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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18년 만에 연금개혁 여야 합의… 정치 복원 계기되길
20일 국회 본회의에서 연금법 개정안이 여야 합의로 통과됐다. 극단적 갈등이 횡행하는 탄핵 정국에 여야가 모처럼 국정 협치의 모습을 보여 준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우여곡절이 있었다. 여야가 ‘더 내고 더 받는’ 내용에 14일 합의했지만 후속 구조개혁을 ‘여야 합의 처리한다’는 여당의 요구에 야당이 반발하며 단독 처리 움직임까지 보여서다. 지난해 5월에도 합의 직전에 좌초된 적이 있어서 이번에도 본회의 상정 직전까지 안심할 수가 없었다. 한데, 막판에 야당이 ‘합의’ 조항을 수용하고, 여당은 야당이 제안한 군 복무·출산 크레딧을 받아들이면서 극적인 합의에 이르렀다. 실종된 정치의 복원이라 여겨지는 대목이다.
이날 국회를 통과한 모수개혁은 연금보험료율(내는 돈)을 기존 9%에서 13%로 올리고, 소득대체율(받는 돈)은 기존 40%에서 43%로 인상하는 내용이다. 군 복무와 출산 때 국민연금 가입 기간을 인정해 주는 크레딧 제도를 12개월로 늘린 것과 국가 지급 보장 규정을 신설한 것은 청년 세대의 우려를 해소하고 연금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남은 과제는 구조개혁이다. 저출생·고령화로 가입자는 줄고 수급자는 늘기 때문에 기금 건전성 확보 대책이 시급하다. 2007년 이후 18년 만이자, 1988년 국민연금 도입 후 세 번째인 연금개혁은 지속 가능한 구조개혁이 이뤄질 때 비로소 완성된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에서 기초·퇴직·개인연금과 연계한 국민연금 구조개혁안을 마련해 연내 ‘합의 처리’하기로 했다. 노인 빈곤율이 심각한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는 노후 소득 유지 방안과 함께 국민연금 재정 안정화 방안을 설계하는 과정에는 난제가 수두룩하다. 또 연금 수령액이 여러 변수에 따라 유동적으로 바뀌는 자동조정장치 도입도 찬반이 엇갈리고 있어 진통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2015년 공무원연금 개혁 때도 여야 정치권이 극단적으로 대립했지만 당사자까지 논의에 참여해 성공적인 개혁안을 도출한 바 있다. 머리를 맞대고, 이견을 좁히고, 한발 양보하다 보면 해답이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결과가 나온 뒤라면 연금개혁 논의는 자칫 길을 잃을 수도 있었다. 그러면 하루 885억 원, 연간 32조 원씩 적자가 쌓이는 연금 재정 구조는 온 국민의 미래를 위협할 것이 뻔했다. 국회에서의 초당적인 합의가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까닭이다. 특히 탄핵심판을 둘러싸고 여야가 살벌하게 대치하는 와중에 타협점을 찾은 점이 주목된다. 국가의 장기적 안정을 위한 제도적 틀 마련에 당리당략이 있을 수 없다는 점을 잘 보여 준 사례다. 남은 구조개혁에서도 마찬가지다. 수권 정당을 자처하려면 연금개혁에 초당적 자세로 임해야 한다. 구조개혁에서 여야의 정치력이 시험대에 오른다는 점 명심해야 한다.
2025-03-21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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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특별건축구역 지역 건축가 참여, 부산 건축 성장 기회다
부산시는 비수도권 광역자치단체 최초로 특별건축구역 활성화 시범사업을 추진, 공모 신청한 5곳 가운데 삼익비치 재건축, 남포동 하버타운, 영도 콜렉티브 힐스 등 3곳을 지난해 말 시범사업 대상지로 선정했다. 대상지는 용적률과 건폐율, 높이 제한 등에 다양한 특례 혜택을 받는다. 선정된 곳은 모두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건축가가 설계를 맡았다. 국내 건축가와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방식이었지만 부산 지역 건축가로 제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역의 상징물이 될 건축물을 건립하면서 지역 건축가를 참여시키지 않은 것은 두고 뒷말이 무성했다. 시가 이 부분에 대한 보완책을 마련했다. 뒤늦은 감은 있으나 무척 다행스러운 결정이다.
