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잊힌 한센병 조선인 역사, 제대로 밝혀 기억할 수 있길
광복 81주년을 맞았지만 일제강점기의 여파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일제 때 강제 격리 정책으로 인권 유린과 차별을 겪고도 제대로 조명 되지 못한 일본 내 한센병 조선인들이 마지막일지 모를 호소를 보내고 있다. 광복 직전인 1944년 기준, 일본 내 요양소에 격리돼 있던 한센병 조선인이 최소 517명이었다는 사실이 〈부산일보〉 취재로 확인됐다. 당시 일본에는 한센인 요양소가 13곳 있었고, 그 가운데 10곳에 조선인이 수용돼 있었다. 조선인 한센병 피해자 모임인 ‘우애회’ 회원 대상 조사에서 70% 이상이 징용, 모집, 군인·군속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내 한센병 조선인들은 분명히 일제 강점 피해자들인 것이다. 한센인 요양소의 인권 유린은 어느 정도 규명됐다.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군이 개발한 약물을 투여하는 인체실험이 벌어지거나 사망자 해부가 자행됐다는 보고도 있었다. 하지만 조선인 피해 조사는 따로 이뤄지지 않았다. 해방 전까지는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숨기거나 피해를 입어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자급자족을 강요 당하며 이른바 ‘환자 작업’을 하며 버텨야 했다는 증언이 숱하다. 그들에겐 광복도 남의 일이었다. 1931년 시행된 일본 ‘나예방법’은 한센인 절대 격리와 멸종을 목표로 내세웠고, 조선인들은 요양소를 떠날 수 없었다. 남의 나라에 의해 찍힌 ‘식민지병’ 낙인으로 돌아갈 고향마저 사라진 것이다. 일본 내 한센병 강제 격리 피해자에 대한 사과가 2001년 일본 정부 상대 배상 재판에서 피해자들이 승소하면서 처음 이뤄졌다지만, 이를 완전한 사과라고 볼 수 없다. 일본 정부는 여전히 식민 지배나 강제 징용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한 점은 강제 격리 피해 한센병 조선인 가운데 상당수가 식민 지배의 결과로 일본에 끌려간 피해자라는 사실이다. 그 시절 요양소에는 조선인이 유독 많았다고 한다. 이는 식민 지배를 피하거나 생계를 위해 현해탄을 건넌 조선인들이 열악한 노동·생활 환경에서 한센균에 노출될 위험이 더 컸을 가능성을 의미한다. 더 늦기 전에 한센병 조선인들을 일제강점기 피해 역사에 담는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 피해자 대부분은 피해의 기록을 남길 능력이 없었고, 남의 나라가 찍은 낙인에 스스로를 드러낼 의지도 없었다. 가족에게 피해가 미칠까 봐 이름도, 가족도 속여야 하는 처지였다. 다행히 조선인 피해 단체들이 남긴 간행물 기록, 재일 조선인 사진작가 조근재 씨의 촬영 기록, 연구자들의 구술 조사 등 그간 피해 사실을 남기는 작업들이 뒤따랐다고 한다. 시간이 얼마 없다. 일본 한센병 요양소 3곳에 여전히 살고 있는 재일 조선인 21명의 기억부터 되살려야 한다. “30대에 선물 받아 평생 간직한 한복을 죽을 때 입고 가겠다”는 피해자 마음엔 여전히 고국이 있다. 이제라도 고국이 응답해야 한다.
[사설] 부울경 통합의 미래, 해양수도권 전략 이제는 구체화해야
부산과 울산, 경남이 초광역 협력과 통합을 서둘러야 할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합쳐서 775만 명이 넘는 인구와 360조 원이 넘는 지역내총생산을 가진 세 지역이 비수도권 최대 경제권을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은 그 필요를 상징한다. 이는 망국적인 수도권 일극 체제로 인한 부작용으로 신음하는 대한민국을 구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방안으로 꼽힌다. 이 같은 방안에 최근 들어 구체적인 미래상이 보태져 신기루 같던 가능성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깃발을 든 해양강국 대한민국을 이끌 수 있는 주체로서의 동남권 해양수도권 구축이 구체적 미래상의 주인공이다. 해양수산부는 지난해 12월 부산 이전 이후 처음으로 13일 오후 부울경 광역단체장과 해당 지역 상공회의소 수장들을 한꺼번에 만나는 자리를 마련했다. ‘해양수도권 조성 및 공동 투자유치 활성화를 위한 상생협약’ 체결이 명목이지만 이날 행사는 여러모로 큰 의미를 지닌다. 우선 정부의 메가 프로젝트 발표 이후 초광역 경제권 협력을 위한 첫 자리라는 데 의의가 있다.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유치와 견줄 부울경 해양 메가특구 조성 추진 방안 등을 놓고 참석자들의 논의가 이어진 사실은 이날 행사의 방향성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해양수도권 구축을 지렛대로 해당 논의들은 앞으로 더욱 본격화할 것으로 기대가 된다. 이날 행사의 또 다른 의미는 6월 지방선거 이후 부울경 광역단체장들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마주 앉았다는 점이다. 부울경은 지방선거 직전 초광역 협력 공고화를 위한 광역통합을 놓고 홍역을 치른 바 있다. 광주·전남이 광역통합을 이루고 수십조 원의 정부 인센티브와 반도체 클러스터 유치라는 과실을 따내는 장면을 목격하고도 부울경의 광역통합 논의는 아직 본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동남권 단체장들이 각자 추구하는 메가시티와 행정통합의 간극이 클수록 더 자주 만날 필요가 있다는 게 지역민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해양수도권 구축이라는 숙제가 주어진 만큼 해당 지자체장들도 자주 만나 숙제를 풀어야 한다. 부울경은 현 정부의 광역통합 추진 전부터 전국에서 가장 먼저 통합 가능성을 타진한 지역이었으나 정치적 이해타산이 맞물리며 통합 논의가 뒷전으로 밀려왔다. 그러던 것이 이번 행사에서 보듯 해양수도권 전략을 연결 고리로 다시 초광역 통합의 물꼬가 트일 조짐을 보이고 있다. 부산의 세계적 항만과 울산의 조선·자동차·석유화학, 경남의 항공우주·에너지·제조업 등의 기능을 한데 묶어 해양수도권을 구축할 수 있다는 논리는 막연했던 기존 통합 논의에 구체성을 보탠다. 해양수도권 구축 전략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라도 부울경은 단체장부터 경제계 인사들까지 회동 정기화 등을 통해 더 자주 머리를 맞대야 마땅하다.
