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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방황하는 북항, 방관하는 부산시
“해운대, 광안리 다음 (부산의 중심은) 북항 아닙니까?” “해상도시도 만들고 천지개벽한다던데요.”
불과 1년 전만 해도 북항은 ‘매우’ 특별했다. 공과 사를 떠나 취재원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북항·가덕신공항 예찬론이 심심찮게 등장했다. ‘탈 부산’급 개발 계획에 2030월드엑스포 유치 기대가 기름을 부은 결과다. ‘잘 돼야 한다’보다는 ‘잘될 거다’는 반응이 대세였다.
“우리 세대에는 못 누려요.” “정부도 무관심하고 지자체도 돈이 없다는 데 잘 되겠습니까?”
최근 분위기는 ‘북항 비관론’이 우세한 듯하다. 주변에선 기대만큼 실망도 큰지 ‘쯧쯧’ 혀를 찬다. 그저 그런 재개발처럼 별 기대를 하지 않는 모습이다.
물론 인식 변화의 주원인은 엑스포 유치 실패다. 초대형 호재가 사라지면서 북항의 거품이 빠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북항은 입지 자체가 뛰어난 곳이다. 익히 아는 것처럼 도로, 철도 여건이 우수한 데다 배후 지역의 유동 인구도 상당하다. 실제 퇴근 직후 부산도시철도 1호선 부산진역에서 열차를 탈 때마다 흠칫한다. 중앙동 등 원도심 업무 지역에서 출퇴근하는 젊은 근로자들로 빽빽하다. 설 자리도 없어 다음 열차를 기다리는 이들도 있다.
앞으로 가덕신공항까지 연결되면 북항은 도로·철도·공항·유동 인구를 모두 갖춘 곳이 된다. 외부 호재 없이 자체 경쟁력만으로도 충분히 재개발 사업을 성공시킬 조건을 갖춘 셈이다.
그런데도 북항 재개발이 방황하는 것은 결국 지자체의 책임이 크다. 부산시는 북항 재개발 1단계 부지들을 부산항만공사(BPA)가 맡고 있다는 이유로, 방관자적 태도를 보였다. 1단계 중심인 랜드마크 부지가 2년 이상 민간사업자를 찾지 못하는 데도, 대안을 내놓지 않는다. 최근 BPA가 용역을 통해 부지 개발의 밑그림을 다시 그리기로 했지만, 사실 시가 먼저 나서 적합한 사업들을 찾아 이런저런 제안을 해야 했다. 북항이 부산의 백년대계, 미래라면서 재개발의 핵심인 랜드마크 개발을 모두 다른 기관에 맡긴 꼴이다.
더불어 시는 그간 건설 경기 불황에도 출구전략도 없이 재공모를 촉구했다. 두 번째 공모 마감까지 민간사업자의 응찰을 자신했지만, 결국 시장을 오판했다.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사업 리스크만 커졌다.
북항 친수공원의 상시 콘텐츠 부실 문제도 마찬가지다. 북항을 부산항의 유구한 역사, 문화, 관광을 접목한 ‘핫플레이스’로 조성하기 위해 콘텐츠 전담 기구를 설치하자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관리권을 가진 지자체는 묵묵부답이었던 반면 해양수산부는 강도형 장관이 직접 전담 기구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싱가포르, 대만, 일본 등 선진 항만 재개발지 모두 항만 당국이 아닌 지자체, 정부가 재개발 사업을 주도한다. 더는 항만 기능이 없기 때문에 지역 사정을 가장 잘 아는 기관이 전문가 그룹과 협업해 새 도시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지역 특성을 고려해 필요한 관광·주거·산업 기능을 입히고, 행정·세제 지원책으로 투자를 유치하는 식이다. 반면 북항은 항만 당국이 부두 이동부터 도시 재개발까지 모두 맡는 ‘기형적 구조’다.
구조가 어찌 됐든 시는 하루빨리 북항에 대한 ‘주인 의식’을 찾아야 한다. 최근 지역 언론, 상공계를 중심으로 북항의 위기를 극복하려는 움직임이 인다. 포럼을 만들어 활성화 대책을 논의하고, 랜드마크 부지 개발에 대한 굵직한 대안을 제시한다. 복합리조트를 비롯해 해변 야구장, HMM 사옥 등이 그 대안이다. 북항에 ‘뭐라도 해 보자’는 파이팅 분위기가 감돈다.
이에 시도 자체 예산을 들여서라도 제기된 랜드마크 개발안을 면밀히 검토해 가능 여부를 빨리 판단해야 한다. 그래야 불필요한 소모전을 줄이고 행정력을 집중시킬 수 있다. 시 고위 관계자는 최근 야구장, K팝 공연장으로 쓸 수 있는 아레나 시설 건립에 대해 “그 많은 돈을 어떻게 충당합니까”라며 취재진에 반문했다. 얼마나 돈이 드는지, 사업성은 어느 정도인지, 조달 가능한 곳은 어디인지 등 근거도 없이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 다른 시 담당자는 복합리조트에 대한 시의 입장을 묻자 “좋지요”라고 짧게 답할 뿐이었다.
‘부산의 미래’ 북항이 랜드마크 시설 하나 없는 그저 그런 곳으로 전락할 위기다. 지금이라도 치열하게 고민하고 싸워 미래를 제대로 그려야 한다. 전문가 그룹과 좋은 콘텐츠, 개발 아이디어를 선별·제시해 정부와 항만 당국을 귀찮게 해야 한다. 북항에 대한 ‘네이밍’ 사업도 진행해 부산의 새 도시 브랜드를 홍보하자. 이것이 부산의 미래를 만들어야 하는 시의 막중한 ‘임무’다. lee88@busan.com
2024-09-18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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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명절 밥상머리 가짜뉴스 안될 말
끔찍했던 폭염이 한풀 꺾였다지만 열대야는 여전하다. 늦더위에 잠을 설치는 사이 어느새 한가위가 코앞이다. 아직 차례상을 포기 못 하시는 시어머니와 심기 불편한 며느리 사이에서 죄인이 된 종손은 연휴 내내 외줄타기를 해야 한다. 자주 대화를 나누게 하고 시의적절한 화제로 그때그때 집안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는 건 종손의 오랜 생존비책이다.
여야 정치권도 직장인 못지않게 명절 연휴를 기다리는 분위기다. 명절 연휴 밥상머리는 정치권 프로파간다의 최전선이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여 앉은 일가는 서로의 안부와 근황을 묻다 결국에는 정치 이야기로 넘어가기 마련이다. 국민 모두가 정치 고관여층은 아니다. 일가 중 한 사람 떠들기 시작하면 다들 자연스레 그 논리를 따라간다. 이달 초부터 여야 가릴 것 없이 한가위 연휴 동안 상대를 공격할 꼬투리를 잡기 위해 각종 의혹으로 제기하며 열을 올리는 이유다.
4일 간의 연휴가 지난 후에도 정치권의 레이더는 맹렬하게 돌아갈 전망이다. 10월 16일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과연 밥상머리 표심은 어땠는지 검증이 필요해질 테니 말이다. 이번 한가위 밥상머리를 장악하는 건 어떤 이슈가 될까.
2024년 한가위 최고의 이슈는 의대 증원이 아닐까 전망해 본다. ‘대입’과 ‘정치’라는 가장 감칠맛 나는 재료끼리 버무려놨다. 흥행이 안 될 리 만무하다. 응급실 뺑뺑이 사태 등 의료 붕괴의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정부의 의료계 달래기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2025학년도 의대 증원 백지화라는 의사들의 요구를 정부는 받아들일 것인가 등이 입방아에 오를 게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여야의정 모두 신속히 협의체를 출범시키자는 이야기를 꺼냈다. 당장 내년도 정원부터 원점에 논의를 시작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연일 ‘노(NO)’를 외친다. 이미 2025학년도 의대 수시 절차가 나흘이나 지난 시점이고, 더 큰 혼란을 가져올 것이라고 대통령실은 주장한다. 그간의 민심을 역행한 의협 행보와 대통령실의 박스권 지지율을 보면 강경일변도의 발언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의대 증원 이슈와 더불어 금투세 이슈도 뜨겁다. 뜨거운 감자 수준을 넘어 건드리기 난감한 불덩이가 된 상태다. 전국에 개미 투자자만 1400만 명이라 하니 이 역시 연휴 내내 어딜 가든 화제의 중심에 있을 터다. 금융투자소득세라는 생소한 세금이 본격 도입되면 여당의 말대로 개미 투자자들이 절망으로 추락하게 될지, 야당의 말대로 도탄에 빠진 국민을 구하기 위해 부자의 곳간을 열게 될지 따져볼 일이다.
멀리 보지 않아도 당장 부산에서는 금정구청장 보궐선거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김재윤 전 구청장의 별세로 치러지는 보궐선거에 여야가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후보 면면이 모두 오래 보아온 우리 동네 정치인이다.
국민의힘에서는 뜻밖에도 전략공천이 아닌 경선을 택했다. 11일 부산시당 공천관리위원회는 부산시의회 윤일현 의원과 금정구의회 최봉환 의원 간의 2인 경선을 발표했다. 금정구는 정미영 전 구청장 이전까지 선출직을 사실상 국힘 계열에서 독식해 온 ‘보수의 아성’이다. 그러나 14일까지 경선을 진행해 후보를 가리기로 하면서 동네 선거 표심 다지기에 가장 적기라는 명절 연휴 유세 일정이 빠듯해졌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한 달 넘게 레이스를 펼친 금정구의회 출신 이재용, 조준영 구의원이 간택받지 못한 것이 변수다. 지난 총선에서 출사표를 던졌던 전 지역위원장인 김경지 변호사가 전략공천 받았다. 내부적인 파열음이 적지 않다.
여기에 ‘지민비조’로 총선 당시 민주당과 합을 맞췄던 조국혁신당까지 금정구를 양보하라는 입장을 연일 밝히는 중이다. 야권 내에서도 이 구도로는 단일대오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우려까지 흘러나온다. 과연 부산 야권의 후보 단일화는 가능할까.
