수 있기를 그림책으로 그려본다.
2025-06-01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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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영의 문화시선] 부산콘서트홀과 부산시향
내달 21일이면 부산콘서트홀이 정식 개관한다. 비수도권 최초로 파이프 오르간을 갖춘 부산 최초의 클래식 전용 홀이다 보니 그 어느 때보다 기대가 크다. 무료 시범 공연은 물론이고 유료 ‘개관 페스티벌’ 티켓도 분초를 다투며 매진돼 부산콘서트홀을 운영하는 클래식부산 직원들도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게다가 며칠 전엔 부산콘서트홀과 2027년 개관 예정인 부산오페라하우스를 총괄하는 정명훈 예술감독이 이탈리아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 최초의 동양인 음악 감독에 선임돼 겹경사를 맞았다. 이 모든 상황이 대단히 축하할 일이다.
다만, 지난 23일 부산콘서트홀에서 열린 부산시립교향악단 제620회 정기 연주회 ‘뉴 월드’ 시범 공연을 보며 생각이 많아졌다. 아직은 최적의 음향 상태가 아닐지언정, 드디어 부산에도 클래식 전용 홀이 생긴다는 게 실감 나서였을까 적잖은 감동이 전해졌지만, 안타까운 마음도 없지 않았다. 우레와 같은 환호와 박수를 보내는 객석의 시민들 모습을 지켜보면서, 환하게 미소 짓는 무대 위 부산시향 단원들과 홍석원 예술감독을 바라보면서 약간은 울컥했다. 다른 한편으론 이렇게 훌륭한 홀을 지척에 두고도 그들은 또다시 ‘다목적홀’ 부산문화회관 무대로, ‘길쭉한’ 형태의 지하 연습실로 돌아가야 하는 현실이 겹쳤기 때문이다.
흔히 클래식 공연장이 ‘또 하나의 악기’라는 비유는, 공연장의 음향적 특성이 연주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사용하는 표현이다. 연습 공간이나 연주 홀이 그만큼 중요한 것도 그 때문이다. 부산시향은 시립예술단을 위탁 운영하는 (재)부산문화회관 소속으로 부산문화회관에 상주하는 이상 클래식 전용 홀인 콘서트홀에선 ‘손님’인 것이다. 둘은 시 산하에 있지만, 엄연히 별도 조직이다. 더욱이 내년엔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이 공사에 들어간다는데, 그렇게 되면 부산시민회관을 이용할 가능성이 높아서 더 걱정이다.
부산문화회관 홈페이지에 따르면 “부산시향은 1962년 설립되어 한국에서는 세 번째로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부산시의 문화적 자존심을 상징하는 오케스트라”로 나온다. 조금 더 읽어 보면 “1973년 부산시민회관이 개관하면서 처음으로 상주 공연장을 확보하였으며, 1988년 개관한 부산문화회관으로 이전함으로써 전용 리허설룸과 공용 악기, 연주장을 갖추고 전문 오케스트라로서의 형식적 면모를 완성하였다”로 적고 있다. 관례대로라면 “부산 최초의 전용 콘서트홀이 개관하면서 부산시의 문화적 자존심을 상징하는 부산시향도 옮겨 갔다”로 바꿔야 할 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설계 단계부터 상주 공간을 두지 못한, 문제가 치명적이지만, 어떤 식으로든, 하루속히 대책을 세워야 할 문제라는 사실을 부산시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2025-05-25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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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준영의 집피지기] 집주인을 부르는 법
충북이 고향인 A 씨는 부산 전세사기 피해자다. 그나마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전세보증금 반환 보험에 가입한 덕분에 늦게나마 보증금을 돌려 받았다. 하지만 1년이 넘게 A 씨가 겪은 정신적 고통은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다.
올봄 이사를 한 A 씨는 전셋집을 구하는 데 그야말로 모든 역량을 쏟아부었다. 집주인은 뭐 하는 사람인지, 그가 보유한 다른 주택은 있는지, 세금 체납한 적은 있는지 등 가능한 모든 채널을 동원했다. 그래도 이사 당일까지 찝찝하고 불안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고 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여전히 길거리로 쏟아지고 있지만, 전세시장은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몇억씩 내어줘야 하지만, 집주인 정보는 고작 등기부등본이나 공인중개사 설명 정도가 전부다.
‘집주인’이라는 단어는 전세시장에서 임대인과 임차인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계약이 체결되면 집주인은 채무자고, 세입자는 채권자가 되지만 집주인이라는 말은 이들을 ‘주종 관계’로 엮어 버린다.