시는 올해 특별건축구역 활성화 사업을 추진하면서 지역 건축가와의 협업을 의무화할 계획이라고 최근 밝혔다. 지역 건축사무소가 컨소시엄에 반드시 참여해야 사업이 추진될 수 있도록 조율한다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도 지역 건축가와 협업을 해야만 부산 특별건축구역 사업에 뛰어들 수 있다는 의미다. 시는 이런 협업을 통해 지역 업계의 내실을 다지고 위상을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시의 이번 결정으로 부산이라는 지역 특색을 제대로 살린 설계 결과물이 도출될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더욱이 세계적 건축가의 명성에만 기댄다는 우려를 불식시키는 동시에 부산 건축이 도약할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지난해 선정된 대상지 설계를 두고 세계적인 건축가들의 작품이지만 기존의 건축물과 크게 차별화하지 못했다는 등의 지적이 이어졌다. 창의적이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부산의 정체성을 충분히 담지 못했다는 것이 지적의 골자였다. 짧은 기간 동안 부산이라는 도시의 맥락을 파악해 설계에 반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도시의 현재 가치와 미래 가치, 그 속에 뿌리박은 시민 삶을 용해해 내지 못한 건축물은 되레 도시 경관을 훼손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부산 건축가들에게 부여된 사명은 가볍지 않다. 세계적 건축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시민들에게 진정한 랜드마크를 선물하길 소망한다.
시의 결정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지역 건축가 참여를 너무 강조할 경우 세계적이면서도 혁신적인 건축물을 구현하는 것이 어려워질 수 있다. 그렇다고 세계적 건축가들의 창조적 미학에만 의존하면 부산의 색깔을 담기 어렵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역 건축가들이 세계적 건축가들과 협업을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을 충분히 갖췄는지에 대한 회의적 시각도 존재한다. 핵심은 글로벌 건축 미학과 지역성의 균형이다. 그동안 부산은 시정 책임자가 바뀔 때마다 ‘부산다운 세계적 건축’을 강조했으나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지역 건축의 한계성이라는 지적도 많다. 시의 이번 조치가 부산 건축을 세계적 수준으로 성장시키는 촉매제가 되길 기대한다.
2025-03-21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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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수도권-비수도권 부동산 양극화 해소할 대책 급하다
여당이 지방에 추가 주택 구입 시 다주택자에 대한 중과세 폐지 방안을 제안했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지난 18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다주택자가 민간 임대 사업자 역할을 하고, 부동산 자금이 지방으로 유입돼야 한다”며 정책 취지를 설명했다. 서울에 집 한 채를 가진 사람이 비수도권에 집을 추가로 사면 2주택이나 3주택이 돼도 양도세, 취득세 등 중과세하지 않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두 번째부터 보유하는 주택이 수도권일 때는 기존 과세 방식을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똘똘한 한 채’로 몰리는 수요를 지방으로 돌리고 수도권과 지방의 부동산 양극화를 완화한다는 것이 목적이다. 정치권에서 먼저 제안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부동산 양극화는 심각하다. 수도권 아파트 가격은 나홀로 고공행진하고 있지만, 지방 부동산 경기는 침체일로다. 지난 1월 기준 서울 지역 아파트의 평균 가격은 13억 8289만 원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반면 부산은 3월 둘째 주 기준 전주 대비 0.08% 하락하며 2022년 6월 이후 143주째 줄곧 하락세다. 최근 서울시가 강남권을 중심으로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해제를 번복하면서 지방 부동산 시장은 직격탄을 맞았다. 수도권 중심의 부동산 정책이 지역 부동산 경기를 고사시키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부산은 최근 2년 사이 건설업 취업자가 급감하고 공인중개소도 매일 3곳이 문을 닫는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수도권 공급 위주의 부동산 대책으로 양극화를 심화시켜 왔다. 지난해 8월에도 ‘8·8 부동산대책’을 발표했다. 서울 집값을 잡는다는 명분으로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까지 풀어서 아파트를 대거 짓는 등 향후 6년간 42만 7000호의 주택을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정부 재원과 국가 자원을 가뜩이나 활황인 수도권 부동산 부양에 동원해 수도권 초집중과 지방 소멸을 가속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정부가 지난달 내놓은 지방 건설경기 활성화 대책은 ‘반쪽짜리’란 평가를 받았다. 악성 미분양 매입 등 건설사 지원에 방점이 찍혔고, 취득·양도세 등 세제 지원과 대출 규제 완화 등 수요 증대 방안이 빠졌기 때문이다.