[사설] 서울은 공급 부족하다 난리인데, 악성 미분양 쌓이는 부산
수도권 일극화 정책은 부동산 시장 양극화를 부추기고 있다. 서울은 공급 부족 때문에 집값이 천정부지로 뛰고 있지만 지역 부동산 시장은 장기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 후 집값 안정화를 위해 부동산 대책을 다섯 차례나 쏟아냈지만 시장 혼란만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최근의 세제 개편안은 수도권 규제에 초점을 맞췄을 뿐 지방에 대한 핀셋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부산의 경우 ‘악성 미분양’이라고 불리는 준공 뒤 미분양 물량이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참담한 분양 실적은 부동산 수요 위축을 가속화하는 악순환을 촉발한다. 지역 경제도 직격탄을 맞고 있다. 부산의 악성 미분양 물량은 지난 6월 말 기준으로 3292세대에 달한다. 지역 전체 미분양 8071세대 가운데 40.8%에 달하는 수치다. 2008년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후 가장 많은 물량인 것으로 집계됐다. 전월 대비 347세대나 늘어났고 2년 전에 비하면 3배나 증가, 침체된 지역 부동산 시장의 현주소를 방증한다. 지난 1월부터 입주를 시작한 부산 가야역의 한 후분양 아파트는 현재 분양률이 33%대에 머물러 있다. 대출을 받지 못해 잔금을 치르지 못한 분양 가구들도 많아 실제 입주율은 18%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한다. 현재 이 아파트 단지 상당수가 비어있다 보니 기존 입주민들의 불만도 높은 상황이다. 악성 미분양 증가는 부동산 시장 건강성이 악화됐다는 신호다. 더욱이 건설업 생태계가 삐걱거리면서 지역 경제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아파트 공사가 끝났지만 분양이 되지 않다 보니 건설사와 시행사의 유동성 위험이 높아질 수밖에 없고, 하청업체들도 대금을 지급받지 못하는 악순환이 발생할 우려도 높아진 것이다. 분양 물량 소진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분양가 할인을 하면 소비자들은 부동산 시장 침체로 인식, 되레 매입을 기피하면서 전체 시장에 위축 현상을 발생시킨다. 다른 지역의 사정도 대동소이하다. 6월 말 기준 지방 전체 악성 미분양은 2만 5091세대에 달한다고 하니 정부의 신속한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 부동산 양극화 문제는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해소되어야 한다. 더군다나 정부는 수도권 집값을 잡기 위해 수요 억제 정책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나 악성 미분양에 시달리는 지역의 사정은 전혀 다르다. 지역에 한해 총부채원리금 상환비율(DSR) 등 대출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추가 조처는 물론 지역 여건을 고려한 맞춤형 대책이 필요하다. 정부는 현재 한국토지주택공사를 통한 미분양 매입을 확대하고 있지만 시장가액 대비 매입가가 터무니없이 낮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거세다. 정부와 정치권이 지방 악성 미분양과 시장 침체에 대응할 종합적인 대책을 하루빨리 내놓길 기대한다.