포털 사이트에 ‘집주인’을 입력하면 연관 검색어에 ‘집주인 호칭’ ‘집주인 부르는 법’ ‘센스 있는 세입자 되기’ 등이 따라 나온다. ‘선생님’이나 ‘사장님’, 그것도 아니면 ‘정말 주인님이라고 불러야 하냐’고 묻는 웃지 못할 질문도 나온다. 게다가 계약서대로 계약을 맺었으면 됐지, ‘센스’까지 있는 계약 당사자가 될 필요가 뭐 있을까. 채권자가 채무자의 눈치를 보는 관계는 전세시장이 유일하다. ‘집 없는 설움’으로 권리는 저당 잡히고 관계는 역전된다.
사실 전세라는 제도가 있어 임대인들은 임차인을 끼고 집을 산다. 연쇄적인 ‘갭투자’가 결국 문제의 시발점이 됐지만,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면서 임대인들은 적은 레버리지로 자산을 불렸다. 물론 임차인들도 최소한의 금융 비용만으로 실거주를 하며 편의를 누렸다. 요는 임대인과 임차인은 공생관계라는 거다.
조기 대선을 앞두고 임대차 2법이 뜨거운 감자로 선거판을 달굴 가능성이 높다. 계약갱신요구권과 전월세상한제의 폐지 또는 완화를 두고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전셋값을 한꺼번에 폭등시킨다는 임대차법의 단점은 면밀히 분석하고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임차인들의 권리를 보호해줬던 역할마저 무시돼선 안 될 일이다.
전세사기 특별법의 시행 기간을 2년 연장하는 법률 개정안도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대규모 전세사기 사태는 부동산 상승 신화에만 매몰됐던 우리 시대의 아픈 상처다. 치열한 고민과 반성, 뼈를 깎는 변화가 필요한 때다. 선거를 위해 임대인과 임차인을 갈라치려는 어떠한 시도도 용납되어선 안 된다. jyoung@busan.com
2025-05-18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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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우의 맛있는 여행] 퐁피두센터 분관? 그래서?
스페인 북부 빌바오는 과거 철강, 조선업으로 활기를 띤 도시였지만 1950년대 궁지에 몰렸다. 철강 생산량은 크게 줄고 조선업은 한국, 일본 등에 밀렸다.
빌바오 시청은 어떻게 도시를 되살릴지 고민했다. 답은 시내 한가운데를 흐르는 네르비온강을 중심으로 아름다운 도시를 만들어 관광객을 끌어들이자는 것이었다. 계획의 중심은 미국 구겐하임미술관 분관 유치였다.
빌바오 시청은 1991년 “빌바오에 구겐하임미술관 분관을 짓는다면 건설비 1억 달러, 일시불 지원금 2000만 달러, 매년 미술관 운영비 1200만 달러를 지원하겠다”고 구겐하임재단에 제안했다. 지금 화폐 가치로 따지면 1억 달러는 2억 5000만 달러(약 3600억 원) 정도다.
구겐하임재단은 제안을 받아들였고, 구겐하임 빌바오는 1997년 문을 열었다. 이곳은 전시 작품 수준도 훌륭하지만, 미국 출신 세계적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건축물의 아름다움으로 더 관심을 끌었다. 이전에 연간 2만 5000여 명에 불과하던 빌바오 관광객을 연간 100만 명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일등공신이 됐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수도 아부다비는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 분관을 유치하기로 하고 2007년 박물관 측과 협약을 체결했다. 아부다비가 관광도시로 거듭나기 위한 총 270억 달러(약 38조 8000억 원) 규모 대형 프로젝트의 하나였다.
2047년까지 30년간 이름 사용료 총 4억 유로, 2027년까지 작품 임대료 1억 9000만 유로 등 8억 5500만 유로(약 1조 4000억 원)를 루브르박물관에 주는 게 협약 골자였다.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10억 유로(약 1조 6300억 원)에 이른다. 아부다비가 전액 부담한 건설비 7억 달러(약 1조 원)는 별개였다.
프랑스 출신 세계적 건축가 장 누벨이 바다 위의 섬처럼 설계한 루브르 아부다비는 2017년 말 문을 열었고, 매년 100만 이상 관광객을 유치했다. 건물도 아름다운 데다 막대한 투자로 사들인 많은 미술품, 프랑스는 물론 세계 각국에서 임대한 작품 그리고 UAE 유물까지 전시 수준이 만만치 않은 덕분이다.
부산시는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 분관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구겐하임 빌바오와 루브르 아부다비의 유치 과정, 건설 및 엄청난 유지비 등을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해진다. 부산시는 엄청난 비용과 유지비를 어떻게 부담할 수 있을까. 해마다 관광객 100만 명 이상을 유치할 킬러 콘텐츠는 무엇일까.