여당이 제안한 지방 주택 양도세 중과 면제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부동산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다. 인구 감소로 침체의 늪에 빠진 지방 주택시장을 살릴 수 있는 투자 수요에 물꼬를 틀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정책 시행을 위해 당정 협의, 여야 협의, 사회적 공론화 등 단계는 거쳐야 한다. 정치권은 이를 정쟁 대상으로 삼을 것이 아니라 진지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 정부도 수도권의 기형적 확장을 초래하고 지방 소멸을 가속화하는 부동산 정책에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부동산 양극화를 해소할 차별화된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지방 부동산 경기를 살릴 수 있는 과감한 규제 완화 등 확실한 로드맵 제시가 시급하다.
2025-03-20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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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부산교육감 선거운동 돌입… 이념 대결장 전락 우려
4·2 부산교육감 재선거가 오늘부터 공식 선거운동에 돌입했다. 그러나 교육정책 논의는 뒷전으로 밀리고 이념 대결로 흐르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교육감 선거는 정당 선거가 아니라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의 교육환경을 개선할 정책을 두고 경쟁하는 자리다. 하지만 후보들은 ‘보수 대 진보’라는 프레임을 강조하며 이념이나 정치적 색깔을 부각하는 선거 전략을 펼치고 있다. 교육정책이 아닌 정치적 구호로 가득한 선거전은 결국 부산 교육의 미래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교육감 선거가 이념에 휘둘리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과 학부모, 교사, 나아가 부산 교육 전체가 떠안게 된다.
보수 진영에서는 강성 보수 성향의 인사들이 선거에 개입하고 있다. 세이브코리아와 보수 유튜버들이 정승윤 후보를 지원하며 ‘부산시 다음 세대를 위한 기도회’가 정 후보 캠프와 연계되기도 했다. 정 후보도 “보수 결집”을 강조하며 교육감 선거를 진영 대결 구도로 부각하고 있다. 진보 성향의 김석준 후보도 민주당 행사에 참석해 지지를 호소하며 정치적 색깔을 강조하고 있다. 김 후보는 “극우에게 우리 아이를 맡길 수 없다”며 정치적 선명성을 내세운다. 양측이 서로를 ‘극우’와 ‘좌파’로 몰아붙이며 정쟁을 벌이는 모습은 교육감 선거 본질을 훼손하는 행위라 할 수 있다. 향후 중도보수 진영 후보 단일화로 교육감 선거는 더더욱 이념 대결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심히 우려되는 상황이다.
후보들이 이념 대결에 집중하는 사이, 유권자들은 부산 교육의 미래에 대해 고민할 기회를 잃고 있다. 정작 유권자들이 알고 싶어하는 공교육 혁신, 학력 저하 해결 등 핵심 현안에 대한 논의는 부족하다. 더 큰 문제는 이념 대결이 격화될수록 유권자들의 피로감은 커지고, 이는 투표율 저하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이미 교육감 선거는 낮은 투표율로 대표성을 확보하기 어려울 정도다. 2024년 서울교육감, 2023년 울산교육감 보궐선거에서 투표율이 모두 20%대에 그친 바 있다. 이번 부산교육감 선거 투표율이 20%를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다. 이념을 앞세운 선거가 반복된다면 부산 교육의 미래는 더 어두워질 것이다.