반면, 이번 명절 연휴에는 밥상머리에 제발 올리지 말아야 할 ‘불량 이슈’도 있다. 바로 가짜뉴스와 괴담이다. 한바탕 난리가 났던 민주당의 계엄령 의혹이 대표적이다. 정쟁에 찌들다 못해 갈 때까지 간 정치권의 망동이다. 정부가 국회 해산을 노리고 계엄령을 준비하고 있다는 의혹을 엄연한 공당의 대표부터 최고위원까지 근거도 없이 떠들었다. 정확한 근거를 대라는 요구가 빗발치자 박근혜 정부 시절 의혹을 되살리더니 결국엔 ‘예방 차원의 발언’이라며 꼬리를 내렸다.
근거 없는 의혹 제기는 문자 그대로 선동이다. 조상이 먹고 자식이 먹을 음식이라 예로부터 가격 흥정도 안 하고 빚어올리는 게 명절 밥상이다. 2024년 한가위 밥상머리에는 건강하고 상식적인 논의만 오가야 한다.
2024-09-11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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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동남권 광역철도 특별법' 통과에 힘 모으자
최근 경남 양산시에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경제성 확보가 쉽지 않다’는 소문으로 적신호가 켜졌던 ‘동남권 순환 광역철도’(이하 동남권 광역철도)가 국토교통부의 사전 타당성 조사(이하 사타)에서 ‘경제성을 확보했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동남권 광역철도는 KTX 울산역~양산시 상·하북~물금역~김해시 진영역 간 총연장 51.4km 구간을, 철로로 연결하는 사업이다.
지역 정치권 등에서는 동남권 광역철도의 사타 결과 비용 대비 편익인 B/C가 0.7을 넘겨 경제성을 확보한 것으로 파악됐다. ‘예비 타당성 조사’(예타)가 진행 중인 부울경 광역철도의 사타 결과(0.66)보다 높다. 국토교통부는 다음 달 기획재정부에 동남권 광역철도 예타를 신청할 것으로 알려졌다.
동남권 광역철도와 부울경 광역철도가 예타를 통과해 본궤도에 오르면 765만 명이 거주하는 부울경이 하나의 교통망으로 연결되면서 1시간 생활권이 현실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인적·물류 교류 활성화로 경제공동체 구축에 도움이 되고 시도민 교통 불편 해소에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동남권 광역철도 예타 통과는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부울경 광역철도와 비슷한 길을 갈 것으로 보인다. 부울경 광역철도는 사타 때보다 사업비가 3배가량 뛰면서 경제성 확보 어려움으로 결과 발표가 미뤄지고 있다.
동남권 광역철도 사타 결과도 지난해 10월 예정됐으나, 10개월 이상 늦어졌다. 경제성 확보가 이유였다고 한다. 예타는 사타 때보다 경제성을 엄중하게 보기 때문에 현재로선 경제성이 나올지 장담할 수 없다. 동남권 광역철도에 투입되는 차량이 최고 시속 180km인 GTX급 광역 급행철도인 데다 양산시가지 구간은 지하 건설 이야기가 나오면서 사업비 역시 사타 때보다 증액될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경제성 확보를 위해 노선 변경, 역사 수 축소 등 계획 변경이 뒤따를 것이고 결과 발표도 미뤄질 수밖에 없다.
실제 부산 노포동~양산 웅상~KTX 울산역을 잇는 부울경 광역철도(48.8km)의 경우 예타 신청 때 트램에서 경전철로, 웅상시가지 지하 건설 등으로 사업비가 1조 600억 원에서 3조 400억 원으로 급증하면서 결과 발표가 지연되고 있다. 지난 6월에서 9월로, 또다시 오는 12월로 예정되면서 부정적인 기류가 강해지고 있다.
이런 우려를 잠재우기 위해 김태호·백종헌·서범수·정동만·김상욱 국회의원이 지난달 기자회견을 열어 부울경 광역철도의 예타 통과와 조속한 착공을 건의했다. 박형준 부산시장, 김두겸 울산시장, 박완수 경남지사도 부울경 광역철도와 동남권 광역철도 조기 구축을 위한 공동 건의문을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에 전달했다.
동남권 광역철도가 예타를 통과하더라도 문제다. 광역철도 사업비는 정부와 지자체 7 대 3으로 부담한다. 사타 때 사업비는 1조 9345억 원이며, 이 중 정부는 1조 3541억 원, 지자체는 5804억 원을 각각 부담한다. 지자체는 다시 노선 길이대로 경남도와 울산시가 부담한다. 여기에 3조 400억 원의 부울경 광역철도 사업비를 더하면 지자체 부담은 더 늘어난다. 광역철도 운영비 역시 일정 비율 지자제가 부담한다.
문제는 광역단체인 경남도가 사업비와 운영비를 부담해야 하지만 2개 노선 모두가 양산을 통과함에 따라 경남도 부담분 상당액을 양산시가 부담할 가능성이 높다. 양산시가 수천억 원으로 추정되는 사업비와 운영비를 부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부담 능력이 있다고 해도 사업이 완료될 때까지 다른 사업은 엄두도 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이 시점에서 윤영석 국회의원이 발의한 동남권 광역철도의 예타 면제와 국비 지원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동남권 광역철도 건설을 위한 특별법’이 주목받고 있다. 특별법은 동남권 광역철도 건설사업이 효율적이고 신속하게 추진되도록 하기 위해 예타 면제와 정부의 행정적·재정적 지원, 동남권 광역철도 건설추진단 신설 등을 규정하고 있다. 특별법이 통과하면 예타 면제는 물론 지자체의 사업비와 운영비 부담도 없어진다. 사업 자체를 정부(국철)에서 추진하기 때문이다.
부울경은 지난 10년간 39만 명의 인구가 감소했다. 열악한 철도 연결망은 지역 균형발전을 저해하고, 인구 유출을 통한 지역 소멸을 가속화하고 있다. 정부는 부울경 교통망 개선을 통한 인구 유출을 방지하고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부울경 광역철도 예타 통과는 물론 동남권 광역철도 건설을 위한 특별법 통과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부울경 지자체는 물론 주민, 정치권도 똘똘 뭉쳐 지자체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이면서 2개 광역철도가 개통될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김태권 동부경남울산본부장 ktg660@busan.com
2024-09-09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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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지금, 바로 여기에서
2021년 2월 미국 텍사스주 남쪽 샌 안토니오에 눈이 펑펑 내린다. 놀란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손을 휘젓고 머리를 감싼다. 같은 시각, 멀지 않은 휴스턴. 눈 폭풍이 거세게 몰아친다. 주유소 연료도, 마트 식료품도 동난다. 수도관이 얼어 물이 나오지 않고, 동파로 천장에서 물이 쏟아진다.
그해 6월 캐나다에서 체감 기온이 50도까지 치솟는다. 케냐에선 메뚜기 떼가 창궐해 식량을 휩쓸고, 거대한 싸이클론이 인도네시아를 덮친다. 물에 잠길 위기에 처한 차 안에서 아이가 신을 찾으며 울부짖는다. 끔찍한 홍수와 산사태는 독일, 중국, 미국 등지를 강타한다. 위성에서 내려다 본 지구에서 셀 수 없는 산불이 일어나 숲과 집을 삼킨다.
잘 만든 재난영화의 장면들일까? 모두 2021년 한 해에 벌어진 실제 상황. 마침 5일 오후 6시 30분 영화의전당에서 닻을 올리는 세 번째 하나뿐인지구영상제(BPFF) 개막작 ‘히어 나우 프로젝트(The Here Now Project)’에 담긴 현장이다. 17개국 12개 언어를 쓰는 세계인이 담은 이 기후위기 다큐멘터리는 이날 처음 아시아에서 공개된다.
올해 우리는 역대급 폭염을 온 몸으로 견뎠다. 기후학자들은 세계적으로 가장 더운 여름으로 기록된 지난해보다 올해가 더 뜨거운 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지난 3일 행정안전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폭염으로 30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발표했다. 그래도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면 우리는 다시 평화로운 일상을 살아갈 것이다.
영화를 보면, 재앙이 발생하기 전 잇따르는 징후와 경고를 무시하다가 늘 사달이 난다. 현실에서도 기후위기가 부르는 파국을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것이 뻔하다.
기후위기는 해결해야 할 최우선 과제다. 생명을 앗아가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미래에 대한 희망까지 앗아가서다.
악순환의 고리는 이렇게 연결된다. 기후 변화는 생태계를 무너뜨린다. 인간의 건강은 더욱 나빠진다. 어린이, 청소년의 기후 우울증이 폭증한다. 식량난에 인플레이션이 극에 달한다. 이는 노동력과 생계소득, 식량 생산 감소로 이어진다. 삶의 질은 갈수록 떨어져 극단적인 양극화가 심화한다. 기후변화를 유발시킨 최상위층이 재력으로 편안한 삶을 유지하는 사이 그럴 수 없는 이들이 더 고통을 받는다. 사회 갈등이 폭발한다. 사회 시스템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진다. 결국 세상은 ‘지옥’이 된다.
이런 재앙의 현장은 멀리 있지 않다. 아름다운 푸른 하늘에 지금도 매일 1억 600만 t이 넘는 공해 물질이 퍼져나간다. 비행기, 석유 제조, 산불, 제조업체, 농작물 소각, 대규모 축산업 등이 범인이다.
지난달 29일 헌법재판소는 역사에 남을 판결을 남겼다. 2031년 이후 온실가스 감축량을 설정하지 않은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 계획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불합치’ 결정이다. 이대로는 국민, 특히 후손들의 기본권을 충분히 보호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쩌라는 것인가. 기후위기 이야기가 나오면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이들이 많다. 텀블러를 사용하고 열심히 쓰레기 재활용을 한다고, 간헐적 비건으로 살아간다고 해서 해결될 수준이 아니라 한다. ‘자연 앞에서 인간은 무력하다’며 자포자기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데 기후위기는 자연이 아니라 인간이 초래한 것이다. 자연은 죄가 없다. 인간이 해결해야 한다. 지구는 인간이라는 골칫덩이가 사라져도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
속도를 늦추고 서둘러 적응해야 한다. 대안을 찾기 위해 같이 연구하고 지지하지 않으면 도미노처럼 모두가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더 많은 투자로 속도를 늦추고, 뜨거워진 세상에 빨리 적응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열사병 증세를 보이는데도 ‘꾀병’이라거나 ‘좀 쉬면 낫겠지’라고 안이하게 대응하다가 소중한 생명을 잃는 비극을 더 반복해선 안된다.