부산시가 지금까지 진행해온 과정을 보면 이런 물음에 명확한 답을 얻을 수 없는 것 같아 답답해진다. 자칫 퐁피두센터 분관이 부산의 랜드마크가 아니라 골칫덩어리가 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2025-05-11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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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철의 정가 뒷담화] 공직자의 무모한 용기
다산은 공직자가 과오를 범하지 않는 방법에 대해 ‘상존외 무역자사’(常存畏 無或恣肆)라고 했다. 항상 두려워하는 마음을 품고 공직에 임한다면 어떤 경우에도 방자함이 없다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200여 년 전 서술된 목민심서지만 여기에 담긴 시대정신과 가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공직자들의 바이블처럼 여겨지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하는 공직자들의 실언과 실수들은 여지없이 반복되고 있다. 최근 부산의 A 의원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B 의원의 학력을 비하하고 나섰다. 그는 평소 자신만의 은유와 비유를 통해 누군가를 비판하는 데 거침이 없는 인물이지만 당시 감정이 다소 격해졌는지 ‘비교되는 학력, 경력, 전문성, 능력’, ‘지역 발전 관심 없는 중졸’ 등 격앙된 문구를 쏟아냈다.
그가 격분한 자초지종을 알아보니 학력 비하를 당한 상대는 다소 억울할 것 같다. B 의원이 자신의 SNS에 A 의원과 함께 동행한 지역 일정 사진을 게재했는데, 이 중 일부에서 A 의원의 얼굴이 잘렸다는 이유였다.
본인도 자신의 잘못을 인지한 듯 지금은 그 글이 내려간 상태지만 평소 다른 동료 의원들에 비해 자신의 지적 우월성에 남다른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전언도 빈번하게 들려오는 A 의원인 만큼 ‘과오’가 또다시 반복될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이 글을 본 직후 그의 반응이 기대되기도 한다.
평소 걸걸한 성격으로 유명한 C 의원은 만찬 자리에서 참석자들이 불편을 느낄 정도로 자유분방한 영혼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술 기운이 어느정도 오르면 자신의 공천권을 쥔 위원장과 함께한 자리에서도 거리낌이 없어 오히려 주변인들이 눈치를 봐야했다는 일화도 있다.
부산시에서도 목민심서에서 말하는 기본적인 공직자의 자세를 갖추지 않은 이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대다수의 부산시 직원들은 밤낮없이 시민들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지만 일부 간부들은 그렇지 않은 모습이다. 답보 상태인 부산의 여러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국회를 대상으로 끊임없는 설득 작업을 벌여도 모자라지만 이 일은 부하 직원들의 몫이다. 이들에게 일보다는 윗사람에게 잘 보이는 게 더욱 중요하다는 게 내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때문에 부산시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부산의 국회의원실 보좌진들은 이를 두고 답답함은 물론 탄식마저 쏟아내고 있는 상황이다.
다산은 벼슬살이에 기억해야 할 글자는 두려워할 ‘외’(畏)자뿐이라고 했다. 국민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우리 사회가 바로 서고 사회적 양심을 구현할 수 있는 까닭이다. 부디 부산 발전을 위해 기본 자세를 갖춰주기를 바란다.
2025-05-01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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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의 금융포커스] 일상이 된 은행권 금융사고
“또 터졌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금융사고는 이제 일상이 된 듯하다. 시중은행은 말할 것도 없고 국책은행까지 논란에서 자유로운 곳은 없다. 수십억 원 규모는 이제 놀랍지도 않다. 새로운 금융사고가 터질 때마다 사고의 규모는 점점 커지고, 수법 역시 점점 치밀해진다.
최근 한 국책은행에서 발생한 882억 원 규모의 부당대출 사건은 금융권 전체에 큰 충격을 안겼다. 과거에는 금융사고를 일부 개인의 일탈로 치부했지만, 이번 사건에서는 전·현직 임직원 수십 명이 연루된 것으로 드러나며 조직적 범죄의 양상을 띠었기 때문이다. 그 과정은 치밀했고, 은행은 이를 뒤늦게야 파악했다. 올해 초 금융감독원이 시중은행 3곳을 검사한 결과도 간단치가 않다. 주요 은행들이긴 하지만 부당 대출 규모가 어마어마한데, 총 3875억 원 규모, 482건이나 적발됐다. 이쯤되면 금융사고는 이제 예외가 아닌 일상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은행은 자금 중개와 신용 생산이라는 중책을 맡고 있는 국가 경제의 핵심 인프라다. 그만큼 은행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중요하다. 그러나 연이어 발생하는 대형 금융사고가 그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다. 대부분의 사고가 수년에 걸쳐 은밀하게 진행된 점은 은행이 사금고처럼 운영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기 충분하다.
