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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에서 내놓은 고등어 요리는 어떤 맛일까?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바다 방류가 시작되면서 먹거리 안전이 걱정이다. 3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에서 평생 해산물을 멀리할 순 없는 노릇. 회·어탕·생선구이 등 다양한 바다 요리가 발달한 부산이라면 더욱 그렇다. 세간의 불안감을 아는 식당들은 신선한 재료, 맛의 본질에 더욱 신경을 쓰는 분위기다. 음식 전문가부터 동네 주민까지 다양한 입맛의 추천을 받아, 믿고 먹을 수 있는 생선 요릿집 3곳을 소개한다.
■ ‘고등어’ 연구하는 사람들
버스를 타고 부산역을 지나 남포동으로 가는 길. 중앙동쯤에서 오른쪽 차창 밖으로 간판 하나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고등어연구소’. 부산 시어(巿魚)인 고등어를 연구하는 기관이라도 생긴 걸까. 얼마 지나지 않아 지인들 SNS에 하나둘 ‘후기’가 올라오며 의문이 풀렸다. 연구소의 정체는 요리전문점이었던 것.
며칠 뒤 붐비는 점심시간을 피해 자리를 잡았다. 키오스크로 대표메뉴인 ‘고태솥밥+오차즈케’ ‘고등어 온소바’를 주문하자 주방에서 금세 한 그릇씩 내어 준다. 두 음식 모두 큼지막한 고등어 순살구이가 두 덩이씩 얹혀 있다. 밥을 감싼 고등어와 국수에 빠진 고등어. 비주얼만 보면 비릴 것 같은데, 일단 향부터 예상을 깬다. 신기할 정도로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
맛은 어떨까. 테이블 위에는 맛있게 즐기는 방법이 안내돼 있다. 먼저 고태솥밥+오차즈케. 솥밥 위의 고등어 살을 젓가락으로 잘게 으깨 밥·고명과 함께 잘 비빈다. 이어 공기에 덜어낸 뒤 간장과 고추냉이로 간을 맞춘다. 녹차 베이스의 오차를 부어 국밥처럼 먹어도 된다.
안내대로 부지런히 ‘작업’한 다음 한 숟갈을 뜨자 입안 가득 익숙함과 낯섦이 공존한다. 밥 한술에 고등어 구이 한 점 얹어 먹던 익숙함과, 기름진 생선임에도 비리지 않은 낯섦. 입맛에 싱겁다면 달짝지근한 간장을 넣어 비비거나 고추냉이와 함께 김에 싸 먹어도 좋다.
고등어 온소바도 솥밥과 별반 다르지 않다. 메밀 면은 기성품이 아니라 기장에서 수제를 공수해온다고 한다. 쪽파를 띄운 육수에다, 고등어 위에 살짝 유자 껍질을 올려 상큼함을 더했다. 면 한 끼에 고등어가 더해지니 든든하다.
그런데 식당 이름이 왜 고등어연구소일까. 고등어 레시피를 계속 연구해, 다양한 메뉴를 선보이겠다는 김동주(34) 대표의 다짐을 담았다고 한다. 비린내 잡는 비결, 특제 소스와 고등어 껍질 벗기기도 연구의 결과물이다.
올 6월에 문을 연 고등어연구소는 현재 노르웨이산 고등어를 쓴다. 김 대표는 겨울께 우리나라 고등어철이 돌아오면 국내산으로 바꿀 예정인데, 값은 1만 원 아래를 고수하겠단다. 고태솥밥+오차즈케와 고등어 온소바 각 9800원.
■ 30년 역사, 솥에서 고아 낸 ‘바닷장어’
여름 하면 보양식, 보양식 하면 여름이다. 길고 길었던 올여름 무더위를 이겨 낸 몸과 마음에 보양식을 선물하고 싶다면, 생선 중에서도 펄떡이는 장어가 떠오른다.
건강한 맛이 듬뿍 담긴 바닷장어탕이 있다고 해 영도로 향했다. 영도다리를 건너 영도경찰서를 지나 대교사거리 앞에서 부산대교 쪽으로 길을 건넌다. 골목길로 들어서자 이내 장어탕 전문점이 모습을 드러낸다. ‘옛날추어탕’에서 몇 년 전 이름을 바꾼 30년 역사의 ‘옛날장어탕’이다. 장어탕과 장어구이. 단 2가지 단출한 메뉴에서부터 장어를 향한 진심이 느껴진다.
장어탕을 기다리는 동안 냉장고에서 반찬 통 3개를 내어 준다. 탕에 넣어 먹을 다진 마늘과 고추, 방앗잎이다. 뚝배기에 담겨 나온 장어탕은 붉은 기운의 국물 빛깔부터 남다르다.
숟가락으로 국물을 한 번 휘저으니 손끝으로 푸짐함이 전해진다. 간간이 눈에 띄는 숙주나물을 빼면, 숟가락에 걸리는 대부분이 장어다. 혹자는 장어탕 국물이 빨개 ‘여수식’같다고 하지만 ‘속사정’은 많은 차이가 있다. 시래기·고사리·양파 등 부재료가 많이 들어가는 여수식과는 달리 주인공 장어로 가득 채웠다는 게 주인장의 설명이다.
두툼한 살코기는 뼈를 발라내지 않았다. 자연의 맛을 추구하는 이들이라면 뼈째 씹어 먹을 수 있어 더 든든하고 건강에 이롭다 여길 만하다.
장어 살코기는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는다. 뚝배기마다 한 그릇씩 끓이지 않고, 큰 솥에다 바닷장어 수십 kg를 한꺼번에 푹 고아 냈기 때문이다. 건강한 요리를 추구하는 주인장의 고집이 우러난 맛이다.
국물은 붉은 빛깔에 비해 매콤한 기색이 거의 없다. 고춧가루 대신 홍초를 써 텁텁하지 않고 깔끔하다. 매운 맛을 꺼리는 이들도 부드럽게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한 그릇 뚝딱 비우고 나니 속도 마음도 개운해진다. 오이무침, 고추장아찌, 숙주나물 등 식당에서 직접 만든 찬도 정갈하다.
바닷장어는 서해와 경남 통영 등지에서 통발이 아닌 낚시로 잡아 올린 싱싱한 녀석들만 쓴다. 그래서인지 장어 특유의 비린내가 없다. 하루치 양이 다 나가면 일찍 장사를 접는다. 장어탕 한 그릇 1만 7000원.
■ 정통 일본식으로 만나는 ‘활참복어’
건강한 생선요리 하면 복어를 빼놓을 수 없다. 대개 복요리는 어른이 되어 복국으로 입문한다. 복요리도 알고 보면 복샤브, 복불고기, 복튀김 등 남녀노소 두루 즐길 수 있는 메뉴가 다양하다. 해운대구 마린시티에서 정통 일본식으로 복어 요리를 선보이는 식당이 있다고 해 찾았다.
두산제니스스퀘어 2층에 들어선 일식당 ‘마루신’. 입구 앞 알림판 문구가 먼저 손님을 맞이한다. ‘식자재 중 일본산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활참복요리, 민물장어덮밥, 스시 등 마루신 메뉴 중에서도 복요리가 대표다. 일본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던 신민아 대표가 본인이 좋아하던 일식 복요리를 그대로 한국으로 들여왔다고 한다.
마루신은 참복·까치복·밀복·은복 중에서 가장 고급인 참복을 쓴다. 남해에서 양식한 녀석을 식당 수족관으로 옮겨와 주문 즉시 잡아서 내어 준다. 활참복 샤브(뎃지리)를 주문하면 껍질초회(유비끼), 튀김(가라아게), 죽(조스이)까지 코스처럼 맛볼 수 있다. 코스요리(A·B)는 숙성이 필요한 사시미(뎃샤)가 추가되기 때문에 예약이 필수다.
애피타이저처럼 맨 먼저 나오는 참복 껍질초회는 쫄깃한 식감이 매력적이다. 폰즈소스와 어우러진 복어 껍질이 마치 콜라겐 덩어리를 씹는 느낌이다. 복요리엔 간 역할을 하는 폰즈도 중요하다. 무를 갈아 고춧가루를 섞은 ‘아카오로시’와 간장에 유자·청귤을 베이스로 한 폰즈는 신 대표가 직접 개발했다. 참복 튀김의 식감도 흥미롭다. 눈을 감고 먹으면 치킨인 줄 착각할 정도다.
드디어 메인 요리인 참복 샤브다. 접시 위 토막 난 복어 살코기가 꿈틀거린다. 갓 잡은 활어란 증거다. 뎃지리(샤브)는 좀 더 맛있게 먹는 순서가 있다. 끓는 육수에 뼈가 붙은 부위를 먼저 익혀서 먹은 다음, 나머지 복어 살과 각종 채소를 넣는다. 잘 익은 살코기는 알맞게 부드럽고, 아가미 부위 살점은 적당히 쫄깃해 색다르다.
배추, 청경채, 대파에다 표고·팽이버섯까지 우러난 맑고 뽀얀 국물은 복국 특유의 시원한 진국이다. 한 모금 두 모금 계속 들이켜게 되는데, 조금 남겨 일본식 죽(조스이)으로도 음미해 보길 권한다. 활참복 샤브(1인) 5만 8000원.
글·사진=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2023-08-3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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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과 인연] 갯마을에 스며든 돼지국밥 깊은 맛
달음산과 아홉산에서 발원한 일광천 물줄기가 제법 옹골차다. 동해선 일광역에서 내려 일광천을 따라 조금 걷다 보면 일광해수욕장 입구에서 문학비 하나를 만난다. 난계 오영수의 갯마을 문학비다. 비문엔 갯마을 아낙 해순이 후리막을 향해 달려가는 장면이 묘사돼 있다. '맨발에 식은 모래가 해순이는 오장육부에 간지럽도록 시원했다.'
일광은 신도시가 들어선 지 오래지만, 그래도 해수욕장과 인근 풍경에는 갯마을의 여운이 남았다. 장어 요리를 내는 집도 아직 많은데 이곳이 워낙 짚불로 구운 꼼장어나 붕장어 회 등의 해산물이 강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광풍으로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던 붕장어 구이집 '동해남부선'이 있어 서너 번 일광을 찾았지만, 부산 구도심에 사는 이에게 일광은 어젼히 멀게 느껴지기는 했다. 그런데도 굳이 일광을 다시 찾은 이유는 이 갯것 중심의 판에 감히 명함을 내민 돼지국밥집이 있다고 해서다.
'일광돼지국밥 홍가' 젊은 사장은 홍 씨였다. 홍상우 사장은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정통 요리 전문 과정을 거쳤고, 15년간 부산 유수의 호텔에서 일식 세프를 지냈다. 그런데 초밥 같은 일식이 아니라 돼지국밥집을 최근 이곳 일광에 열었다.
"해야 할 일이 있고 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홍 사장이 돼지국밥집을 연 이유다. 알듯 말듯 선문답같은 이야기였다. 그러나 일광돼지국밥 홍가의 아롱사태냉채 한 점을 입에 넣은 후에는 굳이 다른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오이를 얇게 썬 위에 아롱사태 수육이 놓이고 그 위에 홍고추를 활용한 특유의 소스와 가늘게 썬 파를 뿌렸다.' 부산 외곽, 기장군 일광의 돼지국밥집에서 고급 중식 요리 느낌이 물씬 풍겼다. '아 참, 이 집 사장이 호텔 요리사 출신이지.'
보통 돼지국밥집에는 새우젓을 내놓는다. 그런데 이 집은 새우젓이 없다. 대신 새우젓 무침이 제공된다. "새우젓은 질펀한 물기가 싫었습니다. 그래서 새우젓은 따로 양념을 가해 무쳤고요. 양념장(다대기)을 만들 때 미리 새우젓을 넣어 이미 초벌간이 돼 있습니다. 기호에 따라 구운 소금을 조금 추가하면 간이 됩니다."
새우젓 무침은 수육을 먹을 때 막장(쌈장)과 버금갈 정도로 위력을 발휘했다. 물기 없는 새우젓 무침을 수육 한 점에 살짝 올린 뒤 먹으니 궁합이 딱 맞다.
돼지국밥이 거기서 거기라지만, 양념 한 가지나 어떤 고기를 쓰느냐에 따라 확연하게 다르다고 한다. '시골 국밥'치고는 단가가 살짝 있어 너무 비싸게 받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조금 그런 느낌이 있지만 정직하기 위해서란다. 원재룟값을 비롯한 모든 물가가 올랐다. 좋은 고기를 써야 좋은 국밥이 탄생하는데, 국밥과 수육의 품질을 포기할 수 없어 적정 선으로 가격을 정했다고 홍 사장은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수육 중짜를 시켰다. 항정 수육이 절반 가까이 나왔다. 항정살은 고급 부위로 알려져 있는데, 돼지 수육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니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다. 수육은 온기가 유지되도록 고체연료 화로 위에 놓아준다. 일식 세프의 센스다.
맛보기 순대도 잘 시켰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지리산 산행을 갔다가 산 아래 사람들이 동네 잔치를 하면서 순대를 만드는 것을 봤다. 그런 전통 방식으로 만든 시골 순대가 맞다.
술과 고기를 먹었지만, 그래도 국밥을 맛봐야 했기에 섞어국밥을 시켰다. 내장과 수육이 골고루 섞여 푸짐했다. 일광돼지국밥 홍가는 사골과 고기 육수를 섞어 국물을 낸다고 했다. 진하고 뽀얗지도 않고, 투명한 듯 맑지도 않은 균형을 갖췄다. 수육만 시켜도 국물은 각각 따로 나온다.
한여름에 돼지국밥집 개업이 무리수가 아니었냐는 불편한 질문을 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삼시세끼 식사가 되도록 문을 엽니다. 현재까지는 연중무휴입니다." 오전 8시에 문을 열고 오후 8시에 문을 닫는데 3끼 언제든지 해결할 수 있단다. 마지막 주문은 오후 7시 30분까지 받는다.
홍 사장은 새벽부터 당일 쓸 사골을 끓이고 수육을 삶아낸다. 마침 40년 한식 조리사 고모부가 도와주고 있어 숨통이 트인단다. 고모부는 부산 요식업계에서는 이름만 말해도 사람들이 아는 김판철 전 부산조리사협회장이다.
그러고 보니 여느 돼지국밥집과는 다른 인테리어가 눈에 들어온다. 홍 사장의 일식 마인드도 보태져 돼지국밥집 내부는 멋진 카페 같은 분위기다. '일광 갯마을의 돼지국밥' 홍 사장은 비록 일식 셰프였지만, 부산 토박이로 어릴 적부터 돼지국밥을 즐겨 그 DNA를 잘 간직한 사람이다. 그가 '하고 싶었던 일'이 번창하리라.
가게는 동해선 일광역에서 걸어 5분 거리인 동부산농협 일광지점 건너편에 있다. 거리 이름이 이천갯마을낭만거리다. 돼지국밥에 온몸이 얼큰해지면 갯내 물씬 나는 바닷가가 또 지척이니 여기서 시원하게 식혀 오면 된다.
국밥류 9500원, 수백과 특선은 각 1만 2000원. 순대맛보기 6000원, 수육 중짜 2만 5000원, 아롱사태냉채 1만 5000원이다.
2023-08-28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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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과 함께 건강한 여름 나기…중앙동 40계단 발효소 '복분자 약주' [술도락 맛홀릭] <15>
가가호호 술을 빚던 시절이 있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사라졌던 가양주(家釀酒) 문화가 100년 만에 다시 부활하고 있다. 현재까지 발급된 지역특산주 면허만 1400건에 이르고, 해마다 새로운 양조장과 전통주가 탄생한다.
전통주엔 지역의 특색이 오롯이 담겼다. 지역에서 나는 재료로 술을 빚어, 특산음식과도 잘 어울린다. <부산일보>는 ‘술도락 맛홀릭’ 기획시리즈를 통해 부산·울산·경남 지역의 전통주 양조장을 탐방하고, 지역의 맛과 가치를 재조명한다. 이지민 대동여주도 대표 등 전통주 전문가도 힘을 보탠다.
한여름 무더위는 전통주도 견디기 어렵다. 고온 탓에 술이 쉬어버리기 십상이다. 그런데 여름이 제철인 우리 술이 있다. ‘과하주(過夏酒)’, 이름 그대로 ‘여름이 지나도록 맛이 안 변하고, 여름에 마셔 건강하게 더위를 이겨 내는 술’이다. 부산 원도심에는 과하주를 빚는 작은 양조장이 있다. 복분자를 넣어 빛깔과 향미까지 특색 있다. 싱그러운 과실 향과 술 익는 내음이 있는 골목을 찾아 나섰다.
■ 40계단 역사 품은 신생 양조장
한국전쟁 피란민의 아픔이 서린 곳, 중구 중앙동 40계단 앞에서 인쇄골목으로 접어들었다. 몇 걸음 지나지 않아 작은 상가 건물의 간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40계단 발효소’.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다. 3층까지 오르는 좁고 가파른 계단이 건물의 오랜 역사를 말해 준다. 조심조심 한 계단씩 올라 회색 철문을 열자 바깥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밝고 아늑한 공간이 펼쳐진다.
“고향이 영도여서 중앙동은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동네였어요. 양조장을 차릴 땐 코로나 이전이라 관광객도 많았고, 술과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레 모이지 않을까 생각했죠.”