‘기후위기 각성’을 해야 한다. ‘마이 네임 이즈 가브리엘’이라는 JTBC 예능 프로그램이 있다. 세계 각국에 있는 타인의 삶을 72시간 동안 대신 살아보는 것이 콘셉트다. 나만의 삶이 아니라 기후위기로 세계인이 겪는 고통을 잠시라도 체험하는 콘텐츠, ‘지구촌’과 소통하고 이해하려는 그런 노력이 필요하다.
언제 어디에 있든 상관없다. 기후위기는 나 몰라라 무작정 탄소를 배출하는 이들에게 제대로 타격을 주는 ‘연대 행동’이 지금 필요하다. 탄소 저감 활동, ESG 경영에 무신경한 기업에 전화나 SNS채널 등으로 항의하고, 불매운동에 나서자. 반기후위기 공약은 투표로 심판하자. 변하지 않으면 퇴출된다는 사실을 기업인과 정치인이 깨닫도록 하자는 것이다.
지금, 바로 여기에서 함께 연대하며 행동해야 우리 아들딸이 살아남는다.
박세익 플랫폼콘텐츠부 부장 run@busan.com
2024-09-04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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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9월의 미술축제
최근 급하게 일정을 잡아 진주에 다녀왔다. 종료를 앞둔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 전시를 보기 위해서다. 진주가 낳은 세계적 예술가 고 이성자 화백. 1951년 프랑스로 간 그는 해방 이후 전업 작가로 유럽에 정착한 첫 세대이다. 일행은 북극과 알래스카를 지나는 비행 항로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작품 앞에서 감탄했다. 그날 부산으로 돌아오다 창원에 들렀다. 경남도립미술관에서도 이 화백의 작품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원작을 실감형 미디어아트로 재구성한 전시는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관람객에게 인기였다. 경남을 대표하는 추상회화 거장과 젊은 작가를 소개한 ‘추상과 관객’ 전에서 진주에서 보지 못한 다른 작품까지 감상했다.
1일 투어 ‘이성자데이’의 시작은 베니스였다. ‘물의 도시를 뒤덮는 미술의 물결을 직접 느껴보자.’ 올봄 베니스비엔날레에 도전한 이유다. 1895년 시작한 세계적 예술 축제가 올해로 60회를 맞았다는 점에서 관심이 더 갔다. 현지에 도착하니 베니스 전체가 비엔날레를 홍보하는 느낌이었다. 베니스비엔날레의 규모는 엄청났다. 332명(팀)이 참여한 본전시와 국가관 전시를 돌아다니느라 매일이 전쟁 같았다. 너무 기대가 컸던 탓인지, 작품 수에 압도된 탓인지 비엔날레 자체에서는 큰 감흥을 받지 못했다. 대신 베니스비엔날레 기간에 맞춰 열리는 병행전시가 더 흥미로웠다. 주 전시장 지역에서 떨어진 아르테노바에서 열린 ‘이성자: 지구 저편으로’도 비엔날레 공식 병행전시의 하나였다.
올해는 베니스에서 K아트를 알리는 전시가 많이 열렸다. 부산 작가와 부산에서 전시를 봤던 작가의 작품을 만났을 때는 반가웠다. 구글 지도를 들고 어렵게 찾아간 유영국이나 이배 작가 전시는 감동이 컸다. 전시장 자체도 볼거리였다. 현지에서 만난 유학생에게 한국 전위미술가 이승택과 미국 개념미술가 제임스 리 바이어스 2인전에 대한 정보를 받았다. 시내 건물을 빌려 운영되는 짐바브웨 국가관에 우연히 들어가 한글이 쓰인 지압 신발을 이용한 작품을 발견하기도 했다. 중국 추상화가 주테춘, 알렉스 카츠 같은 작가의 미술관급 전시를 무료로 감상하는 기회도 얻었다. 무라노 유리공예를 소개하는 특별전이나 지역 작가를 소개하는 전시장까지. 이게 베니스비엔날레의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1일 미술여행주간이 시작됐다. 올 4월 문체부는 부산, 서울, 광주 등 지자체와 손잡고 ‘대한민국 미술축제’ 성공을 위한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부산비엔날레를 시작으로 4일 개막하는 키아프 서울과 프리즈 서울, 7일부터 열리는 광주비엔날레 등 대규모 미술행사를 연계해서 관람객 참여 폭을 확대한다는 취지다. 정부 차원에서 지원한 영향인지 현장에서는 개별로 행사를 알릴 때보다 홍보 효과가 크다는 반응이 나온다.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지원을 받은 부산비엔날레 전시해설은 매회 정원을 채울 정도로 인기란다. 주요 미술관 할인 혜택까지 제공하는 부산·광주 비엔날레 통합권과 철도승차권을 연계한 특별 관광상품 판매 등 관계기관의 협력도 눈에 띈다.
“서울이 정말 들썩들썩해요.” 지인의 이야기는 쏟아지는 보도자료의 홍수 속에서도 확인된다. 3회차에 접어든 ‘키아프리즈’를 찾아올 국내외 미술 관계자를 겨냥해 야심 차게 준비한 전시 소식이 이어진다. 세계적 거장, K아트를 이끄는 중견 작가, 새롭게 주목받는 신진작가 등을 만나는 기회가 서울 곳곳에 펼쳐진다. 대한민국 미술축제의 순항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부산, 광주, 대구, 대전 등 다른 지역에서도 예전보다 구체적인 움직임이 보이는 것 같아 긍정적이지만, 대부분의 열기가 서울에만 집중되는 점은 아쉽다. 우리 도시에서 열리는 전시들이 대한민국 미술축제라는 배에 같이 오를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은 지역 문화행정의 역할이 아닐까.
그렇다고 미술축제가 서울만의 것이라고 예단할 필요는 없다. 우선 부산비엔날레가 준비한 ‘현대미술의 배’에 승선해 보자. 원도심에 있는 부산근현대역사관, 초량재, 한성1918은 입장료도 안 받는다. 인터넷 검색창에 ‘부산 전시’만 입력해도 다양한 전시 정보가 쏟아진다. 그중 가까이 있는 전시장부터 방문해도 된다. 개인적으로 관심이 가는 전시를 찾아가면 더 좋다. 부산 갤러리들도 작가와의 만남, 오픈 파티 등 크고 작은 행사를 준비 중이다. 지난주 해운대 한 갤러리의 전시 개막식에 참석했다. 대부분 초면이라 한동안 어색함이 흘렀다.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와 작품 이야기를 하면서 분위기가 점점 좋아졌다. 축제가 멀리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이번 주말에는 서울 대신 지인들과 부산비엔날레를 다시 보러 가기로 했다. 내친김에 수첩에 연말까지 가볼 곳을 적어본다. 광주비엔날레, 창원조각비엔날레, 대구 간송미술관, 대전 이응노미술관과 헤레디움…. 올해는 각지로 예술 발품을 좀 많이 팔 운세인가 보다.
2024-09-02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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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다문화와 공존하는 도시, 부산
최근 은성의료재단 좋은병원들이 개최한 다문화가족을 위한 사회사업 ‘2024 굿 스타트(GOOD START)’ 발대식에 취재를 간 적이 있다. 굿 스타트 사업은 부산 지역 저소득 다문화가족에 교육과 의료 지원을 하는 사회사업 프로젝트다. 2021년 4월 부산시, 은성의료재단 좋은병원들, 초록우산, 부산일보사가 협약을 체결하면서 시작됐다.
부산시와 부산 지역 14개 다문화가족지원센터는 굿 스타트 사업 안내와 지원 대상을 추천하고, 초록우산은 대상자 선정과 관리를 한다. 은성의료재단은 매년 1억 원의 사업비를 지원한다. 주요 사업은 다문화가족 산모 대상 마더박스 제작과 지원, 아동 기초 교육 학습 지원, 학부모 대상 검정고시 장학금 지원 등이다.
부산 지역에서 다문화가족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행정안전부 외국인 주민 현황 통계(2022년 11월 기준)에 따르면 부산 지역 다문화가족(결혼이민자 및 자녀)은 2만 7389명에 이른다. 국적별로는 베트남이 9805명으로 가장 많고, 중국 4761명, 중국(한국계) 3125명, 필리핀 2004명, 일본 1274명, 대만 743명 등 순으로 나타났다. 다문화가족은 2014년 2만 551명으로 2만 명을 돌파한 뒤 2020년 2만 6050명, 2021년 2만 6808명, 2022년 2만 7389명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022년 기준 다문화가족 2만 7389명은 결혼이민자 1만 4265명, 자녀 1만 3124명으로 구성돼 있다. 국제결혼 초기 입국한 여성들의 자녀가 성장함에 따라 영·유아 비중은 낮아지고 학령기 자녀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다문화가족 자녀 1만 3124명 중 학령기(7~18세) 자녀는 8212명으로 62%나 차지한다. 다문화가족은 자녀 돌봄, 교육비 마련, 학습 지도 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부산시도 다문화가족 구성원이 언어와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고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다. 시는 국비 사업으로 다문화가족 자녀 진로 설계·기초 학습·교육활동비 지원, 다문화가족 방문교육 사업, 다문화가족 자녀 언어 발달 지원, 이중언어 교육 지원 등을 실시하고 있다. 또 시 자체 사업으로 결혼이주여성 학력 신장 지원, 한국어 교재 지원등을 펼치고 있다.