은행들 역시 감사를 강화하고 순환 인사와 명령 휴가 등을 통해 내부통제 강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해명한다. 한 시중은행은 은행장이 직접 영업점을 방문해 시재를 맞추는 모습을 언론에 공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보여주기식 대응만으로는 반복되는 사고를 막기엔 역부족이다. 이제는 단순한 인재(人災)로 치부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내부통제 시스템 고도화와 함께 결국 최고경영진의 책임 강화가 불가피하다. 경영진이 자신의 직을 걸고 내부통제에 나서지 않는다면 그 어떤 대책도 공허한 외침에 불과할 것이다. 감독당국 역할도 막중하다.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는 금융 환경에서 기존의 전통적 감사 방식은 한계가 명확하다. 실시간·선제적인 기술 기반 리스크 감시 체계 도입과 함께 은행 조직문화 전반에 대한 정밀한 점검과 혁신이 병행돼야 한다.
금융은 신뢰를 기반으로 한 산업이다. 신뢰가 무너지면 그 여파는 단지 금융권에 그치지 않고 실물경제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다. 지금 국민은 은행과 금융당국이 어떤 변화를 선택할지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이제는 실효성 있는 제도와 책임경영으로 무너진 신뢰를 다시 쌓아야 할 때다. 더 늦기 전에,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2025-04-24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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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성의 타임 아웃] 피치클락
올해 한국프로야구(KBO) 경기 운영에서의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피치클락’ 규정이 정식 도입됐다는 것입니다. 투수는 주자 없을 때 20초, 있을 때 25초 안에 공을 던져야 합니다. 포수는 잔여시간 9초 이전에 포수석에 자리 잡아야 하고, 타자는 8초가 되기 전에 타격 준비를 마쳐야 합니다. 이를 어길 시 투수에게는 볼, 타자에게는 스트라이크가 선언됩니다. 경기 지연 시간 단축을 통한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선보이기 위함이라는 게 KBO의 설명입니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 비해 피치클락 시간이 길고, 주자 견제 등 투수판 이탈 횟수 제한 규정이 없다는 등의 여러 문제가 지적되고 있지만, 프로야구를 보는 또다른 재미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피치클락의 도입으로 올해 프로야구 경기 시간이 1998년 이후 가장 짧다고 합니다. 개막 이후 60경기를 치른 지난 7일 기준으로 볼 때 KBO리그 한 경기 평균 시간은 3시간 1분입니다. 지난해 3시간 13분보다 12분이 줄었습니다. 프로야구가 경기 시간을 줄여 박진감을 살렸다면 프로축구에서는 반대로 경기 시간을 늘려 박진감을 높였습니다. 전·후반 90분 경기를 펼치는 축구에서 어떻게 시간이 늘어나느냐구요? 바로 추가시간입니다. 세계 최고 리그 중 하나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는 한 경기 시간이 100분이 넘습니다. 영국의 한 매체가 공개한 2023-2024시즌 EPL팀들의 경기당 평균 시간은 101분 39초로, 추가시간만 보면 11분 39초를 더 뛰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득점이나 오프사이드 등 애매한 판정을 비디오판독(VAR)으로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선수들의 각종 시간 지연 행위에 의해 소요되는 시간을 추가시간에 엄격히 포함시키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해 ‘침대축구’를 하더라도 그 시간을 추가시간에 포함시켜 선수들의 시간 지연 행위를 막으려는 의도입니다.
스포츠계에서 박진감을 높이는 만큼이나 중요하게 인식되는 것은 공정성입니다. KBO리그는 2024년부터 자동 투구 판정 시스템(ABS)을 도입했습니다. 프로그램이 투수가 던진 공의 스트라이크 존 통과 여부를 판단해 심판에게 전달하면 심판이 콜하는 방식인데요. 공정성 강화 차원입니다. 그만큼 판정 시비가 줄어드는 것이지요.
국제축구연맹(FIFA)에서는 VAR를 2016년 클럽 월드컵에서 공식적으로 도입했습니다. 세계 최고의 리그에서도 점차 VAR를 도입해 공정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스포츠는 시대를 거듭할수록 이처럼 박진감과 공정성을 위해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게 관중들을 위해서입니다. 우리 현실은 어떤가요? 정치, 경제, 사회 등 전반적인 분야에서 국민들은 스포츠와 비슷하다고 느낄까요? 박진감은 모르겠지만, 공정성은 글쎄요.