[밀물썰물] 스포츠의 정치화
2026 북중미 월드컵 벨기에와 미국의 16강전. 미국의 핵심 공격수 폴라린 발로건이 경기에 나서면서 논란이 일었다. 발로건은 직전 경기인 보스니아전에서 상대 수비수의 발목을 밟아 레드카드를 받았다. 대회 규정에 따르면 발로건은 자동 출장 정지 처분으로 벨기에와의 16강전에 나오지 못한다. 하지만 국제축구연맹(FIFA)은 “징계 자체는 유지하되 출장 정지 집행을 1년 유예한다”고 발표했다. 당시 FIFA의 발표를 접한 발로건조차도 얼떨떨한 표정이었다.어처구니 없는 FIFA의 조치는 알고 보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전화 때문이었다. 트럼프는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발로건의 퇴장 징계를 재검토해 달라고 요청했고, 인판티노 회장이 이를 받아들인 것. 발로건이 출전했음에도 경기는 벨기에의 4-1 승리로 끝났지만, 64년 만의 이례적인 예외 조치로 FIFA는 독립성과 공정성에 흠집이 났다. FIFA가 트럼프의 전화 한 통에 좌지우지되는 꼴사나운 모습을 보인 된 것이다.월드컵이 끝난 뒤 FIFA는 또 다른 이슈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인판티노 회장 리스크다. 최근 인판티노 회장은 ‘월드컵 자회사’ 설립 논란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FIFA는 월드컵 등 대회 운영을 전담할 영리법인 ‘FIFA 포워드 엔터프라이즈’(FFE)를 세우고 지분 일부를 민간에 매각해 최대 42억 달러(약 6조 700억 원)를 조달할 계획이었다. 이 거래를 주선하기로 한 투자펀드 스라이브 캐피털의 조슈아 쿠슈너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 딸 이방카 트럼프의 시동생이다.인판티노 회장이 트럼프와 밀착해 축구를 정치화한다는 비판이 계속되던 상황에서 월드컵 자회사 논란마저 불거진 것이다. 유럽축구연맹(UEFA)와 아시아축구연맹(AFC), 북중미카리브축구연맹(CONCACAF) 등이 반기를 들었다. 유럽축구연맹은 “인판티노 회장이 자진 사임하지 않으면 탄핵을 추진하겠다”고 강경한 입장을 드러냈다. 이들의 거센 반발로 ‘월드컵 자회사’ 설립 계획은 철회됐지만, 4연임을 노리는 인판티노 회장은 치명타를 입었다.스포츠가 대중의 사랑을 받는 건 공정성과 투명성에 있다. 정치 등 어떠한 세력에도 흔들리지 않고 스포츠 고유의 본성을 지켜나가는 모습에 팬들은 환호하고 있다. 대중이 왜 스포츠에 열광하는지 관계자들은 다시금 생각해봐야 한다.
논설주간/상무이사
강윤경
수석논설위원
김승일
논설위원
정달식
이상윤
김상훈
천영철
김영한
[박세익의 뷰파인더] 더 이상 광장에 모이지 않는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건 없다. 사람들이 세상과 소통하는 수단, 미디어를 대하는 태도 역시 끊임없이 변화한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선호하는 미디어는 시대에 따라, 나이에 따라 생물처럼 요동친다. 지난 10년 사이에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들여다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수용자 조사를 보면, 2015년 20대는 모바일 인터넷 이용률(97.4%)이 텔레비전(90.1%)을 앞질렀고,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 이용률(80.1%)이 전 세대 중 가장 높았다. 30대는 모바일(94.9%)과 텔레비전(94.5%)이 엇비슷했다. 하루 평균 뉴스 이용 시간이 85분으로 가장 길었다. 40대에서도 주 매체인 텔레비전(94.3%)의 뒤를 모바일(88.6%)이 바짝 쫓고 있었다. 50대는 텔레비전(95.9%) 이용률이 더 높아졌는데, 종이신문(33.4%) 이용률이 20대(11%)보다 3배 이상 높았다. 전형적인 ‘신문·방송’ 세대였다. 60대 이상 고령층은 텔레비전(95.3%) 이용률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반면 모바일 이용률은 23.6%에 불과해 젊은 세대에 비해 디지털 소외 현상이 사회적인 문제가 됐다. 딱 10년 뒤인 2025년, 양상은 크게 달라진다. 영상, SNS 전성시대다. 20대의 텔레비전 뉴스 이용률(48.2%)이 절반 수준으로 급감했다. 대신 인스타그램(82.2%)과 숏폼 콘텐츠(82.5%)가 약진했다. 넷플릭스 등 OTT(78%)도 일상을 완전히 점령했다. 30대는 포털 뉴스(81.8%) 이용률이 전 세대 중 가장 높았다. 새로운 포맷인 숏폼 뉴스 이용률(34.3%)도 전 연령대 가운데 최고였다. 2025년 40대의 경우 유튜브 등 동영상 플랫폼 뉴스 이용률(37.4%)이 가장 높아 영상 중심 미디어 소비 패턴이 확고해졌다. 10년 전 종이신문 독자였던 50대는 포털 뉴스(70.7%)와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82.4%)을 많이 이용하는 ‘디지털 중년’이 됐다. 또 2025년 60대의 종이신문 열독률이 13.5%인 데 비해 유튜브 등 온라인 동영상 이용률은 73.3%에 달했다. 10년 사이에 중장년 세대의 정보 습득 수단이 텍스트에서 영상으로 대반전을 이뤘다. 70대 이상도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 쉽게 말해 유튜브를 보는 이들이 50.2%로 절반을 넘어섰다. 