취재진을 맞은 조부영(51) 대표는 꾸밈없는 말투로 양조장을 소개했다. 주인장을 닮아 공간은 소박하고 설비도 단출하다. 전체 60㎡에 제조실과 발효실, 저온숙성실이 오밀오밀 자리한다. 햇살이 잘 드는 창가 쪽에 보랏빛 술병이 전시돼 있다. 40계단 발효소의 대표술인 ‘꽃빛’과 ‘마주향해’다. 보라색은 복분자의 빛깔이다. 꽃빛은 세 번 빚은 삼양주, 마주향해는 이양주에 증류주를 더한 과하주다. 복분자를 넣어 만든 과하주는 마주향해가 전국에서 유일하다.
40계단 발효소는 조 대표 홀로 운영하는 1인 양조장이다. 한 달에 생산하는 술은 200병 남짓. 소규모 양조장이어서 인터넷 판매도 안 된다. 하지만 입소문을 타고 부산·경남지역은 물론 서울을 비롯해 수도권 등지에서 오는 방문객이 꾸준하다.
술과 양조장의 인지도와 달리 조 대표의 경력은 그리 오래지 않았다. 4년 전 여름, 남편이 덜컥 벌인 일이 그를 전통주 세계로 이끌었다.
“2019년 봄부터 지인을 따라 미리내우리술공방에서 술을 몇 번 빚었어요. 소금도 만들 수 있다길래, 복분자주를 빚은 뒤 남은 지게미로 만들어 봤죠. 그런데 남편이 소금 아이템으로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 예비창업 프로그램에 신청을 한 거예요.”
예상과 달리 최종 선정되면서 일이 커져 버렸다. 소금의 원료인 술지게미는 사고파는 식재료가 아니라, 지게미를 얻기 위해 결국 양조장까지 차리게 됐다.
전업주부에서 양조장 대표가 됐지만 조 대표의 전통주 경험은 앞서 술공방에서 빚어 본 세 번이 전부였다. 조 대표는 미리내우리술공방 손승희 대표의 도움을 받아 부랴부랴 복분자 약주 레시피의 기본 틀을 완성하고 술 빚기에 몰두했다. 2020년 2월 소규모 양조장 면허를 내고 추석에 맞춰 첫 제품 ‘꽃빛’과 ‘꽃빛소금’을 내놓기까지, 단 1년 동안 벌어진 일이다.
■ 같지만 다른 복분자 약주·과하주
“너무 갑작스럽게 양조장을 열다 보니 한동안 밤잠을 설쳤어요. 주변에선 왜 홍보를 안 하냐고 그러는데, 술이 안 팔리는 건 전혀 신경이 안 쓰였어요. 술맛이 안정화되기 전까진 오히려 많이 팔릴까 봐 무서웠죠.” 판매보다 술맛을 우선하는 조 대표의 초심은 지금도 한결같다.
‘꽃빛’은 이름부터 눈길이 간다. 복분자에 함유된 항산화 물질 ‘안토시아닌’의 라틴어 뜻을 우리 말로 푼 것이다. 술공방에서 우연히 만난 대학 선배이자 술 빚기 선배인 <부산일보> 김승일 기자의 작명이다.
꽃빛을 유리잔에 따라 빛깔만 보면 와인과 분간이 안 될 정도다. 한 모금 들이켜자 여느 복분자주처럼 너무 달지도 끈적거리지도 않는다. 담금주에다 복분자 열매와 설탕을 넣은 과실주가 아니라, 쌀로 빚은 약주에 복분자를 가미했기 때문이다. 누룩취를 줄이려고 전통누룩과 백국을 섞어 쓰고, 삼양주라 다른 복분자 약주와 비교해도 단맛이 덜하다는 게 조 대표의 설명이다.
세 번의 술 빚기 중 먼저 멥쌀 죽으로 밑술을 만든다. 그 다음 찹쌀 죽으로 첫 번째 덧술, 찹쌀 고두밥과 복분자로 두 번째 덧술을 한다. 복분자는 전북 고창군에서 따자마자 급속냉동한 열매를 쓴다. 8~9주 충분히 발효를 시키고 광목천으로 거른 뒤 저온숙성고에서 2달 더 숙성을 한다. 한 병이 나오기까지 넉 달가량 기다리는 셈이다. 침전물은 필터를 쓰지 않고 긴 숙성 과정에서 가라앉힌다. 이후 맑은 부분만 떠내 병에 담는다. 기계·필터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술 빛깔이 탁하지 않은 이유다.
조 대표는 지난해 설을 맞아 2가지 술(이양주)을 더 내놨다. 과하주 ‘마주향해’와 복분자를 뺀 약주 ‘은빛’이다. “술을 계속 빚어 보니 누룩을 많이 쓴다고 누룩취가 나는 게 아니더라고요. 전통누룩만 사용해 단맛과 산미가 좀 더 조화를 이룬 술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증류주가 들어가는 과하주 ‘마주향해’는 약주 중에서도 고급이다. 복분자와 함께 덧술을 한 뒤 발효 후반부에 조 대표가 직접 만든 ‘증류주’를 가미한다. 서로 다른 약주와 증류주가 만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는 의미가 술 이름에 담겼다.
꽃빛과 마주향해는 같은 복분자 약주 계열이라 빛깔로는 구분이 쉽지 않다. 알코올 도수도 똑같이 17도다. 그래도 오감에 집중해 시음을 하면 향미의 차이가 느껴진다. 마주향해의 복분자 향이 더 분명하고, 뒷맛에서 증류주의 알코올 기운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 40계단서 하산하는 그날…
40계단 발효소는 자체 술 말고도 인근 비건 레스토랑 ‘아르프’에 전용 술을 납품한다. 계절별로 영도 녹차, 배·라임, 향신료 등이 들어간 약주다. 지역 음식점과 작은 양조장의 협업은 새로운 사업 모델로 업계 관심을 받고 있다.
40계단 발효소의 술은 양조장과 일부 보틀숍·전통주점에서만 만날 수 있어 귀하다. 양조장 근처에 술과 곁들일 만한 음식점이 여럿이어서 이왕이면 직접 방문할 만하다.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30여 년 역사의 ‘석기시대’는 오향장육이 대표 메뉴다. 그날그날 삶아 내놓는 고기는 부드럽고, 고기 위에 얹은 오이·양파·고추와 새콤한 양념이 시원함을 더한다. 양조장에서 두 블록 떨어진 중국음식점 ‘홍문’의 고추잡채는 겨울철 따뜻하게 즐길 만하다. 두 음식 모두 꽃빛 혹은 마주향해의 깔끔한 산미와 잘 어울린다.
햇수로 4년. 40계단 발효소는 문을 열자마자 코로나 팬데믹을 만났지만 묵묵히 버텨 온 끝에 업계에선 술 잘 만드는 양조장으로 자리매김하는 중이다.
“남들이 다 말릴 때 남편만 응원을 해 줬어요. 일단 2년만 버텨 보자고 했거든요. 힘 쓰는 일이나 각종 행정 업무를 남편이 도맡아서 도와준 덕분에 저는 술 빚기에만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이젠 저보고 ‘(3층에서 1층으로)하산할 준비 됐냐’고 해요. 하하.”
부부의 바람대로 40계단 발효소의 다음 단계는 1층에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복합문화공간을 만들어 술을 매개로 사람들과의 접점을 넓혀 나가겠다는 구상이다.
“다양한 사람, 다양한 분야와 연결될 수 있다는 게 술의 장점인 것 같아요. 새 공간을 마련해 저희 술에 대해 제대로 설명도 드리고, 각계각층 사람들이 술을 매개로 음식·문학·음악 등 다양한 주제로 교류하는 프로그램도 운영해 보고 싶습니다.” 40계단에서 ‘하산’하는 그날이 기다려진다.
글·사진=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제품명 : 꽃빛
-양조장 : 40계단 발효소(부산 중구)
-내용량 : 500mL
-알코올 : 17.0%
-원재료 : 정제수·쌀·복분자·누룩·효모·입국
-제품명 : 마주향해
-양조장 : 40계단 발효소(부산 중구)
-내용량 : 375mL
-알코올 : 17.0%
-원재료 : 정제수·쌀·복분자·누룩·증류소주
[기자들의 시음평]
▶김희돈 스포츠라이프부 부장
-꽃빛
"일단 맛있다. 복분자가 들어가서인지 보통 풀내음이 연상되는 일반적인 약주와 달라 신기하다."
-마주향해
"복분자 재료의 특성을 증류주가 더 돋보이게 해 주는 것 같다. 향도 풍부하고 술 먹는 기분이 난다."
▶이상배 디지털미디어부 기자
-꽃빛
"약주와 복분자의 장점을 잘 블렌딩한 느낌. 상큼한 복분자가 약주의 묵직함을 훌륭히 완화시킨다."
-마주향해
"약주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묵직한 단맛. 술 본연의 향이 느껴진다. 치즈·크래커류와 잘 어울릴 듯."
▶김동우 편집파트 기자
-꽃빛
"복분자의 상큼함이 입맛을 돋운다. 과일주처럼 가볍지 않고 알코올 향이 술 정체성을 지켜 준다."
-마주향해
"산미가 혀끝과 입안에서 전체적으로 오래 감돈다. 느끼함을 잡아 줘 기름진 육류와 어울릴 것 같다."
▶이지민 디지털미디어부 에디터
-꽃빛
"포도주 마시는 느낌이라 알코올 도수가 17도 정도로 센 줄 모르겠다. 가볍게 즐기기 좋은 약주다."
-마주향해
"꽃빛보다 더 새콤하고 알코올 향도 더 많이 느껴진다. 꽃빛이 와인이라면 마주향해는 진짜 술이다."
[전문가의 맛 코멘트]
▶이지민 대동여주도 대표
-꽃빛
"잘 익은 검붉은 과실의 짙은 컬러가 느껴진다. 외관상으로는 와인 같은 느낌을 물씬 전한다. 코를 갖다 대니 싱그러운 복분자 향과 함께 달콤한 향이 은은하게 다가온다. 한 잔 머금으면 부드럽게 넘어가는 느낌에서 좋은 첫인상을 받고, 뒤이어 느껴지는 아주 적절한 단맛에 기분 좋게 잔을 비우게 된다. 밸런스가 정말 좋은 복분자 약주이며, 시중의 복분자주 강한 단맛이 싫은 분들에게 권하고 싶다. 이 정도 퀄리티면 여름에 쟁여 놓고 초복·중복·말복을 장어와 함께해도 좋겠단 생각이 든다. 잘 만든 복분자 약주를 만나서 기쁘다. 부드럽고 우아한 여운에 빠져들게 된다."
-마주향해
"컬러와 향의 결은 꽃빛과 비슷한 듯하지만 향에서 스파이시함과 담백함이 더해진 게 느껴진다. 스월링(술 따른 잔을 둥글게 돌리는 행동) 할 때마다 코를 찌르는 알코올감도 있다. 꽃빛보다는 덜 달고, 뒤로 갈수록 부드러운 단맛에 은근한 산미와 스파이시한 맛이 느껴진다. 후미가 깔끔하게 정리되는 느낌이라 애주가들을 타깃으로 탄생한 복분자 과하주라 하겠다."
2023-08-16 [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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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라1동 주민자치위원회, 어르신 단체 영화관람 실시
사상구 모라1동 주민자치위원회(위원장 이정기)는 지난 8일 관내 어르신15명을 모시고 단체 영화 관람을 실시했다.
이번 행사는 어르신들의 건강하고 품위 있는 노년을 위해 기획된 2023년 자치분권 공모사업‘너와 나의 온기로, 우리동네 온정 ON’사업 일환으로 마련됐다.
이번 행사에 참여하신 한 어르신은 “오랜만에 실컷 웃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며 환하게 웃으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정기 주민자치위원장은 “무더위에 지쳐있을 어르신들께서 이 자리를 통해 조금이나마 활력을 얻고 가시길 바란다”며 “앞으로도 어르신들을 위한 다양한 사업들을 추진하겠다”고 전했다.
2023-08-09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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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수제맥주 총정리] '비어' 있는 부산, 입이 즐겁다!
온 세상이 펄펄 끓는 한여름이다. 각자 무더위를 이겨 내는 노하우가 있을 터. 고단한 하루의 끝에 맥주 한 잔은 주객이라면 지나칠 수 없는 꿀팁이다. 호프집 생맥주, 편의점 캔맥주도 나쁘지 않지만 이왕이면 브루어(맥주 양조인)가 만들어 특색 있는 수제맥주(크래프트 비어)면 좋겠다. 우리나라 수제맥주 양조장은 200여 곳. 부산은 10곳 남짓이다. 부산 사람이나 부산 여행객을 위해 부산에서만 만날 수 있는 ‘부산표 맥주’를 소개한다.
■ 부산의 효모·미생물로 빚은 맥주
“맥주 종류는 크게 라거, 에일, 그리고 와일드로 나뉩니다.” 와일드웨이브 김관열(39) 대표의 설명에 고개가 갸웃해진다. 와일드 비어(Wild Beer)라…. 웬만한 맥주 마니아가 아니라면 생소한 단어다. 정제된 효모를 쓰는 라거·에일과 달리 와일드는 이름처럼 야생의 효모를 활용한다. 김 대표가 한국다운 맥주, 부산스러운 맥주를 고민하다 ‘와일드’로 방향을 잡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나라마다 유명한 맥주가 있는데 모두 그 나라의 효모를 사용한다”며 “우리나라는 곡물과 홉 등 원재료를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국내 효모·미생물을 써서 고유의 특색을 살리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와일드웨이브는 전국 최초 와일드 비어 전문 양조장이다. 김 대표가 독일에서 유학하며 접한 벨기에 브뤼셀 지역의 전통 양조 방식에 가깝다. 제품 대부분이 와일드 계열이고 그중에서도 신맛의 사워(sour) 맥주가 주를 이룬다.
김 대표는 아직 30대지만 수제맥주 경험은 넓고 깊다. 2013년 서울의 한 수제맥주 매장 오픈멤버로 처음 발을 들인 뒤 이듬해 부산 갈매기브루잉 등 여러 수제맥주 양조장 설립에 참여했다. 유학을 다녀온 뒤에는 본인의 뜻을 펼치기 위해 2019년 가을 와일드웨이브에 합류하며 대표 자리에 올랐다.
정규 라인업 중 ‘설레임’은 와일드웨이브를 대표하는 사워 맥주다. 기본 재료만 썼는데 과실을 넣은 것처럼 진하게 올라오는 레몬향이 신기하다. 유산균 등 다양한 미생물로 발효시킨 결과다. 패션프루츠를 넣은 ‘패셔네이드’는 에이드처럼 좀 더 가볍게 즐길 수 있다. 기장 꿀을 넣은 라거 ‘서핑하이’, 헤이즐넛이 들어간 에일 흑맥주 ‘다크웨이브’도 특색 있다.
동해선 송정역 인근에서 양조장과 펍을 운영하던 와일드웨이브는 올해 초 양조장을 기장군 정관읍으로 확장 이전했다. 그리고 최근 영도구 봉래동에 ‘사우어 영도’라는 레스토랑을 열어 사워 맥주 알리기에 나섰다.
건물 제일 꼭대기에 자리한 사우어 영도는 공간 자체도 인상적이다. 거대한 배처럼 메인 테이블이 자리했고, 주방을 비롯해 전체적인 내부 콘셉트도 선박 느낌을 살렸다. 대형 유리창 너머로 부산대교 건너 용두산공원과 부산타워, 원도심 시가지와 북항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해산물 위주의 음심은 사워 맥주의 신맛과 잘 어우러진다. 대구·새우·조개가 들어간 프랑스식 해물찜 ‘해산물 빠삐요뜨’, 칠리버터에 구워낸 문어 요리 등과 마리아주를 이룬다.
와일드웨이브 양조장에는 스테인리스뿐만 아니라 오크통(250L) 발효조 255개가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짧게는 1년에서 길게는 4년까지 오크통 안에서 숙성된 맥주를 혼합해, 와인 같은 ‘프리미엄’ 맥주를 만들어 낸다.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은 ‘더와일드웨이브’, 순천 황매실을 넣은 ‘데이라이트’, 제주 금귤이 들어간 ‘골든 오차드’, 블랙커런트를 넣은 ‘레드홀릭’ 등 4종이 있다.
■ 독일 사람이 만든 정통 독일 맥주
‘맥주의 나라’ 독일의 정통 맥주를 맛보고 싶다면, 역시 부산이다. 2020년 12월 크리스마스 이브, 독일인이 운영하는 양조장이 해운대구 송정동에 문을 열었다. 동해선 오시리아역 인근에 위치한 ‘툼브로이’는 독일 남부 소도시 뮐도르프에서 17세기 말부터 운영해 온 양조장(‘툼브로이’)의 역사를 잇고 있다. 양조장 가문의 막둥이인 안드레아스 마인트(34) 오너브루어가 아내 이정민(30) 이사와 함께 알뜰살뜰 차린 공간이다.
독일 정통 맥주의 특징은 ‘맥주순수령’에 따라 물·맥아·홉·효모만 써서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린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쌀·물·누룩만으로 빚은 전통 막걸리인 셈. 독일의 맛을 한국으로 들여오기 위해 안드레아스는 오랜 준비 과정을 거쳤다. 고향 인근 마을 양조장에서 수년간 일하며 60여 년 경력의 브루어로부터 양조법을 전수 받았다.