‘수도권 집중’이란 폐해 속에서 부산은 저출생, 학령 인구 감소, 청년 인구 유출, 생산인구 감소, 총인구 감소 현상을 겪고 있다. 인구 절벽과 지역 소멸 위기감이 어느 때보다 크다. 이런 가운데 다문화가족을 포용해 함께 성장·발전하고 외국인 유학생, 외국인 근로자 등 외국인 주민을 지역 인구로서 어떻게 통합하고 유입할 것인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산시는 지난 7월 1일 인구정책담당관 부서를 신설했다. 인구 전략을 수립하고, 현장 수요 맞춤형 인재 양성, 부산형 체류 콘텐츠 개발, 외국인 유학생 유치 등 청년인구 유입 정책을 추진한다고 한다. 인구정책담당관에는 다문화가정지원팀과 외국인정책팀이 들어가 있으며 다문화가족·외국인 주민 관련 정책을 통합 추진한다.
학령 인구 감소로 위기를 맞고 있는 대학들도 유학생 유치와 양성을 통해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다. 교육부는 오는 2027년까지 유학생 30만 명 유치를 목표로 유학생 교육경쟁력 제고 방안인 ‘스터디 코리아 300K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부산시도 2028년까지 외국인 유학생을 3만 명까지 늘릴 계획이다. 이 프로젝트는 RISE(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 사업과 연계해 우수한 외국인 유학생의 유치, 학업, 취업, 정주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다. 외국인 유학생을 미래의 이웃으로 보고, 이들에게 한국어와 한국문화, 기술 등 직업교육을 제공하고 취업 역량을 강화해 국내 산업인력으로 양성한다는 취지다. 외국인 유학생 유치는 지역 대학의 신입생 모집난과 기업 구인난을 동시에 해소하고 해외 우수 인재들의 지역 정착으로 이어져 인구 소멸에 대응하는 유용한 전략이 될 수 있다.
물론 부산이 지역 소멸을 막기 위해서는 △결혼, 출산, 양육이 행복한 도시를 위한 제도 마련과 지역기업들의 노력 △산업은행 이전 등 공공기관 이전과 산업구조 고도화 등을 통한 지역 일자리 확보 △주거·여가·문화·교통 등 정주 환경 통합적 개선 등 종합적이고 중층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여기에 다문화가족 지원과 외국인 유학생 유치도 인구절벽을 막고, 부산이 글로벌 도시로 도약하는 하나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다문화가족이 증가하고 외국인 유학생 유치가 활발해지는 시점에서 지역 사회가 이들을 포용하고 공존하는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우리 모두가 다문화가족을 포함한 이주민과 외국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버리고, 다문화 수용성을 점점 높였으면 한다.
김상훈 독자여론부 선임기자 neato@busan.com
2024-08-28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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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골디락스 콤플렉스 “부산 여권 뭐라도 하라”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를 보면서 뜬금없이 고대 로마 콜로세움의 검투 장면이 떠올랐다. 막판까지 5명의 최고위원 당선권 경계선에 있던 전현희 의원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장에서 “김건희 살인자”를 목청껏 외친 후 단숨에 2위로 지도부에 입성했다. 친명(친이재명)계 중에서도 그닥 존재감이 없던 김병주 의원이 줄곧 당선 안정권에 속할 수 있었던 동력 또한 국회 본회의장에서의 느닷없는 “정신 나간 국민의힘 의원들” 발언이었다. 치과의사 출신에 장관급인 권익위원장까지 지낸 정치 엘리트와 ‘별 중의 별’ 4성 장군 출신 의원이 강성 지지층의 ‘엄지척’을 받기 위해 싸움닭을 자처한 꼴이다. 극에 달한 여야 적대 정치를 상징하는 장면들이다. 더 험하게, 더 격렬하게 여당과 치고 받을 줄 알아야 지지층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민주당 의원들과 더 잔인하고 흉폭하게 상대를 제압해야 광기 어린 군중의 선택을 받는 검투사, 왠지 신세가 흡사해 보이지 않는가. 여기서 무슨 정책과 비전, 리더십을 논하는 건 한가롭다. 오로지 윤석열 정권을 끝내고, 이재명 대표를 옹위하는 것 외에 나머지는 다 부차적일 뿐.
그렇게 쓸려 간 부차적인 것들 중에 KDB산업은행 부산 이전도 있다. 부산 전대에서 산은 이전의 최대 장애물인 김민석 의원의 약진은 개인적으로 충격이었다. 김 의원이 누구인가. 2010년 부산시장 선거에 도전하면서 ‘부산의 아들’을 자처한 김 의원이다. 당시 그의 선거 슬로건이 “서울을 이기자”였다. 경선이 끝나서도 부산 발전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 그는 이제 “산은이 부산에 가면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결사 반대한다. 부산 연고를 언급하는 질문에 처가는 호남이라며 “출신지는 큰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말이야 맞는다고 해도 그 표변이 놀랍고, 허탈하다. 그에게 부산은 그저 ‘철새 정치’로 인한 경력 단절을 해소하기 위한 소품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이재명 대표가 “김민석 표가 왜 이렇게 안 나오냐”고 했어도 적어도 부산이라면 김 의원에게 준엄한 경고장을 날릴 것이라고 봤다. 결과는 예상과 정반대였다. 김 의원으로선 이제 지역구 시설인 산은을 지키는 데 거칠 것이 없어졌고, 전대 이후 ‘부산 민심을 이제 알겠느냐’며 김 의원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려던 부산은 할 말을 잃게 됐다.
민주당 전대 이후 산은 이전의 전제인 산은법 개정안 처리는 더 험난한 상황에 놓였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등장한 지 3년이 지났지만 이전을 반대하는 민주당의 힘은 더 막강해졌고, 핵심 반대 세력들의 입지는 더 굳건해졌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뚫고 가야 할 부산의 대응은 무기력해 보인다. 금방 될 것처럼 여겼지만 20년의 ‘희망고문’을 겪었던 가덕신공항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물론 부산시나 개별 의원 차원에서 산은법, 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 에어부산 분리매각 등 부산 주요 현안을 두고 ‘원내 지도부에 당부했다’, ‘산은 회장을 만났다’, ‘대한항공과 접촉했다’ 등 움직임은 부산해 보인다. 그러나 실질적 결과를 반드시 얻어내겠다는 결기보다는 ‘그래도 할 만큼 하고 있다’는 알리바이 만들기 정도로 느껴진다면 좀 지나친 얘기인가.
최근 만난 부산의 한 원외 인사는 “지난해 새만금 사업 예산이 삭감됐을 때 전북 국회의원과 시·도 의원까지 일제히 삭발로 항의로 정부의 재검토를 이끌어냈는데, 부산 정치권은 지역 회생의 절호의 기회가 날아가게 생겼는데 너무 차분한 것 아니냐”고 했다. 물론 삭발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이재명 지키기에 올인한 거대 야당과 거부권 외에 수단이 없는 무기력한 소수 여당의 끝없는 반목 사이에서 수도권과 버금가는 국가적 과제인 지역 소멸을 막을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가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얼마 전 미 민주당 전당대회에 나선 미셸 오바마가 언급한 ‘골디락스 콤플렉스’가 기억에 남는다. 영미권 구전동화에서 유래된 이 말은 ‘극단적 조건 사이에서 적당한 해법을 추구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그녀는 카멀라 해리스의 승리를 의심하는 지지층에게 ‘적당히 이길 수 있는 후보’는 없으니 가만히 앉아 기다리지 말고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해 “뭐라도 하라(Do something)”고 지지층에게 일갈했다. 부산 여권이야말로 지금 이 콤플렉스에 갇혀 있는 상태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대통령과 당 지도부는 물론 민주당 지도부와도 과감하게 부딪쳐 현상 변화를 이끌어내기 보다는 적당하게 안주하면서 상황 변화만 기다리다가는 부산이 국가 ‘양대 축’으로 도약할 기회는 영영 날아갈지 모른다. 무모한 결행이든, 과감한 상상력이든 정말 뭐라도 해야 할 때다.
2024-08-26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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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전기차 시장 ‘빙하기’ 오나
“앞으로 전기차 시대가 올 거다. 내연기관은 조만간 사라질 것이다.”
2000년대 후반 자동차 분야 출입처로 처음 왔을때 자동차 업계 한 전문가는 이렇게 얘기했다. 당시만 해도 가솔린차와 디젤차들이 주를 이루던 때였다. ‘설마 그렇게 될까’ 했다. 전기차 충전을 어떻게 할 건지, 요금을 어떻게 매길 건지 등 드는 의문도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이후 2013년 르노삼성(현 르노코리아)의 국내 첫 양산 전기차 ‘SM3 Z.E’가 나왔지만 한 번 충전에 135km 주행하는 정도여서 실용성이 떨어졌다. 그러다가 미국의 테슬라가 완충 시 주행거리를 500km 안팎으로 늘린 신차를 출시하고 이어 급속충전기까지 등장하면서 전기차 시장은 급격히 성장했다.
다른 완성차 업체들도 앞다퉈 전기차 개발에 나섰고, 주행거리가 테슬라와 맞먹는 모델들도 잇따라 선보였다. 2020년께는 전기차 시장이 향후 대세로 갈 거라며 메르세데스-벤츠 등 주요 완성차 업체들은 2030년 전후로 모든 내연기관을 전기차로 바꾸겠다고까지 발표했다.
하지만 전기차 시장은 최근 몇년새 주춤했다. 초창기에는 얼리어답터들을 중심으로 전기차 시장이 매년 30%씩 판매량이 늘어났지만 초기 수요가 어느 정도 해소되면서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이 생겨났다. 여기에 최근 인천 청라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일어난 벤츠 전기차 화재는 국민들에게 적지않은 충격을 줬다.
차 한 대 화재로 끝나지 않고 한 층 전체에 주차된 140여 대가 전소됐고, 아파트는 단전·단수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해당 전기차 소유주 입장에선 기름값 좀 아끼려다가 졸지에 대형 화재의 원인제공자가 됐고, 향후 예상되는 막대한 소송에도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번 화재이후 사회 전반에 ‘전기차 포비아(공포증)’가 형성되면서 아파트 단지들에선 지하 주차장 전기차 출입금지, 지하 충전 금지, 지하 충전시설 지상 이전 등의 움직임까지 일고 있다. 대중교통에서 최근 확대되고 있는 전기택시와 전기버스도 기피하는 분위기다. 한 40대 주부는 “길가에서 택시를 잡으려다가 전기차가 오면 그냥 보낸다. 왠지 타기가 불안하다”고 했다.