텔레비전 이용률은 99.4%로 여전히 절대적이지만, 시청 시간의 상당 부분이 유튜브로 이동했다. 10년 전 신문 이용률이 28.2%였던 60대가 70대가 된 지금은 10.3%에 그쳤다. 신문보다 유튜브를 5배 가까이 더 많이 이용하는 셈이다. 이 와중에도 라디오, 팟캐스트 등 청각에 의존하는 콘텐츠는 선전했다. 2015년 20대의 6.6%만이 라디오를 들었지만, 이들이 30대가 된 2025년에는 14.3%로 배 이상 상승했다. 10년 사이에 라디오가 유튜브(보이는 라디오 등)와 스마트폰 앱을 적극 수용한 것이 효과를 냈다. 출퇴근길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운전을 할 때, 혹은 집안일을 하면서 정보를 습득하는 습관이 자리를 잡은 영향이다. ‘청각 미디어’ 가치의 재발견이라 할 만하다. 2015년 당시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숏폼’도 혜성처럼 등장했다. 인스타그램 릴스, 유튜브 쇼츠, 틱톡 등 짧은 영상이 ‘도파민 중독’을 걱정할 정도로 대세가 됐다. 2025년에는 전 세대의 숏폼 이용률이 59.2%를 기록했을 정도다. 특히 20대와 30대가 뉴스를 숏폼으로 접하는 비중이 늘면서, 인터넷 포털 뉴스 이용률은 2021년 79.2%에서 2025년 66.5%로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과거에는 디지털 격차가 뜨거운 이슈였지만, 이제는 70대 이상의 75.7%가 인터넷에 접속한다. 모든 세대가 스마트폰, 태블릿, PC 등 디지털 기기를 이용하는 시대가 됐다. 나이 든다고 윗세대의 미디어 이용 패턴을 따르지도 않는다. 오히려 새롭고 효율적인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찾아 나선다. 지금의 60대가 70대가 될 무렵에는 AI 플랫폼까지 더해져 한층 치열한 미디어 생존 경쟁이 벌어질 것이다. ‘소셜 아일랜드’ 현상도 심해진다. 10년 전 유사한 플랫폼에 머물던 이들이 나이에 따라 섬처럼 분리되고 파편화되고 있다. 확증편향과 미디어 단절 문제가 뒤따른다. 20대 이하는 인스타그램과 틱톡에 자리 잡았고, 30~40대는 페이스북에서 인스타그램과 밴드 등 온라인 카페로, 50~60대는 카카오스토리에서 밴드로 이동했다. 메신저도 과거 카카오톡 단일 체제에서 인스타그램 DM 등으로 분화했다. 2024년 소셜미디어 조사에서 70대의 SNS(밴드) 이용률이 1.5%에 불과했지만 유튜브 이용률은 58.9%에 달했다. 사정이 이러니 이른바 레거시 미디어들도 가짜 뉴스와 차별화된 완성도 높은 영상 콘텐츠와 다양한 포맷의 뉴스로 신뢰와 영향력을 되살려야 한다. 연령별로 선호하는 형식을 이해하고, 맞춤형 콘텐츠를 적합한 플랫폼에 전달하는 전략이 세대별 신뢰를 회복하는 첫걸음이다.
2026 북중미 월드컵 벨기에와 미국의 16강전. 미국의 핵심 공격수 폴라린 발로건이 경기에 나서면서 논란이 일었다. 발로건은 직전 경기인 보스니아전에서 상대 수비수의 발목을 밟아 레드카드를 받았다. 대회 규정에 따르면 발로건은 자동 출장 정지 처분으로 벨기에와의 16강전에 나오지 못한다. 하지만 국제축구연맹(FIFA)은 “징계 자체는 유지하되 출장 정지 집행을 1년 유예한다”고 발표했다. 당시 FIFA의 발표를 접한 발로건조차도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어처구니 없는 FIFA의 조치는 알고 보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전화 때문이었다. 트럼프는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발로건의 퇴장 징계를 재검토해 달라고 요청했고, 인판티노 회장이 이를 받아들인 것. 발로건이 출전했음에도 경기는 벨기에의 4-1 승리로 끝났지만, 64년 만의 이례적인 예외 조치로 FIFA는 독립성과 공정성에 흠집이 났다. FIFA가 트럼프의 전화 한 통에 좌지우지되는 꼴사나운 모습을 보인 된 것이다. 월드컵이 끝난 뒤 FIFA는 또 다른 이슈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인판티노 회장 리스크다. 최근 인판티노 회장은 ‘월드컵 자회사’ 설립 논란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FIFA는 월드컵 등 대회 운영을 전담할 영리법인 ‘FIFA 포워드 엔터프라이즈’(FFE)를 세우고 지분 일부를 민간에 매각해 최대 42억 달러(약 6조 700억 원)를 조달할 계획이었다. 이 거래를 주선하기로 한 투자펀드 스라이브 캐피털의 조슈아 쿠슈너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 딸 이방카 트럼프의 시동생이다. 인판티노 회장이 트럼프와 밀착해 축구를 정치화한다는 비판이 계속되던 상황에서 월드컵 자회사 논란마저 불거진 것이다. 유럽축구연맹(UEFA)와 아시아축구연맹(AFC), 북중미카리브축구연맹(CONCACAF) 등이 반기를 들었다. 유럽축구연맹은 “인판티노 회장이 자진 사임하지 않으면 탄핵을 추진하겠다”고 강경한 입장을 드러냈다. 이들의 거센 반발로 ‘월드컵 자회사’ 설립 계획은 철회됐지만, 4연임을 노리는 인판티노 회장은 치명타를 입었다. 스포츠가 대중의 사랑을 받는 건 공정성과 투명성에 있다. 정치 등 어떠한 세력에도 흔들리지 않고 스포츠 고유의 본성을 지켜나가는 모습에 팬들은 환호하고 있다. 대중이 왜 스포츠에 열광하는지 관계자들은 다시금 생각해봐야 한다.