이 이사는 “연세가 많으시지만 지금도 꾸준히 메신저로 피드백을 주고받고, 주기적으로 독일에 술을 가져가 맛을 체크하고 있다”며 “저희 레시피의 비결은 ‘시간’이라고 말할 정도로, 맛의 안정화를 위해 숙성을 오래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툼브로이가 선보이는 정규 라인업은 모두 4가지. 그중 독일 바이에른 방식으로 만든 페일라거 ‘헬레스’가 대표 메뉴다. 그밖에 독일효모연구소에서 공수해 온 효모로 만든 밀맥주 ‘바이스’, 옛 문헌을 토대로 복원해 낸 희귀 호밀맥주인 ‘로겐’, 독일 프랑켄 지역 스타일의 다크라거 ‘프랑켄 둔켈’ 등이 있다. 계절에 맞춰 다양한 시즈널 라인업도 선보인다. 바이스는 한때 효모 질이 기대에 못 미쳐 중단했다 최근 다시 생산하기 시작했다. 술맛을 향한 브루어의 집념이 엿보인다.
안드레아스는 “교환학생으로 한국에서 와서 독일 맥주를 마셔 봤는데, 맛이 아예 다르거나 아쉬운 경우가 많았다”며 “독일 남부 바이에른 현지의 맥주 맛을 그대로 보존해 한국에 소개하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툼브로이는 양조장 2층에 브루펍을 함께 운영한다. 맥주와 함께 곁들일 음식도 안드레아스 어머니 손맛의 현지식이어서 궁합에 맞다. 유럽식 돈가스인 ‘슈니첼’은 헬레스·바이스, 독일의 국민간식 ‘커리부어스트’는 로겐·둔켈과 좀 더 어울린다.
툼브로이 브루펍은 독일 가정집을 닮은 인테리어에다 구석구석 볼거리도 많다. 뮐도르프 현지 양조장 사진과 간판, 마을의 상징물이자 툼브로이(탑양조장) 이름의 유래인 시계탑도 만나 볼 수 있다. 브루펍 맨 안쪽 자리는 바 형태로, 벽면이 통유리창이다. 창 아래로 1층 양조장 시설이 한눈에 내려다보여 맥주 맛을 ‘보는’ 특별한 경험도 제공한다.
툼브로이는 최근 광안리해수욕장 인근에 매장 ‘주든’을 새로 열었다. 2030세대를 위한 좀 더 젊은 감각의 브루펍이다.
■ 부산 바다만큼 유명한 부산표 수제맥주
부산지역 수제맥주는 전국적으로 이름난 곳이 많다. ‘허심청브로이’와 ‘부산맥주’는 하우스 맥주 시절부터 시작한 우리나라 1세대 브루어리다. 허심청브로이는 현재 리모델링 중인데, 대신 농심호텔 앞 정원 ‘비어가든’과 메가마트에서 만나 볼 수 있다. 부산맥주의 라인업은 동래구 ‘리치브로이’, 해운대구 ‘달바당’, 부산진구 ‘테이블세터 전포’ 등지에서 맛볼 수 있다.
외국인들이 세운 ‘갈매기브루잉’과 ‘고릴라브루잉’은 부산에서 본격적인 수제맥주 시대를 열었다. 광안리·해운대 등지에서 매장을 운영 중이다. 수영구 망미동 F1963에 위치한 ‘프라하993’은 993년 프라하 브제프노프 수도원에서 처음 시작된 체코의 정통 맥주를 선보인다.
프랜차이즈 기업에 인수되면서 이름을 바꿔 단 ‘부산 프라이드 브루어리’는 퍼지네이블·까사부사노 매장을 통해 좀 더 가까이 만날 수 있게 됐다. 부산대 앞 ‘컬러드’, 서면 ‘와일드캣브루잉’도 젊은 감각의 브루펍으로 입소문이 났다. ‘테트라포드 브루잉’, ‘오시게크래프트’는 자체 양조장 없이 외부에 위탁 생산하는 ‘집시 브루어리’로, 브루펍만 운영한다.
다양한 이들 부산표 수제맥주를 한자리서 만나고 싶다면 북구 구포역 인근 ‘밀당브로이’를 추천한다. 현재 갈매기브루잉을 비롯해 6곳의 수제맥주를 판매 중이다.
글·사진=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2023-08-0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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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장 맘대로 '한 상의 매력'…대중화 길 걷는 ‘오마카세의 세계’
오마카세(おまかせ). 이젠 우리에게도 익숙한 일본말이다.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에 ‘오마카세 식당’이 유행하면서 식문화 용어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오마카세는 ‘타인에게 맡김’이란 뜻으로, 정해진 메뉴 없이 그날 그날 음식을 주방장이 알아서 내놓는 방식이 특징이다. 특히 MZ세대를 중심으로 인기가 거세다. 개개인의 취향이 확실한 요즘 젊은이들이 메뉴 선택권을 온전히 주방장에게 맡기다니. 왠지 어색한 만남 같다. 최근 일본 언론은 우리나라 오마카세 유행 이면에 ‘한국인의 허세’가 깔려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단순히 SNS에서 과시하기 위한 ‘사치성 소비’로 여기기엔 설명이 부족해 보인다. 일시적인 유행을 넘어 식문화로 자리잡을 정도라면 분명 또 다른 매력이 있을 터. 그 끌림의 이유를 찾아 오마카세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 원조 일본엔 없는 ‘한국식 오마카세’
식문화로서 오마카세가 정확히 일본의 어느 지역에서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초밥집에서 유래했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현재 일본의 고급 스시집에서 일반적인 방식인 오마카세 식당은 1980년대부터 생겨났다. 식당에서 책정한 가격 내에서, 혹은 손님이 예산을 미리 알려주면 주인이 계절에 맞는 재료로 스시를 만들어 내어 놓았다.
거슬러 올라가면 어시장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시장이 파하는 시각, 남은 생선들을 근처 식당에서 헐값에 가져다 요리로 만들어 팔았는데, 가격만 같을 뿐 생선 종류는 매일 다를 수밖에 없었다. 이 같은 문화가 1980년대 일본 버블경제기를 거치면서 스시집을 중심으로 고급화됐다는 설명이다. 시작을 어디에 놓든, 오마카세의 탄생 배경엔 실용적인 이유가 있다. 남은 재료를 신선할 때 소비하기 위해, 또는 제철의 신선한 재료로 만든 음식을 맛보기 위해 시작된 방식인 것이다. 참고로, 오마카세는 가이세키·갓포 등 메뉴가 일정한 코스요리와는 차이가 있다. 더 대중적인 이자카야는 밥집보다 술집에 가깝다.
일본식 정통 오마카세는 2000년대 서울지역 특급호텔 일식당을 통해 국내에 본격적으로 전파된다. 이후 이들 식당 출신 셰프들이 독립하면서 오마카세 문화가 퍼져나간다. 특히, 코로나19 기간 해외여행에 목말라하던 이들에게 대체재로 주목받으면서 오마카세 식당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다만 이들 식당은 스시뿐만 아니라 다양한 일식 메뉴를 함께 다룬다는 점에서 현지 정통 오마카세와는 차이가 있다. 지난해 <서일본신문사> 부산주재원으로 활동한 히라바루 나오코 기자는 “한국의 오마카세 문화는 폭넓은 일식 메뉴를 융합한 ‘퓨전 일식’에 가까운데, 사시미·타코야키·야키소바·당고 등 다양한 일식을 한꺼번에 맛볼 수 있는 반면 가격은 너무 비싸게 느껴졌다”며 “일본에서 넘어온 오마카세 식당이 한국에서 남녀 데이트 장소로 선호되는 점은 일본인의 눈으로 봐도 정말 흥미로운 현상”이라고 말했다.
■ 정통 스시 오마카세는 어떤 맛일까
그동안의 일본 문화가 부산을 통해 가장 먼저 국내로 유입된 반면, 정통 오마카세 식당은 서울지역에 주로 몰려 있다. 부산엔 해운대와 서면 등 일부 도심지를 중심으로 일반 메뉴와 오마카세를 병행하는 스시집이 있다.
지난봄 해운대구 엘시티몰에선 흔치 않은 현지식 정통 오마카세 식당이 문을 열었다. 가게 이름(‘허교수 스시 오마카세’)부터 눈길이 가는데, 알고 보니 허동한 오너셰프가 일본의 한 대학 교수 출신이다. 정년을 꽤 남겨 둔 2020년 요리사의 꿈을 좇아 상아탑을 떠났고, 스시의 세계로 입문했다고 한다.
일본 스시는 크게 오사카를 중심으로 한 간사이식과 도쿄 중심의 에도마에식으로 구분되는데, 허교수 스시는 정통 에도마에 스시를 표방한다. 날마다 요리 품목이 조금씩 바뀌는데 스시에 앞서 스모노, 일본풍 비스크(식전스프), 차완무시(달걀찜), 야채 오란다니 등 일품 요리가 차례로 먼저 나온다.
이어 본격적으로 14가지 스시가 뒤따른다. 도미·참치·아카무츠(금태)·갑오징어·이쿠라(연어알)·히라메(숙성광어)·고등어·장어 등 제철 생선과 해산물 위주의 다채로운 구성이다.
평소 일식을 자주 접하지 않았다면 대부분의 메뉴가 생소할 법하다. 입문자들을 위해 재료와 요리법을 간략히 적은 메뉴지가 이해를 돕는다. 여기에 허 셰프의 친절한 설명까지 곁들이니 일식에 대해 알아가는 맛도 있다.
허 셰프는 스시마다 3종류의 간장 중 어울리는 하나를 찍어 내놓는다. 눈 앞 도마 위에서 손질되는 식재료와 회칼의 움직임을 보는 것도 이채로운 경험이다. 허 셰프는 교수 시절 방학 때 슈퍼마켓 선어코너에서 알바를 하며 생선 자르는 연습을 했다고 한다. 손맛에 담긴 수련의 시간을 생각하니 한 점 한 점 더 꼼꼼히 음미하게 된다.
우리나라 해산물과 오마카세의 만남은 어떨까. 경남 통영에 가면 남해의 싱싱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는 오마카세 식당이 있다. 미륵산 자락 야솟골에 자리한 ‘야소주반’은 김은하 대표가 당일 새벽시장에서 식재료를 공수해 그날의 차림을 내어 놓는다. 음식에 곁들여, 건축가 출신 남편이 손수 빚은 전통주(건축가가 빚은 막걸리·약주)도 매력적인 조합이다.
■ 고급화 넘어 대중화…넓고 깊게 즐기다
오마카세는 스시에서 시작됐지만 일본만의 문화라고 보기는 어렵다. ‘주방장 특선’ 혹은 ‘맡김차림’이란 뜻풀이처럼, 우리나라도 일정 금액을 내면 주방에서 그날의 기본 안주를 차려주는 실비집·다찌집 같은 문화가 오래 전부터 존재해 왔다.
부산에서는 중구·서구 원도심 일대와 부산진구 서면 등지에서 ‘실비집’ 혹은 ‘푸짐한집’이란 상호를 내건 식당들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중 서면 가야교회 인근 ‘부싯돌 푸짐한집’은 20년 가까이 한자리를 지켜 온 소위 ‘이모카세’ 식당이다. 기본 2만 5000원을 내면 이모의 손맛이 담긴 다양한 안주를 맛볼 수 있다. 먼저 땅콩·소라·번데기·김·마·꼬막무침 등 기본찬이 깔리고 뒤이어 메인 요리인 순두부찌개가 나온다. 닭모래집, 가자미구이, 명태전, 두부조림, 해물파전, 닭염통꼬치, 연근·고구마튀김까지. ‘다음은 어떤 안주일까’ 궁금해하며 하나씩 세어 보니, 30분 동안 14가지 음식이 테이블 위에 펼쳐졌다.
2~3명이 먹기 적당한 양에 맥주3병(또는 소주 2병)이 포함된 가격이라 ‘저렴하고 부담 없는 집’이란 간판 문구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단돈 2000원에 안주를 추가할 수 있고, 김치전골·어묵탕 등 취향에 따라 단품 메뉴를 주문해도 좋다. 가게 안 테이블은 단 5개. 자리가 적어 절로 오붓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초저녁엔 어르신들 위주였는데, 한 차례 테이블이 회전한 뒤엔 젊은이들도 꽤 눈에 띈다. 근래 SNS에 소개되면서 2030도 많이 찾는다고 한다.
우리나라 전래 초창기엔 오마카세 문화가 고급 일식당에 한정됐다면, 최근 들어 이모카세·할마카세·아재카세 같은 파생어가 나올 정도로 폭넓게 변모하는 양상이다. 메뉴도 한층 다양해졌다. 한우·스테이크 같은 한식·양식 오마카세는 물론, 와인 오마카세, 족발·치킨 오마카세, 커피·차 오마카세까지 등장했다. 일각에선 상업적인 마케팅 전략이란 비판도 나오지만, 맡김차림 문화의 대중화 흐름만큼은 선명히 읽힌다. 대동여주도 이지민 대표는 “전통주 분야에서도 오마카세 주점이 늘고 있고 양조장에서 전통주와 어울리는 차림상을 내놓기도 한다”며 “전문가가 메뉴를 엄선하고 맛과 향을 극대화할 수 있는 페어링을 추천하기 때문에, 특정 음식을 깊이 있게 맛볼 수 있는 매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오마카세 방식은 소량 다품종의 시대적 흐름과도 맞아떨어진다. 박정배 음식평론가는 “오마카세의 가장 큰 장점은 단품과 달리 조금씩 다양하게 맛볼 수 있다는 점”이라며 “밥과 술안주를 같이 먹는 복합적인 문화와도 어우러지면서 오마카세의 시대가 오랫동안 지속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글·사진=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2023-07-05 [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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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과 인연] ‘50년 한식 달인’ 김판철 세프의 새로운 도전
김판철 셰프로부터 최근 초청장이 왔다. '참못골돼지국밥 시식회' 초청 문자메시지다. 얼마 전 통화에서 "밥집을 하려면 국밥집을 하고 싶다"란 말을 들었다. '올 것이 왔구나’ 생각했다. 시간을 정해 찾아간 부산 대연동 참못골돼지국밥집 외부 유리창엔 '50년 한식 대가'의 상반신 사진이 걸려 있다. 김 셰프의 머리카락에는 세월의 연륜이, 얼굴에는 사람 좋은 심성이 숨김 없이 드러났다.
식당 메뉴는 기본적인 돼지국밥과 수육. 시그니처 메뉴로 참못골 파창구이와 아롱냉채가 있었다. 시그니처 메뉴 둘 다 맛을 봤다. 김 셰프 특유의 솜씨가 묻어 있었다. 짓궂은 질문을 했다. '내장은 세제로 세척하는 건 아니겠죠?' 질문이 너무 셌던가. 김 셰프는 "먹는 음식을 그러면 안 되지. 큰일 날 소리!" 단호하게 답한다.
아롱냉채는 돼지 살코기가 많은 부위를 삶아 만들었다. 담백한 육질에 상큼함이 곁들여져 중국 요리를 먹는 것 같았다. 미각의 기억은 참 오래가는지. 막 다시 시작한 육식이지만,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다만, 접시가 살짝 작은 것이 아쉽다. 여럿이 먹으면 젓가락질이 부담스럽다. 그러나 이곳은 돼지국밥집. 메인 메뉴가 남았으니 문제 될 건 없다.
파창구이는 애증이 교차한다. 돼지의 내장을 잘 장만한 후 안에 커다란 대파를 넣고는 썰어 굽는다. 파창을 찍어 먹는 별도의 소스도 나온다.
김 회장이 만든 특제 소스다. 역시 음식도 궁합이 있는 모양. 파창구이를 소스에 찍어 먹으니 일품이다. 살짝 내장 냄새가 느껴진다.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돼지 곱창에서 곱창 본연의 냄새가 나는 것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습니다. " 김 세프의 말이 믿음직하다. 먹을지 말지는 선택하면 된다. 먹어 본 뒤 호불호는 사람마다 달랐다.
어릴 적 기억이다. 아버지는 종종 동네 돼지국밥집에 냄비를 들려 심부름을 보내셨다. 돼지국밥을 받아오라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집으로 가져가는 음식은 조금 더 푸짐했다. 그 밀양 돼지국밥집의 돼지고기는 종종 비계에 검은 털이 숭숭 박혀 있었다. 어린 마음에 '인간이 어떻게 돼지털까지 먹나?'고 생각했다.
세월이 지나 그때 그 돼지국밥이 가끔 그립다. 목구멍에 꺼끌꺼끌하게 걸리며 넘어가던 그 돼지껍질비곗덩이가. 사람이 요리하기 시작한 것은 인류사로 따지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동물다큐를 보면, 포식자는 먹잇감을 통째 삼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조류와 파충류가 그렇다. 육식동물 중엔 소형동물이 그렇고, 사자나 호랑이 등은 큰 먹잇감을 찢어서 맛있는 부위를 먼저 먹는다. 사람도 지금은 최상위 포식자답게 먹잇감의 맛있는 부위만 요리해 먹는다.
역시 어린 시절이다. 기름종이에 싸서 가져온 튀긴 통닭 한 마리를 온 식구가 나눠 먹었다. 닭은 머리와 발톱만 없는 완전체다. 물론 내장과 털도 없다. 튀긴 닭은 순식간에 해체된다. 씹기 어려운 갈비뼈와 다리뼈 강한 부분만 남는다. 관절뼈와 다리뼈의 골수까지 쪽쪽 빨아 먹으면 그날의 통닭 파티는 끝이 났다. 늘 아쉽긴 했다.