지구 반대편 포르투갈에서도 테슬라 추정 화재로 주차빌딩에 있던 차량 200여 대가 불 탔다.
전기차 화재는 대부분 배터리의 불안정한 액체상태에서 기인한다. 배터리에 열이 나면 부풀어오르면서 화재가 나고 옆 배터리셀로 번지면서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른바 열폭주 현상이다. 전기차는 불이 나면 소방관들도 일반 화재처럼 진압하지 않고 있다. 6~7시간 차량이 전소되도록 내버려두거나 차량을 수조로 채워서 진압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자동차 업계에선 전기차 캐즘에서 이제 ‘전기차 빙하기’로 접어들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중고차 시장에선 이번 인천 화재 이후 “불안해서 못타겠다”며 2주 동안 기존 대비 거의 3배 이상의 매물이 쏟아지고 있다. 전기차 구매를 계약했던 이들도 취소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최근 전기차 개발에 올인하다시피한 국산 완성차 업체들과 수입차 업체들은 적잖이 당황스러운 눈치다. 하반기 전기차 출시가 줄줄이 예정돼 있는데 시장 상황은 ‘전면 보류’다. 일부 업체들은 ‘현상유지’ 차종이었던 하이브리드 모델 출시를 다시 서두르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에 업체들도 내연기관의 전기차 완전 전환 시점을 수년씩 늦추고 있다. 하이브리드 수요가 다시 살아나면서 이 부문 판매차종이 많은 일본 토요타, 렉서스와 혼다 차량 판매는 확대되고 있다.
한편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국내 배터리 제조사들은 화재에 강한 재료를 배터리에 사용하거나 불이 나더라도 옆 셀로 번지는 것을 막는 방법을 적용하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다. 화재에 강해 ‘꿈의 배터리’라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도 나서 이르면 2026년께 관련 제품이 출시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2~3년간은 전기차 화재가 계속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국내 전기차 판매를 주도하고 있는 테슬라와 현대차·기아는 “안전에 문제가 없다”며 설명자료를 내고 고객 대상으로 안전점검까지 실시하고 있지만 소비자들의 불안은 쉽게 가시지 않고 있다.
국회와 학계, 완성차 제조업체 등을 중심으로 전기차 화재 방지에 대한 세미나도 잇따라 열리고 있다. 하지만 전기차 화재를 막을 ‘뾰족한 수’는 현재로선 없다.
2024-08-21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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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폭염과 기후재난
그야말로 역대급 더위다. 부산의 열대야 지속 일수는 지난 18일까지 총 25일에 달한다. 이미 지난 14일에 1994년과 2018년의 열대야 지속 일수(21일) 역대 기록을 갈아 치웠다. 기상관측이 시작된 1904년 이후 가장 긴 열대야 지속 일수 기록이다. 폭염에 관한 각종 신기록 행진은 오늘도 전국 각지에서 진행 중이다. 하지만 기후위기는 올림픽이 아니다. 기록 경신 소식이 반갑지 않은 이유다.
이제는 ‘지구 온난화(Global Warming)’가 아니라 ‘지구 열탕화(Global Boiling)’ 시대라고 부를 정도로 기후위기가 심각하다. 기후위기라는 용어조차 기후재난, 기후재앙으로 대체되고 있을 정도다. 올여름 특히 고온다습해진 우리나라 날씨를 빗대 ‘습식 사우나 같다’는 말이 유행한다. 전문가들은 올해가 어쩌면 남은 일생에서 가장 선선한 여름일지도 모른다고 경고한다. 정말 믿고 싶지 않은 이야기지만 말이다.
모름지기 피서라면 시원한 계곡이나 자연을 찾아 떠나야겠지만, 야외로 휴가를 떠나기에도 두려운 날씨다. 그래서 지난해와 올해 여름 휴가지는 모두 서울로 택했다. 주변에선 “서울이 더 덥지 않냐”며 의아해 했다. 그런데 이제 우리나라에 덥지 않은 곳이 있기나 한 걸까. 차라리 전시장, 공연장, 쇼핑몰 같은 실내가 더위를 피하기엔 더 제격이라 판단했다.
공교롭게도 휴가 때면 서울 혹은 그 인근에서 큰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해 8월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AK플라자 부근에서 흉기 난동 사건이 벌어졌다. 비슷한 시기, 친구와 나는 서울에 있는 또 다른 AK플라자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던 차였다.
지난달엔 서울 은평구에서 일본도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 휴가 차 서울에 간 김에 그곳에 직장을 둔 지인에게 연락을 했더니 “회사 동료가 상을 당했는데, 고인이 일본도 사건의 피해자라고 한다”며 안타까워 했다.
휴가 때마다 충격적인 사건 사고가 되풀이된 탓일까. 동행한 친구는 “내년부턴 여름 휴가 땐 서울에 가지 말아야 되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인구의 50% 이상이 밀집한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에 각종 사건 사고가 더 많은 건 확률적으로도 설명이 되는 문제다. 그렇다면 폭염이라는 기후 변수는 어떨까. 묻지 마(이상동기) 범죄나 흉기 난동 사건이 혹시 더위와 상관 관계가 있을까?
미국의 기후 저널리스트 제프 구델은 책 〈폭염 살인〉에서 “그렇다”고 답한다. 기온이 올라갈수록 혐오 발언·자살·총기 사고·강간 사건과 폭력 범죄도 증가한다는 것이다. 더위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평소보다 더 충동적으로 행동해 쉽사리 분쟁을 일으킨다는 설명이다. 우리나라도 이와 유사한 인과 관계가 성립될지는 별도 연구를 통해 입증해 봐야 할 일이다. 또 이 책에 따르면 지구 온도가 1도 상승할 때마다 미국의 1년 GDP의 1.2%에 해당하는 3000억 달러(약 400조 원)가 사라진다고 한다. 폭염으로 인한 생산성 저하 탓이다.
국내에서도 기후재난과 관련한 분석,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상승한 물가의 10%가량은 이상기후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사과 1개 가격이 1만 원에 달할 정도로 치솟아 한때 ‘금사과’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과일 가격이 급등한 원인에도 기후위기가 꼽힌다. 경제나 물가, 생산성 같은 문제가 아니더라도 이제 기후재난은 우리 모두가 체감하는 생활 이슈가 됐다. 매일 밤 열대야로 잠을 설치는 건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고, 폭염으로 고통 받는 취약계층은 바로 우리 이웃의 이야기다. 더 이상 저 멀리 사는 북극곰의 문제 정도로 기후위기 대응을 미뤄둘 수 없다.
올여름엔 ‘더위가 그쳐 계절이 바뀐다’는 처서의 마법도 통하지 않을 거란 우울한 예보가 나온다. 기상청에서도 최근 한반도의 계절별 길이 전반을 재설정하는 논의를 검토할 정도로, 계절의 의미가 변화하고 있다. 봄·여름·가을·겨울 사이좋게 3개월씩 나눈 한반도의 사계절은 이제 추억 속으로 사라질지도 모른다. 조상의 지혜가 담긴 과학으로 추앙받던 24절기도 급격한 기후변화 앞에서는 그 권위를 잃어갈 가능성이 높다. 우리도 기후재난에 대한 대응을 서둘러야 한다. ‘미세먼지나 탄소 배출 문제는 다 중국 때문’이라는 남 탓이나 ‘너는 에어컨 없이 살 수 있냐’ 하는 감정적 반응은 이제 그만 거두자. 정부와 지자체, 기업이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대응에 나설 수 있도록 국민, 시민, 소비자로서 제 목소리를 내야 할 때다.
2024-08-19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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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YS 상도동 사저는 괜찮을까
정치부 초년 기자 시절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자택인 서울 동작구 상도동 사저를 몇 번 취재 갔었다. 그리 큰 집도 아닌데 현관에는 늘 방문객들의 구두가 어지럽게 널려 있고, 본채 건너 조그만 별채에는 일이 없어도 정치권 주변 인사들이 모여 잡담을 하며 시간을 때웠다.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후 상도동에 인사하러 갔다. YS의 ‘3당 합당’을 거부했던 노무현은 YS가 예전에 선물로 준 손목시계를 내보이며 “총재님(YS) 생각날 때는 꼭 차고 다녔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 결과는 노무현의 지지율 폭락이었다. 당시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민주당은 DJ와 숙명의 라이벌인 YS에게 잘 보이려는 노무현을 용납할 수 없었다. 이런 일들을 지켜보면서 정치가 표면적으로는 여의도에서 이뤄지지만, 실질적인 정치공간은 다른 곳에 있다고 느꼈다.
YS의 상도동 사저와 DJ의 동교동(서울 마포구) 사저는 한국 민주화의 상징이다. ‘상도동계’와 ‘동교동계’라는 말도 사저가 자리잡은 동네 이름에서 나왔다. ‘계파 정치’라는 부정적 그림자도 없지 않지만 독재 정권 하에서 야당이 생존하기 위한 ‘안방 정치’의 현장으로 꼽힌다.
DJ의 3남 김홍걸 전 의원이 최근 동교동 사저를 프랜차이즈 사업가에게 100억 원에 매각해 논란에 휩싸였다. 김 전 의원은 거액의 상속세를 충당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해명한다. 하지만 DJ 부인이자 자신의 친모인 이희호 여사가 “동교동 사저를 대통령 기념관으로 하라”는 유언을 남겼다는 점에서 아무리 봐도 부적절하다.
그렇다면 YS 쪽은 괜찮을까? YS 집안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동교동계에서 사저 문제가 먼저 터져 나와서 그렇지, 우리 쪽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YS는 2010년 자신의 전 재산 60억 원을 기부해 사단법인 ‘김영삼민주센터’를 설립했다. 상도동 사저를 비롯해 경남 거제 선산, 어장 등이 모두 포함됐다. 이듬해 YS의 민주화 운동 업적을 기리기 위해 사저 근처에 부지를 마련해 ‘김영삼대통령 기념도서관’을 세우기로 했다.