최근 보수 단일화 여론조사에서 절반 이상의 응답자가 ‘지지 후보가 없다’거나 ‘모른다’고 답한 것은 이번 선거에 대한 유권자들의 무관심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선거가 교육보다는 정치 논리에 매몰됐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후보들은 이념 공세를 멈추고 교육 정책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하며, 유권자들이 이를 비교·평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번 선거는 부산 교육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선거다. 누가 더 보수적인가 혹은 더 진보적인가를 가리는 자리가 아니라 ‘누가 부산 교육을 더 발전시킬 수 있는가’를 판단하는 자리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유권자도 이념이나 정치적 구호에 휘둘리지 말고 후보의 정책을 꼼꼼히 따져야 한다.
2025-03-20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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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마사회 부산·경남 무시에 레저세 300억 날릴 판
건전한 경마문화를 창출하고 부산·경남지역 발전과 지방재정에 기여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우며 문을 열었던 부산경남경마공원이 마사회의 꼼수로 인해 개장 20년만에 건전한 경마문화 창출은커녕 지방재정 결손까지 초래할 수 있는 존재로 전락했다. 마사회는 경마가 사행심을 초래하는 산업으로 변질돼 사회적 해악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마사회가 내세운 목표를 믿고 지역에 경마공원을 유치한 지역 주민들을 철저히 배제하고 이익만 추구함으로써 ‘사행’을 넘은 ‘사기’에 가까운 행태를 보였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게 됐다.
국민의힘 김도읍 의원실에 따르면 마사회는 지난해 12월 부산경남경마공원(부경공원)의 경주마를 영천경마공원(영천공원)으로 옮겨 경주를 한다는 기본계획을 확정했다. 마사회가 내세운 표면적인 이유는 ‘내년 9월 개장하는 영천공원의 경주마 수급이 원활하지 않아서’이지만 이에 따른 파장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경주마 유출로 부경공원은 경주를 줄일 수밖에 없어 한해 최대 536회까지 경주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이는 부산·경남의 레저세 감소로 곧장 이어질 전망이다. 마권 발매 총액의 10%에 해당하는 레저세의 부산·경남지역 규모는 한 해 1000억 원을 웃돌지만 경주마 유출로 한 해 300억 원 이상의 레저세 결손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레저세 결손만 우려되는 것이 아니다. 마사회는 이 같은 기본계획을 수립하면서 부산·경남과 사전 협의 없이 계획 확정 직전이 돼서야 내용을 통보했다. 부산·경남 경주마 수급에 영향을 미칠 사안을 경북·영천과 몰래 ‘짬짜미’로 진행시켰다는 뜻이다. 경북·영천이 마사회에 30년 동안 레저세 50% 감면을 약속했다는 점으로 미뤄 볼 때 레저세 절반을 챙기겠다는 마사회의 잇속이 작용했을 게 분명하다. 게다가 마사회는 경주마 수급에 꼭 필요한 마주의 승인을 받기 위한 조치조차 취하지 않았다. 부경공원 경주마 수급 계획이 처음 나온 2018년부터 8년 동안 마주협회와 단 한 차례의 협의조차 없었던 것으로 보아 의도적으로 부산·경남 쪽과 접촉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의뭉스러운 작태라 아니할 수 없다.