요즘 아이들은 웬만해선 치킨을 시켜도 살코기 이외의 부위는 버린다. 아이들이 그 맛있는 꽁지 살이나 껍질, 관절뼈를 먹지 않는 것을 보고 의아했다. (내가 보기엔) 제일 맛있는 부위인데. 다시 육식을 시작했으니 이제 치킨 먹을 때 좋아하는 것을 먹을 기회가 생겼다.
다시 식당이다. 돼지 수육을 시켰다. 일반 수육보다 부위가 여러 가지가 섞여 나오는 특 수육을 주문했다. 고기가 좋다. 물론 일행 중에는 한 가지 부위만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웬만해서는 맛볼 수 없는 '암뽕'과 내장, 항정살과 삼겹살 수육이 고루 나온다. 수육 주문은 기호에 따라 시키면 되겠다.
셀프바에서 채소와 양념류는 무제한 리필이 가능하다. 고객의 마음을 헤아린 것이다. 관록이란 것이 이런 것인가. 김판철 세프는 부산 자갈치에서 대형 뷔페형 식당부터 일식집, 횟집 등 다양한 식당을 경영한 경험이 있다. 조리사협회장을 맡아 직업인의 권익 향상에도 힘썼고, 자갈치 발전을 위한 협의회에서도 일했다. 요리 자체만이 아니라 경영과 정책 등 다양한 부문에서 활동한 분이다.
그런 그가 이번에 젊은 CEO와 의기투합해 '참못골돼지국밥'을 열고, 주방을 맡아 흰 모자를 썼다. 가마솥에서 정성과 관록을 보태 달인 한 그릇의 돼지국밥. 그 국밥 한 그릇으로 힐링하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 식당 위치는 부산 남구청 부근. 돼지국밥 8500원, 파창구이 1만 5000원, 아롱냉채 1만 8000원. 수육 소 2만 5000원, 대 3만 5000원이다.
2023-06-20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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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평야 황금들녘을 한 잔에…‘전통주 세계화’ 도전하는 가야양조장 [술도락 맛홀릭] <12>
가가호호 술을 빚던 시절이 있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사라졌던 가양주(家釀酒) 문화가 100년 만에 다시 부활하고 있다. 현재까지 발급된 지역특산주 면허만 1400건에 이르고, 해마다 새로운 양조장과 전통주가 탄생한다.
전통주엔 지역의 특색이 오롯이 담겼다. 지역에서 나는 재료로 술을 빚어, 특산음식과도 잘 어울린다. <부산일보>는 ‘술도락 맛홀릭’ 기획시리즈를 통해 부산·울산·경남 지역의 전통주 양조장을 탐방하고, 지역의 맛과 가치를 재조명한다. 이지민 대동여주도 대표 등 전통주 전문가도 힘을 보탠다.
김해평야의 황금들녘으로 술을 만든다면 어떤 맛일까. 김해평야의 햅쌀로 전통주를 빚는 양조장이 있다. 외국 술만 다루다 우리 술로 ‘전향’한 양조장 대표의 이력도 흥미롭다. 금관가야의 고장 김해에서 ‘전통주 세계화’에 앞장서겠다는 양조인을 만났다.
■ 외국 술 끊고, 우리 술에 빠지다
경남 김해시 한림면, 부산외곽순환고속도로 한림IC에서 빠져나와 몇몇 공장을 지나자 막다른 골목이 나타난다. 골목 끝 야산 중턱에 자리한 건물. 궂은 날씨에도 ‘가야양조장’ 다섯 글자가 황금빛으로 빛난다. 설립 3년이 채 안 된 신생양조장이지만 그동안 막걸리와 리큐르·증류주(소주)까지, 모두 7종의 술을 세상에 내놨다.
“주변에선 너무 빨리 여러 술을 출시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어요. 하지만 양조장을 시작할 때부터 어떤 술을 언제 내놓겠다는 계획이 서 있었습니다.”
가야양조장 조이덕(52) 대표의 자신감엔 이유가 있다. 양조장을 차리기까지 10년 가까이 준비 기간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의 노트엔 여러 술에 대한 연구 결과와 출시 계획까지 빼곡히 적혀 있다.
조 대표는 외국 술 전문가였다. 잭다니엘로 유명한 외국계 주류회사에서 15년 동안 일했다. 오랫동안 마케팅을 담당하면서, 다른 나라의 경쟁사 술까지 빠짐없이 꿸 정도가 됐다. 그러다 마흔 즈음, 우연히 우리나라 전통주를 접하면서 ‘술 인생’이 달라졌다.
“우리나라 술도 제대로 모르면서 남의 나라 술을 열심히 팔았던 거죠. 옛날 방식 그대로 빚은 전통주의 맛에 매료되면서, 일단 우리 술을 좀 알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조 대표는 업무 틈틈이 독학으로 누룩과 발효 등 전통주에 대해 공부했다. 직업상 술에 대한 기본 지식이 있었기에, 위스키·와인·맥주 등 세계의 다양한 술과 비교하며 이내 우리 술의 우수성을 알게 됐다. 술 빚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전국을 수소문해, 전통주 고수들을 찾아 나서기도 했다.
2015년 회사를 그만 둔 뒤에는 고향 김해지역에서 주류도매업체를 운영했다. 국산 술의 유통 과정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5년이 더 흘렀고, 발효부터 술 빚기·유통까지 전통주의 전 과정을 섭렵한 뒤 비로소 양조장을 차렸다.
조 대표는 양조장의 근거지로 고향 김해를 고집했다. 맑은 물과 비옥한 토양이 있는 김해평야의 황금들녘이라면 좋은 술을 빚을 수 있겠단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공업지역이 많은 김해시의 특성상 양조장 허가를 받을 수 있는 곳이 별로 없었다. 반 년 넘게 김해지역을 이 잡듯이 뒤진 끝에 지금의 자리에 터를 잡았다.
“부지를 찾느라 집사람이 고생을 엄청 많이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본 장소가 여긴데, 이곳마저 허가가 안 나면 포기하려고 했죠.”
■ 원재료의 풍미를 살린 ‘어머니의 맛’
설립까지 진통이 있었지만 이후는 일사천리였다. 첫 작품이자 대표 술인 ‘가야 프리미엄 막걸리’(가야막걸리)는 2020년 7월 농업회사법인을 설립하고 반 년이 채 안 된 12월 1일 첫선을 보였다. 먼 친척이자 동래아들 막걸리로 유명한 부산 기다림양조장 조태영 대표의 도움이 컸다.
“양조장 공사를 하면서 설비를 갖추는 동안 기다림양조장에서 조태영 대표와 함께 시제품을 만들었습니다. 거기서 완성된 레시피를 가져와 바로 술을 빚었기 때문에 빨리 출시할 수 있었어요.”
두 대표는 첨가물 없이 전통 방식 그대로 술을 빚어야 한다는 데 뜻이 일치했다. 원칙대로 가야막걸리엔 물과 쌀, 누룩과 효모만 들어간다. 쌀은 김해평야의 황금빛 기운을 듬뿍 받은 김해산이다. 특히 겨울부터 봄까지는 고향 가동마을 들녘에서 조 대표의 부모님이 직접 재배한 자경쌀을 쓴다.
가야막걸리는 20대를 겨냥해 개발한 술이다. 젊은이들이 좋아할 만한 단맛과 단향이 기본을 이룬다. 쌀가루를 분쇄해 밑술을 만들고, 고두밥으로 덧술을 한 이양주다. 발효 5일, 일반 숙성 25일, 저온 숙성 3일 등 술 빚기를 시작해 시중에 판매되기까지 33일이 걸린다. 초창기 전국의 롯데마트에 납품하며 한때 월 1만 5000병가량 판매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20대에 초점을 맞췄는데 의외로 어르신들이 더 좋아하세요. 옛날 막걸리처럼 걸쭉해서 ‘어머니의 맛’ 같다며 알아주시더라고요.”
두 달 뒤엔 어머니의 맛에 더 가까운 두 번째 작품 ‘님그리다’를 선보였다. 멥쌀과 찹쌀의 비율이 4 대 6으로, 가야막걸리와 반대다. 누룩을 다르게 쓰고, 숙성 기간도 배로 늘려 술 빚는 기간도 66일이나 된다. 가야막걸리보다 더 걸쭉하고 산미도 있어, 옛날 어머니가 빚으시던 막걸리에 더 가깝다는 게 조 대표의 설명이다.
뒤이어 지난해 7월엔 해외 수출용 리큐르 ‘블루문’을 출시했고, 지난달엔 증류주(소주) 3종을 선보였다.
특히 소주는 김해지역 농가에 도움이 되도록 지역농산물을 첨가해 맛을 완성했다. ‘가야25’(25도)는 장군차, ‘가야금주’(23도)는 유기농 생강, ‘탱자C’(23도)엔 야생 탱자가 들어간다.
소주 뚜껑을 열어 코를 가까이하니 재료의 향이 물씬 피어오른다. 술의 향을 중시하는 조 대표가 독자 개발한 증류방식 덕분이다. 우리나라의 전통 상압식에다 외국 술의 감압식을 혼합한 증류기로 재료의 향을 과하지 않게 살렸다.
■ 김해뒷고기와 가야의 술이 만나면…
가야양조장의 술은 우리나라 전통음식과 두루 잘 어울린다. 특히, 김해지역 대표음식인 뒷고기와 훌륭한 마리아주를 이룬다. 김해뒷고기는 부산에서도 만날 수 있지만 원조를 맛보려면 김해로 가야 한다.
김해시 부원동 부산김해경전철 부원역 인근 시가지에는 뒷고기 상호를 단 식당만 10여 곳이 성업 중이다. 그중 20년 역사의 ‘불야성뒷고기’의 뒷고기는 암퇘지 앞다리살만 사용해 잡내가 없고 깔끔하다. 가마솥을 만드는 주물로 특수제작한 불판과 숯불은 고기를 바삭하게 잘 익혀 준다. 주인장이 직접 담근 묵은지와 함께 한 점 먹으니, 간도 적절하고 고소함은 배가된다. 여기에 가야막걸리를 곁들이면 ‘삼겹살+소주’ 부럽지 않은 궁합이다.
특히 불야성뒷고기는 손수 재배한 작물로 찬을 만든다. 김치를 비롯해 마늘·양파 장아찌, 마늘과 쌈채소 등 거의 모든 찬이 주인장의 밭에서 나왔다. 직접 쑨 메주로 끓이는 된장찌개도 지나칠 수 없는 메뉴다.
가야양조장의 술은 김해 삼계동 일부 가게와 유명식당에서 만날 수 있다. 축협하나로마트 등 중소형 마트와 온라인 매장에서도 구매가 가능하다.
조 대표는 앞으로도 다양한 술을 출시할 계획이다. 먼저 해병대전우회와 협업한 매실 증류주를 올여름 선보인다. 지역의 산딸기와 딸기를 활용한 ‘브랜디’, 알코올 도수를 높인 프리미엄 막걸리도 개발 중이다. 모두 수출을 염두에 둔 술들이다.
“국내에서 좋은 경쟁을 하는 것도 의미 있지만, 결국 수출이 돼야 진정한 전통주의 발전이라고 생각해요. 전통주 세계화의 선봉장이 되고 싶습니다.”
조 대표의 포부를 듣고 다시 보니 가야양조장 로고부터 예사롭지 않다. 금관가야의 술잔을 중심으로 황금빛 벼 이삭이 둥그렇게 감싼 형상이다. 그 옛날 금관가야가 활발한 해상무역으로 번영했듯, 가야양조장의 술이 세계 각지로 퍼져 나가는 그림이 그려진다.
글·사진=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제품명 : 가야 프리미엄 막걸리
-양조장 : 가야양조장(경남 김해시)
-내용량 : 750mL
-알코올 : 6.0%
-원재료 : 정제수·쌀·누룩·효모
[기자들의 시음평]
▶남형욱 디지털미디어부 기자
“가볍고 깔끔해 음료수처럼 마실 수 있다. 3주쯤 지난 술은 산미가 더 올라와 상큼한 느낌.”
▶이상배 디지털미디어부 기자
“흙 내음과 꽃향기가 나는데, 뒷맛에서 그 향이 이어져 독특하다. 상큼하게 마실 수 있을 듯.”
▶이지민 디지털미디어부 에디터
“가벼운 단맛에 고소함도 살짝 느껴진다. 3주 된 술은 향이 더 강하게 올라와 입맛에 더 맞다.”
▶권채연 디지털미디어부 인턴
“탄산이 없는 편이라 먹고 나서 속에 더부룩함이 없다. 가볍게 견과류와 곁들이면 좋을 듯.”
[전문가의 맛 코멘트]
▶이지민 대동여주도 대표
“차분한 베이지 컬러에 곡물과 미세한 누룩 입자들이 보여 적당한 밀도감을 보여 준다. 부드럽고 순한 곡향이 피어오르며, 요구르트 같은 유제품·참외 향 등이 느껴진다. 온도가 올라갈수록 고소한 향도 조금씩 더 나타난다. 향의 속성이 맛에도 담겼는데, 담백한 가운데 적당한 산미가 편안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부드럽고 밀키(milky)한 질감이 혀에서 느껴지며 후미에서 산미의 여운을 남기는데, 쓴맛이나 알코올감 없이 은은하게 마무리된다. 이 관능평은 제품 수령 직후 바로 맛보고 쓴 것이다. 라벨에 표기된 설명처럼 냉장고에서 숙성하는 동안 맛의 캐릭터가 조금씩 바뀌므로, 주 단위로 맛을 느껴 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가 될 수 있겠다.”
2023-06-07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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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과 인연] 장모가 작명해 준 부산 용호동 '나막집' 돼지곰탕
광우병 사태로 2008년 봄 '육식의 종말'을 선언한 지 15년이 지났다. 미국산 소 수입이라는 오직 한 가지 이유만이 육식을 유도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 생태주의자들과 어울리고 있었고, 지인 중에 채식주의자가 있어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15년 동안 단 한 번도 육식하지 않았냐고? 사실이라고 주장하고 싶지만, 실은 아닐 수도 있다. 일단 채식주의자의 입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까다로운 것이 사실인 모양이다. 채식도 여러 등급으로 나눠 분류하고 있었다. 등급이 무슨 소용이랴 만은.
정확하게 말하면 채식 수준은 '페스코'다. 유제품인 치즈나 달걀은 섭취, 물고기 등 해산물은 먹는 '얼치기 채식주의자'. 해산물까지 안 먹는 '락토 오보'는 도전할 생각도 못햤다. 이 상황에서 '식물은 씹어먹으면 불쌍하지 않으냐?' 등의 도발적인 질문은 하지 말아 주시면 고맙겠다. 물고기가 통증을 느낀다는 실험 결과도 굳이 제시하지 말아주시면 정말 고맙겠다. 박애주의자는 아니니깐.
한 번은 큰동서가 '30년 채식주의자는 왜 소고기를 먹기로 결심했나'라는 자극적인 문구가 걸린 <소고기를 위한 변론>이라는 책이 나왔다고 추천했다. 읽어보겠다고 약속하고, 책을 읽었다.
독후감을 한 줄로 적자면 '나도 수천 에이커의 땅을 가진 방목 목장주와 결혼하면, 소고기를 먹을 수 있겠다'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다 자기 상황에서 이해하고, 스스로 관대하다. 채식을 하면서도 따라오지 않는 마누라나, 아이들에게 단 한 번도 섭섭함이나 불만을 가진 적이 없다.
다만, 저들끼리 불고기 파티를 할 때는 좀 소외당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언젠가부터는 호주산 쇠고기를 사서 스테이크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올리브기름에 잔뜩 저민 이 요리는 '아빠의 시그니처 요리로 우리 집에서 추앙(?)받고 있다.
고기 안 먹는 이야기가 좀 장황해졌다. 눈치챘겠지만, 이제 육식을 다시 시작한다. 채식을 선언하면서 먹은 라면수프 속의 쇠고기 분말, 바다에서 산다고 해산물이라며 굳이 우기고 먹은 고래 고기, 닭 고운 육수로 만든 쌀국수, 채식하는 줄 모르던 선배가 쌈을 사서 내 입에 직접 넣어준 삼겹살 한 점. 이런 일탈의 기억은 이제 묻어도 되겠다.
모든 것에서 평온해지기 위해 현업에서 은퇴를 하면, 까다롭게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먹겠다고 다짐했는데, 그 시기가 당겨졌다. 4월에 제주도에서 모임이 잡혔고, 그렇다면 이참에 제주 고기국수 한번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속으로 했다. 동남아 여행 가서 닭고기 육수의 쌀국수를 먹은 터였다. 해외에서는 가급적 채식의 원칙을 지키지만, 정확한 재료를 몰라 안 그런 적도 있었다.
라오스에서 일이다. 쌀국수 국물이 새콤,매콤하고, 하도 맛있어서 육수 솥을 슬쩍 들여다봤더니 머리털이 숭숭하게 남은 닭 한 마리가 뽀얗게 끓고 있었다. 베트남에서는 쌀국수에 소고기 고명을 얹어주는 메뉴에서 소고기를 빼달라고 했더니 가격을 맞춘다고 달걀을 2개나 풀어 첫 주문에서는 맛도 없는 쌀국수를 먹은 적이 있다. 다낭의 '포 코롱'의 사장님은 그 이후 요구한 '채식 쌀국수(?)'를 척척 잘 만들어 주신다. 지난해 다시 다낭에 갔을 땐 소고기 고명값을 빼고 가격을 깎아 주셨다.