2025-04-17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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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금아의 그림책방] 산불
산이 불탔다. 산 주변에 살던 이들의 삶이 불탔고, 그걸 지켜보는 우리 마음도 불탔다.
김지연의 <호랑이 바람>(다림)은 2019년 4월 강원도 고성에서 일어난 산불과 그 진화 과정을 담았다. 숲에 떨어진 작은 불씨 하나가 바람을 만나 큰불이 됐다. ‘성난 불이 산등성이를 타고’ 거친 불길을 내뿜으며 땅 위도 태우고 땅속도 태웠다. 거대한 산불이 세상을 태우던 그날, 작가는 한달음에 고성으로 달려가고 싶었다고 했다. 각지에서 달려온 소방대와 진화 요원들이 힘겹게 불길을 잡았다. ‘새까맣게 재투성이가 된’ 산 그림에서 느껴지는 막막함. 2025년 봄 우리는 다시 그 감정을 느끼고 있다.
지난 3월 산청, 하동, 울주, 의성, 안동 등 영남 지역에서 역대급 산불이 발생해 큰 피해가 났다. 괴물 같은 산불은 많은 것을 앗아갔다. 진화에 나선 대원들과 미처 대피하지 못한 주민들이 안타깝게 생명을 잃었다. 강풍을 타고 마을을 덮친 불길에 평생 가꾼 삶의 터전을 잃고 실의에 빠진 사람들이 있다.
김병하 작가 <우리 마을이 좋아>(한울림어린이)에서 산불 이전의 삶을 본다. 평범한 시골의 작은 집, 마당에서 나물을 다듬는 할머니, 장독대에서 노니는 고양이, 할아버지의 농사일을 도와준 충직한 소, 마을 입구 정자나무 아래 모여 담소를 나누던 이웃들. 산불만 없었다면 지금도 계속되고 있을 풍경이다. 그림책 속 평온한 일상에 대피소에 머무는 이재민의 모습이 겹치며 마음이 더 무거워진다. 신문 사진에서 산불이 지나간 뒤의 흔적을 봤다. 산 곳곳이 검게 변해 있다. 흡사 거대한 갈퀴가 할퀸 듯하다. 산불이 산과 산에 깃들어 살던 생명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입혔는지 알 수 있다.
다시 <호랑이 바람>으로 돌아가면 산불 이후 피해를 입은 산에 묘목을 심는 사람이 등장한다(그림). 산이 다시 초록으로 피어날 수 있도록 마음을 더하는 장면이다. 영남권 산불은 불이 컸던 만큼 피해 복구에 오랜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작은 불씨라도 조심하는 마음, 산불 피해자 지원에 정성을 보태는 마음이 있다면 그 시간이 조금은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대형 산불 희생자의 명복을 빕니다.”
2025-04-10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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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영의 문화시선] 지역에도 국립 예술단체를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달 6일 중장기 문화 비전인 ‘문화한국 2035’을 공개했다. 핵심 전략으로 ‘지역 문화 균형발전’을 내세우고, 첫 번째 추진 과제로 ‘국립 예술단체·기관의 지역 이전 및 협력 모델 재구축’을 제시했다. 문화예술로 지역 균형발전을 도모한다는 것이 단순한 슬로건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한 것이어서 기대가 크다.
이전에도 국립 예술단체를 지역으로 이전하자는 이야기는 간간이 있었다. 하지만 뜬구름 잡는 의견으로 무시되기 일쑤였다. 무엇보다 기득권의 반발이 거셌다. 예술단체 지역 이전이 단체 자체를 와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공공연하게 나온다. 단원들이 오랫동안 서울 생활을 했기 때문에 모든 기반이 서울 중심이라 당장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진적으로 해결하면 된다.
광주 이전을 발표한 서울예술단 외에 국립오페라단, 국립발레단, 국립합창단, 국립현대무용단,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는 전용극장도 없이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4층에 입주해 사무실만 운영한다. 심지어 대관이 안 될 때도 있다. 그 외 2개 국립 예술단체는 국립정동극장과 국립극단이다. 그에 비해 지역엔 음악 전용홀, 오페라하우스 등 좋은 공연장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반대급부로 양질의 콘텐츠가 고민이다.