[김정화의 크로노토프] 오페라 옆 돔구장
해양수산부 신청사 터가 북항 1단계 복합항만지구로 확정됐다. 해양행정과 산업·사법 기능을 한데 모아 부산을 해양수도로 완성할 구상이 비로소 구체적인 공간을 얻은 셈이다. 이에 따라 인접한 해양문화지구의 쓰임은 그만큼 엄중해졌다. 도시의 공간은 시대의 비전을 담는 그릇이자 시민을 향한 행정의 약속이다. 지금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무엇을 세울 것인가보다 어디에 세울 것인가다. 이는 앞으로 백 년간 북항의 가치를 규정하는 가장 결정적인 첫 단추가 되기 때문이다. 폭염과 집중호우가 반복되는 기후 환경에서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경기를 치를 수 있는 돔구장의 필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노후한 야구장을 대신할 체육 인프라와 대형 공연시설이 필요하다는 시민의 요구도 타당하다. 전재수 시장의 개폐식 돔구장 구상은 이러한 오랜 갈증을 해결하려는 결단이다. 스포츠와 공연·관광을 결합해 북항의 새 동력을 만들겠다는 방향과 관계 기관의 협력을 끌어내는 추진력도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정책 목표의 타당성과 특정 입지의 적합성은 철저히 구분해야 한다. 법적·절차적으로 지을 수 있다는 사실이 그곳에 지어야 할 이유까지 증명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왜 완공을 앞둔 오페라하우스 바로 옆이어야 하는가다. 오페라하우스는 평범한 건물이 아니다. 오직 목소리와 악기 소리만으로 객석을 채워야 하는, 고도의 정밀함이 요구되는 하나의 거대한 악기다. 무대 상부의 막이나 조명을 매다는 플라이세트 배튼과 리프트, 무대 제어장치는 물론, 리허설 공간과 대형 무대 장치 반입을 위한 하역 동선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는 정밀한 제작시설이기도 하다. 이미 2019년 설계 재검증에서도 하역공간과 주차 대책 등 77건이 지적됐고, 850여 곳의 균열이 확인되는 진통을 겪은 만큼 개관 전 철저한 보완 검증이 필수적이다. 우주의 미세한 빛을 포착하는 초정밀 망원경을 갖춘 천문대 바로 옆에서 굉음과 폭발을 동반하는 대형 폭죽 축제를 상시 개최한다면, 관측 장비의 센서를 마비시키는 치명적인 교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관객이 가득 찬 돔구장 내부의 순간 최대 소음은 110~130데시벨(dB)에 이르며 강한 저주파까지 동반한다. 오페라하우스라는 섬세한 악기에는 치명적이다. 게다가 부산오페라하우스의 무대를 통합 제어하는 바그너-비로의 CAT 시스템은 위험을 감지하면 즉시 멈추는 ‘세이프티 록’ 기능이 있다. 문제는 이 고도의 안전장치다. 외부에서 전해진 돌발 진동을 위험으로 오인, 센서가 작동해 공연 도중 무대가 멈춰 서는 대형 사고가 현실화될 수도 있다. 글로벌 도시들이 대표 공연예술 시설과 대형 경기장을 서로 다른 권역에 배치해 각각의 운영환경을 철저히 보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24년, 스페인 마드리드의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경기장 사태가 이를 증명한다. 무려 17억 6000만 유로를 들여 개폐형 돔형태의 복합시설로 개조했지만, 방음 보강에도 소음 규정을 충족하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대규모 콘서트 일정이 전면 중단·변경되었으며, 약 24만 장에 달하는 티켓 환불 사태와 소음에 대한 주민들의 법적 대응이 잇따르며 도시의 신뢰가 송두리째 흔들렸다. ‘일단 짓고 보면 해결되겠지’라는 행정 편의주의적 발상이 가장 비싼 청구서로 돌아온 뼈아픈 교훈이다. 또 주목해야 할 대목은 이 공간적 모순 앞에서 목소리를 내야 할 문화계의 침묵이다. 현재 언론과 문화계 안팎에서는 100억 원대 라 스칼라 개관 공연을 두고 치열하게 찬반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현시점에서는 어떤 작품으로 문을 여느냐는 논쟁보다 극장이 정상적으로 숨 쉬며 일할 수 있는 물리적 조건을 지키는 일이 먼저다. 특히 개관을 준비하는 전문경영인과 예술감독 등 관련 전문가들이 이 문제에 대해 손 놓고 있을 일이 아니다. 