고기국수나 쌀국수나 거기서 거기겠지만, 국내에서 곰탕, 돼지국수, 고기국수를 먹지 않았고, 제주에서도 멸치 육수로 만든 춘자국수만 먹었던 터라 고기국수는 환상 같은 게 있었다. 제주에서 유명하다는 집에 갔었는데 별 입맛에는 맞지 않았다. 사장님에게는 맛이 없어서가 아니라 배가 불러서 남겼다고 말씀드렸다.
채소 육수 베이스의 맑은 돼지국밥
어찌 '육식을 종말'한 것이 소문이라도 났던지 오래된 인연인 김일대 전무께서 밥 한번 먹자고 전화를 했다. 김 전무님은 부산~제주 여객선 서경페리의 전무이실 때 인연을 맺었는데 그 뒤 대마도 '쓰시마 리조트'에서도 업무를 이어가 자주 뵌 분이다. 사위가 용호동에 밥집을 냈는데 한 번 가자고 했다.
특이하게도 주메뉴가 돼지곰탕이라고 했다. 곰탕은 소의 각 부위를 푹 고아 끓여내는 것인데, 그만큼 육수에 자신이 있다는 얘긴가 보다. W아파트의 상가동 1층에 있는 가게는 생각보다 작았다. 20평이 채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중 주방 공간이 절반 이상 차지해, 사실상 주방을 둘러싸고 음식을 먹는 구조였다. 모든 조리 과정을 쳐다보면서.
돼지곰탕은 90%의 채소 육수와 10%의 돼지 사골육수로 만든다고 한다. 맑은 국물이다.
가게 이름은 '나막집' 사장 이름, 즉 김 전무의 사위 이름은 이성훈이다. 이 대표는 이쪽 업계에서는 꽤 알려졌는데 '낭만부엌'에서 10년을 일했다고 했다. 어찌 보면 이 업계의 베테랑인 셈이다.
누군가의 사위가 되었고, 자기 사업을 위해 나막집을 차린 것이다.
나막집은 나지막한 부엌이라는 뜻
가게를 준비하며 온 식구가 모여 상호를 정하는 회의를 했다. 처음엔 '낮은부엌'이라고 하기로 하고 알아보니 이미 상표 등록이 돼 있는 상호였다. 그래서 고민하고 있는데 이 대표의 장모가 사위를 위해 '나즈막한 부엌'을 제안했다. 좋다는 의견이 다수였고, 나즈막한 부엌은 등록할 때 너무 길어 '나막집'으로 결정했단다.
주방일이 바쁜 사위를 대신해 김 전무가 음식을 소개하며 곰탕 한술 떠보라고 했다. "쌀이 좀 설익은 것 같지 않나요?" 안 그래도 한 숟가락 입에 넣으니 쌀이 탱탱하게 살아있다. 그런데 이것도 하나의 비법이란다.
보통 돼지국밥은 토렴하거나, 밥을 국에 말게 되면 빨리 퍼지는데 쫀득한 쌀알의 느낌을 살아나게 하기 위해 밥을 좀 되게 짓는다는 것.
처음엔 좀 씹히는가 싶더니, 소주 몇 잔 먹고 밥술을 뜨니 참 알맞게 국물이 배 맛났다.
이왕 온 김에 이것저것 먹어보자 싶어 삼겹구이를 주문했다. 삼겹구이는 통마늘을 넣어 '전용 구이 기계'로 구워내고 있었다. 삼겹구이 기계가 빙빙 돌아가며 내부의 고기와 마늘을 먹기에 가장 적당한 맛으로 구워주는 것. 취향에 따라 고수를 얹어 먹는다. 고수 좀 많이 달라고 했다.
창녕 우포늪 인근 술도가에 만든 전통주 '조선주조사'도 팔고 있었다. 우리나라 청주다. 소맥을 먹다가 먹으니 좀 도수(알코올 14도)가 약한 듯했다. 처음부터 청주를 선택했다면 탁월했겠다.
장인이 와도 덤 서비스는 없어
당일 삶아 촉촉하고 부드럽다는 수육은 입안에서 살살 녹았다. 늦게 배운 00이 밤새는 줄 모른다더니 안주가 금세 동이 난다. 맛이 너무 좋아서 그런지 음식량이 살짝 아쉽다는 생각을 했다. 김 전무가 말했다. "사위는 장인이 와도 딱 무게를 달아서 내주더라고요. 덤으로 조금 더 줘도 될 텐데 안 줍디다." 철저하게 무게를 달아 정량을 내는 고집이 있다.
한 접시를 더 시키기엔 살짝 부담스러운 가격. 맛보기 수육(9000원)이 해결사다.
그런데 여기가 W아파트 공간 아닌가.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아파트 주민으로 보인다. 가족끼리 와서 식사를 하는 팀이 많았다. 음식을 거의 다 먹었을 즈음 이 대표가 장인에게 인사를 하러 왔다. 내일 준비할 음식을 하러 장에 나간다며 먼저 나간다고 했다. 나막집에서 내놓는 김치는 다 직접 담그는 것이라고 했다. 수육의 특징은 칼질. 잘 삶은 수육을 덩이째 썰어 무게를 단 뒤 잘 드는 칼로 얇게 썰어내는 게 비결. 고기가 혀에 감긴다.
주방에서는 특이하게 사장뿐만 아니라 종업원들이 모두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있다. 일종의 나막집만의 규율이었다. 사장이 퇴근하고 난 뒤 서빙 직원에게 슬쩍 물어보니 수건을 두르니 좀 덥긴 하다고 한다. 날이 더워지는 여름에는 얇은 세프 모자로 바꾸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지인의 사위가 하는 집이라 편하게 하는 말이다.
매주 화요일 휴무. 돼지곰탕 9000원, 고기가 배인 특돼지곰탕 1만4000원, 칼국수 8000원, 수육·삼겹구이 각 29000원.
2023-05-26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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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솔향을 마신다…소나무, 명주가 되다 [술도락 맛홀릭] <11>
가가호호 술을 빚던 시절이 있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사라졌던 가양주(家釀酒) 문화가 100년 만에 다시 부활하고 있다. 현재까지 발급된 지역특산주 면허만 1400건에 이르고, 해마다 새로운 양조장과 전통주가 탄생한다.
전통주엔 지역의 특색이 오롯이 담겼다. 지역에서 나는 재료로 술을 빚어, 특산음식과도 잘 어울린다. <부산일보>는 ‘술도락 맛홀릭’ 기획시리즈를 통해 부산·울산·경남 지역의 전통주 양조장을 탐방하고, 지역의 맛과 가치를 재조명한다. 이지민 대동여주도 대표 등 전통주 전문가도 힘을 보탠다.
기개, 뚝심, 한결같음. 사시사철 푸르른 소나무를 보면 떠오르는 말이다. 절개의 소나무와 전통의 우리 술이 만났다. 전통에 내음이 있다면, 왠지 솔솔 피어나는 솔향을 닮았을 것 같다. 경남 함양군에는 이름부터 소나무를 앞세운 양조장이 있다. 집안의 며느리가 오랜 가양주 맥을 이었고, 명주(名酒) 명인(名人)의 반열에 올랐다. 그 비결을 찾아 나섰다.
■ 오래오래 두루두루 대통령도 인정한 술
함양군 읍내에서 지곡면 개평마을로 접어드는 길. 마을 초입 야산 중턱에 소나무를 닮은 글씨체의 커다란 입간판(‘솔송주’)이 눈에 들어온다. 박흥선(70) 명인이 30년 가까이 남편과 함께 일궈 온 술도가 (주)솔송주의 본거지다.
양조장 방문에 앞서 ‘솔송주문화관’으로 향했다. 개평한옥마을 내에 있는 솔송주문화관은 솔송주의 역사와 전통을 알리는 공간이다. 15년 전, 박 명인은 자신의 생활공간이기도 한 시댁의 뒷마당에 자비를 들여 문화관을 지었다.
문화관 내부에 들어서자 한쪽 벽면에 낯익은 얼굴과 함께한 사진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등 전직 대통령들이다. (주)솔송주의 술이 오랫동안 두루두루 인정받아 왔음을 보여 주는 장면이다. 솔송주는 2019년 대통령 설 선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감사하게도 정상회담 만찬주나 국제행사에서 건배주 등으로 여러 차례 소개됐어요.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이나 퇴임 이후 찾아 주신 분들도 있습니다.”
대한민국 27번째 식품명인이자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보유자인 박 명인은 전통주 세계에선 큰어른이지만,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시어머니께 배운 대로 가끔 집에서 술을 빚던 박 씨는 1996년 덜컥 서울 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술이 맛있는데, 많이 좀 만들어 보라’는 주변 어르신들의 권유에 마음이 동했다. 박 씨 부부는 선산 골짜기에 술도가(‘지리산 솔송주’)를 차렸다.
“무식이 용기였죠. 근데 막상 뛰어들어 보니 너무 힘든 거예요. 처음에 술독 열 개를 쭈욱 해놨는데 온도를 못 맞춰서 술이 다 쉬어버렸어요. 술 홍보를 해주겠다며 가져가선 술값을 떼먹는 사람들도 많았죠.”
초반 7년은 계속 적자였다. 그러다 복분자를 재배하며 함께 선보인 복분자술이 인기를 끌었고, 양조장도 조금씩 자리를 잡았다. 복분자가 효자 노릇을 했지만, 지금의 (주)솔송주를 있게 한 대표술은 집안 대대로 내려온 ‘솔송주’(13도·약주)다. 박 씨를 명인으로 만들어 준 술이기도 하다. 증류주인 ‘담솔’(40도·리큐르)도 못지않은 호평을 얻고 있다. 두 술 모두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 대한민국 주류대상 등 국내외 각종 주류대회에서 다관왕에 오르며 이름을 알렸다. 담솔은 2020년 미국을 시작으로 영국·호주·캐나다 등지로 수출길을 넓히고 있다.
■ 전통주와 칵테일, 매력 넘치는 만남
(주)솔송주 술의 가장 큰 특징은 ‘송순’(소나무의 어린 싹)이다. 전통 방식의 솔송주는 4~5월 개평마을 주변 산에서 딴 송순을 쪄서, 밑술에 고두밥과 함께 넣어 발효시킨다. 담솔은 솔송주를 방울방울 정성스레 증류한 술이다.
“증류를 하고 난 뒤 숙성을 오래 하면 할수록 좋아요. 담솔은 최소 6개월 이상 탱크에서 숙성시키는데, 길게는 2년에서 5년이 넘은 술도 있습니다.”
처음엔 박 명인 혼자서 수작업으로 술을 빚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일부 자동화 설비를 갖췄고, 지금은 2000L짜리 대형 증류기로 술을 내린다. 대신 솔송주문화관에서 전통 방식인 소줏고리 증류를 체험해 볼 수 있다.
취재진이 방문한 날엔 박 명인이 직접 시연에 나섰다. 고택 마루 한편에 보관 중인 술독을 열자 송순 향이 어우러진 술 익는 내음이 은은하게 번진다. 수면 위로 동동 떠오른 쌀알과 송순은 술이 잘 익었다는 증거다.
가마솥에 한 바가지 술을 붓고 소줏고리를 올린 다음 아궁이에 불을 붙인다. 얼마쯤 지났을까. 주둥이 끝으로 한 방울 두 방울 맑은 액체가 떨어진다. 명인의 정성이 빚어낸 영롱한 빛깔이다.
“발효는 온도를 비롯해 환경을 잘 만들어야 해요. 술을 ‘빚는다 빚는다’ 하는데, 진짜 비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야 된다는 걸 많이 느끼거든요.”
담솔은 알코올함량이 40%나 되지만 향만 놓고 보면 고도주스럽지 않다. 병에서 잔으로, 잔에서 코끝으로 은근히 퍼져 나가는 솔향엔 상쾌함을 넘어 향긋함마저 감돈다. 한 모금 입으로 가져가면 그제서야 알코올이 본색을 드러낸다. 그래도 독한 정도가 비슷한 고량주나 양주보다 덜 자극적이고, 목넘김도 부드럽다.
독한 술이 부담스러운 이들은 칵테일로 즐길 수도 있다. 한복 차림의 명인이 만들어주는 전통주 칵테일이라니. 안 어울릴 것 같은 조합이지만 맛을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칵테일 4종 중 가장 인기 있는 ‘담솔 줄렙’은 담솔 한 잔과 라임·민트·탄산수·얼음 등이 들어간다. 블루 큐라소를 살짝 넣은 ‘솔바람’은 파란 빛깔부터 매력적이다. 담솔을 맛본 바텐더가 직접 칵테일 레시피를 추천했다고 한다. 과연 술 초보자도 즐길 만한 상큼하고 시원한 맛이다.
■ 지리산 흑돼지와 나물, 반주로 즐겨도…
서로 닮은 한국인과 소나무처럼, (주)솔송주의 술도 우리나라 전통 음식과 두루 어울린다. 도수가 높은 담솔은 생선회·돼지고기 등 ‘육해공’을 가리지 않고 입맛을 깔끔하게 잡아 준다.
함양은 지리산 흑돼지가 유명해 곳곳에서 흑돼지 요리를 만날 수 있다. 그중 상림공원 인근 ‘까망꿀꿀이’는 현지 주민들도 즐겨 찾는 흑돼지 맛집이다. 두툼한 생삼겹·목살은 빛깔부터 신선함이 감돈다. 흑돼지답게 식감 역시 일반 삼겹살보다 훨씬 쫄깃하다. 바삭하게 구운 비계도 느끼하지 않다. 여기에 담솔 한 잔을 더하면, 돼지고기의 고소함에 상쾌한 솔향이 어우러지면서 입이 더욱 바빠진다. 지리산 기슭, 산이 많은 고장답게 쌈 채소엔 취나물 등 제철나물이 함께 나온다. 묵은지와 조피 가루를 넣은 겉절이 등 찬도 입맛을 돋운다.
솔송주는 한식에 곁들여 반주로 즐겨도 좋다. 고깃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예당’은 산채비빔밥 전문이다. 함양 할머니들이 채취한 취나물·피마자·머위나물·고사리 등 10여 가지 푸짐한 나물에다 산양삼이 화룡점정이다. 쌉싸름한 산양삼과 함께 매일 달라지는 나물반찬은 접시째 비우면 약이나 다름없다.
함양의 청정 자연과 소나무의 기운 덕분일까. 박 명인의 시어머니는 97세까지 솔송주를 드셨고, 100세 넘게 장수하셨다고 한다. 정작 명인은 술을 잘 못 마신다. 그래서 술 빚기에 더 진심이다.
“제가 시작할 때만 해도 외국 술에 비해 무시당하곤 했는데, 지금은 젊은이들이 전통주 양조에 뛰어들 정도로 열기가 대단해요. 특히 우리 솔송주 술은 해외로 수출되는데, 외국에선 우리나라의 얼굴이잖아요. 그러니 더 열심히, 더 좋은 술을, 더 잘 빚는 게 목표입니다.”
지금은 상당수 작업을 직원들이 담당하고 있지만, 박 명인은 여전히 오전 8시 30분 출근해 하루 종일 양조장에서 보낸다. 한결같은 모습이 소나무를 닮았다. 그 뚝심으로 조만간 25도짜리 담솔을 출시할 예정이다.
글·사진=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동영상=김보경 PD harufor@
-제품명 : 담솔40
-양조장 : (주)솔송주(경남 함양군)
-내용량 : 375mL
-알코올 : 40.0%
-원재료 : 정제수·쌀·입국·누룩·송순농축액·꿀 등
[기자들의 시음평]
▶김희돈 스포츠라이프부 부장
“목넘김이 좀 부담스러운데, 얼음을 넣으니 훨씬 깔끔하다. 기름진 음식과 잘 어울리겠다.”
▶남형욱 디지털미디어부 기자
“도수는 굉장히 높지만 깔끔하고, 달짝지근한 향도 느껴진다. 차갑게 마시면 더 좋을 듯.”
▶이상배 디지털미디어부 기자
“비슷한 도수의 독하기만한 고량주와 달리 상쾌하고 좋은 향이다. 느끼한 음식과 먹고 싶다.”
▶이지민 디지털미디어부 에디터
“너무 독해 식도가 어디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어려운 맛인데, 얼음이랑 같이 마시면 좋다.”
[전문가의 맛 코멘트]
▶이지민 대동여주도 대표
“바닐라 향과 함께 달콤한 향이 메인 캐릭터로 다가온다. 흰 꽃 향과 아주 약간의 바나나 향, 참외 같은 과일 향이 함께 느껴진다. 향의 강도는 중간 이상으로, 알코올 감이 조금 강한 편이다. 맛에서도 부드러운 곡물의 단맛이 혀를 적시며 퍼져나가는데, 여기에 향이 함께 움직이듯 춤춘다. 맑고 깨끗한 소나무라는 이름 그대로 입안에서의 느낌도 부드럽고 깔끔하다. 후미에서 40도의 존재가 강하게 발산되며 여운이 길다. 상온에서 즐기면 좋을 것 같은 증류주도 있지만, 담솔은 청량함을 더하는 게 이 술의 매력을 살려 주는 듯하다. 차갑게 맛보는 걸 추천한다.”