국립 예술단체 역할은 국가 문화의 중추 역할을 하며, 예술의 수준을 높이고, 예술을 통한 사회적 공감과 소통을 끌어내는 데 있다. 그렇다고 꼭 서울에 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 인적자원 등 지역 여건이 열악한 것도 맞지만, 과도기를 거치면서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뤄야 한다. 프랑스나 독일을 보더라도 대표 예술단이 모두 수도에 있는 건 아니다. 프랑스는 1980년대 초 실질적으로 진행된 지방분권화 정책의 결과로 지방에 국립 문화기관이 속속 설립됐다. 리옹, 마르세유, 몽펠리에, 스트라스부르 등 지역 기반에서 성장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 국립 예술단체가 상당하다. 연방제 국가 독일은 일찌감치 문화 중심을 분산했다. 베를린을 비롯, 드레스덴, 라이프치히, 뮌헨, 함부르크 등 각 도시가 독자적 예술 기관으로 성장했다. 이들 도시의 교향악단과 오페라하우스는 수준급이며, 제작극장 시스템도 활성화돼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지적한 것처럼 최근 5년간 8개 국립 예술단체 공연 10건 중 8.6건은 서울에서 열렸다. 지역에도 사람이 산다. 지역에 사는 사람도 대한민국 국민이다. 지역에서도 국립이란 최고 예술단체가 만드는 작품을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 국립 예술단체의 지역 이전은, 단순한 행정 절차를 넘어서 문화예술 생산의 근본을 재설계하는 전략이 되면 좋겠다. 부산시도 이런 기반 조성에 적극 나서야 한다.
2025-04-03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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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준영의 집피지기] 밑빠진 미분양에 세금 붓기
‘악성 미분양’으로 손꼽히는 부산의 준공 후 미분양이 2009년 이후 16년 만에 최대치를 경신했다. 일반 미분양이야 입주 전까지 해소하면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아파트가 다 지어졌는데도 들어와 살 사람이 없는 준공 후 미분양은 지역사회 전반에 심대한 타격을 입힌다. 시행사는 빚더미에 앉고, 건설사들은 공사대금을 받을 길이 묘연해진다. 지역 경제에서 여전히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건설업이 휘청인다는 건 서민들의 밥벌이가 위협받는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정부는 지난달 대책을 내놨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전국의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 3000세대를 매입하겠다는 내용이 골자다.
건설업계는 정부의 대책에 시큰둥하다. 다주택자 중과세 폐지나 지방 스트레스 DSR 3단계 유예 등 실질적인 수요 진작책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건설사 보증 기준 완화나 개발 부담금 한시 감면 등 업계에서 줄곧 요구해 왔던 규제 완화책이 빠져있다고도 한다.
원자잿값 인상이나 고금리 장기화 등 건설사들이 어찌할 수 없는 외생 변수가 시장 악화에 큰 원인이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의 위기는 건설업계가 자초한 측면이 적지 않다. 준공 후 미분양이 쌓이는 단지를 살펴보면 좋지 않은 입지에 소비자의 눈높이를 훨씬 웃도는 분양가를 고수하는 경우가 많다. 매출원가율 등을 이유로 분양가는 내리지 않으면서, 정부에 고강도 대책만 주문하는 오래된 방식으로는 지금의 위기를 탈피하기 어렵다.
LH가 미분양 아파트를 매입한다는 건 정부가 세금을 투입해 민간 기업의 재고 소진을 돕겠다는 말이기도 하다. 요즘 입주하는 아파트 대다수는 부동산 경기가 정점을 찍었던 2020년 전후 추진된 개발 사업의 산물이다. 제대로 된 수요 분석 없이 경기에 휩쓸리듯 사업에 뛰어들어 발생한 투자 리스크를 정부가 전적으로 대신 책임질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건설 경기는 10년 사이클을 돈다’며 앞으로 3~4년 뒤를 바라보고 주택 개발 사업을 추진하는 곳이 적지 않다. 여기에는 건설업 위기 때마다 정부가 업계 입맛에 맞는 대책을 내놔왔던 학습효과와 이에 따른 막연한 기대감도 한몫한다.
건설업계도 변화를 꾀해야 할 때다. 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장기적인 전략과 플랜이 필요하다. 허허벌판에라도 아파트를 짓기만 하면 값이 오르던 시대는 어쩌면 막을 내릴지도 모른다. 기형적인 수준으로 높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의 레버리지를 정상화하고, 한계기업에 대한 구조조정도 시의적절하게 시행해야 한다. 밑 빠진 독에 아무리 많은 물을 부어봐야 소용이 없듯, 건설업계도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특단의 ‘수선’이 필요하다.
2025-03-27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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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우의 맛있는 여행] 공유숙박의 명암
16년 전인 2008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에어비앤비라는 생소한 개념의 여행 공유숙박 시스템이 등장하자 전 세계가 열광했다. 집주인은 빈 방을 놀리지 않고 활용할 수 있고, 여행객은 호텔보다 저렴한 가격에 방을 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환영했다.