입지를 결정할 권한은 없더라도 필요한 조사와 보호 기준을 부산시에 적극적으로 요구할 책무가 있다. 언젠가 그들의 임기는 끝나겠지만, 지금의 침묵이 남길 결과는 부산이 오랫동안 온몸으로 감당해야 한다. 네모난 장부를 둥근 구멍에 억지로 끼우는 ‘방예원조(方예圓鑿)’는 각각의 가치가 나빠서가 아니라 자리가 맞지 않아 둘 다 망가지는 어리석음을 경계한다. 오페라와 돔구장은 경쟁자가 아니다. 각자의 기능이 살아날 제자리에 놓일 때 문화적 자산과 스포츠 자산도 함께 커진다. 기존 체육 인프라의 현대화 계획과 제3의 대체 장소를 같은 기준으로 다시 비교하는 것은 공약의 후퇴가 아니라 공약을 제대로 완성하는 책임 행정이다. 체육 환경을 혁신하려는 의지가 오랜 세월 공들여온 문화 자산의 숨통을 끊는 자충수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해수부 이전을 성사한 전재수 시장의 추진력이 두 랜드마크를 모두 살리는 정밀한 검증과 지혜로운 판단, 그리고 대승적 성찰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이상훈의 시그니처 문화공간 이야기]장크트 마르가레텐, 채석장이 오페라극장이 되는 밤
오스트리아 빈에서 남동쪽으로 60km. 차로 1시간 남짓 달리면 헝가리 국경과 가까운 부르겐란트에 닿는다. 포도밭과 노이지들러 호수의 평화로운 풍경 사이, 거대한 돌산 속에 뜻밖의 문화공간이 숨어 있다. 장크트 마르가레텐(St. Margarethen) 채석장에 있는 ‘채석장의 오페라(Oper im Steinbruch)’다. 공연장에 들어서는 순간 가장 먼저 시선을 압도하는 것은 무대가 아니라 돌산이다. 수십 미터 높이의 석회암 절벽이 공간을 에워싸고 그 아래 거대한 무대와 객석이 펼쳐진다. 천장은 없다. 지붕은 부르겐란트의 밤하늘이고, 극장의 벽은 오랜 세월 사람들이 돌을 잘라내며 만들어 놓은 거친 암벽이다. 이곳에서 채취된 석재는 빈의 슈테판 대성당 건축과 보수, 링슈트라세의 주요 건축물에도 사용됐다. 오랜 채굴로 산속에는 거대한 인공 협곡 같은 공간이 만들어졌다. 산업적 기능만 생각하면 돌을 캐고 남은 빈 공간에 불과하지만, 바로 그 빈자리가 오늘날 이곳의 가장 특별한 자산이 됐다. 돌을 가져간 흔적이 무대가 되고, 절벽은 세상 어디에서도 쉽게 만날 수 없는 극장의 벽이 됐다. 장크트 마르가레텐 채석장은 오늘날 유럽을 대표하는 야외 공연장 가운데 하나다. 일반적인 오페라극장이 정교하게 설계된 건축 안으로 작품을 끌어들인다면 이곳에서는 반대의 일이 벌어진다. 작품이 이미 존재하는 자연과 산업의 흔적 속으로 들어간다. 무대미술 역시 암벽을 가리기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조명과 영상, 대형 세트가 거친 돌의 표면과 만나면서 채석장 전체가 하나의 무대장치가 된다. 2026년 여름 무대에 오른 작품은 푸치니의 〈토스카〉다. 이곳에서는 작품의 줄거리 못지않게 ‘어디에서 공연하는가’가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거대한 암벽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높이와 깊이, 거친 표면 자체가 공연의 분위기를 결정하고 인간이 만든 무대와 오랜 세월 형성된 채석장의 경계를 지운다. 특히 해가 지는 시간은 공연의 일부가 된다. 저녁 햇빛을 받아 황백색으로 빛나던 암벽은 어둠이 내려앉으며 전혀 다른 얼굴로 변한다. 조명이 켜지고 오케스트라와 가수들의 목소리가 돌벽 사이로 울려 퍼지면 관객은 공연을 바라보는 것을 넘어 거대한 공간 속으로 들어간 듯한 경험을 한다. 유럽에는 폐공장과 발전소, 창고 같은 산업시설을 문화공간으로 되살린 사례가 많다. 장크트 마르가레텐이 특별한 것은 새로운 건축으로 과거의 흔적을 덮지 않았다는 데 있다. 오히려 돌을 캐내며 남은 흔적을 그대로 두고 문화적 자산으로 바꾸었다. 공연이 끝나고 조명이 꺼지면 조금 전까지 거대한 극장이었던 공간은 다시 고요한 채석장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돌산을 바라보는 시선은 이미 달라져 있다. 버려질 수 있었던 공간에서 장소가 가진 기억과 시간을 읽어내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것. 장크트 마르가레텐은 문화공간이 반드시 새로 지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웅장한 돌산으로 보여준다.