2023-05-24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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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물, 술이 되다…‘꽃잠’ 잔 듯 몸도 마음도 건강한 막걸리 [술도락 맛홀릭] <9>
가가호호 술을 빚던 시절이 있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사라졌던 가양주(家釀酒) 문화가 100년 만에 다시 부활하고 있다. 현재까지 발급된 지역특산주 면허만 1400건에 이르고, 해마다 새로운 양조장과 전통주가 탄생한다.
전통주엔 지역의 특색이 오롯이 담겼다. 지역에서 나는 재료로 술을 빚어, 특산음식과도 잘 어울린다. <부산일보>는 ‘술도락 맛홀릭’ 기획시리즈를 통해 부산·울산·경남 지역의 전통주 양조장을 탐방하고, 지역의 맛과 가치를 재조명한다. 이지민 대동여주도 대표 등 전통주 전문가도 힘을 보탠다.
지리산 청정 지하수가 샘솟는 경남 함양군의 한 마을. 10년 전 도시에서 귀촌한 부부는 작은 양조장을 차렸다. 부부가 빚은 술은 시나브로 입소문이 나 애주가들 사이에서 지리산 하면 떠올리는 막걸리가 됐다. 특히, 지리산 흑돼지와 찰떡궁합이라는 그 술을 찾아 나섰다.
■ 6평으로 시작한 작은 술공방
함양읍내에서 30분 남짓. 구불구불 지안재와 오도재를 넘어 마천면 금계마을로 들어서자 지리산둘레길 함양군안내센터가 나타난다. 지리산둘레길 중 가장 아름답다는 3코스(남원 인월~함양 금계)의 시종점이다.
마을 골목길을 따라 얼마쯤 올라갔을까. 새들의 지저귐이 유난스러운 주택이 눈에 들어온다. ‘지리산옛술도가’ 입간판이 양조장임을 알린다. 입구 앞엔 커다란 소쿠리 위에 고운 빛깔의 ‘흙’이 펼쳐져 있다. 술의 핵심 재료인 우리밀 누룩이다.
“술을 빚기 전 누룩에 햇볕을 쬐고 이슬을 맞히는 ‘법제’를 3일 정도 합니다. 누룩 속 잡균은 없애고, 좋은 균의 힘을 북돋아주죠. 이 마을은 공기도 맑고 자연 조건이 아주 좋거든요.”
수도권에서 도시 생활을 하다 아내와 귀촌을 결심한 송승훈(50) 대표는 2013년 지리산 천왕봉이 한눈에 보이는 이 마을에 자리잡았다. 정착할 곳을 찾아 주말이면 거창·산청·하동·남원 등 지리산권을 돌아다녔다. 1년이 흘러 점점 지쳐갈 때쯤, 빈집이 나타나 둥지를 텄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가장 먼저 방문했던 함양이었다.
처음엔 민박집을 운영하다 2016년 양조장을 차렸다. 생계를 위해서였다.
“6평짜리 남는 방이 하나 있었어요. ‘소규모 주류제조 면허 제도’가 시행된다는 한 줄 뉴스를 우연히 보고 ‘저거다!’ 싶었죠. 어차피 우리 부부가 술을 좋아하니 안 팔리면 우리가 마시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정말 안 팔렸어요. 하하.”
통장 잔고가 4만 원으로 줄었을 때 또 한 번 우연처럼 길이 열렸다. 소규모 주류제조 면허로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술이 출시됐다는 소식을 듣고 전통주 전문가인 류인수 한국가양주연구소 소장이 들른 것이다. 류 소장은 막걸리 여러 병을 사 들고 가 주변에 맛을 보였다. 이후 전통주 애호가와 전통주 전문점 등지로 입소문이 나며 조금씩 판로가 생겼다.
‘둘레길 하우스 막걸리’ 양조장으로 시작해 2018년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면서 지역특산주 면허를 취득했다. 덕분에 옛술도가의 술은 온라인에서도 만나 볼 수 있다. 양조장 공간도 10평을 더했고, 지난해엔 민박동을 개조한 30평짜리 한 동을 추가해 한층 규모가 커졌다.
■ 도초도, 어머니의 양조법 그대로
시간이 흐르면서 제조법을 달리하는 여느 양조장과 달리 지리산옛술도가의 술은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큰 변화 없이 한결같다. 어머니의 레시피를 송 대표가 그대로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고향인 신안군 도초도에서 술을 빚던 전통 방식이다.
대표술인 ‘꽃잠막걸리’(6도)는 한 번 빚은 단양주, 탁주 ‘은가비’(8도)와 약주 ‘여여’(15도)는 세 번 빚은 삼양주다. 재료는 쌀과 누룩, 마을 상수원인 지리산 지하수, 3가지가 전부다.
“저희는 갓 도정한 함양쌀을 씁니다. 쌀뜨물이 안 나올 때까지 백세(쌀씻기)를 한 뒤 8~12시간 불렸다가 고두밥을 쪄서 누룩과 함께 치대는데, 발효조를 아침·저녁 하루 두 번 저어 줍니다. 발효 과정에서 탄산이 형성되는데, 아무리 마셔도 불쾌한 트림 같은 게 전혀 안 생기더라고요. 그만큼 천연탄산이 좋다는 거죠.”
단양주(꽃잠)의 발효 기간은 8~11일, 삼양주(은가비)는 한 달 정도다. 은가비는 밑술에 덧술을 더해 효모를 안정적으로 배양한 뒤 고두밥을 한 차례 더 넣는다. 삼양주의 핵심인 밑술은 쌀가루에 찬물부터 부은 뒤 끓는 물을 붓는 ‘반생반숙’ 방식인 점이 특징. 끓는 물로만 범벅을 하는 ‘익반죽’보다 훨씬 술맛이 좋다는 어머니의 말씀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특히 맑은 술인 ‘여여’는 같은 삼양주인 은가비의 맑은 부분만 거르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별도로 빚는다. 원주부터 다른 술인 여여는 완성되기까지 100일이나 걸린다.
지리산옛술도가의 출발은 가벼웠지만, 술빚기에 대한 고민과 철학은 자못 진지하다. 송 대표 부부는 우리 술의 가치와 전통주가 처한 환경에 대해 알게 되면서 3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째, 우리 쌀·누룩 등 우리 것만 재료로 쓸 것. 둘째, 전통 고유의 방식대로 빚을 것. 셋째, 술 문화의 본연을 지향하는 것이다.
“무수히 많은 날을 아내와 함께 술을 마시면서 우리가 지향할 전통주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어요. 3가지 원칙을 한마디로 하면 저희집 가훈이자 사훈인 ‘주량이 도량이다’입니다.”
■ 20대 청년처럼, 사람을 닮은 술
지리산옛술도가의 술은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다. 술마다 지닌 특징에 어울리는 단어를 고르고 또 골라 탄생한 이름이다.
꽃잠막걸리의 ‘꽃잠’은 깊이 든 잠을 말한다. 잠을 잘 자야 삶이 생생하듯, 좋은 술을 마셔야 인생이 깊어진다는 의미를 담았다. 신맛·단맛·쓴맛을 지녔는데, 그중 신맛이 중심을 이룬다. 삼양주인 ‘은가비’는 은은한 가운데 빛을 발한다는 뜻의 순우리말이다. 사람으로 치면 불혹의 인생 같은 술이라는 게 송 대표의 설명이다.
“꽃잠은 스무 살 청춘 같아요. 발효 과정도 까다로워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술이에요. 반면 은가비는 잘 변하지 않습니다. 잘 익은 사오십대 어른 같은 느낌이죠.”
실제로 맛을 보니 그렇다. 같은 꽃잠인데 병마다 신맛의 정도는 미묘한 차이가 느껴진다. 한날한시에 빚어도 누룩 균에 따라 맛의 차이가 나는 단양주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 준다. 은가비와 여여는 단맛이 중심인데, 꽃향과 과실향이 풍부하다.
2021년 선보인 ‘꽃잠더하기’(5도)는 꽃잠의 청량한 탄산을 더욱 키운 발포막걸리다. 사흘 안에 1차 발효를 한 뒤 30일 이상 후숙성하는 과정에서 천연탄산이 만들어지는데, 워낙 강력해 안전하게 개봉하는 방법을 동영상으로 안내할 정도다.
지리산옛술도가의 술은 함양의 식재료, 그중에서도 지리산 흑돼지와 궁합이 맞다. 양조장에서 걸어서 10분 거리, 마을의 초입에 있는 ‘강쇠네흑돼지’는 정육식당처럼 신선한 생고기로 유명하다. 주인장이 지리산 자락 농장에서 직접 키운 흑돼지를 내놓는다.
숯불 불판에 구운 흑돼지생삽겹살은 일반 삼겹살에 비해 훨씬 쫄깃하면서도 부드럽다. 신선한 쌈채소와 함께 한입 가득 먹은 뒤 꽃잠을 한 모금 들이켜면, 막걸리의 산미가 기름진 식감을 없애면서 침샘을 더욱 돋운다. 아쉽게도 식당에선 꽃잠막걸리를 판매하진 않지만, 양조장에서 술을 구매하고 식당에 미리 양해를 구하면 한두 병 정도는 곁들여도 무방하다.
올해 지리산옛술도가는 전통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갈 계획을 세웠다. 업체에서 만든 누룩 대신 송 대표가 직접 디딘 누룩만 쓰는 것이다. 밀누룩·쌀누룩이 아닌 보리누룩으로 술을 빚는 실험도 하고 있다. 모두 어머니께 배운 옛 맛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다.
“요즘 다시 우리 술 붐이 일고 있는데 ‘전통주가 거기서 거기더라’는 얘기가 나올까 봐 걱정이에요. 양조장마다 자기 술의 특색을 잘 지켜 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송 대표 부부의 꿈과 목표는 한결같다.
글·사진=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동영상=김보경 PD harufor@
-제품명 : 꽃잠막걸리
-양조장 : 지리산옛술도가(경남 함양군)
-내용량 : 1000mL
-알코올 : 6.0%
-원재료 : 쌀·누룩·정제수
[기자들의 시음평]
▶김희돈 스포츠라이프부 부장
“꽃향기 같은 향이 코끝을 자극한다. 강한 향에 비해 맛은 라이트하다. 경쾌한 막걸리다.”
▶남형욱 디지털미디어부 기자
“탄산이 되게 부드럽다. 상큼한 맛인 데다 입에 남는 느낌도 덜해 가볍게 마실 수 있을 듯.”
▶이상배 디지털미디어부 기자
“‘청량하다’는 말로 요약된다. 탄산이 세지만 목 넘김이 강하진 없다. 산미도 과하지 않다.”
▶이지민 디지털미디어부 에디터
“여태껏 먹은 막걸리 중 탄산감이 제일 세 청량감이 있다. 상큼한 매실주를 마시는 느낌.”
[전문가의 맛 코멘트]
▶이지민 대동여주도 대표
“누룩의 컬러가 담겨 톤 다운된 베이지 색깔인데, 묽은 질감의 두유 같은 느낌도 든다. 잔을 가까이 하면 배 껍질에 코를 댄 듯한 시원한 향이 감돌며, 덜 익은 바나나·요구르트·치즈·곡물의 향이 두루 느껴진다. 맛에서는 그동안 변화가 조금 있었던 것 같다. 이전에 맛봤던 꽃잠이 톡 쏘는 산미가 특징이었다면, 요즘의 꽃잠은 단맛이 조금 생기고 산미가 줄어 순해진 느낌이다. 단맛이 존재를 비추더라도 빠른 속도로 사라져 강도는 가볍다. 맛의 특징을 찾고자 잔을 연거푸 마시게 되는데 후미에서 빠르게 맛이 정리된다.”
2023-04-26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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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팔도 두루 품은 ‘맛의 용광로’, 세계 입맛 사로잡을 기회[부산엑스포 is good]
월드엑스포와 음식은 떼려야 뗄 수 없다. 코카콜라는 1893년 미국 시카고 박람회에 출품된 이후 세계로 퍼져 나갔다. 브라우니·햄버거·핫도그·솜사탕도 월드엑스포에서 첫선을 보였다.
2030부산월드엑스포는 한국 음식, 특히 부산의 맛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무대다. 음식전문가와 업계는 부산 음식이 세계의 입맛을 사로잡을 경쟁력을 충분히 갖췄다고 입을 모은다.
부산 하면 흔히 바다를 떠올리지만, 그 위에 음식이 있다. 2020년 여름 부산관광공사가 부산에 온 여행객 1000명에게 여행의 주 목적을 물어 보니 가장 많은 31.0%가 ‘식도락’을 꼽았다. 2위는 자연 풍경(28.9%), 3위는 휴식(13.7%) 순. 금강산처럼 ‘부산도 식후경’인 셈이다.
음식은 전라도가 유명하다지만 부산 음식을 몰라서 하는 이야기다. 부산시는 2009년 향토 음식을 선정했는데, 생선회를 비롯해 돼지국밥·밀면·동래파전·곰장어구이 등 13가지나 됐다. 부산엔 회만 있었던 게 아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상가정보 자료(3월 기준)를 보면 부산에서 ‘돼지국밥’이란 이름이 들어간 식당은 540곳에 이른다. ‘밀면’은 344곳인데 ‘냉면’(348곳)을 상호로 쓰는 밀면 식당까지 더하면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흥미로운 건 13가지 중 상당수는 지역 식재료를 쓰는 전통적인 향토 음식이 아니라는 점이다. 올 초 부산문화재단에서 펴낸 〈부산의 음식〉의 부제 ‘부산을 담다, 팔도를 품다’처럼 부산 음식의 특징은 팔도를 두루 품은 포용과 개방이다. 몇 해 전 〈부산일보〉에서 총정리한 ‘부산돼지국밥 로드’를 보면 고기 부위, 육수 내기, 토렴 여부, 상차림 등에 따라 돼지국밥 종류는 천차만별이다. 전국에서 몰려든 사람들을 품으며 팔도의 식재료와 조리법까지 받아들인 결과다.
이는 만국의 사람과 기술·문화가 모여 교류하는 월드엑스포와 꼭 닮았다. 박정배 음식평론가는 “부산은 밀면처럼 남북의 문화까지 융합된 ‘맛의 용광로’이다. 월드엑스포 감성의 음식문화가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셈”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세계로 뻗어 나간 김치·불고기·비빔밥에 비해 부산의 맛은 아직 세계인에겐 미지의 영역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월드엑스포는 부산 음식에는 엄청난 기회다. 지역 음식업계는 월드엑스포 개최를 통해 부산 음식의 세계화 가능성이 열릴 것으로 기대한다. 삼진어묵 박용준 대표는 “지난해 처음으로 파리음식박람회에 참가했다. 어묵이란 낯선 음식에 대한 호기심만으로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며 “부산월드엑스포에선 부산의 음식을 주인공으로 선보일 수 있어 대체단백질 추세와 맞물려 어묵이 세계적인 식문화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실제로 부산의 맛은 최근 국제박람회기구(BIE) 실사단으로부터 인정받았다. ‘부산의 자연·봄·역사’란 주제에 맞춰 지역 식재료와 부산 음식을 활용한 한식을 준비했더니 실사단원 모두 매끼 남김없이 싹 비우며 호평했다.
음식 하면 술도 빼놓을 수 없다. 2005년 부산 APEC 정상회의 땐 ‘천년약속’, 2014년 부산 ITU(국제전기통신연합) 전권회의 땐 ‘금정산성막걸리’가 만찬 건배주로 채택돼 부산의 술을 널리 알렸다. 동래아들막걸리로 유명한 부산 양조장 ‘기다림’은 부산시와 협력해 월드엑스포 만찬주를 준비 중이다. 기다림 조태영 대표는 “월드엑스포 유치에 성공한다면 김치처럼 막걸리도 하나의 문화로서 세계로 확산하는 발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이대진 기자 djrhee@
2023-04-19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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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 가득 벗에게 드리는 술…‘감천막걸리’와 ‘라이스 퐁당’ [술도락 맛홀릭] <8>
가가호호 술을 빚던 시절이 있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사라졌던 가양주(家釀酒) 문화가 100년 만에 다시 부활하고 있다. 현재까지 발급된 지역특산주 면허만 1400건에 이르고, 해마다 새로운 양조장과 전통주가 탄생한다.
전통주엔 지역의 특색이 오롯이 담겼다. 지역에서 나는 재료로 술을 빚어, 특산음식과도 잘 어울린다. <부산일보>는 ‘술도락 맛홀릭’ 기획시리즈를 통해 부울경의 전통주 양조장을 탐방하며 지역의 맛과 가치를 재조명한다. 이지민 대동여주도 대표 등 전통주 전문가도 힘을 보탠다.
친구가 친구에게, 정성 가득 담아 드리는 술. ‘벗드림’은 이름에서부터 술빚기에 대한 진심이 묻어나는 양조장이다. 전통주 교실에서 우연히 만난 이들이 합심해 부산 도심에 차린 술도가. 동네 사랑방 같은 공간을 넘어 발효전문기업을 꿈꾸는 이들을 부산에서 만났다.
■ 좋은 재료 찾아 ‘가락 들판’으로
부산 강서구는 대도시 속 시골 같은 풍경을 지녔다. 곳곳에 개발이 진행 중이지만, 여전히 드넓은 논밭에선 농작물이 낙동강 하구의 풍요로움을 먹고 자란다. 강서구청 건너 골목길로 몇 걸음만 들어가면 나타나는 빨간색 벽돌 단층건물에선 또 다른 풍요로움이 익어간다. 북구 만덕동 주택가에서 지난해 여름 자리를 옮긴 ‘벗드림양조장’의 본거지이다.