도서관은 2015년 준공됐지만 건축비 부족, 채무 및 세금 문제 등으로 껍데기만 있고 내부 공사는 중단되고 방치됐다. 김영삼민주센터는 YS의 출생지인 경남 거제시에 건물을 기부채납하고 공사를 마무리하려 했으나 거제시가 인수를 포기해 무산됐다. 이 과정에서 상도동 사저가 압류·매각될 위기에 처했다. 유족들은 사저만큼은 지키자며 2017년 YS 장남 은철 씨(지난 8월 7일 별세)의 아들인 김성민 씨의 명의로 매입했다. 당분간 상속 문제에 있어서는 동교동과 같은 사태가 불거질 일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상도동 측이 YS 기념사업을 해왔던 과정을 되돌아보면 여전히 불안하다. 김영삼도서관은 서울 동작구가 건물을 기부채납 받아 남은 공사비를 부담하고, 주민개방형 공공도서관으로 만들었다. 재정위기를 겪던 김영삼민주센터는 ‘지정기부금단체’에서 해제돼 더 이상 기부금을 받지 못한다. 김영삼민주센터가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도서관을 기부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다.
2022년 문민정부 출범 30주년을 맞아 YS의 차남 김현철은 ‘김영삼대통령기념재단’을 설립했다. 김영삼민주센터로는 더 이상 돈을 마련할 길이 없어 또 다른 재단을 만든 것이다. 30주년 사업을 겨우 마무리할 수 있었지만 ‘김영삼 재단’은 김영삼도서관의 한 개 층을 사용하며 간신히 버티고 있다.
YS는 한국 정치사의 걸출한 지도자이자, 민주화의 상징이다. 임기 말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로 평가절하됐지만 그가 없었으면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1983년 전두환 독재 정권 때 광주민주항쟁 3주년을 맞아 23일간 목숨을 건 단식투쟁으로 민주화 운동에 불을 붙였다. 사분오열하던 야권은 하나가 돼 1985년 2·12 총선에서 예상 밖의 승리를 거뒀고, 1987년 6월 항쟁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뤄낸다. 대통령이 되자 금융실명제 실시, 군내 사조직 하나회 해체 등 전광석화로 역사를 바꾸는 결단을 했다.
YS의 뿌리는 부산이다. 부산에서 자랐고, 부산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돼 정치 지도자로 성장했다. 부산의 정치권, 상공인, 학계, 시민단체들이 나서서 YS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사업에 적극 나서야 할 이유다. 그렇지 않으면 동교동에서 벌어진 낯 뜨거운 논란이 상도동에서도 생기지 말라는 법이 없다.
상도동 사저는 현재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두 사저를 동시에 국가가 관리·보전하는 ‘근·현대 문화유산’으로 함께 지정하는 것도 바람직한 대안이 될 수 있다. 한국 민주화의 큰 산인 YS와 DJ의 사저가 국민통합의 상징적 공간으로 자리잡기 바란다.
2024-08-14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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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부산은 싱가포르가 될 수 있을까
‘아시아의 네 마리 용.’ 1970~80년대 일본의 뒤를 이어 고도 경제성장을 이룩한 아시아 신흥 공업국인 한국과 대만, 홍콩, 싱가포르를 한데 묶어 일컫던 말이다. 태평양과 아시아 대륙을 잇는 지정학적 강점에다 높은 교육열, 근면한 국민성 등을 앞세워 이들 네 나라는 유례없는 경제발전을 이끌어내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각축전을 벌였다.
하지만 인구 규모가 컸던 한국이 화학, 철강, 자동차, 조선, 반도체 등 여러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용 중의 용’으로 날아오르면서 이 표현도 차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1988년 서울올림픽은 이를 국제사회에 입증 받는 일종의 세리머니였다.
그로부터 36년이 지난 현재 네 마리 용의 운명도 엇갈렸다. 홍콩은 중국으로 반환돼 일국양제 체제가 흔들리며 빛바랜 홍콩영화 속 ‘화양연화’를 그리워하는 처지가 됐고, 대만 역시 중국과 첨예한 양안 갈등으로 상시적인 안보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 10대 경제 대국 반열에 올라섰지만, 극단적인 지역 불균형과 인구 급감으로 해가 다르게 성장 동력이 꺾이고 있다.
‘네 마리 용’ 중 가장 주목 받지 못하던 싱가포르만이 오늘날 여전히 드라마틱한 성장세를 구가하는 국가다. 아시아의 금융 허브, 스마트 물류 중심, 세계에서 가장 기업하기 좋은 나라…. 싱가포르는 해상 물류산업을 기반으로 조선·정유·반도체 등 고부가가치 제조업을 육성하고, 여기에 금융·관광·마이스 등 서비스산업을 접목시키는 등 세계 산업구조 전환에 발 빠르게 대응하며 글로벌 경제 중심지로 우뚝 섰다.
지난 6월 부산시 연구팀과 함께 싱가포르를 방문해 느낀 소회는 부산이 꿈꾸는 미래상이 싱가포르에 있다는 점이다. 초고층 빌딩들이 밀집한 싱가포르의 금융중심지 래플스 플레이스부터 코로나 팬데믹 이후 숙박료가 갑절 이상 뛰었지만 객실 구하기가 어렵다는 마리나베이샌즈 호텔, 인공섬을 매립해 세계 최대의 완전 자동화 스마트항만을 건립하는 대역사가 착착 진행 중인 투아스까지 싱가포르는 ‘글로벌 허브도시 부산’의 모범답안이 되기에 충분했다. 도심 곳곳에는 공원과 정원이 숨겨져 있어 일상에 여유와 휴식을 선사했다.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해 외국인이 생활하기에 불편함이 없다는 점도 큰 매력이었다.
국토가 좁고 내수시장도 작은 싱가포르가 ‘글로벌 허브도시’로 우뚝 선 원동력은 적극적인 개방 정책과 해외투자 유치다. 파격적인 세제 혜택을 줘 기업을 유치하고 규제와 절차 역시 줄여줬다. 상속세와 증여세가 없고, 자본소득과 배당소득에도 과세하지 않으며 법인세 역시 17% 수준이다.
부산이 ‘글로벌허브도시 조성에 관한 특별법’ 통과에 목을 매는 이유가 이것이다. 싱가포르 ‘성공 방정식’을 적용해 부산을 사람과 기업, 자본이 함께 몰리는 국제적인 비즈니스·관광도시로 탈바꿈시킬 수 있다는 게 부산시 복안이다.
관건은 국회가 연내에 특별법을 통과시킬지, 통과되더라도 입법 취지를 훼손하지 않고 순조롭게 시행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싱가포르가 파격적인 유인책을 통해 글로벌 기업을 끌어 모으는 이면에는 철저한 국가 주도의 발전 전략이 있다.
법과 원칙에 예외를 두지 않는 무관용 원칙을 표방하면서 국민 반대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국가 청렴도 순위에서 아시아 1위를 차지하면서도 언론자유와 민주주의 지수에서는 하위권을 맴도는 양면성을 가진 국가다. ‘먹고 사는 문제는 정부가 책임질테니 국민들은 따르라’는 엘리트 관료주의가 지배하는 나라다. ‘싱가포르 모델’은 극도의 효율성과 강력하고 속도감 있는 정책 집행이라는 측면에서 강점을 지녔지만, 민주주의와 지방자치에 뿌리를 둔 한국 사회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결국 부산을 글로벌 허브도시로 도약시키기 위해서는 국가적 명분과 사회적 합의가 필수다. 특별법이 단순히 ‘부산 특혜법’이 아니라 ‘대한민국 특단법’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 사실 특별법은 부산만의 발전을 꾀하자는 것이 아니다. 낡은 수도권 일극체제를 고수하다 성장의 한계에 직면한 대한민국의 틀을 바꿔 혁신과 발전을 이끌 기폭제로 삼자는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타 지역 눈치를 보느라 법안 처리에 미적거리고 이런저런 칼질을 가한다면 ‘허울뿐인 특별법’으로 전락할 것이 뻔하다. 지방소멸이 단순히 한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존립 자체를 흔드는 위협이라는 점을 인식한다면, 수도권 중심의 불균형 성장 전략부터 포기해야 한다. 지금처럼 산업은행 부산 이전 문제를 풀지 못해 여야가 티격태격하며 ‘골든타임’을 허비해서는 미래가 없다. 부산을 필두로 지방을 국가의 신성장 동력으로 십분 활용해 대한민국이라는 반쪽짜리 운동장을 온전히 넓게 써야 한다.
2024-08-1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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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고맙다. 젊고 아름다운 태극전사여!
“국민들의 기대가 높다 보니까 거기에 대한 부담감도 컸고, 경기를 즐기기보다는 결과를 내야 하는 압박감이 조금 더 컸던 것 같아요. 그래도 훈영 언니랑 수현이랑 그 와중에 즐겨보자는 마인드로 하다 보니까 좋았어요.”
2024 파리 올림픽에 출전한 양궁 임시현 선수의 인터뷰 내용이다. 이제 스무 살 넘긴 이 선수의 발랄하고 환한 웃음이 폭염과 열대야로 지칠 대로 지친 전 국민의 마음을 씻어냈다.
제33회 파리 올림픽이 폐막을 3일 앞두고 있다. 올림픽은 보는 사람들에게도 감동을 안겨주지만, 운동선수들에게는 그야말로 ‘꿈의 무대’다.
이번 올림픽에서도 수많은 감동의 순간들이 꿈의 무대를 수놓았다. 이는 분명히 세계 최고의 실력과 마인드로 무장한 선수들이 진정으로 스포츠 그 자체를 즐기면서 빚어진 일일 것이다.
파리 올림픽은 시작부터 대한민국 금메달 소식이 터졌다. 당초 금메달 5개라는 예상치를 뛰어넘는 승전보가 울려 퍼지면서 전 국민의 마음을 설레게 했고, 태극 전사의 멋진 플레이는 전 세계인의 마음을 훔쳤다.