[중앙로365] AI 에이전트가 결제하는 시대, 그리고 부산
지난 3년 사이 인공지능(AI)은 실험실을 벗어나 일상과 산업 전반에 스며들었다. 챗GPT나 클로드 같은 대화형 AI가 문서를 요약하고 코드를 짜 주는 것은 이미 익숙하다. AI가 병원에서 영상 판독을 돕고, 법률·회계 사무소에서는 판례와 문서를 검토하며, 공장에서는 설비 이상 징후를 미리 잡아낸다. 최근 1~2년 새 AI 산업 무게 중심은 다시 한 번 이동하고 있다. 사람 질문에 답만 하는 도구형 AI에서,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일련의 작업을 스스로 수행하는 ‘AI 에이전트’(AI Agent)로 진화하고 있다. AI 에이전트란 “이걸 해 줘”라고 지시하면, 정보를 찾고, 도구를 골라 쓰고, 다른 서비스와 통신하며 결과물을 만들어 낼 때까지 일련의 판단과 행동을 스스로 이어가는 프로그램을 말한다. 기존 AI는 “도쿄 여행 3박 4일 일정을 짜 줘”라고 하면 텍스트로 일정표를 만들어 준다. AI 에이전트는 여기에 더해 항공권을 검색하고, 호텔을 예약하고, 현지 교통 패스를 구매하며, 예약 상황이 바뀌면 대안도 찾아 낸다. 사람이 하던 여러 결정을 AI가 수행하는 것이다. 오픈AI, 구글, 아마존, 앤트로픽 같은 세계적 AI 기업들이 지난해부터 이 방향으로 자원을 집중하고 있고, 국내 통신사와 대형 IT 기업들도 에이전트형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자연스러운 질문 하나가 떠오른다. AI 에이전트가 사람을 대신해 항공권을 예약하고 호텔 값을 치른다면, 그 결제는 어떻게 이뤄지는가? 사람은 지갑을 열고 카드를 꺼내 번호를 입력하고, 문자로 온 인증번호를 다시 입력하며, ‘동의’ 버튼을 누른다. 하지만 AI 에이전트에게는 지갑이 없다. 인증번호를 받을 휴대폰도 없고, 버튼을 누를 손가락도 없다. AI 에이전트끼리 데이터를 주고받거나, 잠깐 기능을 빌려 쓸 때는 소액을 순식간에 주고받아야 한다. 이런 결제는 현 결제 시스템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 여기서 스테이블코인이 등장한다. 스테이블코인은 달러나 원화 같은 돈의 가치와 1 대 1로 연동되고, 인터넷에서 즉시 오가는 새로운 형태의 화폐다. 계좌 개설이나 별도 인증 없이도 프로그램이 스스로 주고받고, 아주 작은 금액도 부담 없이 이동시킨다. 24시간 국경과 상관없이 정산도 이뤄진다. AI 에이전트 결제 시대에는, 결제 문법 자체가 새로 쓰여질 수밖에 없다. 기존 카드망을 없애자는 얘기가 아니다. 그 옆에, AI 에이전트가 사용할 새 결제 인프라가 하나 더 만들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 흐름은 먼 미래 얘기가 아니다. 지난해 미국 코인베이스가 AI 에이전트가 서로 결제할 수 있는 새 규격을 공개한 이래, 아마존은 자사 AI 개발 플랫폼에 이 결제망을 기본으로 얹었고, 비자와 구글은 표준을 다듬는 협력체에 참여하고 있다. 요컨대 AI 시대 결제 인프라의 세계적 표준이 골격을 잡아 가고 있다는 뜻이다. 이 큰 흐름 속에 부산은 어디에 서 있는가. 흥미로운 것은 AI 에이전트 결제 인프라가, 사실은 부산이 가진 자산과 매우 잘 맞는다는 점이다. 부산은 국경을 넘나드는 결제가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곳이다. 항만에선 국제 물류 대금이 매일 오가고, 남포동과 서면에는 외국인 관광객의 소액 결제가 이어지며, 조선·해운 산업의 국제 정산은 일상이다. 여기에 AI 에이전트가 얹혔을 때 어떤 그림이 그려질지는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방한 관광객의 AI 여행 도우미가 소액 결제를 자동으로 처리하고, 물류 회사 AI 에이전트가 항만 이용료와 창고료를 스스로 정산하며, 선박의 IoT 센서가 유류비와 도선료를 실시간 지불하는 풍경이다. 이 그림이 다른 도시보다 부산에 더 자연스럽게 실현될 수 있는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부산은 2019년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돼 새로운 금융 실증을 시도할 수 있는 제도적 여지를 확보하고 있다. 둘째, 해양수산부와 HMM의 부산 이전으로 해양 금융 도시로의 무게 이동이 진행되고 있고, 그 위에 얹힐 디지털 결제 인프라 자리가 지금 비어 있다. 셋째, 부산은 관광, 항만, 조선, 물류라는 서로 다른 산업이 겹쳐 있는 드문 도시다. AI 에이전트 결제가 실증되려면 서로 다른 성격의 결제 유스케이스가 한 도시에서 동시에 검증돼야 하는데, 부산은 그 조건을 자연스럽게 갖추고 있다. 세계에 이런 조합을 한꺼번에 가진 도시는 많지 않다. AI가 결제 주체가 되고, 스테이블코인이 결제 기본 수단이 되며, 블록체인이 정산의 마지막 계층이 되는 새로운 금융 지형이 만들어지고 있다. ‘AI 에이전트가 어느 통화로 결제하는가’라는 새로운 질문이, 국가와 도시 모두에 던져졌다. 그 흐름이 실물 경제와 만나는 첫 도시, 부산이 어떤 자리를 잡느냐에 따라 한국을 넘어 부산 미래도 크게 좌우될 것이다.