“저희 양조장은 강서구 가락 들판에서 생산한 쌀을 사용해요. 그때그때 딱 필요한 양만큼만 주문하는데, 그래야 갓 도정한 쌀을 받을 수 있거든요. 그래서 쌀 수급지와 제일 가까운 곳으로 옮겨왔습니다.”
한형숙(49) 팀장의 설명 한마디에 ‘좋은 재료, 좋은 술’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벗드림의 지향점이 엿보인다. 양조장의 출발부터 그랬다. 지금은 사라진 부산 막걸리학교 ‘연효재’에서 술빚기 교육을 받은 뒤 뜻이 맞는 조원들끼리 협동조합을 만든 게 시작이었다.
“처음에 교육을 받을 땐 창업까진 생각을 안 했어요. 교육과정을 수료하고 나서도 저희끼리 매주 모여서 술을 빚어 마셨는데, 이렇게 괜찮은 술을 다른 사람들과도 나누고 싶다는 마음에서 창업을 구체화하게 됐습니다.”
벗드림협동조합은 2018년 봄 김성욱(50) 대표의 주도로 설립됐다. 5명이 참여해 술 레시피 등을 함께 연구했는데, 다들 생업이 있다 보니 현재는 김 대표와 한 팀장 2인 체제로 양조장을 운영하고 있다.
친구들끼리 빚어 나누던 술이 벗드림 이름을 달고 시중에 나오기까진 협동조합이 설립되고도 1년 반이나 걸렸다. 소량으로 만들 때와 달리 한번에 많은 양을 빚어야 해 맛의 균형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4계절 온습도 변화도 문제였다. 고객을 대상으로 내놓을 제품인 만큼 무엇보다 균질한 맛에 공을 들였다.
이윽고 2019년 10월, 벗드림의 첫 작품인 탁주 ‘볼빨간막걸리’(10도·7도)와 약주 ‘라이스 퐁당’(17도·13도)이 선을 보였다. 당시만 해도 획기적인 이름과 병 디자인이었다. 맛 또한 특색이 분명해, 전통주 업계와 애주가들 사이에서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입소문만으로 술을 알리는 데엔 한계가 있었다. 2020년 농업회사법인을 설립하고 지역특산주 면허를 받으면서, 비로소 벗드림의 술을 온라인에서도 찾아볼 수 있게 됐다.
“처음엔 대표님과 둘이서 술가방을 짊어지고 박람회며 전시회며 부산 전역을 돌았거든요. 정말 발품을 많이 팔았어요. 지금은 온라인 판매도 가능하고, 저희 술만 찾는 마니아들이 있어서 판매량이 안정적인 추세입니다.”
■ 쌀·물·누룩만으로 이룬 3관왕
벗드림양조장은 쌀·물·누룩 이외 일체의 감미료를 넣지 않는 전통 그대로의 방식을 고집한다. 현재까지 출시한 술은 찹쌀막걸리(‘볼빨간막걸리’)와 멥쌀막걸리(‘감천막걸리’), 그리고 약주(‘라이스 퐁당’)까지 3가지. 모두 밑술에 덧술을 더한 이양주다. 이 중 대표 술은 가장 최근 선보인 ‘감천막걸리’다. 찹쌀과 전통누룩이 들어가는 나머지 두 술과 달리 멥쌀과 개량누룩을 써서 산미가 적다.
“쌀의 단맛을 최대화해 좀 더 부드럽고 자극이 덜한, 누구나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술을 만들고 싶었어요. 담고 먹고 발효하기를 반복하며, 연구를 거듭한 끝에 탄생한 술입니다.”
한 팀장의 설명처럼 감천막걸리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달달함’이다. 달콤한 냇물(甘川)이란 이름 그대로의 맛이다. 하얀 빛깔에 용기도 우유병을 닮아 ‘어른들의 우유’라고 할 만하다. 이양주인 만큼 가볍지 않은 적당한 무게감에, 입 안에 계속 머금으면 시원한 배 향과 고소한 곡물 향이 감돈다.
개발 과정에서 때마침 정부 지원사업에 선정된 감천막걸리는 지난해 5월 출시와 함께 사하구 감천문화마을을 알리는 관광기념주로도 판매되고 있다. 10월엔 농림부 주최 ‘2022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에서 ‘우수상’(탁주 부문)을 받으며 전국구 인정을 받았다.
벗드림양조장의 첫 작품인 ‘볼빨간막걸리’(10도)와 ‘라이스 퐁당’(17도)도 2021년(탁주 부문)과 2022년(약주·청주 부문) 대한민국 주류대상에서 공동 대상을 받았다. 5년이 채 안 된 양조장에서 출시한 3가지 술이 모두 전국대회에서 수상하는 진기록을 쓴 셈인데, 그 비결에 대한 김 대표의 답은 역시 ‘정성’이다.
“첫 술을 출시하기까지 2년 가까이 걸렸습니다. 그만큼 여러 가지 재료와 방식을 써 가며 많이 연구했어요. 다른 신제품도 1년 넘게 레시피를 연구하고 있는데, 이런 정성 덕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볼빨간막걸리는 찹쌀의 달콤함에 전통누룩의 산미가 더해져, 조화로운 풍미를 지녔다. 일반적인 막걸리보다 도수(10도·7도)가 높아 특히 애주가들이 좋아할 맛이다.
라이스 퐁당은 약주 특유의 향미가 기품 있는 매력으로 다가온다. 두 막걸리와 달리 일반 정제수가 아닌 약초(삼지구엽초·감초) 달인 물을 써서 전통누룩의 향에 약초의 향을 입혔다. 찹쌀의 깊은 단맛과 누룩의 산미, 약초의 산뜻한 향이 어우러져 한 잔의 여운이 길게 남는다. 특히 물을 타지 않은 17도는 원주 그대로의 풍미를 즐길 수 있다.
벗드림의 술은 발효 기간이 짧게는 2주에서 길게는 4주 정도다. 충분히 완발효를 한 뒤엔 한 달 이상 저온창고에서 숙성을 한다. 술을 만나기까지 최소 한 달 반 이상, 기다림의 정성이 필요하다.
■ 잼·비누까지, 발효에 ‘진심’
벗드림양조장은 ‘막걸리 잼’ 맛집으로도 통한다. ‘막걸리 잼’은 김 대표가 2021년 볼빨간막걸리를 이용해 개발했다. 막걸리에 생크림·설탕을 넣은 뒤 뱅쇼(따뜻한 와인)처럼 가열해 알코올을 휘발시키는 식이다. 밀크잼이나 카야잼이 연상되는 맛인데, 은은하게 깊이 밴 단향이 담백한 바게트나 크래커류와 어울린다. 인기에 힘입어 곧 감천막걸리 잼도 출시될 예정이다.
막걸리 잼을 바른 크래커 등은 뿌리가 같은 벗드림의 술과 곁들이기에도 좋다. 감천막걸리·볼빨간막걸리와 크림치즈 같은 잼이 부드럽게 어우러지며, 부담 없이 취기와 허기를 채울 수 있다.
잼보다 조금 먼저 출시된 벗드림표 ‘막걸리 비누’도 인기다. 여느 양조장과 달리 막걸리를 빚고 남은 지게미가 아니라 진짜 막걸리를 넣어서 만든 천연비누다. 숙성에만 8~12주가 걸려, 막걸리 못지 않게 정성이 들어간다.
막걸리부터 비누까지 제품마다 고집스럽게 정성을 담고 있는 벗드림양조장은 올해 또 다른 신제품을 출시한다. 골프장 이용객들을 위한 특화 막걸리와 지역에서 생산된 과일을 넣은 베리류 막걸리가 상반기부터 차례로 선보일 예정이다.
벗드림은 술빚기 문화를 알리는 데도 신경 쓰고 있다. 만덕동 시절부터 입문자들을 대상으로 찹쌀막걸리(단양주)를 빚는 ‘원데이 클래스’를 진행해 왔다. 양조장으로 신청하면, 김 대표와 한 팀장의 일정에 맞춰 10여 명씩 단체 교육을 받을 수 있다.
“도심 양조장인 만큼 지역 안에서 오가며 들를 수 있는 사랑방 같은 역할을 하고자 합니다. 지역사회와 협업하고 좀 더 공헌해서,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친구 같은 술, 친구 같은 공간. ‘벗드림’(butdream·友夢) 친구들의 꿈이다.
글·사진=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제품명 : 감천막걸리
-양조장 : 벗드림양조장(부산 강서구)
-내용량 : 750mL
-알코올 : 6.0%
-원재료 : 쌀·누룩·효모·정제수
[기자들의 시음평]
▶김희돈 스포츠라이프부 부장
“우유병 닮은 디자인처럼 ‘어른들을 위한 우유’ 같은 맛. 부드러우면서 살짝 보디감도…”
▶이상배 디지털미디어부 기자
“처음부터 끝까지 단맛으로만 밀고 가서 좋다. 심심한 갑자칩·크래커와 잘 어울릴 듯.”
▶김동우 편집파트 기자
“첫맛이 되게 달다. 감주처럼 음료수 같은 느낌이 많이 나서 편하게 마실 수 있다.”
▶이지민 디지털미디어부 에디터
“되게 달고 깔끔하게 떨어지는 맛이다. 탄산감이 없어 부드럽게 꿀떡꿀떡 잘 넘어간다.”
[전문가의 맛 코멘트]
▶이지민외 대동여주도 대표
“잔에 코를 갖다 대니 요구르트 향이 시원하고 싱그럽게 피어오른다. 유제품 계열의 고소함과 바나나 등 과일의 단향도 담겨 있다. 향의 속성과 맛이 결을 같이하는데, 맛이 더 달다. 달지만 보디감이 적당해 한 잔을 훌렁 비우기가 좋다. 라벨에 씌여 있는 ‘감천: 물이 달고 맛이 좋다’는 카피가 ‘술이 달고 맛이 좋다’로 느껴진다.”
-제품명 : 라이스 퐁당 17
-양조장 : 벗드림양조장(부산 강서구)
-내용량 : 500mL
-알코올 : 17.0%
-원재료 : 찹쌀·누룩·정제수·삼지구엽초·감초
[기자들의 시음평]
▶김희돈 스포츠라이프부 부장
“점도가 높은데 적당한 보디감에 상큼한 향까지. 가벼운 와인 한잔 하듯 즐기기 괜찮다.”
▶이상배 디지털미디어부 기자
“약주의 정석 같은 느낌. 마시는 순간 약주의 기운과 향이 확 올라온다. 뒷맛도 깔끔하다.”
▶김동우 편집파트 기자
“오묘하고 복합적인 맛. 처음엔 풀 향, 다음은 술 섞은 꿀물, 마지막엔 도라지 우린 물 같다.”
▶이지민 디지털미디어부 에디터
“첫맛은 조금 시고, 이어 살짝 달다가, 마지막은 코가 맵다. 이게 어른들의 맛인가 싶다.”
[전문가의 맛 코멘트]
▶이지민 대동여주도 대표
“첫 향에서 곡물의 단향과 적당한 산미가 부드럽게 어우러지는데, 이런 느낌이 맛에서는 더 진하고 농밀하게 어우러진다. 찹쌀에서 기인한 달콤함과 약간의 쌉싸래함, 입에 착 붙는 감칠맛이 삼중주를 이룬다. 후미에서 알코올감이 느껴지며 여운을 남기는데, 그제서야 17도임을 인지하게 된다. 삼지구엽초가 들어간 술이라 보양식을 준비해서 한 잔, 두 잔 음미하며 반주로 즐기고 싶다.”
2023-04-1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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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한 잔에 5가지 맛을 담다…마실수록 정이 가는 '정감' 막걸리 [술도락 맛홀릭] <7>
가가호호 술을 빚던 시절이 있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사라졌던 가양주(家釀酒) 문화가 100년 만에 다시 부활하고 있다. 현재까지 발급된 지역특산주 면허만 1400건에 이르고, 해마다 새로운 양조장과 전통주가 탄생한다.
전통주엔 지역의 특색이 오롯이 담겼다. 지역에서 나는 재료로 술을 빚어, 특산음식과도 잘 어울린다. <부산일보>는 ‘술도락 맛홀릭’ 기획시리즈를 통해 부울경의 전통주 양조장을 탐방하며 지역의 맛과 가치를 재조명한다. 이지민 대동여주도 대표 등 전통주 전문가도 힘을 보탠다.
세계 111번째 슬로시티(Slow City) 인증을 받은 고장, 느림과 고요함이 깃든 경남 하동군 악양면에 가면 지역 특색을 꼭 닮은 전통주가 있다. 3대째 물려받은 가업에 ‘진실을 담겠다’는 찐양조인을 만나러 악양면 정서리로 향했다.
■ 내 고장 쌀과 물로 빚은 ‘악양의 술’
악양초등학교와 악양면사무소. 악양의 중심가에서 몇 걸음만 옮기면 예사롭지 않은 향을 풍기는 2층짜리 건물이 나타난다. 입구 나무 간판에 새긴 ‘악양주조장’이란 다섯 글자가 선명하다. 30여 년 전 악양면 3개 양조장을 통합해 지금의 자리로 옮겨 온 뒤, 줄곧 악양을 대표해 온 술도가다.
강산이 세 번 바뀌는 동안 한결같이 한자리를 지켜 온 이 양조장은 4년 전 큰 변화를 맞았다. 악양합동양조장에서 악양주조로 이름을 바꿨고, 술 익는 내음도 달라졌다. 손지배(65) 대표가 지역특산주 면허를 갖추고, 우리쌀과 우리누룩만 사용해 ‘진짜 전통주’를 빚기 시작한 것이다.
“몇 년 전쯤 온라인 판매를 알아보다가 수입쌀로 만든 일반 막걸리는 현행법상 ‘전통주(지역특산주)’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뒤늦은 깨달음이었죠. 값싼 수입쌀, 수입밀누룩으로 빚은 막걸리를 우리나라 전통주라고 할 순 없지 않겠어요.”
손 대표는 망설임 없이 결단을 내렸다. 증조부와 아버지 대를 이어 온 전통 방식과 작별하고, 원재료부터 설비·제조 방법까지 모든 걸 바꿨다. 수입쌀 대신 하동지역에서 재배한 청정쌀과 진주곡자(누룩)를 쓰고, 옛날 독(항아리) 숙성조를 모두 스테인리스 제품으로 바꿨다. 냉방 설비도 갖춰 사시사철 적정 온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2대 대표였던 작은 아버지와 뜻이 맞지 않았지만 그는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막걸리는 음식이기 때문에 ‘맛’의 전통을 이어 가고 맛을 더 발전시켜 나가는 게 중요합니다. 옛 방식대로 독을 사용한다고 해서 전통이 아니거든요.”
시골 양조장에서 혁신과 변화가 처음부터 호응을 얻은 건 아니다. 좋은 재료로 빚다 보니 판매가를 올릴 수밖에 없었고, 가격에 민감한 지역 특성상 판매량이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
‘이러다 먹고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난감한 상황이었지만 손 대표는 포기하지 않았다. 온라인 판매가 본격화하면서 조금씩 매출을 회복했고, 지금은 인근 구례와 광양은 물론 멀리 부산·광주·대전 등지에서도 꾸준히 애주가들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취재진이 방문한 날도 마찬가지.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양조장을 들락거리며, 냉장고에 보관된 술이 금세 동났다.
■ 정감 어린 향, 정감 가는 맛
손 대표는 우리 술을 향한 집념을 막걸리 2종에 오롯이 담았다. 첫 작품인 ‘악양막걸리’가 일반적인 탁주라면, 뒤이어 출시한 ‘정감(情感)’은 악양주조를 상징하는 프리미엄 막걸리다.
둘 다 우리밀누룩·우리쌀입국이 들어가는데, 멥쌀을 쓰는 악양막걸리와 달리 정감은 찹쌀을 사용한다. 특히 정감은 두 번 빚은 이양주여서 목 넘김이 부드럽고 향미가 깊은데, 알코올 도수도 8도로 악양막걸리(6도)보다 높다.
숙성 기간도 차이가 난다. 악양막걸리는 열흘 정도, 정감은 배 이상인 21~25일 동안 숙성한 뒤 출시한다. 이 과정에서 손 대표가 중시하는 게 ‘저온 발효’다.
“전통주는 처음부터 끝까지 온도의 예술입니다. 술 빚기는 물론이고, 완성된 술을 보관하고 공급하고 소비자가 마실 때까지 계속 적정 온도를 유지하는 게 중요해요. 예전엔 경험치로 술을 빚었다면, 지금은 과학적으로 발효·숙성 과정에서 18~22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고 있습니다.”
손 대표가 또 하나 강조하는 건 물이다. 예부터 물 좋기로 유명한 고장이어서 마을의 상수원으로 술을 빚는데, 악양의 명산인 지리산 형제봉 기슭에서 나는 약수다.
하동지역 청정쌀과 맑은 물, 저온 숙성이 어우러진 술맛은 어떨까. 악양주조의 대표격인 ‘정감’을 한 모금 들이켜자 한마디로 딱 표현하기 힘든 오묘한 풍미가 입안 가득 맴돈다. 달면서 쓰고, 새콤하면서 향긋하고, 은은하면서 담백하다. 흰색부터 검은색까지, 술병 디자인처럼 무채색의 다양함을 지닌 맛이다.