이 가운데서도 태극 궁사들의 기록은 눈부셨다. 이번 올림픽에서 전 종목 석권이라는 전대미문의 대기록을 세웠다. 한국 양궁 여자 단체전은 올림픽 10연패라는 금자탑을 이뤘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36년 동안 올림픽 여자 양궁 단체전 시상식에서는 애국가만 울려 퍼졌다. 그야말로 전 국민에게 넘치는 ‘국뽕’을 선사했다.
하지만 이들이 세운 대기록의 이면에는 분명 아픔과 부담감이 존재했을 것이다. “금메달 따면 본전, 못 따면 망신”이라는 방정식 속에서 선수들이 느꼈을 압박감은 상상을 초월했을 것이다. 어린 그들은 이런 압박감을 어떻게 극복했을까?
이번 올림픽 현장에서 나타난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들을 살펴보면 얼핏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화면에 나타난 대한민국 선수들은 누구 하나 얼굴을 찌푸리지 않았다. 메달을 놓치고 나서 죄인이라도 된 듯 “국민에게 송구하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지든 이기든 얼굴을 미소를 지며 ‘참가가 목적’이라는 올림픽을 진정으로 즐기는 모습이었다. 어떤 선수는 카메라를 바라보며 손을 들어 자신감을 과시했다. 다른 선수는 앳된 얼굴의 미소를 지으며 손 하트를 날리며 관중들에 감사함을 전했다.
이런 ‘즐기는 대한민국 선수’ 징조는 앞선 2023년 항저우 아시안게임 때도 연출됐다. 탁구 혼합 복식 시상식에서 한국의 두 팀이 공동 3위에 올랐다. 시상대에서 남자 선수 장우진이 여자 선수 전지희의 목 뒤에 엉킨 메달 끈을 정리해 줬다. 이 달콤한 모습에 중국 관중들이 환호했다. 잠시 부끄러워하던 우리 선수들은 ‘볼 하트’로 답례했다. 금·은메달 중국 선수들은 구경만 하고 있었다. 중국 누리꾼들은 ‘우리(중국) 선수들은 왜 한국 선수처럼 즐기지 못하나’고 부러워했다. 이 영상은 전 세계에 널리 퍼지면서 꽤 오랫동안 화제가 됐다.
다시 이번 올림픽으로 돌아가 보자. 파리 올림픽 높이뛰기 우상혁 선수는 개회식 기수단으로 누구보다도 대회를 즐긴 것 같다. 세계육상연맹이 우상혁 선수를 저본 해리슨, 셸비 매큐언(미국)과 함께 ‘관중을 즐겁게 할 쇼맨’으로 꼽았다.
선수들의 즐기는 만큼이나 국민들의 반응도 크게 달라졌다. 예전에는 올림픽에서 선수들을 메달로 평가했다. 하지만 이번 올림픽에서는 선수들의 열정의 땀과 눈물, 도전과 노력의 과정을 토닥여 주고 큰 박수를 보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최선을 다한 많은 선수를 격려했다. 대한민국은 더 이상 메달이 아니라 선수가 흘린 땀방울에 존경을 보내고, 진정으로 즐기는 선수를 응원할 수준에 올랐다.
파리 올림픽 국가대표 선수와 국민의 거리낌 없는 당당함, 과정을 즐기는 자세, 승패를 받아들이는 겸허함 등. 특검 탄핵 거부권 악순환으로 두 달 넘어 헛발질만 해대는 한국의 정치인들이 배워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언제 대한민국 국가대표, 국민의 수준으로 올라올지, 한심한 마음 그지없다.
답도 없는 얘기는 그만하자. 이번 올림픽에서 최선을 다하고 자신의 꿈을 펼친 대한민국 대표선수들을 열렬히 응원하고 찬사를 보낸다. 메달이 아닌 진정 즐기는 모습으로 전 국민을 사로잡고 위로한 태극전사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보낸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으니 오늘 최선을 다하고 즐기자”라는 말이 이번 올림픽에서 받은 최고의 위로임을 고백한다. 고맙다. 젊고 아름다운 태극전사여!
2024-08-07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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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좋아요'는 차갑다
SNS에서 오랜만에 지인이 보인다. SNS에서 본 지인에게 반가움을 표현할 방법은 많다. 우선 전화를 해서 이러쿵저러쿵 떠들어 댈 수도 있다. 막상 전화하기가 꺼려진다면? DM(다이렉트 메시지)을 보내 그동안 묻지 못했던 안부를 조심스럽게 전달할 수도 있다. 이것도 부담스럽다면 댓글로 “오랜만이다. 잘 지내냐”라고 남길 수도 있다. 하지만 댓글 남기는 것도 애매하다는 생각이 들면 ‘쿨’하게 ‘좋아요’를 누르고 슬며시 지나간다. 관심은 표했다. 하지만 서로 연결의 여지는 남기지는 않는다.
알고리즘과 좋아요가 만나면 좋아요는 훨씬 차가워진다. 일반적으로 어떠한 콘텐츠에 좋아요를 누르는 것은 매우 능동적인 행위로 간주된다. 우리가 뉴스나 콘텐츠를 볼 때 좋아요나 댓글을 남기는 일은 자주 없다. 그만큼 좋아요는 상당한 관심이 있음을 알려주는 행위다.
콘텐츠에 관심있는 이의 수를 완벽하게 셀 수 있기에 좋아요를 얻기 위해 선을 넘나드는 이들도 많다. 유튜브에서 가장 인기있는 콘텐츠 카테고리 중 하나는 정치적 이슈에 관한 것이다. 여기에 중간은 찾아보기 힘들다. 좋아요를 누르는 행위는 지지를 드러냄과 동시에 표로 환산될 수 있는 수가 명확하게 나타나기에 좋아요를 얻기 위해 목소리를 더 날카롭게 만든다. 좋아요를 파악한 알고리즘은 다른 목소리를 차단해 줄 터이니 더욱 상대에게 ‘차가운’ 존재가 될 것이다. 이 때문에 음모론에 가까울수록 더 열성적인 지지자들이 몰리고 화제가 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이 “내게 조국 딸 조민씨와 왜 결혼했느냐고 따지는 어르신들이 많다”며 “유튜브의 가짜뉴스는 심각한 문제”라고 비판을 했을 정도다. 당사자들이 아니라고 외치는 것은 상관없다. 이미 그 영상을 좋아요하는 이들에게는 가짜가 진실이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사이버레커’들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사이버레커는 인터넷상에서 특정 이슈에 대해 자극적이고 부적절한 콘텐츠를 제작하고 전파하여 다른 이용자들에게 불쾌감을 유발하거나, 특정 인물을 비방하는 행위를 하는 이들을 지칭하는 용어다. 이들은 다양한 자극적 소재의 콘텐츠로 전환하여 조회수나 광고 수익을 얻는다. 좋아요를 누르는 순간, 알고리즘은 이를 ‘중요한 콘텐츠’로 분류하고 노출을 늘리기에 이들은 점점 더 자극적이고 극단적으로 변한다. 이를 보는 이들이 많아질수록, 좋아요를 누르는 이들이 늘어날수록 사이버레커의 비방은 당하는 피해자에게 차가운 칼날이 된다. 사이버레커들이 1000만 유튜버 쯔양의 약점을 폭로하겠다고 겁을 줘 금품을 갈취한 사건은 우리 사회에 좋아요의 차가움을 널리 알린 대표적인 사례로 기억될 것 같다.
배달 플랫폼에서의 좋아요인 ‘별점’ 역시 차갑다. 자영업자들에게 ‘별점’은 목숨과도 같다. 알고리즘은 낮은 별점을 받은 업체의 상위 노출을 막는다. 장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리’인데 배달 플랫폼에서 낮은 별점은 좋은 자리를 순식간에 빼앗기는 것이나 다름없다. 자영업자들이 ‘별점테러’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별점을 주는 소비자들에게 갑질을 당하기도 한다. 자영업 커뮤니티에 보면 ‘실수로 뼈 있는 치킨을 시켰는데 그동안 주문 내용을 보면 당연히 순살을 배달해 줘야 하는 거 아닌가. 센스 없는 가게’라며 낮은 별점을 준 사례도 나온다. 황당한 점주는 별점을 준 이에게 전화를 걸어 항의를 하지만 결국은 순살 치킨을 ‘강제 서비스’하는 것으로 ‘훈훈하게’ 마무리된다. 알고리즘이 두렵기 때문이다. 좋아요가 차가운 무기가 된 셈이다.
개인에게도 좋아요는 폭력적일 수 있다. 좋아요를 누른 사용자의 취향을 알고리즘 철저하게 반영한다. 게임, 여행, 음식, 스포츠 등 자신이 관심을 가지는 포인트, 자신의 취향을 완벽하게 반영한다. 심지어 이를 세분화해 스타크래프트 영상, 일본 온천 여행, 매운 면요리, 풋살 기술 등으로 나눠 손가락을 유혹한다. 다른 정보를 찾아볼 생각이 사라질 정도로 친절한 알고리즘에 우리는 이에 한없는 편안함을 느낀다. 이 때문에 다양한 정보를 접할 기회를 박탈당해 취향의 다양성을 저해하고 있다고 보는 이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좋아요는 관심의 표현이지만 다른 정보를 차갑게 막아버리는 장벽이기도 하다. 장벽을 낮추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가만히 있어도 당신을 위한 취향 저격 콘텐츠는 넘쳐나겠지만 애써 다른 정보와 시각을 찾아보아야 한다. 일단 장벽을 낮추기 위해 좋아요의 차가움을 설명하는 이 칼럼에 ‘따뜻한 좋아요’ 한 번만 부탁드린다.
2024-08-05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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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어쩌다 투자금은 부동산으로, 해외로…
올해 금융 투자 시장에선 ‘밸류업’이란 단어가 자주 등장했다. 평가절하된 우리나라 기업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고 투자를 많이 끌어내자는 움직임이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차원에서 기업의 해외 IR(기업 설명회)도 활발했고, 정부와 관련 기관들도 적극적으로 도왔다.