사정이 이런데도 마사회 측은 “협의는 하겠지만 현재로선 기본계획 변경 계획은 없다”는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사행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레저세를 통해 지역 재정에 일조하면서 건전한 경마문화를 조성하겠다며 설득하던 20년 전과는 너무나 달라진 태도에 지역사회는 분노하고 있다. 당장 부산·경남 마주협회가 마사회의 행위를 규탄하면서 영천공원 쪽 경마에는 부산·경남 경주마 참여를 일절 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만장일치로 의결하고 나선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초심을 잃고 지역사회를 배제하는 ‘사기’에 가까운 행각을 계속한다면 ‘사행’성 산업의 폐해에 대한 지역사회의 본질적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
2025-03-19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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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고준위특별법 시행 영구처분장 구체적 로드맵 세워야
원전 가동으로 발생하는 사용후 핵연료인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을 영구 처분하는 시설 마련이 본궤도에 오르게 됐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고준위특별법)이 18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됐기 때문이다. 고준위특별법은 오는 2050년까지 사용후 핵연료의 중간 저장시설을, 2060년까지 영구처분장을 각각 확보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로써 고준위 방폐장을 건설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고 방폐장 확보의 목표 시점이 제시된 것이다. 방폐장 건설이 사실상 출발점에 선 셈인데, 앞으로 하루빨리 촘촘하고도 실효성 있는 로드맵을 만들어 속도를 내는 일만 남았다.
국무회의 통과로 공포 후 6개월 뒤 시행될 예정인 고준위특별법에는 사용후 핵연료 중간 저장시설과 영구처분장을 목표 연도까지 마련하기 위한 부지 선정 절차가 명시돼 있다. 부지 선정을 위해 기초지자체의 신청, 기본·심층 두 단계의 적합성 조사, 주민 투표를 거치도록 했으며 유치 지역과 주변 지역에 특별지원금 등 폭넓은 지원이 이뤄지게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민주적이고 과학적인 절차라는 게 정부 측 설명이지만, 이제서야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의 실마리를 찾아 만시지탄이다. 1978년 고리원전 1호기의 상업 운전 이후 47년 넘도록 고준위 방폐장 부지를 마련하지 못해서다. 2005년 경북 경주에 주민 투표를 통해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만 확보했을 뿐이다.
이 같은 사정을 감안할 때 중간 저장시설과 영구처분장 확보 시점까지는 갈 길이 멀다. 이는 정부가 1983년부터 그동안 모두 9차례에 걸쳐 방폐장 부지 확보를 추진하고도 대규모 혐오시설로 인식한 지역민들의 강한 반발이나 님비 현상 탓에 성공하지 못한 사실에서 확인된다. 정부는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세세한 부지 선정 기준과 의견 수렴 절차, 지역민 지원 방법 등 주요 사안에 대해 전문가는 물론 국민들 의견을 폭넓게 수렴해 하위 시행 법령과 규칙에서 꼼꼼히 보완할 필요가 있다. 특히 방폐장 목표 시점에 맞춘 구체적인 진행 일정과 사안별로 빈틈없는 대책, 지역민 설득 방법 등을 담은 로드맵을 마련해 신속히 추진하는 게 중요하다.
국내 원전들의 사용후 핵연료 임시 저장은 한계에 봉착한 지 오래다. 각 원전의 사용후 핵연료 저장률은 2026년부터 줄줄이 포화상태를 맞이할 것이란 예측도 나왔다. 정부가 고준위특별법 통과에 따른 후속 조치를 원활히 이행해 방폐장 확보에 만전을 기해야 하는 이유다. 게다가 방폐장 부지 선정과 건설에 차질이 생길 경우 원전 내 임시 저장시설 확대로 이어져 영구처분장화할 우려가 있다는 원전 주변 주민들의 불안감은 여전하다. 정부는 원전 밖 다른 지역의 영구처분장을 마련하지 못하면, 원전 가동이 중단될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 국민 홍보와 설득을 병행하며 방폐장 확보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2025-03-19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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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대형선망 해산 위기 연근해어업 살릴 대책 급하다
대형선망조합(이하 대형선망)이 해산 위기에 직면했다. 대형선망은 대한민국 고등어 생산량의 90% 이상을 담당하는 수협이다. 이 조합이 해산되면 수산업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고 한다. 최근 대형선망수협의 한 개 선단이 해양수산부의 자율감척사업에 선정됐다. 이에 조합원 수가 15명으로 줄어든 데 이어 지난해 발생한 대형선망 어선 사고로 조합원 1명이 추가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수협법에 따라 강제 해산을 초래할 수 있는 상황이다. 사실상 조합이 해산 직전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처럼 위기를 맞은 대형선망은 어획량 감소와 노후화된 선박, 과도한 규제 등 복합적인 문제로 파산 직전까지 몰리고 있다.