“악양주조의 술에는 제가 추구하는 ‘오미(五味)’가 담겨 있습니다. 알코올의 매운 맛인 ‘신미’, 달보드레한 맛인 ‘감미’, 유산균의 새콤한 ‘산미’, 그리고 마지막에 미묘하게 남는 떨떠름한 맛과 쌉싸름한 맛입니다.”
손 대표의 설명을 듣고 다시 음미하니 다섯 가지 맛 중 어느 하나만 특출나지 않다. 오미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정감 막걸리만의 개성을 완성한 듯하다. 이름처럼 맛을 보면 볼수록 정감 가는 맛이다.
악양주조의 막걸리는 우리나라 전통음식과 두루 어울린다. 양조장 인근 유명 여행지인 최참판댁에 들르면, ‘평사리토지장터주막’에서 다양한 음식과 함께 악양막걸리를 맛볼 수 있다. 오징어·새우 등 해물이 듬뿍 들어간 해물파전과 싱싱한 푸성귀를 버무린 도토리묵무침 등이 술맛을 돋운다.
책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에 등장하면서 널리 알려진 입석마을 ‘형제봉주막’도 악양주조와 짝을 이룬다. 두부김치 등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의 안주거리와 함께 주전자째 나오는 막걸리를 맛볼 수 있다.
■ 3대에서 4대로, 익어 가는 술과 꿈
손 대표 부부가 2005년부터 20년 가까이 이끌어 온 악양주조는 어느새 4대째를 바라본다. 손 대표의 큰딸과 사위가 전통을 이어받을 준비를 하고 있다.
지금의 악양주조가 있기까지 가족의 도움이 컸다. 디자인을 전공한 작은딸이 술병과 팸플릿 등 각종 디자인을 도맡았고, 온라인 판매가 자리를 잡는 데에도 자식들이 힘을 보탰다.
“술 빚기가 고된 작업이지만, 우리 술의 전통을 이어 가야 된다고 생각해요. 소비자에게 좀 더 진실을 담아서 우리 고유의 술을 보급하고 싶습니다. 그게 제가 전통주를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고요.”
손 대표는 올해 또 한 번 변화를 준비 중이다. 새 창고를 짓고 생산 설비도 늘려 여름께부터 본격적으로 수도권으로 판로를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하동지역 대표특산물인 악양대봉감이 들어간 프리미엄 막걸리도 연말을 전후로 출시할 예정이다. 지금의 양조장 2층은 리모델링을 해, 숙박을 하면서 술 체험도 하는 공간으로 활용한다는 구상이다.
전통주에 진심인 손 대표는 인터뷰 내내 우리 술에 대한 자긍심과 애정을 드러냈다.
“옛날, 집에서 빚던 가양주처럼 다채로운 맛을 지닌 전통주가 계속 나와야 합니다. 우리 술이 좀 더 발전할 수 있도록 정부와 지자체에서 관심을 가져 줬으면 좋겠어요. 우리 술처럼 5대 영양소와 인체에 유익한 균을 많이 함유한 술은 세계 어디에도 없거든요.”
현재 악양주조처럼 지역특산주 양조장이 받는 혜택은 ‘온라인 판매’ 정도다. 막걸리 원료까지 꼼꼼히 따지지 않는 일반 소비자 입장에선 지역특산주 여부를 떠나 500원 1000원 더 저렴한 술에 손이 가는 게 여전한 현실이다. 일반 막걸리 사이에서 묵묵히 맛의 전통을 지켜 나가는 악양주조는 부산·울산·경남권 명주(銘酒)가 되어, 수도권까지 이름을 알리겠다는 목표다. 4대를 잇는 전통, 우리 술을 향한 긍지와 집념, 그리고 지리산·섬진강의 청정 자연을 버무린 꿈이 악양에서 익어 가고 있다.
글·사진=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기자들의 시음평]
▶김희돈 스포츠라이프부 부장
“오리지널 막걸리 향이다. 강한 첫맛에 비해 끝맛은 꽤 담백하다. 막걸리다운 막걸리다.”
▶남형욱 디지털미디어부 기자
“첫맛은 달고 끝맛은 새콤. 흔한 막걸리와 달리 탄산감이 적어 훨씬 고급스러운 느낌이다.”
▶이상배 디지털미디어부 기자
“달지 않고 누룩 맛도 약한데, 마신 뒤 입이 좀 쓰다. 간이 센 안주와 먹으면 어울릴 듯.”
▶이지민 디지털미디어부 에디터
“첫맛은 달짝지근, 뒷맛은 시고, 끝맛은 쓰다. 짭조름하거나 단 음식과 함께하면 좋을 듯.”
[전문가의 맛 코멘트]
▶이지민 대동여주도 대표
“입국과 누룩을 블렌딩해 만든 막걸리로, 입국 막걸리 특유의 향과 누룩에서 기인한 컬러가 술에 반영돼 있다. 곡물의 담백하고 새콤한 향과 함께 배의 속살, 수박 껍질 등에서 느껴지는 시원한 향이 어우러지고, 맛에서도 이 향의 속성이 이어진다. 라이트한 단맛과 산뜻하면서도 기분 좋은 산미가 함께 결을 이루며 전체적인 맛을 형성하고, 후미는 깔끔하게 떨어진다. 8도이지만 세게 느껴지지 않으며, 양은잔에 따라서 꿀꺽꿀꺽 마시다 보면 금방 한 병 비울 수 있을 것 같다. 술꾼용이다.”
-제품명 : ‘정감’ 막걸리
-양조장 : 악양주조(경남 하동군)
-내용량 : 750mL
-알코올 : 8.0%
-원재료 : 쌀·입국·누룩·정제수·혼합제제 등
2023-03-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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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로 우주 정복? 스타워즈 캐릭터 무장한 '스톰탁주' [술도락 맛홀릭] <6>
가가호호 술을 빚던 시절이 있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사라졌던 가양주(家釀酒) 문화가 100년 만에 다시 부활하고 있다. 현재까지 발급된 지역특산주 면허만 1400건에 이르고, 해마다 새로운 양조장과 전통주가 탄생한다.
전통주엔 지역의 특색이 오롯이 담겼다. 지역에서 나는 재료로 술을 빚어, 특산음식과도 잘 어울린다. <부산일보>는 ‘술도락 맛홀릭’ 기획시리즈를 통해 부울경의 전통주 양조장을 탐방하며 지역의 맛과 가치를 재조명한다. 이지민 대동여주도 대표 등 전통주 전문가도 힘을 보탠다.
우리 술과 클래식 음악, 그리고 외계인. 전혀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3가지가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클래식 음악으로 술을 빚던 경남의 한 양조장이 최근 영화 ‘스타워즈’ 캐릭터를 앞세운 막걸리를 출시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만남의 사연이 궁금해 밀양시 단장면으로 향했다.
■전통주, 클래식 선율에 취하다
중앙고속도로 밀양IC를 빠져나와 단장천과 논밭이 펼쳐진 시골길을 달리길 5분여. 도로 안쪽으로 대형 문주와 입구를 갖춘 신식 건물이 나타난다. 4년 전, 인근 태룡리에서 단장리로 자리를 옮긴 ‘밀양클래식술도가’(옛 단장양조장)이다. 입구 주차장에 세워 둔 냉장탑차부터 눈길을 끈다. 차량 화물칸 겉면이 온통 스타워즈 캐릭터인 ‘스톰트루퍼’ 그림으로 가득하다.
“경운기 모는 스톰, 부채춤 추는 스톰, 김장 담그는 스톰 등 더 재밌는 그림이 많습니다. 요즘 젊은 양조인들이 늘고 있잖아요. 좀 재밌게 표현해 보고 싶었죠.” 배현준(37) 총괄매니저가 환한 웃음으로 취재진을 맞으며 설명을 보탠다.
여기까지만 보면 밀양클래식술도가를 신생 양조장으로 여기기 쉽지만, 무려 90년 넘는 역사를 지녔다. 시골마을에 흔히 있을 법한 양조장은 2009년 배 매니저의 장인 박종대(64) 대표가 인수하면서 달라졌다. 박 대표가 어린 시절 뛰놀던 바로 그 양조장이었다. 그는 ‘단장양조장’으로 간판을 바꿔 달고 클래식 음악을 활용해 술을 빚기 시작했다.
“클래식의 잔잔하고 섬세한 리듬이 발효·숙성 과정에서 효모의 활동성을 깨웁니다. 효모가 어떻게 활발하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술의 맛이 달라지거든요.”
박 대표의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는 ‘클래식 발효’가 오랜 연구 끝에 탄생한 비법이기 때문이다. 양조장 운영은 15년째지만 박 대표가 실제로 술을 빚은 기간은 배 이상이다. 그는 고향으로 귀농하기 전까지 부산에서 웨딩스튜디오를 운영하며, 자택에 술방을 마련해 끊임없이 맥주·막걸리·와인 등을 빚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 어깨너머로 보고 배운 가양주 문화가 자연스럽게 취미로 이어졌다. 우리 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지금처럼 높지 않던 시절, 그는 전통주 동호회에서 활동하며 멀리 호남 지역까지 강의를 다니기도 했다.
박 대표의 또 다른 취미는 클래식 음악 듣기다. 집이건 스튜디오건 클래식 선율이 끊어질 않았다. ‘일탈’처럼 보이는 우리 술과 클래식의 만남이 박 대표에겐 ‘일상’이었던 셈이다.
단장양조장에서 밀양클래식술도가로, 2019년 확장 이전을 하면서도 바뀌지 않은 건 ‘클래식’이다. 체험동과 제조동 전체에서 박 대표가 선곡한 클래식 선율이 울려 퍼진다. ‘톡 톡 토독 톡 톡 토도독….’ 곡과 곡 사이 잠깐의 침묵이 흐르자 발효조 안에서 또 다른 연주가 들려온다. 발효 막바지 단계에서 기포가 터지면서 내는, 술 익는 소리다.
“밤에 음향을 낮추면 (효모의)활동성이 떨어지고, 낮에 음향을 올리면 활동성이 올라가요. 잔잔한 선율에서 악센트가 센 파트로 바뀌어도 활동성이 떨어진답니다.” 배 매니저의 설명을 듣고 다시 보니 음악에 맞춰 술이 춤을 추는 듯하다.
■캐릭터 술 앞세워 세계로, 우주로
밀양클래식술도가는 ‘클래식’의 또 다른 의미인 ‘전통’을 강조한다. 박 대표는 줄곧 전통적인 방법을 고수하면서 직접 배양한 효모를 사용해 쌀과 누룩, 천연감미료 등으로 술을 빚는다.
처음엔 클래식막걸리와 클래식청약주 2종이었지만 해를 거듭하면서 한층 다양해졌다. 특히 아들 같은 사위, 배 매니저가 5년 전 합류하면서 신선한 변화가 일었다.
“처음엔 양조장이 뭔지도 몰라 간장을 만드는 곳인가 싶었어요. 아버지 기술이 참 좋은데 알릴 방법이 없어 너무 막막했죠.”
부산에서 유통사를 운영하던 그는 전국 양조장을 100군데 넘게 돌아다니며 벤치마킹과 실험을 거듭했고, ‘전통’과 ‘변화’의 갈림길에서 두 가지 모두를 선택했다.
고민 끝에 2018년 탄생한 ‘마실꾸지’는 꾸지뽕 열매를 손수 갈아 넣어 만든 막걸리다. 살구빛 빛깔에서 연상되듯 젊은 층이 좋아할 만한 새콤달콤한 향미가 특징이다. 뒤이어 출시한 ‘밀양대추막걸리’는 자연탄산이 가득한 샴페인 막걸리다. 일주일에 100병씩 소량만 생산하기 때문에 선착순 전화 주문만 받는다.
2021년 선보인 ‘밀양탁주’는 기존 클래식막걸리에서 밀을 빼고 100% 쌀로만 빚은 막걸리다. 정부 ‘술품질인증’을 획득하고 밀양이란 지역명까지 더해져 특히 주변 캠핑장을 찾는 이들에게 인기다.
꾸준한 실험과 변화 속에서 작심하고 만든 술이 있으니 바로 ‘스톰탁주’다. 최근 온라인 판매를 시작했는데 SNS 등으로 소문이 나면서 금세 밀양클래식술도가의 대표작으로 떠올랐다.
외관도 이름처럼 독특하다. 술병 전체를 영화 ‘스타워즈’의 캐릭터 중 하나인 ‘스톰트루퍼’(스톰) 이미지로 채웠다. 병뚜껑 위에도 스톰 얼굴(헬멧) 캡을 씌워 소장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수많은 캐릭터 중 왜 스톰일까.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서울의 (주)우주라이크와 협업하면서 ‘그냥 캐릭터만 활용한 술이 아니라, 전혀 다른 종류의 술을 만들어 보자’는 얘기를 나눴어요. 스톰 캐릭터 자체가 백색이라 막걸리하고도 닮았잖아요. 영국 셰퍼톤 디자인 스튜디오와 연결되면서 정식 라이선스 계약까지 맺었죠.”
막걸리로 ‘지구정복’을 넘어 ‘우주정복’을 하겠단 야심찬 스토리텔링처럼, 배 매니저는 외국인에게 익숙한 스톰 캐릭터를 통해 해외 입맛을 사로잡겠단 계획이다. 그러기 위해 술의 기본인 맛부터 많은 신경을 썼다. 밀양탁주와 주원료는 같지만 쌀의 함량을 늘렸고, 12~13일 발효를 거친 뒤 사흘 동안 저온숙성을 더했다.
실제로 스톰탁주를 한 모금 들이켜자 같은 뿌리인 밀양탁주와는 전혀 다른 향미가 느껴진다. 은은한 달콤함 속에 포도를 닮은 과실 향이 풍기는 이색적인 맛이다.
■클래식·외계인과 어울리는 맛은
스톰탁주는 누구나 가볍게 마실 수 있는 6도와 애주가를 위한 17도, 2종이 있다. 특히 17도는 물을 전혀 섞지 않은 원주로, 알코올의 쏘는 맛이 강하기 때문에 얼음을 섞거나 다른 음료와 함께 마시면 좋다. 온라인에선 6도와 17도를 묶은 세트도 판매하는데, 취향에 따라 두 술을 원하는 비율로 섞어 마실 수 있다.
밀양 쌀로 세 번 빚어 삼양주의 부드러움을 지닌 스톰탁주는 한식과 양식 모두와 어울린다. 밀양클래식술도가를 찾으면 갓 생산된 술과 궁합이 맞는 음식도 맛볼 수 있다. 지금의 자리로 확장 이전하면서 막걸리 체험공간인 ‘카페표충로’를 함께 열었는데, 방문객들의 요구로 현재는 식당처럼 운영되고 있다.
식사류 대표메뉴는 밀양탁주(또는 차) 한 잔이 함께 나오는 ‘새싹불고기비빔밥’이다. 새싹잎과 산채나물, 소불고기 등을 곁들인 푸짐한 비빔밥과 탁주의 조합은, 농사일을 하다 먹는 막걸리와 새참 같은 느낌이다. 안주류로는 돼지수육과 오돌뼈 등이 있다. 수육은 껍질 부위를 바삭하게 구운 식감이 매력이고, 땡초가 들어간 매콤한 오돌뼈도 절로 술을 부른다.
밀양클래식술도가는 스톰탁주를 시작으로 비슷한 계열의 자매품과 시즌별 술도 출시할 예정이다. 해외 수출도 올해부터 본격화한다. 다음 달 7일에는 서울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에서 스톰탁주 정식 출시 행사가 열린다.
글·사진=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기자들의 시음평]
▶김희돈 스포츠라이프부 부장
“청포도 같은 상큼한 향이 느껴지다 강한 끝맛을 남긴다. 독특한 캐릭터처럼 독특한 맛.”
▶남형욱 디지털미디어부 기자
“꽃향기와 함께 과일 향이 많이 난다. 이국적인 향 때문에 누군가는 거부감이 들 수도….”
▶김동우 편집파트 기자
“라벤더 같은 꽃향기에 맛도 독특. 요즘처럼 날이 풀리는 시기에 잘 어울릴 것 같다.”
▶이지민 디지털미디어부 에디터
“신기한 맛이다. 살짝 포도 향이 느껴지며, 입 안에 남는 게 없이 부드럽게 넘어간다.”
[전문가의 맛 코멘트]
▶이지민 대동여주도 대표
“입국에서 유래한 뽀얀 컬러를 갖추고 있으며, 제성은 맑게 잘 되어 있다. 입자감도 곱고 바디감도 미디엄 이하로 라이트한 느낌이다. 외관에서 주는 남성미 뿜뿜한 이미지와는 달리 향은 정반대 느낌이다. 부드러운 곡향과 함께 달콤새콤한 청포도 향이 가득 피어오른다. 맛에서도 향에서 느낀 관능적 특성이 이어지며, 음료수처럼 술렁 넘어간다. 천연감미료가 들어가 입안에 텁텁함이 남지는 않으나 단맛이 길게 남는다. 막걸리 입문자나 단맛을 선호하는 분들이 환영할 만한 막걸리다.”
-제품명 : 스톰탁주
-양조장 : 밀양클래식술도가(경남 밀양시)
-내용량 : 600mL
-알코올 : 6.0%
-원재료 : 쌀·입국·정제수·천연감미료
2023-03-15 [06:30]