성장세가 얼마나 가팔랐던지 불과 16년 만인 지난해 에어비엔비 총매출액은 110억 달러를 넘었다. 전 세계 220개 국가, 10만 개 이상 도시에서 500만 명 이상의 집주인과 네트워크를 형성했으며, 2022년 한 해 이용자는 3억 명을 상회했다.
에어비앤비의 폭발적 성장세에는 부작용도 적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과잉관광이다. 방이 풍부해지고 호텔보다 싼 값에 숙박할 수 있게 된 덕분에 외국 여행객이 나라마다 급증했다. 2010년 전 세계 여행객은 9억 명이었지만 지난해에는 14억 5000만 명으로 50% 이상 급증했다.
에어비앤비 덕분에 각국 관광산업은 활성화됐지만 지역 주민의 삶에는 부정적 악영향을 미치게 됐다. 가장 큰 문제는 과거라면 지역 주민에게 임대됐을 방이 외국인 여행객에게 돌아가는 바람에 각 도시마다 ‘방 부족’ 현상이 극심해졌다는 사실이다. 당연히 임대료도 이전보다 폭등 수준으로 올랐다. 관광객이 너무 많이 몰리다 보니 물가가 크게 뛰는 현상까지 빚어졌다. 외국인 관광객에게 빌려줄 목적으로 주택을 사들이는 부동산 투기까지 설쳐 집값이 오르는 일도 발생했다.
공유숙박이 에어비앤비와 집주인 배만 불리 지역 주민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자 각 나라는 에어비앤비 규제책을 연거푸 내놓고 있다.
그리스의 경우 에어비앤비로 인한 관광 활성화 등에 힘입어 지난해 총 외국인 관광객 3500만 명, 총 관광수입 220억 달러라는 기록적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그리스 정부는 에어비앤비가 더 이상 성장할 수 없게 하겠다는 뜻에서 창고나 지하 공간, 과거 산업시설이었던 곳은 등록하지 못하게 규제했다.
프랑스 파리의 경우 에어비앤비를 활용해 빌려줄 수 있는 연간 일수에 제한을 두기로 했다. 이를 어기면 10만 유로 벌금을 부과할 방침이다. 파리에서 에어비앤비 등록 방이 9만 5000여 개인데 과거에는 학생, 저소득층 등이 임대하던 곳이었다. 매년 2600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경우 에어비앤비로 인한 주택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시위가 끊이지 않는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시청은 2028년까지 10만 개 이상의 방에 내준 에어비앤비 허가를 취소할 방침이다.
에어비앤비의 현실은 공유경제라는 이상적인 개념이 현실세계에서는 악몽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과연 이 악몽이 어디까지 이어지고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2025-03-20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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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철의 정가 뒷담화] 행사가 뭐길래
정치인들에게 있어 지역 행사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홍보의 장이다. 이 자리에서의 말과 행동은 비용이 발생하는 광고 문자·전화보다 구전 효과가 탁월하기 때문이다. 이에 마이크를 둘러싸고 배석자 간 얼굴이 붉히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특히 최근 들어 손발을 맞춰야 하는 국회의원과 구청장간 갈등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실제로 지난주 부산 A구에서는 구청장이 국회의원보다 더 많은 시간 동안 발언하면서 참석자들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한 참석자에 따르면 이 구청장은 국회의원에 앞서 마이크를 잡고 30분가량 자신의 구정 활동과 관련한 PR을 쏟아냈다. 반면 국회의원 발언 시간은 6분 남짓이었다. 이에 해당 국회의원은 현장에서 바로 불쾌감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주변 참모들에게 간접적으로 구청장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표현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 일 때문에 두 사람이 독대하기까지 했다는 후문이다.
또 다른 B구의 국회의원과 구청장의 불화설은 지역 정가에 파다한 소문이다. 한때는 영혼의 단짝이라고 불릴 정도로 남다른 호흡을 자랑했던 두 사람이지만 매 행사마다 국회의원 조연 역할만 맡으며 바람잡이로 전락한 구청장은 언젠가부터 동석을 기피하기 시작했다. 결국 국회의원의 호출, 구청장의 거부가 반복되며 두 사람의 관계는 멀어지기 시작했다. 다만 지방선거가 내년으로 다가오면서 지금은 잠시 봉합됐다는 게 B구 지역 상황에 밝은 한 인사의 설명이다.