[데스크 칼럼] ‘지필공’과 부산대병원
오는 20일 국립대학병원 소관 부처가 기존 교육부에서 보건복지부로 변경된다. 그동안 국립대병원의 관리·감독은 교육부가, 지역·필수의료 정책은 복지부가 맡았다. 11일 국무회의에서 국립대학병원 설치법 시행령과 국립대학치과병원 설치법 시행령 일부개정령안이 의결됐다. 소관 부처 이관으로 복지부는 국립대병원과 보건의료 정책의 연계성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지역 국립대병원이 교육기관으로서 자율성은 유지하면서 지역·필수·공공의료 핵심 거점병원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정부는 국정과제 ‘지역·필수·공공의료 강화’를 위한 국립대병원 종합적 육성방향을 지난 6월 밝힌 바 있다. 국립대병원을 지역 내 최고 수준의 의료기관으로 육성해 위기에 빠진 지역의료를 살리겠다는 것이다.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찾아가는 지역 환자들의 ‘상경진료’ 비용이 연 4.6조 원에 달한다. 수도권 의료 쏠림과 지역 의료 인프라 약화가 맞물려 돌아가며 지역의료의 위기는 더 심화한다. 지역의료 중심축 역할을 하는 국립대병원도 마찬가지다. 정부 발표 자료를 보면 지역 국립대병원은 전문의 수·첨단의료기기·연구실적 등에서 수도권 대형병원과 큰 차이를 보인다. 이것은 국립대병원 임상·연구·교육·시설 등에 대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결과이다. 복지부는 지역 국립대병원이 시설·장비 노후화, R&D 인프라·인력 부족, 만성적 인력난과 필수의료 인력 단절에 시달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정부는 국립대병원이 주도하는 지역 완결적 의료체계와 지역 의료 안전망을 구축해 지역 주도 성장을 이끌겠다고 공언했다. 우수한 의료 인력이 국립대병원에 정착할 수 있도록 총인건비와 채용제도를 개편하고, 중증·고난도 진료역량 강화를 위한 시설·장비의 첨단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 응급·모자·심뇌·외상·어린이 등 필수의료센터를 국립대병원 중심으로 확대하겠다는 방안도 내놓았다. 지역 의료 인재 양성을 위해 국립대병원 교육·수련 인프라를 확충하고, 권역단위 수련거점 기능 강화에도 나설 계획이다. 부산에서는 부산대학교병원이 국립대병원 육성 정책의 시행 대상이 된다. 부산대병원은 1956년 부산대학교 의대 부속병원으로 개원했다. 1979년 본관 개관을 기준으로 잡아도 50년 가까이 되어 시설 노후화가 심각하다. 과거에는 청진기만 있으면 환자를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특수 영상장비부터 최첨단 로봇수술·암 치료 장비까지 도입하려면 공간 확보는 필수다. 전문진료센터를 건립하려 해도 현재 상태로는 지을 공간이 없다는 것이 현장의 이야기다. 실제 부산대병원을 이용해 보면 영상 촬영을 위해 건물 이곳저곳을 복잡하게 이동하고 병동 밖으로 나왔다 들어갔다 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에 부산대병원은 2023년부터 ‘지역완결형 글로벌 허브 메디컬센터 구축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권역책임의료기관으로 제 역할을 하기 위해 심각한 공간 협소·인프라 노후화 문제 해결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현재 행정·사무공간으로 사용하는 S동을 재건축하는 1단계, 본관 지하와 도시철도 토성역을 바로 연결하고 외래연결동을 증축하는 2단계, 나머지 병동을 현대화하는 3단계로 진행된다. 지난 3일 예비타당성조사 재정투자평가 분과위원회 종합평가가 완료돼, 부산대병원은 이달 말로 예정된 결과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사업이 계획대로 추진되면 기존 재활의학센터·통합암케어센터·융복합연구센터·국제진료센터 강화에 더해, 24시간 소아응급 진료가 가능한 어린이 통합진료센터·고령화 시대에 맞춘 노인전문질환센터·최첨단 시뮬레이션센터까지 새로 들어서게 된다. 특히 시뮬레이션센터는 의사·간호사 등 지역 의료인 육성의 장으로 활용되는 동시에 공공보건의료와 중·소형 의료기관 교육의 공간으로 활용될 수 있다. 또 중환자와 보호자들이 입퇴원마다 치르는 주차장 전쟁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지역·필수·공공의료 살리기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다. 그만큼 ‘지필공’ 의료 위기가 심각하다는 의미다. 지난달 부산 상급종합병원 필수의료과 의사 인력 부족을 취재하며 마주한 지역·필수의료 현장은 ‘버티고 있다’는 표현이 딱 맞았다. 지역완결형 의료 체계 구축의 시작점은 의사와 환자가 남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글로벌 허브 메디컬센터 사업은 지역 국립대병원 육성이라는 정부 정책과 연결되는 지점이 많다. 단순히 한 병원을 위한 사업으로 치부하거나 경제성만을 기준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수도권과 지역의 의료 격차를 줄이기 위한 첫 단추로 생각해야 한다. 국민이 어디에 살든 골든타임 안에 수준 높은 진료를 받도록 하겠다는 정부의 선언이 구체적인 실천으로 지역에서 구현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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