대형선망은 연근해어업의 근간이다. 대형선망의 해산 위기는 단순히 조합의 해체를 넘어 연근해어업 전체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무엇보다 대형선망 고등어 선단 해산으로 수백 명의 고용 안정이 위협받게 된다. 한 선단이 연간 15만~20만 톤의 고등어를 잡아들여 평균 150억~200억 원에 달하는 매출을 올리는데,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100명이 넘는다. 선단의 해체와 함께 중도매인, 항운노조원 등 배후 인력까지 실직할 위험에 처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대형선망을 중심으로 한 산업 생태계 붕괴는 지역 경제에도 큰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이를 해결할 정부의 근본적인 대책은 눈에 띄지 않는다.
문제는 대형선망의 해산 위기를 초래한 근본적인 원인에 있다. 그중 하나는 바로 불합리한 규제다. 업계에서는 조합원이 15인 미만으로 줄어들 경우 강제 해산되는 규정은 현대 수산업의 실태를 반영하지 못한 규제로 보고 있다. 시대에 맞지 않게 적용돼 연근해어업을 더욱 위축시키고 있다. 그런데도 규제만을 고수하는 것은 업계의 현실을 무시한 처사다. 수협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되었지만 아직도 소관 상임위 상정이 이루어지지 않는 등 대응이 미비하다. 어선의 노후화 문제도 심각하다. 대형선망이 보유한 어선의 평균 선령은 34년으로 이미 대부분이 노후화되어 있다. 선박 교체를 위한 정부의 정책적인 지원이 요구되는 이유다.
대형선망의 해산 위기를 막기 위한 대책은 시급하다. 대형선망 해산을 막지 않으면 연근해어업의 붕괴는 가속화될 것이다. 해양환경관리법 강화로 배출 규제가 더욱 엄격해지며, 중고 선박의 유입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대형선망은 더 이상 선박을 확보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정부는 이처럼 과도하거나 불합리한 규제를 개선하고 수산업 현실에 맞는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수협법의 조합원 수 요건을 완화하거나 예외를 두는 등의 유연한 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선박 수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질적인 지원 방안도 필요하다. 정부와 관련 당국은 더 이상 연근해어업의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2025-03-18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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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풍전등화 신세 한미 FTA… 대미 협상 총력 기울여야
전 세계를 상대로 선전포고를 거듭하고 있는 관세전쟁 속에 미국이 마침내 양 국가 간 상호관세 협상 진행 계획의 한 단면을 드러냈다.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이 ‘새로운 기준선에 따른 양자협정 체결 가능성’을 내비치면서다. 구체적으로 양자협정의 대상 국가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 방침이 실제로 적용되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개정되거나 대체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미국과의 양자협정에 기반한 국제 무역질서의 큰 변화 속에 한국 산업, 특히 미국 수출에 주력하는 자동차 부품업 등 동남권 산업의 미래에도 불확실성의 그림자가 크게 드리우고 있다.