이처럼 이들 2곳을 제외하고도 같은 정당의 국회의원과 구청장 간 불편한 동침이 이어지고 있는 부산의 기초단체는 또 있다. 대부분 지역 역점 사업의 치적을 둘러싼 갈등이 대다수다. 정부 부처를 상대로 한 국회의원의 압박이 주효했다는 주장과 구청에서 실무 작업을 철저히 한 덕분이라는 주장이 충돌하는 형태다.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다는 게 정치의 원칙이기도 하지만 특히나 최근 이러한 기류가 다수 감지되는 것은 22대 총선을 거치며 새로 지역구를 맡은 현역들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으로 보인다. 앞서 언급된 지역들 중 일부는 현역 교체가 이뤄지지 않기도 했지만 파열음이 곳곳에서 제기되면서 1년 여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에서 부산의 경우 대규모 교체가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기도 한다. 일부 구청장들이 사법 리스크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도 이같은 해석에 무게를 싣는다.
지역 발전에 집중해도 모자랄 시기에 국회의원과 구청장이 기싸움을 벌이면서 주민들은 실소를 금치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탄핵으로 멈춘 상황에 지역에서는 같은 정당 소속인 두 사람이 싸우는 불상사가 벌어지고 있다는 게 지역 소멸 위기의 한가운데 있는 부산시민으로서 개탄스러울 뿐이다.
2025-03-13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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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남성이 함께 축구 즐기는 세상 [골 때리는 기자]
"그렇게 무례한 질문인지 몰랐다. 미안하다."
'골 때리는 기자'라는 제목으로 약 1년간 초보 '여성' 풋살러로서 느끼는 여러 가지 생각을 담은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풋살을 시작하면서 느꼈던 좌절과 고민을 해결하는 방법을 공유하기 위함이었다. 칼럼을 통해 처음이 어려운 여성들을 위한 공감 입문서로서의 역할을 하고 싶었다.
칼럼을 연재하는 동안 같이 풋살을 즐기는 여성들로부터는 공감을 얻었고, 아직 풋살을 접하지 못한 여성들에게는 '어디서 하냐', '초보도 받아주는 팀이 있냐' 등 기분 좋은 질문 세례를 받기도 했다.
많은 피드백 중에 '정말 그렇게 느끼는지 몰랐다'는 한 남성 독자의 반응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여성임을 부각해 쓰는 칼럼에 대한 반응은 남녀 갈등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잦다. 칼럼을 시작할 때도 당연히 갈등을 부추기는 반응들이 나올 것이라 예상했다. 그런 반응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여성들이 느끼는 감정들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됐다는 고마운 피드백을 받기도 했다.
그중 대표적인 사례가 '오프사이드를 알아?(<부산일보> 2024년 5월 31일 자 29면 보도)'라는 제목의 칼럼이다. 유독 여성에게만 축구룰을 알고 있는지 묻는다는 내용의 글이다. 오프사이드 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남성도 많은데, 유난히 여성들만 해당 질문을 반복해서 듣고 이는 결국 여성들을 축구와 멀어지게 만든다는 게 칼럼의 골자다. 기사를 출고하면서 '댓글창은 절대 보지 말아야겠다'라고 다짐했던 기억이 난다. 건전한 비판을 거부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본래 칼럼의 취지와 여론이 다르게 흘러가는 것을 보는 것이 기자로서 마음이 아플 것 같아서다.
하지만 한 남성 독자로부터 칼럼을 읽고서야 자신이 무례했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됐다는 반응을 들었다. 축구를 즐기는 여성이 신기한 마음에 가볍게 건넨 농담과 같은 질문이 여성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취지였다. 댓글을 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던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어쩌면 남녀 간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주제를 애써 거부했던 지난날이 갈등을 심화시키는 데 일조했던 건 아닐까 반성하기도 했다. 한편으론 용기를 내 글을 통해 갈등을 수면 위로 이끌어 내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동시에 '남성들도 여성들이 느끼는 감정에 대한 정보가 정말 부족했겠구나'하는 이해를 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한편, '축구를 즐기지 않는 남성'들로부터 받은 반응도 재밌었다. 사실 본인들도 축구룰을 잘 모르고, 억지로 축구 시합에 끌려가면 '세모발'이라 핀잔을 듣는다는 것이다. '남성이면 으레 공과 친하겠지'라는 편견에 남성들도 고통받는다는 의미인 셈이다.
성별을 떠나 어떤 것에 익숙하지 않다는 사실이 무시당할 조건이 될 수 없다. 편견은 시야를 좁게 만들고 세상을 즐길 수 있는 또 하나의 가능성을 차단한다. 기자에게는 '공놀이'가 그런 존재였다. 칼럼을 통해 많은 여성들이 내가 본 세계를 조금이나마 엿봤길 바라본다. 더 많은 여성이 공을 차고, 여성에 대한 편견이 사라진다면 남녀가 더 자유롭게 축구를 즐기는 날이 올 것이다.
2025-03-06 [1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