이 와중에 대형 증권사들의 호실적 소식이 눈길을 끈다. 국내 5대 증권사의 2분기 전체 당기 순이익 전망치가 9519억 원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지난해보다 15% 가까이 늘어난 규모다. 부실 부동산PF 여파 속에서도 증권사들이 역대급 이익을 늘릴 수 있었던 비결은 늘어난 해외투자이다. 해외주식 거래대금이 늘면서 증권사들의 브로커리지(위탁매매) 수익이 커진 것이다. 해외주식형 펀드 기준 순자산이 70조 원을 넘어서면서, 국내주식형 펀드 순자산 67조 원을 넘어섰다는 소식도 있다. 열심히 “밸류업!”, “밸류업!”을 외치고 있지만, 오히려 국내 투자자들마저 국장을 벗어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투자금이 엔비디아, 테슬라 등 세계적으로 주목 받는 기업을 쫓아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미국 주식이라고 마냥 좋은 것도 아니고, 미국 대형 종목 중에서도 상당수가 손실을 내고 있다. 국내 기업 중에서도 상대적인 성장 폭만 놓고 보면, 미국 빅테크 기업 못지않은 곳도 있다. 어쨌든 지금은 해외에서 투자금을 끌어오는 것 이상으로 해외로 돈이 빠져나가는 걸 걱정해야 할 판이다.
문득 어느 전직 애널리스트의 하소연이 생각난다. 국내 기업들에 대한 투자를 받기 위해 열심히 해외 IR을 하다 보면, 종종 “왜 한국 사람은 자기 나라 기업에 투자를 안 하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국민 1400만 명 이상이 그러니까 우리나라 인구 4분의 1을 넘는 이가 주식 보유자인데 이게 무슨 소리냐고 할 수도 있다.
규모의 문제다. 대부분 사람은 몇십만 원, 몇백만 원 수준에서 주식을 하면서 기업의 주주가 되어 본다. 몇천만 원 이상을 넣으면 간 큰 사람 취급을 받는다. 평범한 직장인이 억대로 주식을 사고파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주식을 해보거나 하는 사람은 많아도, 다수 투자자의 투자 규모는 매우 작은 것이다.
2022년 금융투자협회가 발표한 ‘주요국 가계 금융자산 비교’를 보면, 우리나라 국민의 자산 중 주식·채권 등 금융투자 상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9% 정도다. 미국 41.5%와는 비교가 안 된다. 일본 9.4%나 영국 8.4%와는 큰 차이는 없다. 대신 일본은 현금·예금 비중이 34.5%에 이르다는 게 큰 특징이다. 영국은 보험·연금 비중이 28.6%에 달해, 안정적인 금융 자산을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럼 우리나라의 특징은 무엇인가. 비금융 자산 비중이 64.4%로 매우 크다는 거다. 미국(28%), 일본(37%), 영국(46.2%) 등과 비교하면 상당히 압도적이다. 비금융 자산은 당연히 부동산이다. “평생 돈 벌어서 집을 산다”, “부동산이 최고의 투자 시장” 등 세간의 말이 여실 없이 반영된 결과다.
국내에선 목돈 투자는 주식보다 부동산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당장 가족이나 친척이 억대로 아닌 몇천만 원을 가지고 주식을 한다고 하면, 걱정부터 할 것 같다. 일확천금을 노리고 도박 시장에 뛰어 들어가는 걸 말리는 것 같은 기분일 것이다. 반대로 몇억 원의 빚을 내면서도 부동산을 사는 것엔 상대적으로 관대하다. 설령 몇천만 원 이상 집값이 내려도, 그럴 수 있는 일로 취급할 수 있다.
당장 하반기 금리 인하 가능성이 커지는 것에 대한 시장의 반응을 보라. 미국에선 금리 인하 가능성을 주식 시장이 반기고 있다. 국내에선 주식 시장의 반응은 사실상 없다. 대신 이미 수도권을 중심으로 집값이 빠르게 반등하고 있다고 한다. 지역에서도 변화의 기미가 슬슬 읽힌다. 확실히 우리나라에선 목돈 투자는 부동산을 더 선호하는 것 같다.
도대체 왜 국내에선 주식은 ‘용돈벌이’일뿐, 목돈 투자는 ‘도박’이라는 인식이 강할까. 실제로 그런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국내 주식 시장에선 뉴스나 이슈 중심의 단기 투자가 선호되고, 투자하는 사람들도 일확천금을 바라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공매도 논란 등으로 기관들의 신뢰도도 높지 않고, 금융기관의 대처도 미흡하다는 개미 투자자들의 불만도 크다.
최근 야당은 정부의 ‘밸류업’이 기대 이하라며 ‘코리아 부스트업’이라는 카드를 꺼냈다.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자는 프로젝트다. 물론 기업의 가치를 세계에 알리고 제대로 평가받는 것도, 지배구조를 바로잡는 것도 중요하다. 다만 좋은 기업에 대한 장기간 투자가 선호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시장의 신뢰성도 올라가는 등 주식시장의 근본적인 변화도 필요해 보인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투자금은 부동산으로 쏠리거나 해외로 빠지는 걸 막기 어려울 듯하다.
2024-07-31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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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부산·경남 행정통합 재논의와 옆집 눈치보기
최근 재점화된 부산·경남 행정통합 논의는 ‘눈치보며 끌려간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박형준 부산시장과 박완수 경남도지사는 올해 6월 17일 부산시청에서 행정통합을 비롯한 지역 공동 현안에 대해 논의하고 미래 도약과 상생 발전을 위한 공동합의문을 채택했다.
추진 배경은 부산과 경남이 행정통합을 통해 남부권 핵심 성장거점으로서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 도약을 견인하고 신성장산업 육성, 인재 양성, 동북아 물류 플랫폼 조성, 광역교통망 구축 및 대중교통체계 개선 등에 협력하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갈수록 수도권에만 돈과 사람이 몰려들고, 나머지 지역은 소멸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지만 새롭고 참신한 제안은 아니다.
부산·울산·경남을 아우르는 동남권 통합 논의 자체는 ‘옛날 이야기’가 된지 오래다. 통합 제안은 역대 경남도지사의 단골 메뉴였다. 부울경 통합 제안은 2009년 김태호 전 도지사(현 양산을 국회의원)가 처음 언급했다. 그는 연두 기자회견에서 ‘동남권 대통합추진 협의체 구성’을 제안했다.
당시 부산과 울산의 곁눈질조차 없었다. 당시 40대 후반 잠룡이던 김 전 도지사의 계산된 ‘정치적 발언’ 정도로 무시했다. 그는 “동남권은 수도권에 비해 세 마리 토끼 신세에 불과하다”면서 “동남권이 동북아 핵심 경제권으로, 한반도 제2경제권으로 성장하려면 한 마리의 호랑이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두관 전 도지사도 2011년 3월 부울경을 묶어 ‘동남권 특별 자치도’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는 “원래 같은 뿌리였던 부산과 울산, 경남의 행정과 경제, 생활권을 통합해 새로운 자치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구상은 기존 광역시·도 권한에 국방과 외교를 제외한 자치입법권과 자치경찰권까지 갖는 명실상부한 지방정부 형태였다.
여전히 부산과 울산은 냉담했다. 울산시는 행정구역 개편으로 이어지려면 정부, 정치권 등과 논의해야 될 사안이라며 뭉갰다. 부산시도 (당시) 동남권 신공항 유치를 놓고 심각한 갈등을 빚는 상황에서 ‘웬 뜬금없는 소리냐’는 반응이었다.
역대 경남도지사 가운데 부울경 통합에 가장 많은 의욕을 보인 사람은 김경수 전 도지사다. 그는 통합 논의를 먼저 제안했고 부산과 울산이 호응하는 방식이었다. 당시 3개 시도는 행정통합보다 느슨한 특별연합(초광역 특별지방자치단체)을 추진했고 행정안전부는 2022년 4월 승인했다. 통합은 아니지만 연합이라는 기구를 통해 3개 시도가 공동 보조를 맞추고, 최종적으로 통합이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듯 했다.
하지만 그해 6월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박완수 도지사가 취임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그는 실익 없는 ‘옥상옥’을 지적하며 특별연합 이탈을 선언했다. 울산시도 연합 탈퇴는 물론 통합 논의조차 거부했다.
이후 경남과 부산만의 통합논의가 시작됐다. 박 도지사가 제안하고 박 시장이 수용하는 형태였다. 지난해 7월까지 1년여 동안 추진한 결과 찬성 35.6%, 반대 45.6%로 나타났다. 통합 논의는 싸늘한 여론을 핑계로 무산되는 듯 했다. “다 된 밥이었던 특별연합도 뭉갰는데 법적 근거도 없는 행정통합이 되겠느냐”는 자조섞인 비아냥과 특별연합 좌초 책임을 물타기 하려고 되지도 않을 행정통합을 제안했다는 말까지 나왔다.
수면 밑으로 가라 앉은 부산·경남 통합 논의가 올해 6월 다시 등장했다. 이번에는 박 시장이 제안하고 박 도지사가 화답하는 형식으로 바뀌고, 그동안 거론된 내용에다 연방제 ‘주’에 준한다고 포장했다. 오는 9월 통합안 마련과 내년 3월 여론조사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지난해까지 무산 수순을 밟던 통합 논의가 급행열차로 갈아타는 분위기다. 15년 전부터 논의돼 왔던 사안이고, 특별히 달라진 것이 없는 상황에서 갑자기 행정통합을 다시 꺼낸 이유가 뭘까?
이 대목에서 홍준표 대구시장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민선 5~6기 경남도지사 재직 시절 부울경 통합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구시장에 당선된 그는 대구·경북의 통합 지도자로 나섰다. 그는 올해 5월 페이스북에 대구·경북 통합 논의를 공개 제안했고,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화답하면서 빠른 속도감을 보이고 있다. 혹여, 대구·경북이 통합에 성공할 경우, 부울경 지도자들은 정치적 이슈 선점에 실패하고 리더십에 타격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 직면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에 빠진 건 아닌지 궁금하다. 옆집 눈치보기 식으로 부산·경남 통합을 재추진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끌려간다는 느낌은 더욱 싫다.
2024-07-29 [17: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