루비오 장관은 16일(현지시간) 미 CBS 방송 ‘페이스 더 네이션’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기준선을 재설정하고 이후 국가들과 잠재적인 양자협정을 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공정성과 상호성의 기준에 따라 미국에 부과하는 것과 동일한 관세를 상대국에 부과할 것이라며 새로운 양자 간 협상을 할 것이라고 못박았다. 이 같은 방침은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인이 되기 전부터 강조해 온 것으로 알려져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이 즉흥적 협상용이 아니라는 점을 시사한다. 이미 미국과 FTA를 체결한 한국도 이번 새 상호관세 정책의 예외가 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오히려 미국의 ‘FTA 개정’이나 ‘폐기 후 새 협정 체결’ 등의 요구를 받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2007년 숱한 우여곡절 끝에 체결된 한미 FTA는 관세 철폐로 인해 동남권의 대표적인 수출 업종인 자동차부품업 등이 큰 혜택을 봤다. 부산을 중심으로 한 해운업 등의 분야에서도 실보다 득이 많았다는 견해가 일반적이었다. 이후 트럼프 집권 1기 때인 2018년 재협상이 이뤄졌으나 미국의 명분을 살려주면서도 우리 산업계의 피해를 최소화했다는 측면에서 나름 성공적인 방어전이었다는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자국 이익 극대화를 공공연히 앞세우는 트럼프 집권 2기의 미국 행정부는 무역수지 균형을 내세우며 한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무리하게 올릴 것으로 보인다. 비관세 장벽까지 동원할 경우 한국의 대응책 마련을 위한 방정식은 더욱 난해해진다.
문제는 정상외교로 매듭을 풀기 시작해야 할 통상마찰 협상이 국내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녹록지 않다는 데 있다. 다소의 위안은 미국이 상호관세를 부과한 이후에도 상대국과 협상 의지를 공개적으로 밝혔다는 점이다. 캐나다나 멕시코, 유럽연합 등과 달리 한국을 아직까지 직접적인 대상으로 언급하진 않은 점도 협상의 여지를 크게 남긴다. 상호관세 부과까지는 아직 20여 일이 남은 만큼 통상 당국은 미국을 설득할 논리와 근거를 마련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미국 에너지부가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한 사실도 모르고 손놓고 있었던 식의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2025-03-18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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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탄핵 선고 앞 대충돌 위기감 정치권 승복 앞장서야
이르면 이번 주 후반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선고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부산일보〉 보도에 따르면 헌재는 이번 주 안에 선고를 할 것으로 전망된다. 당초 선고 시점은 지난주로 예상됐지만 헌법재판관들의 평의가 길어지면서 연기됐다. 헌재는 통상 2일에서 3일 전 선고일을 고지해 온 전례를 참고할 때, 이번 주 후반쯤 선고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선고 날짜가 다가올수록 ‘탄핵 인용’과 ‘탄핵 기각’을 외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는 모양새다. 지난 주말에도 부산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찬반 여론전이 펼쳐졌다. 헌재 선고가 이루어질 경우 대규모 물리적 충돌이 발생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이러한 우려 속에는 정치권이 찬반 대립을 격화시키도록 선동하는 측면도 있다. 여야의 여론전에 자극받은 시위 군중이 선고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서울서부지법 점거와 같은 폭력 사태를 일으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행히 정치권은 헌재의 판단에 승복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여야 모두 상대방의 승복을 요구하는 모습이다. 이제 여야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상황만을 추구할 게 아니라 침묵하는 다수 국민의 뜻을 존중해야 한다.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헌재 선고 결과와 관계없이 여야 정치권이 함께 승복 의사를 명확히 표명해야 한다. 또한 정치권은 국민 갈등을 최소화하며 국민 통합을 위한 구체적인 행동을 보여야 할 때다.
헌재의 결론을 놓고도 다양한 관측이 나오고 있다. 탄핵소추를 인용해 파면하는 결론부터 기각·각하를 통해 윤 대통령이 즉시 직무에 복귀할 가능성까지 모두 거론된다. 선고가 지연되고 있는 배경에는 사회적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만장일치를 도출하려는 평의 시간이 걸리고 있다는 관측과 결론의 완결성을 기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해석이 있다. 또한 헌재가 정치적 갈등과 달라진 여론 지형, 심지어 향후 정치 일정까지 고려하면서 선고 시기를 재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이를수록 헌재는 신속·엄정해야 한다. 국민의 헌재에 대한 불신이 크기 때문에 공정성 논란이 확산되지 않도록 사소한 절차적 흠결도 없어야 한다.
헌재는 헌법적 분쟁에 대한 최종적 판단기관이다. 헌재 결정을 부정하는 것은 한마디로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다. 누구도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헌재는 진영 논리를 강요하는 정치적 압박에서 벗어나 오로지 증거와 법리, 재판관의 양심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법적인 판단을 재판관이 아닌 군중이 내릴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많은 사회는 언젠가는 무너진다. 정치는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감정적이고 여론에 휩싸인 군중을 합리적인 길로 이끌어야 할 책임은 정치인들에게 있다. 표를 얻으려 군중에 영합해서는 안 된다. 정치권은 탄핵심판의 결정을 존중하고 앞장서서 승복해야 한다.
2025-03-17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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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여야 소득대체율 43% 합의… 연금개혁 매듭지어야
여야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현행 40%에서 43%로 조정하는 안에 잠정 합의했다. 2007년 이후 18년 만에 ‘더 내고 더 받는’ 것을 골자로 하는 국민연금 모수개혁이 이뤄질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여야는 그동안 보험료율을 13%로 올리는 데 합의하고도 소득대체율에 대해 국민의힘 43%, 민주당 44%를 각각 주장하며 평행선을 달렸다. 팽팽히 맞서던 여야가 이견을 좁히면서 빠르면 20일 국회 본회의에서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처리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여야가 접점을 찾은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렇지만 지난해 5월에도 연금개혁 막판 합의에 실패한 전력이 있다. 여야는 이번에 반드시 종지부를 찍겠다는 각오로 논의에 나서야 한다.
여야 연금개혁 합의에 가장 큰 걸림돌은 국민연금 재정 적자가 예상될 때 자동으로 받는 돈을 줄이는 ‘자동조정장치’ 도입과 기초연금·퇴직연금을 포함한 연금구조개혁 문제다. 여당은 국회 연금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자동조정장치를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야당은 이 부분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다. 연금특별위원회 구성 과정에서도 ‘여야 합의 처리’를 명문화할지를 놓고 양당 의견이 엇갈린다. 더욱이 민주당은 소득대체율을 양보했지만 국가 지급 보장 명문화, 출산 및 군복무 크레디트 확대, 저소득층 보험료 지원 확대를 조건으로 제시했다. 실무 협의는 때론 험로를 걸을 것이다. 하지만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부터 조정한 뒤 이견이 있는 부분은 시간을 두고 논의해도 될 일이다.
국민연금 제도는 이미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현행 제도를 유지하면 2041년부터 기금이 적자로 전환되고 2055년에는 기금이 소진된다. 소득대체율 40%를 위한 수지균형보험료율은 19.8%인데 9%의 보험료만 걷기 때문이다. 보험료율은 3%에서 시작했지만 1993년 6%, 1998년 9%로 오른 뒤 27년간 제자리걸음이다. 현재 하루 885억 원, 한 달 2조 7000억 원, 연간 32조 원의 적자가 누적되고 있다. 이번에 여야가 완전한 합의에 이르면 국민연금 기금 소진 예상 시점은 2064년으로 9년 더 늘어난다. 이제 시간이 없다. 협상 테이블을 뒤엎는 일은 없어야 한다.
현재 상황은 녹록지 않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뒤 여야 극한 대치에 휘말려 연금개혁 잠정 합의가 표류할 여지도 있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현재 세대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한 것이다. 미래 세대에게 천문학적인 부채를 떠넘기는 것은 막아야 한다. 여야는 연금개혁이 세대 갈등을 줄여 국민 통합의 길을 터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번 연금개혁 논의는 ‘첫 단추’에 불과하다. 연금 제도는 더 많은 손질이 필요하다. 여야는 연금 제도 정상화를 위해 향후 상시적 협의에 나서야 한다. 이번 개혁은 국가 미래를 가늠할 시금석이기도 하다. 여야의 책임 있는 자세를 기대한다.
2025-03-17 [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